Ep. 228
이쪽으로 날아오던 갤러곤들이 갑자기 멈추더니 진형을 바꿨다. 놈들은 거리를 유지한 채 내가 있는 산봉우리 주변을 둘러쌌다.
곧이어 구름 너머에서 보라색 불빛들이 번쩍였다. 원형으로 나를 포위한 뒤 일제사격을 가한 것이다.
‘역시.’
넓은 하늘을 빽빽하게 수놓는 사이킥 브레스. 내가 본 갤러곤 중 가장 빠른 아드하이조차도 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피할 생각도 없지만.’
나는 날개 팔과 전투용 팔을 활짝 벌려 날아오는 보랏빛 파도를 맞이했다.
이윽고 우주의 용들이 뿜어낸 브레스가 산봉우리를 덮쳤다.
주인을 잃은 보석의 둥지가 산산조각이 났고, 작은 숲을 이룬 나무들은 에너지의 헤일 속에 휘말렸다. 발아래의 지반도 무너져서 봉우리 끝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사이킥 브레스의 포화로 인해 산 중턱에서는 대규모 눈사태가 발생했다. 이 산 전체를 눈과 얼음으로 씻어 내리듯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사이킥 브레스로 발생한 폭음은 눈사태의 굉음 속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만하라」
오드 그라드가 명령하자 갤러곤 무리가 멈췄다. 브레스의 일제 사격은 컬트 제국의 함대와 견줄 만큼 대단했다. 덕분에 이 장소는 더 이상 쌍둥이 봉우리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놈들 중 하나가 확인을 위해 눈보라를 뚫고 접근한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붉은색 줄기무늬에 새로 생긴 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를 덮고 있던 눈과 얼음이 떨어지고 내 몸이 급격히 부상했다.
내 날개가 폭풍이 되어 눈보라를 몰아낸다. 멀쩡한 나의 모습에 녹색 갤러곤이 당황해한다. 엄청난 포격 세례에도 상처 하나 없으니 놀랄 수밖에.
나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그린 갤러곤한테 달려들었다.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흉악스러워진 뿔이 놈에 복부를 꿰뚫었다.
놈이 극렬한 통증에 몸부림친다. 나는 놈의 고통을 짧게 끝내주기 위해 전투용 팔로 놈의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팔에 힘을 줘 놈의 신체를 찢었다. 갤러곤의 피가 내 차가운 비늘 위를 적셨다.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는 파편 중 머리만은 놓치지 않고 꼬리의 집게발로 낚아챘다.
내 잔혹한 모습에 위압감을 느꼈는지 갤러곤들이 동요한다.
오직 갤러곤 뒤에 고고하게 날고 있는 오드 그라드만이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검은색 살육자」
견제 차원에서 먼저 공격하긴 했지만, 이걸로 내가 죽지 않을 거라는 것은 놈도 예상했나 보다. 물론 상처 하나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네놈」「달라졌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너를 사냥하기 위해 준비했다)]
「어리석도다」「위대한 오드 그라드」「패배하지 않느니라」
놈이 고갯짓을 하자 멀리서 나를 포위하던 갤러곤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브레스가 안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육탄전으로 승부를 보려는 속셈이리라.
나는 꼬리를 튕겨 그린 갤러곤의 머리를 입 안으로 던졌다. 갤러곤의 달콤한 피를 들이마시며 내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를 꺼냈다.
전신을 덮고 있는 검은색 비늘이 녹색과 보라색, 정체불명의 색으로 섬뜩하게 빛난다.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온 무지갯빛 타르가 뒷머리와 목, 턱까지 이어진 괴물의 촉수에 흐른다.
그리고 심연의 정수가 촉수 끝에 맺혔다. 거품방울 형태의 사이킥 브레스가 적들을 삼키기 위해 움직였다.
거품을 본 갤러곤들은 재빠르게 흩어졌다. 흩어지면서 앞발로 쥐고 있던 무언가를 공중에 던졌다.
놈들이 던진 것은 알 수 없는 생물의 살코기였다. 날아가던 사이킥 브레스는 내 의지와 달리 고깃덩어리를 먼저 덮쳤다.
사이킥 브레스에 녹아내리는 고깃덩어리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 지표면으로 추락했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녀석들도 앞발과 뒷발, 꼬리 등으로 생물의 살점을 몇 개씩 쥐고 있었다.
‘…똑똑한데?’
내가 놈에 대해 분석하던 것처럼 오드 그라드 또한 나의 특성에 대해 조사해온 것이 분명했다.
심연의 색채가 적용된 사이킥 브레스는 매우 강력한 화력과 연쇄 폭발 효과가 있어서 집단과의 난투전에 매우 효과적이다. 유기체를 전부 집어삼키면 근처에 있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알아서 달려들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피아식별을 안 한다는 것과 투사 속도가 느리다는 점. 오드 그라드는 그 짧은 시간에 이 약점을 파악해서 대처방안을 준비해온 것이었다.
‘26호가 있었다면 큰 문제가 안 됐겠지만….’
놈은 내가 홀로 있다는 것을 알고 이곳에 온 것일 터. 그렇기에 저 방법을 택한 것이겠지.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를 무효화시킨 갤러곤들이 내게 접근했다. 놈들이 지척까지 다가왔기에 더 이상 심연의 색채를 쓸 수는 없다.
새하얀 비늘을 가진 갤러곤이 내게 앞발을 휘두른다. 놈의 날카로운 발톱이 내 머리갑각 위를 긁고 지나갔다.
머리 위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래턱을 벌려 놈의 팔을 깨물었다. 적이 팔을 빼기 전 나는 전투용 팔로 놈의 몸을 꽉 쥐었다.
내 등으로 또 다른 그린 갤러곤이 덮쳐왔다. 나는 지상을 향해 축 늘어져 있는 꼬리를 강하게 휘둘렀다. 꼬리 끝에 달린 집게를 통해 묵직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목이 부러져 추락하는 그린 갤러곤은 내버려두고 화이트 갤러곤의 물고 있던 머리를 뒤로 뺐다. 입에 물려 있는 팔도 함께 뜯어지고 놈의 고통을 담은 사념파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함께」「몰아넣어라」
오드 그라드의 명령에 갤러곤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나는 울부짖는 화이트 갤러곤의 머리를 물어뜯으며 꼬리를 휘둘렀다. 앞서 날아오던 놈이 내 꼬리를 보고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나는 머리 없는 시체를 내던지고 몰려오는 놈들 안으로 뛰어들었다.
녹색과 백색의 비늘이 어지럽게 빛나고 놈들의 발톱이 내 갑각과 비늘들을 긁어댔다. 개중 백색의 갤러곤 하나가 뿔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갤러곤의 날카로운 뿔이 비늘을 뚫고 안에 파고들었다.
「고통 경감 발동!」
텍스트박스가 경고했지만 무시했다. 놈들을 한 번에 쓸어 버리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행동한 거니까.
예리한 발톱과 날카로운 뿔이 나를 죽이기 위해 쏟아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4개의 전투용 팔을 뻗어 놈들을 잡았다.
4개의 긴 손가락으로 놈들의 신체 부위를 단단히 움켜쥔 나는 블러드 리버를 포식해서 얻은 특성을 활성화시켰다.
‘포식 거머리의 손.’
그러자 내 손에 붙잡혀 있던 갤러곤들의 상태가 급변했다.
매끄러운 비늘이 급격히 오그라들고 피부와 근육들이 흐물흐물해졌다. 머리에 솟은 단단한 뿔은 바스러졌고, 촉촉하던 촉수다발은 말라비틀어졌다.
몇 초도 안 지나 4마리의 갤러곤이 바짝 마른 미라가 됐다. 그와 동시에 내 옆구리에 있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었다.
내게 재생을 돕는 특성이 있긴 하지만,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나를 찌른 놈도 붙잡아서 생명을 강탈할 때쯤에는 비늘까지 원상 복구될 정도로.
신의 회초리가 그랬듯, 포식 거머리의 손 효과도 심플했다.
적의 에너지를 빨아들여서 내 몸을 회복시키는 것. 단, 그 효과가 무식할 정도로 좋을 뿐이었다.
「물러나라!」「놈」「발」「조심하라!」
머리가 좋은 오드 그라드는 내가 한 짓이 어떤 효과를 지니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내게 붙어서 발톱으로 할퀴던 갤러곤들이 뒤로 재빠르게 물러났다.
‘어딜 가려고.’
도망치는 화이트 갤러곤의 꼬리를 붙잡으려 한 순간, 어마어마한 위력의 브레스가 나를 강타했다.
‘오드 그라드.’
마침내 놈이 나선 것이었다.
나는 놈의 브레스에 맞은 부위를 살펴봤다. 직격당한 부위는 비늘과 피부가 벗겨져 안쪽의 근육이 드러났고, 주변 부위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방비늘’이 적용된 상태임에도 이 정도 피해라니. 확실히 규격 외의 존재라 할 만했다. 하지만 포식 거머리의 손으로 흡수한 에너지 덕분에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응?’
달아오른 갑각에서 순간 낯익은 색이 감돌다가 사라졌다. 녹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기이한 빛. 마치 심연의 색채를 활성화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고통 경감 발동!」
‘윽!’
내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내게 날아온 오드 그라드가 나를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가속도까지 더해진 탓일까. 놈의 뿔은 내 전투용 팔와 날개의 피막을 쉽게 찢어발겼다. 나는 놈을 잡으려 했지만 놈은 초가속으로 멀리 물러난 뒤였다.
‘…역시 규격 외의 존재라 이건가?’
아드하이가 주로 쓰는 전술인데 그 결과는 차원이 달랐다. 덩치와 출력 차이 때문에 파괴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날개에 구멍이 난 바람에 추락하는 나를 향해 놈이 선회하며 날아온다. 나는 심연의 색채로 강화한 ‘공포의 주시자’를 사용했다.
내 머리갑각에서 불길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알록달록한 거품방울이 생성되었다.
내가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다른 갤러곤이 거품을 향해 사이킥 브레스를 쐈다. 도중에 폭발한 거품방울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흡수한 에너지로 날개의 피막을 재생시킨 나는 고도를 높이려 했지만, 오드 그라드가 막아섰다.
실로 검은 번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단한 속도였다. 놈의 뿔이 내 복부를 꿰뚫기 위해 날아든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 역시 대비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놈의 뿔이 내 옆구리를 스쳤고, 나는 침식 촉수를 던져 놈을 휘감으려 했다. 하나가 놈의 뒷발을 붙잡을 뻔했지만, 놈이 세게 걷어차는 바람에 실패했다.
놈과 공방을 펼치는 사이, 다른 갤러곤들이 내 뒤를 노렸다. 놈들도 오드 그라드와 마찬가지로 초가속 능력을 활용, 발톱으로 나를 공격하고 바로 빠졌다.
‘…이런 식으로 힘을 빼겠다는 거지?’
놈들의 수는 수십 마리가 넘는다. 각각 한 번씩만 공격에 성공해도 내게 적지 않은 피해를 안겨줄 수 있다.
머리가 좋은 놈답게 교활한 방식을 택했다.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나 또한 육탄전에는 일가견이 있는 몸.
나는 놈들의 공격을 맞으며 기회를 노렸다.
그린 갤러곤 한 마리가 나를 공격하려고 날아온다. 미숙한 개체인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초가속 상태에 일찍 돌입했다.
‘초가속 상태로 궤도를 바꾸기는 어렵지.’
나는 놈이 날아오는 궤도를 미리 예측한 뒤 몸을 피하면서 침식 촉수를 뻗었다. 놈의 공격은 빗나갔고, 내가 던진 침식 촉수가 놈의 날개를 낚아챘다.
당황하는 그린 갤러곤. 나는 놈의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들이기 위해 전투용 팔을 뻗었다.
「그 능력」「사용할 수 없느니라」
하지만 오드 그라드는 내가 상처를 회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흑룡의 숨결이 날아오더니 내가 아닌 그린 갤러곤을 모조리 태워 버렸다.
갤러곤 중에서도 이질적으로 포악한 놈답게 동족을 희생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래. 그렇게만 해라.’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 또한 내게는 궁극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이었기에.
그 이후로 몇 차례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내가 포식 거머리의 손을 쓰려고만 하면 놈이 브레스를 쏴서 회복원, 즉 자기 동족을 미리 제거했다.
나 또한 반격하기 위해 놈들에게 다가갔지만 초가속으로 날아다니는 놈들을 뒤쫓기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잡아서 체력을 회복하려면 어김없이 오드 그라드의 공격이 날아들었고.
이 자리에서 내가 죽인 수보다 오드 그라드가 죽인 수가 더 많아졌지만, 갤러곤들은 여전히 놈을 따르고 있었다. 불손한 감정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드 그라드를 배신하고 새 왕을 섬기지는 않았다.
전세는 점점 놈들 쪽으로 기울어갔다. 포식 거머리의 손으로 흡수한 에너지는 어느새 다 떨어졌고, 내 몸에 부상은 점차 늘어갔다.
「고통 경감 발동!」
방금도 오드 그라드가 날아와 내 전투용 팔 한쪽을 뜯어냈다. 심지어 놈은 내 팔을 버리지 않고 그 안에 담긴 피를 마셨다.
나를 향한 명백한 도발이었다. 나는 그 대답으로 사이킥 브레스를 쐈다. 심연의 색채가 적용되지 않았기에 오드 그라드도 피하지 않고 초능력으로 구성된 화염을 내뱉었다.
새벽 바다 위에서 태양이 뜨는 것처럼, 보라색 빛이 검은 하늘 위에 깔렸다.
블랙 갤러곤과 갤러곤의 유전자를 지닌 에이모프가 만든 장엄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전력을 다해 쏘고 있었지만 놈은 그렇지 않았기에.
힘겨루기 도중 놈이 이 게임을 끝내자는 듯 브레스의 출력을 크게 올렸다. 줄다리기가 팽팽히 이어지고 있다가 한쪽이 힘이 빠진 것처럼 사이킥 파워가 내 쪽으로 확 쏠렸다.
놈이 쏜 사이킥 브레스, 그 위에 내 힘의 반동이 더해져 내 몸 전체를 때렸다. 모방비늘 덕분에 몸이 한순간에 분해되는 것은 막았지만, 고통과 부상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피막 중 일부가 타들어 간 탓에 내 몸이 봉우리 위로 추락했다.
추락 도중 붉게 달아오른 갑각에 또다시 기이한 빛을 번뜩이다가 사라졌다.
왜 자꾸 이러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큰 충격이 뇌리를 덮쳤다. 내 몸은 엉망이 된 봉우리 위에 처박혔다.
「고통 경감 발동!」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지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텍스트박스에 신경을 끈 나는 하늘 위를 올려다봤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놈들과의 싸움을 시작한지 꽤 지났다. 여전히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니, 딱 한 군데를 제외하면 말이다.
오드 그라드와의 힘겨루기로 인해 구름들 가운데 백색의 선이 나 있었다. 갈라진 구름의 틈을 통해 하얀빛이 보였다.
그때 검은색 날개가 빛을 가렸다. 오드 그라드가 내 앞에 착지한 것이었다.
나는 땅에 파묻혀 있던 전투용 팔을 잽싸게 뻗었지만, 놈은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쉽게 피해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사용해 내 급습을 피한 놈은 꼬리로 내 팔을 세게 후려쳤다.
내 팔을 부러트린 놈은 이어서 날아온 침식 촉수도 어렵지 않게 앞발로 쳐 냈다. 그동안 심연의 색채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놈을 향해 사이킥 브레스를 발사하려고 했다.
「소용없다」
미리 예지한 놈은 앞발을 휘둘러 내 괴물의 촉수를 뭉텅이로 잘라 냈다.
「그르르르르!」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고통 경감이 발동되었다는 메시지가 마구 떠올랐지만 조금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렇게 끔찍한 고통은 심연의 색채 버전 공포의 주시자를 맞은 이후 처음이었다. 아무 행동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검은색 살육자」「약점」「간파했다」
「그르르르….」
「위대한 오드 그라드」「힘」「몰랐는가」「어리석은 자여」
놈은 나를 땅에서 끄집어냈다. 지금이라도 전투용 팔로 놈을 붙잡아야 하는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뒷발과 꼬리로 나를 짓누른 놈이 지껄인다.
「이번에도」「위대한 오드 그라드」「승리로다」
놈이 반지를 낀 앞발을 높이 쳐든다. 갈라진 하늘에서 태양의 빛이 쏟아지며 놈의 등을 비춘다.
오랜만에 보는 그 빛무리. 그 안에서 움직이는 작은 점들을 본 순간.
나는 마지막까지 아껴둔 카드를 꺼냈다.
「죽어라」
놈이 앞발을 휘둘러 내 목의 살점을 뜯어냈다. 피가 왈칵 쏟아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치명상을 입은 나를 바라보며 놈은 의기양양하게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마셨다.
명백히 자기가 승리했다고 믿는 모습이었다.
놈의 태도가 가리키는 사실은 단 하나.
[즈즈즈즈즈(여기까지로군)]
「?」
[즈즈즈 즈즈즈(네가 본 미래)]
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는 오드 그라드. 그 틈에 나는 등에 돋아난 ‘뼈 낫 팔’을 사용해 놈을 벴다.
구체적으로는 반지를 낀 놈의 앞발을 말이다.
「네놈!」
순식간에 앞발을 잃은 놈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나는 땅에 떨어진 신체 부위를 주워서 흡수했다.
「왜 죽지 않는 거냐!」
목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오드 그라드가 악을 쓴다.
미래까지 내다보는 놈이 유일하게 놓친 것이 있다면, 에이모프의 약점 그 자체다.
에이모프를 단번에 죽이려면 머리와 심장을 파괴해야 한다. 목이나 다른 부위가 아니라.
「동족들이여!」「검은색 살육자」「죽여라!」
놈은 날개를 펼쳐서 날아오르며 사념파를 뿌렸다. 내게 돌진하든, 사이킥 브레스를 쏘던 상관없으니 당장 죽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갤러곤 무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드 그라드」「명한다!」「검은색 살육자」「죽여라!」
오드 그라드가 재차 명령했지만, 그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자리에서 흑룡을 제외한 모든 갤러곤들이 단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즈즈즈즈즈(오드 그라드)]
「네놈!」
나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 행성에 온 이후 처음으로 보는 밝은 빛. 빛을 등지고 있는 6마리의 갤러곤이 보인다.
그들이 누군지 알아챈 오드 그라드가 흠칫 놀란다.
나는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붉은 용을 바라보며 파장을 널리 흩뿌렸다.
[즈즈 즈즈즈(여왕을 받들라)]
버려진 자와 반역자.
과거의 존재들이 미래의 폭군을 시해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