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32
싸움이 끝난 뒤, 오드 그라드, 아니 이제 아드하이의 무리가 된 녀석들은 전(前) 둥지로 돌아갔다. 그들의 지휘는 넬 게르마가 맡기로 했다.
함 오르트는 아직 부상이 덜 회복되었으므로 하늘의 어머니와 함께 내가 만든 동굴 둥지로 귀환했다. 거기서 마저 상처를 치료한 뒤 블루 갤러곤들을 모아 오드 그라드의 둥지에 합류할 예정이다.
남은 우리는 지금 쌍둥이 봉우리 근처에 있는 숲을 뒤지고 있는 중이다. 전투 중에 추락한 갤러곤들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시체를 찾고 있는데 PS-111이 내게 다가왔다.
PS-111은 생물 유전자와 에너지 보급에 관심이 있다 보니 넬 게르마와 같이 가지 않고 이 자리에 남았다.
녀석의 갈고리 손톱이 달린 손에는 스노우밴시를 붙잡혀 있었다.
“전투를 분석한 결과, 신체의 크기가 전투에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도출해냈습니다. 신체를 재조정하기 위해 이 생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끽! 끼기긱!”
보아하니 갤러곤의 시체를 탐내다가 PS-111에게 붙잡힌 것 같았다.
숲에 내려온 지 얼마 안 지나 사냥의 표상 효과가 끝났다. 지금 내가 스노우밴시를 먹어도 유전자 정수를 얻을 확률은 낮다.
‘넘겨줘도 문제는 없겠지.’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갤러곤의 시체만 남겨줘)]
“확인했습니다.”
“끽?!”
내 허가가 떨어지자 녀석이 낫 모양의 발톱이 달린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칼바람이 튀어나와 스노우밴시를 벴다.
뜨끈한 피와 내장이 차가운 바닥에 쏟아졌다.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건조한 숲에 확 퍼졌다. 녀석은 조각난 시체를 주워 먹었다.
이 근처에 녀석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딱히 없다. 열심히 식사 중인 녀석을 뒤로하고 숲 안쪽으로 이동했다.
「큰애기는 배 안 고파?」
[즈 즈즈즈 즈즈즈즈(난 다른 걸 먹으려고)]
쌍둥이 봉우리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부서진 나무들이 보였다. 넓게 퍼진 가지들이 꺾인 것을 보면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와 충돌한 흔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부서진 가지의 끝이 가리키닌 곳에 검은 덩어리가 있었다.
행성 밖에서 날아온 운석처럼 보이는 그것은 목이 날아간 오드 그라드의 시신이었다.
목만 날아간 것이 아니었다. 지표면에 충돌한 충격으로 날개는 완전히 구겨졌고, 허리는 기괴한 형태로 꺾였다.
자기 능력을 과신하고 우두머리의 권세에 집착하던 검은 용의 비참한 말로였다.
「나쁜 파닥파닥 대장이야?」
[즈즈(맞아)]
블랙 갤러곤의 고기는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다. 앞발과 머리만으로도 대량의 에너지를 얻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엄청 맛이 좋지.’
에이펙스 생물의 고기들은 하나 같이 깊은 풍미를 자랑해서 내게 즐거움을 줬다. 그리고 블랙 갤러곤은 내가 먹은 에이펙스 중 가장 강력한 존재. 맛도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더 이상 에너지에 목매지 않아도 되지만….’
버서커 시냅스와 용의 심장 덕분에 에너지 수급이 전보다 여유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피할 필요는 없다.
「대장 먹을 거야?」
[즈(응)]
「맛있게 먹어.」
나는 시체를 잡아 뜯으려다가 멈췄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위에 올라타 있는 26호.
지금이야 몸을 작게 줄여놔서 크기가 50cm밖에 안 되지만, 원래는 거의 10m에 달한다. 과거에 성체 씨 데몬의 사이킥 파워를 흡수한 결과, 대폭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블랙 갤러곤을 먹어도 비슷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
게임에서 갤러곤과 씨 데몬은 상급 사이킥 생물로 명성이 높다. 외형, 서식 환경, 습성 등 다른 것투성이지만, 공통적으로 매우 강력한 사이킥 파워 기술을 사용한다.
갤러곤은 사이킥 파워가 대량으로 뿜어져 나오는 둥지에서 성장하며 다량의 에너지를 체내에 축적한다. 반면, 씨 데몬은 성체가 죽기 전 다른 씨 데몬에게 힘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축적된 사이킥 파워를 유지 및 계승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대량의 사이킥 파워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아.’
실제로 26호는 블루 갤러곤들에게 사이킥 파워를 먹이로 공급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 반대로 갤러곤의 시체를 이용해서 녀석에게 힘을 부여하는 거다.
나는 블랙 갤러곤의 배에 전투용 팔들을 쑤셔 넣었다.
손가락 끝에서 따뜻한 내장과 살점이 느껴진다. 놈의 심장을 비롯한 주요 장기들을 붙잡고 끄집어냈다.
아직 온기가 남아 따뜻한 장기에서 맛좋은 냄새가 솔솔 난다. 나는 내 머리 위에 있는 26호에게 방금 꺼낸 먹이를 건넸다.
[즈즈 즈즈 즈즈즈즈(이거 한 번 먹어볼래?)]
「큰애기가 잡은 먹이잖아.」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배불러서 혼자 못 먹겠어. 맛있으니까 먹어봐)]
26호는 촉수를 길쭉하게 늘려 내 손에 있는 먹이를 휘감았다. 그리고 얇게 펼친 밀가루반죽처럼 몸통을 늘리더니 촉수 채로 먹이를 빨아들였다.
이윽고 녀석의 몸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빛났다.
[즈즈 즈즈즈(어때? 맛있지?)]
「맛있다!」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아직 많으니까 더 먹어)]
녀석은 내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머리에서 내려와 오드 그라드의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원래도 먹성이 좋은 녀석이었지만, 블랙 갤러곤의 장기는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26호가 식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4장의 붉은색 날개를 지닌 갤러곤, 아드하이였다. 녀석은 뻥 뚫린 가지 틈새로 들어와 내 옆에 착지했다.
「시체」「안 멀어」「금방」「도착해」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이것만 먹고 그쪽으로 가 볼게)]
「확인」
[즈즈즈즈즈 즈즈 즈즈(맛있으니까 너도 먹어)]
「큰어른」「사냥감」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같이 잡았잖아. 전리품은 나눠야지)]
「그런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도 함께 만찬에 참여했다. 녀석은 시체 위에 올라가 찢어진 가죽 사이로 촉수를 박아 넣고 피를 빨아 마셨다.
「완전」「좋아」
감탄한 듯 목을 파르르 떤 녀석은 부지런히 피를 들이켰다. 동족은 아끼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한 갤러곤답게 아드하이는 오드 그라드의 시체를 먹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에이모프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더 늦으면 먹을 것이 하나도 안 남을 것 같아서 나 역시 녀석들 사이에 껴서 식사할 준비를 했다.
어디부터 먹을까 고민하는데, 반만 남은 앞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하게 잘린 저 단면은 내가 만든 흔적이다.
저 앞발에 끼워져 있던 반지는 현재 내 가슴 쪽 작은 손으로 꼭 쥐고 있다.
땅에 내려와서 반지를 억지로 끼워 봤지만, 특별한 효과는 없었다. 감정을 숨기는 능력도 전혀 발동되지 않았다.
다른 조건을 충족시켜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오드 그라드 전용인 것인지는 불명. 지금 내게 있는 이 반지는 아무 효과도 없는 보석 반지에 불과하다.
‘쩝.’
게임에서 존재하지 않던 장비치고는 참으로 싱거운 결말이었다. 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당분간 작은팔로 들고 다니기로 했다.
‘반지는 됐고. 지금은 밥이나 먹자.’
앞발에서 시선을 뗀 나는 뒷다리를 잡아 쭉 뜯었다. 그리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좋네.’
블랙 갤러곤의 맛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맛이다.
‘풍미는 트러플 오일과 후추의 향이 섞인 느낌인데.’
예전에 인공 트러플 오일이 들어간 음식을 맛본 적 있는데 그때 느낌과 매우 비슷했다. 살코기에서 나는 기름진 냄새를 핏물에서 나는 톡 쏘는 매운 향이 중화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또한 다른 에이펙스와 다르게 블랙 갤러곤의 고기에는 독특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가죽 부분이다.
겉면을 바삭하게 구운 돼지고기의 껍데기처럼 가죽이 아삭아삭하게 씹혔다. 식감도 재밌지만 맛은 한층 더 훌륭했다. 고기의 맛을 한층 더 농축시킨 깊은맛이 새어 나왔으니까.
고기 자체는 제법 질긴 편이었지만, 에이모프의 턱에 부담을 줄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적당히 씹다가 넘길 수 있어서 고기의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도 강한 적일수록 맛있다는 공식은 지켜졌네.’
순식간에 뒷다리를 해치운 나는 놈의 꼬리 부위에 손을 뻗었다.
“식사하시는 중입니까?”
꼬리를 잡아 뜯어내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PS-111이었다. 우리가 먹는 동안 시체를 수거하고 온 것인지 놈 옆에는 하얀색 갤러곤 시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즈즈즈 즈즈즈즈(시체를 챙겨 왔구나)]
“예.”
녀석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주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블랙 갤러곤의 꼬리를 꽉 쥐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스크리머는 뇌와 연결된 기계 장치의 통제를 받는다. 따라서 모든 신체 활동이 기계의 제어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뮤턴트 스크리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손에 힘을 줘서 꼬리를 뜯어낸 후 녀석에게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즈즈 즈즈(줄 때 먹어)]
“감사합니다.”
누가 기계 아니랄까 봐 두 번은 거절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짧은 만찬이 끝나고, 나는 아드하이가 알려 준 장소로 가서 시체들을 회수했다.
전부 들고 갈 수는 없으니 4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이 자리에서 처리했다. 이 4구는 함 오르트의 치료와 갤러곤들의 먹이로 사용할 예정이다.
내가 몸이 크니 3구를 들고, 26호가 원래 몸으로 돌아와서 1구를 들기로 했다. 사냥을 끝내고 확보한 전리품을 들고 우리는 동굴의 둥지로 출발했다.
‘달라진 것 같기도 한데.’
몸을 부풀린 26호의 모습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파리를 연상시키는 지느러미와 몸 곳곳에 튀어나온 촉수들, 모두 익숙했다.
‘몸이 좀 커졌나?’
26호는 몸 크기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바뀐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몸에 품은 에너지양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정확하겠지만, 26호는 사이킥 파워를 숨기는 것이 능숙하다. 전투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녀석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없다.
‘뭐 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아직 시도해 볼 것들이 몇 가지 남아 있다. 가령 사이킥 파워가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용의 둥지라든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둥지로 돌아가던 중, 내 보조기관에 어떤 냄새가 잡혔다.
‘응?’
그 냄새는 신선한 피 냄새와 비슷했지만 약간 달랐다. 오히려 쇠 냄새에 가깝다고 할까.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은 냄새였다.
나는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큰애기야, 왜 그래?」
“무슨 일입니까?”
[즈즈(조용)]
나는 고개를 숙여 땅에 가까이 댔다. 땅속에 박힌 금속 냄새인가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냄새를 확인하던 중 내 시선이 PS-111에게 닿았다. 스크리머 특유의 금속과 유기물이 뒤섞인 바이오메나니컬한 신체에서는 금속 냄새와 생명 유지를 위한 화학 약품의 냄새가 풍겼다.
그건 보조기관이 감지한 이 냄새와 상당히 비슷했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이 주변도 스크리머의 활동 범위에 들어가나?)]
“제 메인컨트롤러가 변경되기 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쌍둥이 봉우리로 이어지는 이 주변 숲은 여러 차례 다녔다. 스크리머가 있었다면 진작 조우했을 거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 즈즈즈즈(스크리머의 냄새가 나.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PS-111의 눈에서 달팽이의 더듬이를 연상시키는 감지 장비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땅에 몸을 바짝 낮추고 호스 형태의 감지 장비를 이용해 바닥에 남은 흔적들을 더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바닥에 찍힌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조류의 발을 연상시키는 3개의 발톱 자국.
스크리머의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