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35
에이모프는 둥지를 둘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지만, 설치 자체는 그리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둥지를 만드는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 아웃스페이서와 비교해 보면, 조건이 없는 수준이라 해도 좋다.
다만 설치하는 것 자체만 그럴 뿐 둥지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에이모프 역시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진화 단계, 보유한 에너지, 주변 환경의 적합 여부 등등. 여러 조건이 부합해야만 대규모의 둥지를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최상의 둥지를 만들 조건을 전부 충족했다.
부상당한 갤러곤이 모여 있는 이곳에는 호수가 있어서 점액질이 쉽게 퍼지도록 돕는다.
그것뿐인가. 용의 둥지는 사이킥 파워가 고도로 밀집된 지역에 위치한다. 내가 서 있는 이 공동의 벽에는 어마어마한 사이킥 파워가 흐르고 있다. 내 몸을 떠난 점액질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요소가 차고 넘친다.
순식간에 호수를 검은색으로 물들인 나는 쓰러져 있는 갤러곤들에게 공생물 포자를 붙였다.
몇몇은 부상이 매우 심각했기에 공생물 포자를 심자마자 바로 오염된 호수에 던져 넣었다. 개중에는 넬 게르마도 있었다.
「검은색 동족」「넬 게르마」「둥지」「방어」「실패함」
[즈즈즈 즈즈즈즈즈(괜찮아. 신경 쓰지 마)]
녀석은 내장이 다 보일 정도로 복부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강인한 신체를 지닌 갤러곤이 아니었다면 진작 죽었을 부상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녀석처럼 생명력이 질기지 않았다.
「큰어른」「동족」「죽었어」
아드하이가 그린 갤러곤 시체를 앞에 두고 사념파를 흘렸다. 녀석의 깊은 슬픔이 공동에 메아리쳤다.
‘많이 죽었어.’
부상당한 갤러곤을 옮기면서 숫자를 세어 보니 성체들 중 살아남은 수는 넬 게르마까지 포함해 13마리뿐이었다. 화이트 갤러곤의 수가 넷, 그린 갤러곤 수가 9마리였다.
힘들게 얻은 갤러곤 대부분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즈으으으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아드하이, 새끼들이 멀쩡한지 확인해 봐)]
갤러곤들이 목숨을 바쳐 둥지를 지켰으므로 새끼들은 죽지 않았을 거다. 숨어서 둥지가 안전해지길 기다리고 있을 터.
동족을 잃은 충격에 빠져 있는 아드하이를 달래주려면 말보다는 블루 갤러곤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낫겠지.
「알았어」
「위대한 아드하이」「이쪽」
비교적 덜 다친 그린 갤러곤이 아드하이와 함께 공터를 떠났다.
‘이렇게 될 줄이야.’
오드 그라드 사냥을 통해 얻은 최고의 전리품은 사실 갤러곤 무리였다. 이들을 이끌고 다른 행성에 있는 에이펙스 생물이나 우주요새 등을 공략할 계획이었으니까.
하지만 밖에 있는 스크리머 놈들 때문에 나의 계획이 완전히 망가졌다. 새끼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들을 성장시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감히 내 갤러곤들을 건드려?’
이만큼 화가 난 적도 참 오랜만이다. 게임 중 진화를 방해받았을 때만큼이나 열이 치솟는다.
저 역겨운 고철 덩어리들, 이대로는 절대 못 보낸다.
‘놈들을 전부 죽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나는 끈적거리는 검은색 액체로 가득 찬 호수 위에 엎드렸다. 미지근한 점액질에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닿자 내 감각이 아래로 확 쏠렸다.
의식이 육중한 갑각과 단단한 비늘로 덮인 육신에서 벗어나 이 거대한 공동, 넓은 호수와 동화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감각은 공동과 연결된 통로들을 따라 더욱더 크게 확장된다.
그 느낌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잠에서 깰 때 몸에 감각이 돌아올 때와 비슷했다. 사실 딱히 다른 것은 아니다. 내 의식이 둥지로 넘어갔으니 호수가 나의 심장이요, 검은색 점액질은 나의 수족이 되었으니.
과거에 나는 메가콥의 연구선, 우주도시 등 여러 장소에서 둥지와 연결된 적이 있다. 적들과 어디서 싸울지, 어느 시점에 노릴지, 어디로 유인할지 미리 관측하고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둥지와의 링크에 성공한 나는 갤러곤들의 보금자리 구조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개미의 집처럼 뻗어 있는 통로망들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느껴진다. 아드하이만큼이나 큰 몸집을 지녔음에도 벌벌 떠는 블루 갤러곤들. 그들과 알들의 생존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아드하이, 그리고 텅텅 빈 동굴들까지.
‘전부 다 볼 필요는 없어.’
나는 아드하이로부터 감각을 돌려서 절벽에 있는 입구들에 집중했다.
입구는 우리가 발을 디뎠던 동굴까지 포함해 총 4개. 그것 말고도 여러 개의 굴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중간이 막힌 가짜 입구다.
나의 의지에 따라 둥지를 구성하는 점액질이 빠르게 절벽 쪽 입구와 연결된 통로들로 뻗어 나갔다. 둥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충분하다 보니 확장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이 속도라면 몇 시간 안에 입구까지 이어진 통로들은 전부 점액질로 뒤덮일 거다.
둥지에서 연결을 해제한 나는 26호와 PS-111을 불렀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적을 여기에 불러서 잡을 거야)]
자연이 만든 이 미궁에서 놈들을 단번에 쓸어버릴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폭 공격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마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
밖이었다면 모를까 둥지로 진입한 뒤에 자폭할 가능성은 낮다. 놈들이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작 자폭 돌격으로 용의 둥지를 매몰시켰겠지.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하나.
‘갤러곤의 유전자.’
PS-111이 말했듯이 피라 일레븐이 뮤턴트 스크리머를 생산하려면 유전자 정보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무 생물의 유전자 정보가 아니라 씨 데몬급의 고급 유전자 말이다.
이건 함선에서 찍어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밖에서 수급해야 하는데 갤러곤의 둥지만큼이나 매력적인 장소는 없을 거다. 자폭 전술이 성공한다고 해도 갤러곤들이 전부 매몰된다면 스크리머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전혀 없다.
하물며 놈들은 나와 한 차례 싸운 경험이 있다. 절벽이 무너진다고 내가 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을 터.
따라서 놈들은 자폭 대신 다른 수단을 이용해 나를 제압하려 들 거다.
‘뭐가 됐든 놈들의 행동은 의미 없어.’
어둡고 좁은 통로가 가득한 미로만큼 에이모프가 잘 싸우는 장소는 없다.
나는 어떻게 싸울지에 대해 26호와 PS-111에게 설명했다.
감히 용의 둥지를 공격한 스크리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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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된 탐지 장비 능력 적용 완료.”
“새로 획득한 ‘갤러곤’, 위험 생물 ‘헬사이드 호넷’의 생물적 특징 반영 완료.”
“원거리 공격 수단 개선 필요함.”
차갑게 얼어붙은 숲에서 수많은 스크리머들이 전투를 준비했다. 최근 연달아 전투가 발생한 탓에 그들의 수는 100체로 크게 줄었다.
갤러곤의 둥지 공략과 특수목표A 구축 임무에 투입된 개체 수는 총 209체.
S모델 189체, PS모델 20체가 투입되었는데, 남은 수는 S모델 90체, PS모델 10체였다. 반수 이상이 활동 정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기계위원회의 안드로이드 피라 일레븐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남은 100체들은 이전의 약점을 보완해서 성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부서진 스크리머 잔해와 함선의 드론을 통해 보급한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덕분에 남은 100체의 스크리머들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모델을 막론하고 모든 스크리머들은 8개의 다리를 지녔지만 이 자리에 있는 100체의 스크리머들의 다리 수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개체는 16개, 어떤 개체는 12개의 다리를 지녔다.
금속 골격 부분 말고 생체 조직 부분은 훨씬 끔찍했다. 어떤 개체는 붉은색 살점이 급격히 늘어나 튜브와 골격 위를 뒤덮은 형태였고, 어떤 개체는 몸 곳곳에 낫처럼 생긴 길쭉한 발톱들이 돋아나 있었다.
100체 중 어느 하나 똑같은 형태가 없었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그 모습이 지옥의 악마가 조형한 것처럼 끔찍하다는 것.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흉물 그 자체였으나 피라 일레븐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100체야말로 살육과 학살에 최적화된 완벽한 전투 병기였으니.
그중 몸에 큼지막한 눈 8개가 달린 PS모델이 피라 일레븐의 명령을 전달했다.
“탐지용 개체 투입.”
몸에 큼지막한 기계 부품을 박은 S모델 10체가 반대편 절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전이었으면 그대로 절벽 사이에 흐르는 강에 추락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크리머들이 다리를 벌리자 그 사이로 넓은 피막이 펼쳐졌다. 그들은 날다람쥐처럼 활강해서 반대편 절벽에 위치한 동굴 입구에 내려앉았다.
“탐지 개시. 생명 반응 추적.”
10체의 모델들이 입을 벌리자 초음파가 흘러나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행성 얼음 지반 아래에 서식하는 케이브고일의 유전자 정보를 흡수해서 얻은 능력이었다.
“둥지와 이어지는 입구 4개로 확인.”
“전투용 개체. 단계적으로 투입.”
몸을 기괴하게 개조한 S모델 20체, PS모델 2체가 한 조가 되어 움직였다. 밖에는 피라 일레븐과의 중계를 맡을 PS모델 2체가 남았다.
총 4개의 조가 하나씩 차례대로 천천히 입구로 들어갔다.
밖에 있는 PS모델, PS-005는 돌입한 지휘관들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해 지시를 내렸다.
[B조 진입 중.]
[C조 갈림길 확인. 오른쪽으로 이동.]
[D조 공동 확인. 갤러곤들의 생활 흔적 확인됨.]
[E조 전방 220M 밖에서 생명 반응 확인. 전투 준비함.]
“E조 생명 반응 추적 실시. D조 생활 흔적 추적 요망.”
갤러곤의 둥지에서는 강력한 사이킥 파워가 발생하지만 이들 간의 통신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씨 데몬의 유전자를 적용해서 고유의 사이킥 회로를 이용해 통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입한 지 10분 만에 생명 반응을 감지한 E조로부터 적을 제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특수목표A의 기생물로 확인. 샘플 채취 후 전달함.」
“확인.”
PS-005는 소형 드론이 유전자 샘플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몇 분을 기다려도 드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조에게 확인 요청. 샘플 이송 드론이 도착하지 않음.”
「5분 45초 이전에 발송함.」
5분이면 이미 드론이 모습을 드러내고도 남을 시간이다. PS-005는 다시 명령했다.
“진입로를 다시 확인 바람.”
「확인…이상 발생.」
“이상 내용에 대해 보고 요청함.”
「통로가…치직, 변함, 치직, 재탐색 요…치직」
“회로에 이상 발생. 다른 조 확인 바람.」
「B조 이상 없음.」
「C조 이상 없음.」
「D조 이상 없…전방 100M 밖에서 생명 반응 확인. 전투 준…치직」
E조에 이어서 D조까지 잡음이 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PS-005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통신 회로는 일반적인 기계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의 생체기관을 이용해 대화하는 것이므로 고장이 나지 않는다.
그는 서둘러 피라 일레븐에게 보고하는 것과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내릴 수 있는 지휘를 내렸다.
“D조? 다시 보고 바람.”
「치지지직, 문제 없, 치지직, 확인, 치지직」
“D조. 회로에 이상 발생. 다시 확인 바람.”
「확인. 회로에 이상 없으나 새로운 문제 발생.」
“보고 바람.”
「둥지의 구조 변경 확인됨.」
「E조 진입로가 변경됨을 확인. 재탐색 개시함.」
통신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어서 날아온 보고 내용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둥지 구조가 바뀌었다니?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보고를 들은 PS-005는 자기 판단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B조 생명 반응 사방에서 감지됨.」
「C조 전방 50M 앞에서 생명 반…정정함. 전방과 후방 10거리에서 동시에 생명 반응 관측.」
「D조 현재 지형이 변하는 것을 관측함. 탐색 기능 효과 없음.」
「E조 사방에서 생명 반응 사방에서 감지됨. 예측 불가. 예측 불가.」
「예측 불가. 예측 불가. 예측 불가.」
모든 PS모델이 말하고 있다.
그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통로가, 거대한 갤러곤의 둥지가 살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