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37화 (238/400)

Ep. 237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전투는 대개 야단스러운 편이다.

하늘에서는 수백m 크기의 함선들로부터 에너지 함포의 비가 내리고, 육상에서는 강화복을 입은 병사들과 각종 괴물들이 서로 맞부딪친다.

플레이어들 중에는 기함에 앉아 조종하는 스타일도 있고, 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스타일도 있다. 플레이어가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전쟁은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축제와도 같다.

오히려 중후반까지 기습과 은밀한 움직임이 장려되는 에이모프가 특이한 편이라 해도 좋으리라.

그러고 보니 하나를 빼먹었다. 사실 에이모프처럼 조용하게 싸우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스크리머.

기계의 통제를 받는 그들은 필요한 말만 할 뿐 다른 소리는 거의 내지 않는다. 부상당한 병사가 내지르는 비명,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는 병사들의 절규 등, 전쟁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음들이 전혀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싸우고 있는 장소, 절벽 안에 있는 늪 호수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수십에 달하는 스크리머들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거기에 소리는 없었다. 그저 물살이 흔들리는 소리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두터운 배갑(背甲) 안에 잠들어 있던 침식 촉수들이 일제히 깨어났다.

목표는 후방에 위치한 스크리머들. 6개의 부속지를 활짝 펼친 촉수들이 먹이를 노리는 구렁이처럼 늪 위를 헤엄쳐 그들을 붙잡았다.

상대적으로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스크리머들이 각자의 무기들을 꺼낸다.

못 본 사이에 또다시 개조를 거친 것인지 놈들의 외형은 개성이 넘쳤다. 다리가 여러 개라든가, 살점이 늘어져서 뚱뚱해졌다든가, 눈이 여러 개로 늘어났다든가 등등.

PS-111이 나와 만났을 당시, 녀석에게 융합된 생물종은 총 다섯 종. 그리고 몸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블러드 리버나 갤러곤의 발톱검 등을 재료로 썼다.

용의 둥지에 찾아온 스크리머들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죽은 스크리머의 잔해를 몸에 덧붙여서 강화된 상태였다.

‘PS-111보다는 훨씬 불안정해 보이지만.’

놈들은 적용된 유전자만 많을 뿐, 박살 난 전신을 재구성한 PS-111보다 엉망이었다. 디자인적으로도 그렇고, 효율성 면에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래서야 에너지 소비율도 지나치게 높고, 제각각 규격이 다 달라서 보수하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오로지 단기간의 전투, 나를 죽이는데 모든 것을 투자한 상태라 봐야겠지.

‘그래 봐야 나를 이길 수는 없어.’

지금도 둥지 곳곳에서는 나의 친구들이 스크리머들을 각개격파하고 있다. 점액질로 만들어진 벽 뒤에 숨어 있다가 타이밍에 맞춰 기습을 한다거나, 스모그 탑이 만든 안개에 신경 쓰다가 후방을 공격당하거나 등등.

그러다가 적들이 죽으면, 검은색 점액질이 시체를 흡수해 내게 영양분을 전달한다. 둥지 관련 특성 ‘인신공양’의 효과 덕분이다.

‘거기다가 블러드 리버도 있지.’

스크리머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놈은 내 등 위에 올라타 공격을 시작했다.

헬사이드 호넷의 유전자를 이식했는지 놈의 다리 중 서너 개에 낫 형태의 발톱이 달려 있었다. 놈의 발톱이 번뜩일 때마다 배갑이 큰 흠집이 생기고, 침식 촉수에 길쭉한 상처가 났다.

놈이 공격하는 사이, 다른 스크리머들도 달려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피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늪지 바닥에 깔아둔 전투용 팔을 뽑아 날아오는 스크리머를 붙잡았다.

‘포식 거머리의 손’ 효과가 발동되자 놈의 몸에 있던 살점이 확 쪼그라들었다. 순식간에 고열량의 에너지원으로 변한 스크리머. 남은 것은 놈의 신체를 구성하는 단단한 금속 골격 뿐.

하나가 죽으면 또 다른 하나가 살아난다. 스크리머로부터 얻은 생명력이 내 몸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부서진 갑각과 피가 흐르는 상처도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다.

내 몸에 올라타서 공격 중이던 스크리머가 멈칫한다. 놈의 육신을 지배하는 AI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해서 그런 것이겠지.

나는 동그랗게 똬리를 튼 꼬리를 쭉 폈다. 뱀처럼 생긴 하반신과 합치면 20m를 훌쩍 넘기는 커다란 꼬리가 수면을 헤치고 떠올랐다.

배갑 위에서 깔짝거리는 스크리머가 꼬리를 보고 도망치려 한다. 지금까지 실컷 공격하고 빠지려는 놈을 내버려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꼬리 끝에 달린 집게로 놈을 세게 내리쳤다. 머리갑각과 함께 내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와 충돌한 놈은 금속 골격이 완전히 박살났다.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라 꼬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내게 접근하던 스크리머들이 급히 물러났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꼬리에 맞고 날아가 공동의 천장이나 벽에 쳐 박혔고, 일부는 내 집게에 붙잡혔다. 집게에 힘을 줘서 두 동강 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입을 활짝 벌린 채, 꼬리를 몸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집게에 붙잡힌 놈들이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날뛰었지만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내게 먹히지 않기 위해 놈들이 다리를 휘두른다. 3개의 합성 발톱이 내 주둥이에 박히고, 놈들의 몸에서 나온 화염이 내 입천장을 태운다.

통증은 잠깐이었다. 상처가 생길 때마다 둥지가 내 몸을 치유했다.

놈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나는 뱀의 입처럼 크게 벌어진 턱을 한 번에 닫았다. 집게 밖으로 튀어나온 놈들의 상반신과 머리가 으깨진 상태로 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왔다.

‘맛없어.’

박하사탕과 오렌지 주스, 양갱을 동시에 먹은 것처럼 형편없는 맛이었다. 최근에 갤러곤처럼 맛있은 음식만 먹어서 그런지, 역치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입에 머금지 않고 그냥 삼켜 버린 나는 머리와 상체를 잃고 늘어진 잔해를 늪에 던져 버렸다. 후퇴한 스크리머들이 나를 향해 각종 탄환을 쏟아부었다.

집속탄, 고속 충격탄과 같은 스타유니언의 재래식 무기부터 사이킥 파워를 응집한 에너지탄 같은 에너지형 무기까지. 그들이 가진 무기 중 일부는 나를 상처 입히고, 고통을 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들이 내 몸을 파괴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 둥지 위에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에이모프를 공략하려면 더 강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적의 공격을 그대로 맞으면서 나는 다음 무기를 준비했다.

목 아래로 축 늘어져 있던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든다. 흑룡으로부터 얻은 심장 덕분에 빠르게 사이킥 파워가 충전된다.

순식간에 모든 에너지를 채운 괴물의 촉수가 불을 뿜는다.

용의 숨결이 모든 것을 삼킨다. 빛이 반사되어 보라색으로 반질반질 빛나는 금속 골격들도, 살점에 파묻힌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숨소리도.

용의 동굴에 침입한 도적들이 불에 타죽는 동료들을 보고 도망치려 한다.

공동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뒤에서 나는 날개 팔을 크게 펼쳤다.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밤의 신이 옷자락을 펼치는 것처럼 내 날개가 늪 호수 위를 꽉 채웠다.

이곳에서 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빠져나갈 수 없다.

그 누구도.

-

둥지 밖에 남은 PS-005는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대편 절벽에 위치한 동굴에 진입한 4개의 조, 총 98체의 스크리머로부터 모든 소식이 끊겼다. 단순한 통신 장애로 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머리에 박혀 있는 AI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통신이 종료되기 전 스크리머들이 남긴 메시지들 때문이다. 환경, 적, 모든 요소가 예측 불가인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다.

함정에 빠진 이들이 어떻게 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대부분이 돌아오기는 힘들 터.

갤러곤의 둥지를 공략하기 위해 투입된 209체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자신과 옆에 있는 또 다른 PS모델뿐이다.

기계가 아니라면 진작 도망칠 상황에서도 그는 피라 일레븐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기다리던 답변이 돌아왔다.

“퇴각 준비함.”

“확인.”

진입한 부대와의 통신이 끊기기 전까지 얻은 정보는 전달된 상황.

200체에 달하는 개체를 잃어 버렸지만, 마냥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특수목표A에 대한 정보를 적게나마 습득했으니, 이를 바탕으로 새 전략을 수립하면 그만이니까.

피라 일레븐과의 통신을 해제한 그들은 절벽을 떠났다.

여러 개의 금속 다리를 단 반생물 반기계의 존재들이 숲을 가로질렀다. 절벽에서 떠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숲 내부는 여전히 어두웠다.

물론 다양한 시야로 전환할 수 있는 그들에게 이 정도의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적외선감지 시야로 전환한 그들은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다리를 바삐 놀리며 움직였다.

그렇게 피라 일레븐이 있는 얼음의 협곡으로 달리던 중, PS-005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얼어붙은 흙이 살짝 갈라지는 소리. 이 행성에 사는 토착 생물이 움직일 때 저런 소리가 난다.

두 스크리머들은 달리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숲에는 야생 동물이 없다. 갤러곤의 둥지를 공격하기 전, 그들이 숲에 사는 생물들의 씨를 말렸기 때문이다.

즉, 저 발소리는 이 숲에 없던 존재가 낸 거다.

PS-005는 경계를 유지하면서 탐지용 소형 드론을 풀었다. 탐사 드론이 나무들 사이로 움직이며 탐사를 개시했다.

드론과 동기화된 상태로 움직이는 대상이 없는지 살피던 그때, 드론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동기화가 강제로 해제된 PS-005가 몸에 이식된 생체 병기들을 꺼내자, 곁에 있던 스크리머도 전투를 준비했다.

그들은 드론이 파괴된 장소로 이동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그들은 망가진 드론을 발견했다.

특이하게도 드론의 잔해는 얼음이 섞인 흙바닥이 아니라 나무 위에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금속 창에 의해 시야 감지 카메라가 관통당한 상태로 말이다.

PS-005는 시야가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을 머리 안에서 재생했다.

열 감지 시스템이 적용된 드론이 정지하기 전, 한줄기의 빛무리가 날아왔다. 그는 창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확인한 뒤 기록 재생을 종료했다. PS-005의 시선이 빛무리, 아니 저 황금색 금속 창이 날아온 위치로 향했다.

“확인 필요.”

“확인하겠음.”

옆에 있던 스크리머가 창이 날아온 위치로 기어갔다.

그 사이 PS-005는 물리적 투사체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탐지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이곳에 온 이후, 이런 원시적 형태의 무기를 사용하는 생물은 본 적 없다. 극도로 변덕스러운 기후 조건을 갖춘 이 행성은 문명이 자라기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어차피 사로잡으면 그만이다. 본인이 말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의 유전자는 답을 알고 있을 테니까.

몇 초 안에 탐지 시스템을 전환한 그가 전방을 바라봤다.

창을 던진 존재의 흔적을 조사하기 위해 앞서 나간 스크리머가 보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몸과 머리가 분리된 스크리머가.

그리고 그 앞에는 네 발로 걷는 거대한 야생 동물이 있었다.

머리는 지구에 서식하는 맹금류의 기반에 뾰족한 뿔이 달려 있고, 몸은 커다란 고양잇과 맹수를 닮았다. 몸은 검은색 물결무늬가 그려진 짙은 황금색 털로 뒤덮여 있었다.

놈은 큼지막한 앞발로 동료의 머리를 짓밟아 으깨버렸다. 어두운 숲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가 PS-005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행성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던 존재. PS-005는 저 생물이 누구인지 안다.

“특수목표C와 77% 일치.”

최우선 목표인 특수목표A만큼은 아니더라도 특수목표C도 사살 대상 중 하나다.

PS-005는 놈과 싸우는 대신, 후퇴하는 것을 택했다. 홀로 놈을 사살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도 피라 일레븐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빠르게 그 자리에서 후퇴한 PS-005는 피라 일레븐과의 통신을 재활성화했다. 여러 개의 다리를 바삐 움직이면서 그는 방금 본 정보를 총지휘관에게 전송할 준비를 했다.

그 탓일까.

그는 자기가 탐지 시스템을 물리적 투사체를 탐지하는 모드로 전환했다는 사실을 등한시하고 말았다. 반대편 위치의 나무들 사이에서 날아오는 보라색 열선을 보고 나서야 자기 실수를 알아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

「갑자기 둥지가 없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하늘의 어머니는 넬 게르마와 함께 용의 둥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함 오르트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와 함께 에이모프가 만든 둥지에 있었다.

하루쯤 더 쉬니까 함 오르트의 몸은 거의 회복되었다. 이틀 정도 더 있다가 용의 둥지로 향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둥지가 확장을 멈추고 시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에이모프의 둥지가 쇠락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녀는 에이모프와 여러 번 싸워 봤기에, 둥지 설치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둥지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가장 앞에 설치한 둥지가 자동으로 해제된다.

작은 동굴에 깔린 검은색 늪이 말라붙은 것을 본 그녀는 에이모프가 새로운 둥지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게 에이모프 일행의 위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도.

모프박이는 인간이 아니라 마치 태생부터 에이모프였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둥지를 마구 깔아댈 리 없다.

그리고 이 주변에서 에이모프가 한계치만큼 둥지를 깔아댈 장소는 하나뿐.

「유성의 딸」「안전한가?」

「녀석이라면 괜찮을 거로 생각해. 모프박…검은색 동족이라면 반드시 지키려 할 테니까.」

「믿겠다」

에이모프가 둥지에서 얼마나 강력한지는 그녀도 알고 있다. 게임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서 클랜이 박살 난 적이 있었으니까.

‘용의 둥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잔당 같은데.’

그리폰 상태로 돌아온 하늘의 어머니는 신체의 반을 잃어 버린 스크리머에게 다가 갔다.

함 오르트의 날개가 다 낫지 않아서 일부러 천천히 비행한 것이 득이 됐다. 덕분에 둥지로 날아가던 도중 나무 아래에서 움직이는 스크리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꿈틀거리는 놈의 머리를 앞발로 짓밟았다.

PS-111을 생각하면 스크리머들은 머리만 남아도 위험하다. 살아서 도망칠 수도 있고, 아니면 소각 시스템을 활성화해서 그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이놈들은 머리를 부숴야 해. 안 그러면 자폭하니까 조심해.」

「확인했다」

함 오르트에게 주의를 준 하늘의 어머니는 나무에 꽂힌 제사장의 황금창을 회수했다. 부리로 창을 문 그녀는 함 오르트 위에 올라탔다.

「마음은 알지만 지금처럼 도망치는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조금만 천천히 가 줘.」

「알았다」

나뭇가지들을 뚫고 날아오르는 함 오르트 위에서도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는 숲 위에만 계속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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