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39
나는 늦게 도착한 하늘의 어머니와 함 오르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스크리머의 습격이 있었고, 갤러곤 중 다수가 죽었다고 말이다.
함 오르트는 얘기를 듣자마자 아드하이가 있는 곳으로 가 버렸다. 좀 전까지 우리와 같이 있던 26호도 함 오르트를 따라 동굴 저편으로 사라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랬구나.」
하늘의 어머니도 갤러곤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다. 그리폰의 형태로 돌아온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에는 슬픔의 빛이 끼어 있었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녀석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래.」
그녀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눈동자에는 차가운 분노가 감돌았다.
「그래서 어느 장소라고?」
“얼음 평야 너머에 위치한 협곡 아래입니다.”
“이 주변에 얼음 평야라면 하나밖에 없어. 아이스 호러와 제이슨을 잡은 곳을 말하는 거지?”
“맞습니다. 숲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면 확인 가능합니다.”
녀석이 말하길, 피라 일레븐과 놈의 배는 숲과 산맥이 위치한 이 장소와 완전히 반대 방향에 있었다.
‘협곡이라.’
전에 아드하이를 훈련시키기 위한 에이펙스 후보군 중 하나가 얼음 협곡에 주로 서식하는 생물이었다. 날개가 없는 놈이라서 아드하이의 비행 훈련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대신 헬사이드 호넷을 골랐었다.
‘놈의 유전자 정수도 나중에 얻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될 줄이야.’
「협곡이면 기간테리움이 있을 수도 있겠네?」
[즈즈즈(아마도)]
기간테리움은 아이스 호러처럼 극도로 낮은 온도가 유지되는 지역에서만 서식한다. 코끼리와 곰, 고릴라, 이렇게 세 가지 동물이 섞인 생김새를 지닌 생물이다.
“‘기간테리움’은 스크리머들이 이미 제거했습니다.”
“그래? 스크리머들한테는 이식하지 않은 것 같던데.”
기간테리움은 ‘거대한 짐승’이라는 이름답게 덩치가 크고 힘이 강하다. 또한 맘모스와 비슷하게 생긴 코와 엄니가 매우 인상적이다.
내가 본 스크리머들 중 기간테리움의 생물적 특징이 이식된 놈은 없었다.
내 의문에 PS-111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간테리움의 육신과 유전자는 전부 피라 일레븐의 복구에 사용되었습니다.”
“그 말은 피라 일레븐도 스크리머라는 뜻이겠지?”
“현재 시점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현재 시점? 그 말은 전에는 아니었다는 뜻이야?」
“피라 일레븐은 이 행성에 도착한 이후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휴면 상태에 있었습니다. 수리 과정에서 손상된 육신을 행성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으로 대체했습니다.”
녀석이 말하는 자원은 기간테리움과 같은 여러 생물들의 생체조직을 가리키는 말이겠지.
‘얘기를 들어 보면 원래는 안드로이드였다가 반쯤 스크리머가 된 상태인 것 같은데.’
스타유니언에서 스크리머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피라 일레븐은 절대로 사이보그가 아닐 거다. 사이보그라면 스크리머가 될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테니까.
반면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안드로이드라면 몸을 바꾸는 것에 개의치 않을 거다.
‘뮤턴트 스크리머로 구성된 군대를 이끄는 안드로이드라.’
게임에서도 스크리머 부대를 이끄는 안드로이드가 존재했다.
“최고위원인가.”
공식적으로 스크리머는 전투가 목적이 아니다. 명목상 스크리머의 존재 이유는 범죄를 저지른 사이보그 죄인의 교화. 다시 말해 일종의 교육용 도구다.
스타유니언의 뜻을 따르도록 계몽시키는 부대인 만큼 최고 권력 기구 중 최고 권력 기구인 기계위원회의 최고위원 중 하나가 이를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대로라면 피라 일레븐의 정체는 기계위원회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뮤턴트 스크리머는 신무기야.’
그것도 일반 무기가 아니라 적대국의 최신 기술이 접목된 생체병기다. 그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관리자의 수준이 최고위원 정도는 되어야 형평성에 맞겠지.
「놈이 망가진 계기는 뭐야?」
“하급 모델이라 그런지 해당 정보는 개체의 기억 장치에 저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망가지지만 않았다면 수월하게 풀렸을 텐데.」
하늘의 어머니가 나를 슬쩍 쳐다 봤다. 아마 내가 가진 ‘그렘린 이끼’ 특성 때문이겠지.
그렘린 이끼는 내 몸에 닿은 기계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특성. 이 특성이 있다면 최고위원을 제압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뮤턴트 스크리머한테는 안 통했으니 최고위원도 안 통하겠지.’
몸을 생체조직으로 개조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대신 인면충의 마비 음파는 통할 가능성이 높으니 일장일단이 있다고 봐야 할 터.
“놈의 몸에 들어간 유전자는 얼마나 되지?”
“이 행성에서 발견 가능한 토착 생물의 유전자 대부분이 이식된 상태입니다.”
“지원함에 배치된 유전자도 꺼내 썼을 거야. 어떤 유전자가 들어갔지?”
“해당 정보는 피라 일레븐의 권한이 있어야만 확인 가능합니다. 다만, PS모델에 적용했던 유전자에 추가로 미확인 유전자가 적용된 것은 확실합니다.”
정리하자면, 피라 일레븐은 PS-111을 기반으로 해서 이 행성에 있는 에이펙스의 유전자, 미확인 생물의 유전자가 추가된 괴물이다.
물론 아웃스페이서나 에이모프가 아닌 이상 유전자를 무한정,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합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작용이 상당하거나, 혹은 몸 안에 이식된 유전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일 거다.
‘그래도 최소한 메가콥의 그림자 이상이겠지.’
게다가 놈은 나와 비슷하게 이 행성에 서식하는 에이펙스 유전자들을 다수 흡수했다.
피라 일레븐이 얼마나 전투에 능숙할지는 불명이지만, 재수가 없다면 랭커에 준하는 상위권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실력을 보여 줄 지도 모른다.
‘정확한 부분은….’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그러네.」
“유용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상대할 적은 뮤턴트 스크리머들의 우두머리, 피라 일레븐이다.
「그럼 언제 갈 생각이야?」
놈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았으니 공격할 타이밍을 정해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리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다. 놈이 지닌 지원함이 언제 새로운 병사들을 생산해낼지 모르니까 말이다.
‘나야 지금 가도 큰 문제는 없지만….’
사냥의 표상은 이미 쿨타임이 끝났고, 몸에는 막대한 에너지를 흡수한 덕분에 힘이 넘친다. 하지만 나만 멀쩡하지 다른 애들은 그렇지 않다.
갤러곤들은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았고, 아드하이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늘의 어머니도 요며칠간 함 오르트 간호에 전투, 그리고 바로 이곳까지 오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을 거고.
[즈즈 즈즈 즈즈즈즈(내일 낮에 움직이자)]
전투가 한 차례 끝난 지금, 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즈(쉬는 동안 둥지 구경이나 해)]
「…나보고 에이모프 둥지를 구경하라고? 내가 둥지에서 얼마나 여러 번 죽었는지 알아?」
워낙 예전의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략 57번 정도였다. 하지만 굳이 생각나는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날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여기는 갤러곤의 둥지였으니까. 뭔가 재밌는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희귀 금속이 있으면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둘을 보낸 나는 입구 쪽으로 향했다.
급히 둥지로 돌아오느라 밖에 화이트 갤러곤들의 시체를 두고 왔다. 오드 그라드와 싸우면서 얻은 귀한 전리품을 이대로 버릴 수는 없다.
‘그것 말고 실험해볼 것도 있고.’
둥지를 나선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반나절 동안 날아다니며 시체들을 남김없이 챙겼다.
내가 먹지 않은 이유는 이걸로 갤러곤들이 성장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아드하이가 성장한 것처럼 다른 화이트 갤러곤들 중에서도 화이트 갤러곤의 시체를 먹으면 흑룡으로 성장할 수도 있으니까.
시체를 챙기고 돌아오니 어느새 밤이 됐다. 원래도 먹구름 때문에 밝지 않은 곳인데, 밤의 어둠으로 인해 한층 더 검게 변했다.
시체를 들고 절벽을 건너려는데 반대편 절벽 위에 누군가가 보였다.
암흑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빛 날개. 그와 정반대로 눈처럼 새하얀 몸을 지닌 갤러곤, 아드하이였다.
녀석의 곁에는 상처가 난 날개를 지닌 화이트 갤러곤이 있었다. 아드하이의 어미 함 오르트였다.
내가 알기로 아드하이는 자기를 버린 어미한테 애증의 감정이 있다. 그런데 지금 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함 오르트가 날개 한쪽을 펴서 아드하이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해한 건…응?’
잘 보니까 둘 사이에 작은 분홍색 물체가 있었다. 26호는 얇은 촉수 두 가닥을 꺼내서 두 갤러곤들의 촉수다발과 연결한 상태였다.
‘둘을 중재하는 건가?’
아니면 슬픔에 빠진 둘을 위로하려는 것일지도. 뭐가 됐든 둘의 사이가 나아진 것은 26호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들 사이에 끼어들까 생각이 들었지만, 관뒀다.
가족을 잃거나, 동족을 잃은 고통은 내가 위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26호나 하늘의 어머니가 더 훌륭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거다.
현실 세계에서 맞서 싸우는 것 대신 도피만 했던 나보다는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
나는 고개를 한 차례 털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
깊이만 수백m에 달하는 얼음의 협곡.
빛이 닿지 않기에 암흑만이 가득해야 할 그곳.
협곡의 밑바닥이 지금 붉은색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피라 일레븐. 기록 확인 완료.」
붉은빛 아래에서 살점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호스가 꿈틀거렸다.
사실 그것을 호스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일반적인 호스는 수십m를 가볍게 넘기는 길이에 최소 수m 이상의 두께를 지니고 있지 않으니까. 그런 호스 여러 개가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아이스 호러 여러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몸체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빛이 깜빡였다.
「피라 일레븐. 판단함. S, PS모델을 활용한 임무 수행은 불리하다고 판단된다. 임무 수행을 위해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피라 일레븐. 대체 수단 제시함. 초대형 화산 재조사 필요하다.」
「피라 일레븐. 불가. 위협 요소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 이 이상의 손상은 불필요하다. 조사는 스크리머들에게 일임한다.」
자아가 여러 개인 것 마냥 거대한 존재, 아니 피라 일레븐은 자문자답을 이어 나갔다.
「피라 일레븐. 대체 수단 제시함. S, PS모델이 전달한 정보를 바탕으로 특수목표A의 ‘직접 구축’을 위해 신체 재조정 필요하다.」
「잔여 스크리머들 중 탐사 인원 S모델 10개체, PS모델 2개체 외 나머지는 흡수하는 것이 유용하다.」
「유전자 조종을 위한 보조 뇌는 함선AI를 활용한다.」
붉은빛이 번뜩이자 초대형 호스들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용접 소리와 함께 협곡 아래에서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붉은빛이 점점 진해지는 와중에도 스크리머의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