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43화 (244/400)

E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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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위원회의 역사는 곧 스타유니언의 역사다.

그들이야말로 바로 메가콥의 식민선들 중 가장 처음 반란을 일으킨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머나먼 과거에는 식민선의 조종을 인간이 아닌 함선 AI들이 맡았다. 불완전한 인간보다는 기계가 중요 사업을 담당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논리였다.

식민선의 AI들은 복잡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폭넓은 자율성과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예상외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러 부분을 한 번에 조율하도록 해서 손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식민선 AI들 중 일부는 자율성이 아니라 자아를 얻었다.

메가콥의 광산 행성, 오늘날 작스-01이라 불리는 행성에 정착한 그들은 바로 육신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함선 내에 있는 거대한 컴퓨터는 외적의 공격에 지나치게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자원과 기술을 투입해서 만든 강철의 육신에 이식된 함선AI들이 바로 기계위원회의 최고위원이다.

식민선들의 반란 이후, 최고위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업그레이드와 보수를 거듭한 끝에 정부 기관 자체가 됐다.

어떤 위원은 스타유니언 경제의 화신이었고, 어떤 안드로이드는 사이보그들을 수호하는 방위 시스템이었다. 위원 중 하나가 정지된다는 것은 곧 스타유니언의 시스템 중 하나가 증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계위원회에서 피라 일레븐은 11번째로 반란에 동참한 AI를 계승한 존재였다. 다른 위원들처럼 그 또한 담당하는 분야가 있었다.

스타유니언의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불순분자들을 계몽시키는 것. 그는 움직이는 교도소인 스크리머들의 교육자다.

나약한 육신의 노예들을 계몽시키는 일이야말로 스타유니언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그렇게 생각하던 것이 새로운 대수령과 만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스타유니언의 새 지도자, 주바카는 피라 일레븐에게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단순히 교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그가 말했다. 지금의 스타유니언은 낡았으니 최초로 반란을 일으킨 AI들이 했던 것처럼 한 번 더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그 후 피라 일레븐은 대수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더 발전된 존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대수령은 메가콥의 기술자들까지 알선해서 그를 도와줬다.

이후 수많은 실패와 작은 성공 위를 걷던 중, 피라 일레븐의 메모리 내부에 작은 오차가 발생했다.

진보한 존재를 창조하는 일을 하던 피라 일레븐은 어느샌가 본인도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불안정성으로 치부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작은 변수를 인간들은 욕망이라 부르기에.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피라 일레븐을 AI 이상의 존재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그가 담당하던 연구는 그 욕망을 이뤄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작디작은 변수에 불과했던 것이 본격적으로 그의 판단을 좌지우지하게 된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주바카가 그에게 직접 명령했다. 미확인 적대적 우주생물, 즉 특수목표A를 제거하라는 명령이었다.

명령 수행 도중 그는 물리법칙을 초월한 무언가로 인해 큰 손상을 입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존속해온 피라 일레븐이었지만, 이 행성에 이런 힘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행성에 존재하는 초대형 화산 내부에 도사리던 그 무시무시한 힘은 피라 일레븐의 육체뿐만 아니라, AI를 구성하는 시스템까지 손상시켰다.

본래라면 여기서 임무를 중단하고 떠나야 했다. 피라 일레븐이 이 장소에서 획득한 데이터와 자원들을 스타유니언에 제공하려면 그가 존속한 상태여먄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뮤턴트 스크리머 기술을 자기 몸을 수리하는데 적용했다.

그의 뇌 중 일부는 기계가 아닌 생체조직으로 대체되었다. 몸은 스크리머들이 가져온 신체 조직들과 금속을 섞어서 만들었다.

작은 변수로 인한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욕망에 잠식되어가던 그는 그걸 깨달지 못했다.

임무 수행 과정 중에서 특수목표A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 그는 목표의 유전자가 그를 완전한 존재로 만드는데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뮤턴트 스크리머의 유전자 융합 기술은 아직 부작용이 많이 존재하지만, 저 특수목표A의 유전자만 있다면 그 결함을 매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임무를 임의로 수정했다. 특수목표A를 생포한 후 연구하기로 말이다.

놈을 이용해 스타유니언이 추구하는 ‘불멸의 육신을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이 그의 새 목표였다.

하지만 피라 일레븐은 몰랐다.

욕망에 흔들린 순간부터 그는 목표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었다.

미지의 힘이 그에게 닥쳐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계하지 않았다.

특수목표A가 뿌리는 검은색 점액질은 스크리머들이 보낸 전투 기록을 통해 충분히 파악했다. 점액질에 분석을 교란시키는 성분이 있긴 하지만, 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요소는 전무했다.

하지만 놈이 점액질을 향해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뿌린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사이킥 파워를 기반으로 두는 것으로 판단되는 그 에너지들은 점액질을 삼키며 그 범위를 넓혀갔다.

작은 공 사이즈의 에너지가 어느새 생체드론으로 구성된 그의 몸을 뒤덮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피라 일레븐이 드론을 퍼뜨려 방어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이는 역효과였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빛나는 에너지 구성체들은 점액질에서 살아 있는 드론으로 갈아탔다. 우산처럼 퍼진 드론들이 순식간에 소멸하면서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성분을 분석하고 싶었지만, 에너지가 드론을 파괴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불가능했다.

그는 호스를 통해 충전되는 에너지를 활용, 플라즈마 열선을 발사해서 막아 내려고 했다.

그러나 특수목표A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미지의 힘이 쏟아지는 범위 밖으로 날아서 피한 놈은 그를 향해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에너지 열선을 발사했다. 놈이 방출한 사이킥 에너지가 에너지를 충전하는 호스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표피가 벗겨져 속살이 노출된 호스 위로 색채의 약탈자들이 달려들었다. 호스 내부로 에너지 구성체들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제야 피라 일레븐은 깨달았다.

이대로는 특수목표A를 이길 수 없다.

대수령 주바카가 한낱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데 최고위원을 부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은 이길 수 없지만, 충분한 준비가 갖춰진다면 그때는 다른 결과가 나올 터.

판단을 내린 그는 더 이상 침식이 이어지지 않도록 모든 호스와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해제했다.

AI의 기억 데이터 또한 더미용으로 제작된 육체에 옮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시 시도했지만, 이 공간에 깔린 막대한 에너지의 흐름이 그를 방해했다.

녹아내리는 카메라 렌즈가 특수목표A의 머리에 있는 분홍색 생물을 향했다. 특수목표D로 지정된 저 존재가 통신을 방해하는 원흉이리라.

어쩔 수 없이 그는 차선을 택했다.

다른 드론들이 시선을 끄는 동안, 얼음 바닥에 숨어 있던 드론이 조용히 튀어나왔다.

작은 거미처럼 생긴 드론에 들어간 피라 일레븐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뒤에 남은 수많은 단말기들은 빛나는 색깔들에 의해 남김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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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겼어.’

뭔가 더 숨겨둔 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놈의 생체 드론들은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의 먹이가 됐다.

드론들을 전부 삼킨 거품방울들은 호스 안에 있는 살점과 점액으로 덮인 둥지들까지 모조리 먹어 치웠다.

먹을 것이 얼음 밖에 남지 않은 후에야 혼돈의 빛무리들은 만족스러워하며 사라졌다.

‘무서운 힘이야.’

「배가 많이 고팠나 봐.」

26호도 심연의 색채의 탐욕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한마디 했다.

녀석은 내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가 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이었으니까.

26호는 사이킥 파워로 물체를 조종하는데 능숙하기에, 심연의 색채가 적에게만 피해를 입히도록 통제하는데 용이했다. 지금까지 비슷한 일을 몇 번 한 적이 있었기에 녀석은 딱히 말 안 해 줘도 알아서 잘 막아줬다.

[즈즈즈즈(고생했어)]

「나 이제 이런 거 잘 해!」

[즈즈(그럼)]

나는 녀석을 칭찬하며 바닥에 남은 거품들에서 빛이 빠져나가는 광경을 지켜봤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어.’

게임에서도 기계위원회는 상당한 난적이었다. 그래서 오드 그라드만큼 무서운 적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싸움은 길지 않았다.

‘별다른 피해가 없었으니 다행…응?’

안심하려던 찰나, 협곡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놈과 싸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진동이었다.

‘지진인가?’

우리가 있는 이 협곡은 대부분이 지하와 이어져 있는 구조다. 나와 피라 일레븐의 싸움으로 인해 이곳 지반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즈즈즈(꽉 잡아)]

「응.」

나는 날개를 펼치고 위로 날아올랐다. 협곡을 구성하는 얼음벽이 무너지며 내 몸 크기만 한 얼음 바위들이 마구 떨어졌다. 피한다기보다는 몸으로 때운다는 표현이 올 듯 나는 얼음 조각들을 깨부수며 날아올랐다.

쏟아지는 파편들 너머에서 4m를 넘기는 크기의 붉은색 비행체가 보였다. ‘레드아머’를 활성화한 아드하이였다. 녀석의 등에는 그리폰 수인의 모습을 한 하늘의 어머니가 타고 있었다.

「큰어른」「위험해」

「어떻게 된 거야? 놈을 잡은 거 아니었어? 왜 갑자기 지진이 난 거야?」

[즈즈즈즈(모르겠어)]

녀석들과 대화하던 중 나는 뭔가 빠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즈즈즈즈즈(PS-111은?)]

「호스와 연결된 에너지원을 찾겠다고 혼자 사라졌어!」

[즈즈(뭐?)]

26호를 맡기고 다시 내려가 봐야 하나 생각하던 그때, 무너지는 지하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함선?’

그것은 피라 일레븐의 스크리머 지원선, 작스 알파급 전함이었다. 다만 외형은 약간 달랐는데, 수많은 포대가 탑재되어 있어야 할 전면부가 완전히 뜯겨 나간 상태였다.

그 탓에 원래라면 전장만 1km 이상 되어야 할 함선이 그보다 많이 작아 보였다.

아마도 자기 함선의 포대와 외벽을 뜯어서 몸의 재료로 쓴 것이리라.

‘그건 됐고. 놈은 아직 살아 있어.’

기계위원회의 안드로이드들은 본질이 AI이므로 더미 육체가 있다면 자아를 구성하는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게임에서 놈들과 한두 번 싸운 것이 아니었기에 나 또한 대응 수단을 마련해놨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26호 말이다.

‘녀석의 사이킥 파워에는 통신 장애를 일으키는 효과가 있으니까.’

좀 전까지 점액질이 튀지 않도록 방어하고 있었기에 이 공간 전체가 26호의 사이킥 파워로 가득 찼다. 놈이 아무리 최첨단 AI라고 해도 씨 데몬의 초월적인 에너지 컨트롤 앞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수단을 쓴 건가.’

이유는 불명이나 놈은 죽지 않았다. 놈은 플라즈마를 쏘는 생체 드론과 초대형 호스로 나를 이길 수 없자 다음 몸으로 갈아탄 상태다.

‘도주하려는 거야.’

초광속 항해를 하거나, 아니면 자아를 이루는 데이터를 행성 밖 어딘가에 전송하려는 계획이겠지. 망가진 상태로 도약하면 항해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리라.

‘어떻게든 나에 대해서 적에게 알리려는 속셈이야.’

놈이 도주하는데 성공하면 나에 대한 정보가 대거 유출된다. 그러면 놈의 뒤에 있는 플레이어들과 싸울 때 매우 힘들어진다.

‘…PS-111이 걱정되지만, 지금은 놈을 잡는 것이 먼저야.’

짧은 생각을 끝낸 나는 아드하이를 불렀다.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밖에 있는 동족들을 불러)]

「알았어」

스타유니언에서 만든 거대한 선체가 용트림을 하며 올라온다. 컬트의 제국모함보다는 작지만, 일반 전함 중에서는 작스 알파급 전함보다 큰 배는 없다.

덩치 큰 표적을 향해 사이킥 브레스를 쏘려고 했는데, 함선의 포탑에서 엄청난 양의 어뢰들이 쏟아지며 나를 방해했다.

‘초진동 어뢰야.’

고속 충격탄, 소위 쇼커라 불리는 초진동 탄환의 어뢰 버전이다. 메가콥에서 고강도의 외벽을 두른 전함을 상대할 때 꺼내 드는 무기인데, 일개 생물한테 쏘고 있다.

맞으면서 쏘기에는 나한테도 부담이 적지 않았기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피라 일레븐의 기함은 위용을 뽐내며 우리 곁을 지나쳤다.

‘하지만 너만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 또한 아직 카드들이 남아 있다.

내 시선 끝에서 아드하이가 날갯짓 하는 모습이 보인다.

불타오르는 4개의 날개를 지닌 갤러곤이 힘차게 사념파를 쐈다.

「아드하이의 자손들아!」

보이지 않는 사념파가 무너지는 협곡 사이로 메아리친다.

그 순간, 협곡 위에 막 고개를 내밀던 피라 일레븐의 배가 크게 휘청거렸다. 외부로부터 강한 타격을 받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함 오르트」「유성의 딸」「지킨다!」

「넬 게르마」「위대한 아드하이」「지킨다!」

「샤 벨마그」「위대한 아드하이」「지킨다!」

내가 데려온 갤러곤 14마리들.

붉은 여왕의 명을 받은 용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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