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49화 (250/400)

Ep. 249

에이모프는 타입을 하나 획득할 때마다 페널티를 얻는다.

다른 타입을 얻을 때마다 새로운 타입 획득에 필요한 특성 개수가 2배로 증가한다는 것.

한 번 생긴 페널티는 무슨 수를 써서도 제거할 수 없으므로 에이모프는 장기적으로 갈수록 타입 획득이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어떤 타입을 먼저 획득할지도 신중히 정해야 했고, 필요 없는 특성도 개수를 채우기 위해 챙기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만 해도 문제인데,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유일 특성이 갖는 필연적인 단점과 타입 페널티가 안 좋은 시너지를 낸다는 것.

유일급 기술이나 특성은 캐릭터가 죽으면 사라진다. 만약 타입 페널티를 받지 않을 정도로 특성 수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데 여기서 죽으면? 유일 특성도, 타입도 모두 날리는 거다.

나도 죽었다가 유일 특성이 빠지는 바람에 타입까지 날려 먹은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그 페널티를 완화시켜준다니.’

덕분에 이미 획득한 타입 계열의 특성들을 자유롭게 융합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향후 새로운 타입을 획득하는 것도 쉬워졌고.

이미 해금 상태에 있는 ‘특수방어 강화 타입’과 ‘내부기관 강화 타입’은 각각 필요한 특성 개수가 16개다. 이미 열어뒀기 때문에 필요 개수에 변동은 없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굳이 개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야.’

가진 특성들을 마음껏 융합 재료나 특성 강화의 재료로 써도 되니까. 앞으로는 유일 특성도 재료만 모이면 바로 합칠 수 있다.

‘진화 조건을 더 빨리 채울 수 있겠는걸.’

앞으로 유일 특성 5개, 타입 2개만 더 획득하면 성체가 된다.

우주괴물 1단계 보상 덕분에 향후 얻게 되는 타입부터는 페널티가 초기화되니 새로운 타입을 획득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운이 좋다면 새로운 타입을 기존에 갖고 있던 특수방어나 내부기관 타입보다 먼저 얻을 수도 있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여길 떠나야 해.’

게임이었다면 유일 특성 획득을 위해 더 어려운 사냥터로 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일 특성 합성이 쉬워졌으니까. 그보다는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 정수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좋다.

타입 보상까지 확인을 마친 나는 텍스트박스를 해제했다. 지금쯤이면 PS-111도 개조가 끝났을 터. 녀석과 언제쯤 떠나는 게 좋을지 얘기해 봐야겠다.

나는 거미의 다리처럼 길쭉해진 전투용 팔과 날개 팔을 움직여서 화물칸 밖으로 나왔다. 가는 도중에 애들이 있던 보관소를 살짝 들여다 봤다.

26호와 하늘의 어머니, 아드하이는 언제나 그렇듯 서로 붙어서 잠들어 있었다. 나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든 것 같았다.

‘싸우느라 피곤했…응?’

잠깐 살펴보고 나가려 했는데 아드하이의 몸에 붉은색 자국이 있었다. 레드갤러곤의 특징이 섞이면서 생긴 무늬인가 했는데 약간 달랐다. 비늘이 벗겨진 것을 보니 뭔가에 맞은 흔적에 가까웠다.

‘피라 일레븐과 싸울 때 생긴 건가?’

분명 함선이 착륙할 때는 멀쩡했던 것 같은데 상처가 그리 크지 않아서 내가 놓쳤나 보다. 이 정도면 둥지가 없어도 하루쯤 지나면 나을 거다.

‘쩝. 다음에는 더 신경 써야겠어.’

나는 보관소 밖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위대한 감염체’ 특성을 얻고 변한 뒤, 몸이 꽤 가벼워졌다. 거기다가 ‘은밀 기동’ 특성의 효과까지 겹쳐서 시너지가 상당했다. 약 25m의 덩치로 합금판 위를 걷는데도 불구하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으니.

나는 소리 없이 상황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전에 봤던 것처럼 척추에 케이블을 잔뜩 붙이고 있는 PS-111이 있었다.

녀석은 함선 데이터를 보는데 집중한 탓인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눈치채지 못했다.

“PS-111?”

“오셨습니까?”

내가 부르고 나서야 녀석은 눈을 떴다. 안구 대신 자리를 잡고 있는 붉은색 카메라 렌즈가 깜빡이며 나를 주시했다.

“기존에 저장된 ‘에이모프’로부터 형태가 많이 변했습니다.”

“더 성장했거든.”

“그렇습니까.”

“뭘 보느라 내가 오는 것도 몰랐어?”

내 질문에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하던 붉은색 카메라 렌즈가 살짝 흔들렸다.

‘응?’

기계와 생물이 뒤섞인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녀석의 태도는 명백히 동요한 태도였다.

나로부터 시선을 피한 녀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걸 봐주시기 바랍니다.”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상황실 중앙에 커다란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내용은 정밀한 기계 장치와 팔다리가 절단된 어떤 생물의 3D 도면이었다.

“뮤턴트 스크리머?”

“예. 피라 일레븐이 남긴 뮤턴트 스크리머 생산 지도입니다.”

기계 장치는 스크리머의 생명 유지 장치고, 팔다리가 절단된 생물은 그 재료가 되는 헐크 뮤턴트였다.

그리고 그 생물 옆에는 작은 글자가 몇 줄 적혀 있었다. 단어들을 보니 헐크 뮤턴트 재료로 쓰인 생물들의 유전자 정보로 보였다.

‘글자가 다 깨져 있어서 알아보기 힘드네.’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몇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모두 오류라도 난 것처럼 깨진 상태였다.

“깨진 건 뭐지?”

“깨진 부분은 피라 일레븐보다 상위의 존재가 깔아둔 방어 시스템입니다. 저는 뚫을 수 없습니다.”

피라 일레븐의 상위 존재라면 대수령 밖에 없다. 그가 록을 걸러놓은 것이리라.

깨진 글자의 내용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중인데, 홀로그램의 화면이 전환되었다. 새로 출력된 화면은 두 개의 동영상이었다.

“저는 저의 기억을 담당하는 생물, 혹은 지성체가 누구일지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녀석의 말이 끝나자 첫 번째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화면에서는 여러 개의 실험관에 곤충의 특징이 섞인 파충류 인간이 보였다.

‘콜드블러드?’

외형이 모두 동일한 것으로 봐서 전부 클론으로 보였다. 실험관 아래에 작게 P로 시작하는 이름이 얼핏 보였지만 금방 지나갔다.

첫 번째 동영상이 끝나자 이어서 두 번째 동영상이 시작되었다.

복제된 콜드블러드로 보이는 시체들 수십 구가 차가운 금속 판 위에 누워 있었다. 기계가 다가와 시체들의 뇌를 적출하고, 그 뒤에 있는 스크리머 기계에 옮겼다.

수십 개의 스크리머 기계 중 딱 하나만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스크리머 기계를 활성화한 뇌에 각종 기계 칩들이 이식되었다. 그 외 나머지는 전부 폐기되었다.

반쯤 기계로 대체된 뇌의 위에 번호 하나가 인쇄된 금속 두개골이 덮였다.

그 번호는 111번이었다.

“저건 너구나.”

“예. 저는 실험체였습니다. 수많은 클론 중 저만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왜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직접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럴 수밖에.’

기계와 생물이 융합된 녀석은 새로운 자아가 생기고 있는 중이었다. 피라 일레븐에게 자기가 특별하다고 선언한 것도 그러한 변화의 일환이었을 터. 거기서 자기도 이 함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탓에 그 생각이 크게 흔들린 거다.

‘흠.’

AI가 고도로 발달되다 못해 자아를 각성하는 SF 작품은 매우 많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자기가 프로그래밍된 기계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자율성을 지닌 독립적 인격체인지 갈등하곤 한다.

약간 다른 경우이긴 하나, PS-111의 고민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즉, 본질에 관한 질문 말이다.

‘내가 감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녀석에게 말했다.

“저 콜드블러드, 누구의 클론인지는 알 수 있어?”

“방어 시스템으로 인해 전부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의 뇌를 구성하는 콜드블러드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 말이야. 내가 도와줄게.”

괴물이나 크리처 같은 것을 좋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다양한 SF물을 접하게 된다. 지금 내가 말한 제안은 그때 본 것들을 토대로 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녀석은 무의식적으로 저 뇌가 자기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어.’

녀석은 26호한테 사이킥 파워를 주입받을 정도로 씨 데몬의 유전자가 많이 포함됐다. 그 외 다른 생물의 유전자들도 적지 않게 들어갔고.

그런데도 뇌의 주인, 그러니까 콜드블러드 클론에 더 관심을 주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저게 자신의 생각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렇다면 저 클론 원본의 발자취를 뒤쫓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 중 중요한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면, 녀석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테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현실의 나는 생물학이나 신경과학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다. 녀석의 의식과 사고가 어떤 구조로 형성되고 움직이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저 내가 봐 왔던 매체를 근거로 판단해서 말을 꺼낸 것 일뿐.

다행히도 내 제안은 녀석의 흥미를 끈 것 같았다. 내 제안을 들은 녀석의 카메라 렌즈가 확대되더니 나를 바라봤기에.

이윽고 녀석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에이모프의 제안은 흥미로운 방법입니다. 해당 방법을 중요하게 검토하겠습니다.”

“다행이네.”

항상 그렇듯 녀석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와의 대화가 나름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척추에 연결된 케이블에 신호를 줘서 홀로그램을 해제한 녀석은 지나가듯 말을 꺼냈다.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말해주신다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상황실에 찾아온 목적을 상기했다.

“피라 일레븐이 언제 지원 요청을 했는지, 어떤 답신이 왔는지 확인해 줘.”

“지원 요청 말입니까?”

“만약 지원함대가 온다면 언제쯤 올지 알아야 해.”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내 요청을 들은 녀석은 눈을 감고 함선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등의 신체 조직을 가르고 튀어나온 척추가 파르르 떨렸다. 척추에 연결된 여러 개의 케이블에 전기 신호가 오갈 때마다 빛이 번뜩였다.

“지원 요청은 지금으로부터 5주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피라 일레븐이 큰 손상을 입어서 임무 수행에 차질이 발생, 연락을 교환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내용입니다.”

“5주 전? 손상 이유는 뭐라고 적혀 있지?”

“특이하게도 그 부분은 따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피라 일레븐이 숨긴 것으로 추측됩니다.”

기계위원회의 안드로이드는 고등한 지능을 지녔기에 타인을 속이는 일을 아주 쉽게 한다.

하지만 굳이 같은 동료라 할 수 있는 최고위원들한테까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도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후 손상 수복에 들어가서 그런지 피라 일레븐으로부터의 연락이 없다가 32시간 전에 다시 지원 요청이 이루어졌습니다.”

“갤러곤의 둥지에서 싸울 때구나.”

“예. 스크리머들의 통신이 차단되기 전까지 전달된 정보를 함께 첨부해서 보냈습니다.”

당시 유일 특성들은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저쪽에서 내 전력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갤러곤과의 관계, 즉 내게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걸리고 말았다. 앞으로 나와 싸울 때, 놈들은 충분한 대비를 하고 오겠지.

“저쪽에서 온 연락은 따로 없고?”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녀석은 다시 컴퓨터에 저장된 기록들을 확인했다. 보낸 것 말고 받은 메시지는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것이 어려운지 이번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녀석이 눈을 번쩍 떴다.

“큰일 났습니다. 에이모프. 3주 전, 에우로파 투가 지원함대를 이끌고 이 행성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뭐?”

“네메아 파이브, 레드테일 에이트, 에로우 나인의 정예함대가 지원함대에 참여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3주 전에 이미 출발했다면, 오늘로부터 며칠 안에 이곳에 도착할 거다.

‘이르면 내일 도착할 수도 있어!’

지원함대 휘하의 정찰함대라면 내일쯤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다급히 녀석에게 물었다.

“얼마쯤 걸릴 것 같아?”

“이 함선과 동등한 엔진을 활용한다고 가정했을 시, 18시간 후 선발 부대가 도착할 겁니다.”

“함선이 출발할 수 있는지 체크해.”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악몽의 지평선을 쓸 수 없다. 이 배는 덩치가 커서 침식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혹시라도 적이 일찍 도착한다면, 나는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녀석에게 조종을 맡기고, 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녀석에게 명령을 내린 나는 보관소로 서둘러 달려가 애들을 깨웠다.

「큰애기야, 다 끝났어?」

「뭐야?」「뭐야?」「뭐야?」

「너 도대체 그 모습은…아, 이게 새로 변화한 모습이구나.」

[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성장이 끝났냐고 묻는 26호와 막 잠에서 깨서 얼떨떨한 태도를 취하는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는 내 새로운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듯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상황을 빠르게 설명했다.

「최고위원 4명이 이곳에 온다고?」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추가로 대수령도 올 수 있어)]

하늘의 어머니는 내 말을 금방 이해하고 호박색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할 거야? 플레이어까지 섞여 있다면 지금 우리가 이기기는 힘들어.」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이번에는 안 싸울 거야)]

최고위원 둘이라면 어떻게든 상대해 보겠지만, 넷은 어렵다. 게다가 플레이어까지 끼어든다면 필패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쳐도….’

여기 있는 녀석들, 새로 얻은 갤러곤들까지 전부 잃게 될 거다. 어렵게 얻은 갤러곤들을 잃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나는 시선을 아드하이에게 향했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둥지로 가서 갤러곤들을 다 데려와)]

「동족들」「함께」「떠나?」

「너 설마?」

[즈 즈즈즈 즈즈즈즈(그래. 이사 갈 시간이야)]

마침내 이 얼음덩어리 행성에서 떠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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