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53화 (254/400)

Ep. 253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사이보그, 안드로이드들의 지배를 받는 함선들이 개미떼들처럼 달려든다. 우리는 각자 가진 무기들을 모두 꺼내 들어 대응했다.

APD들이 갤러곤들을 견제하기 위해 접근해 오면, PS-111이 관리하는 스크리머 지원선이 이를 가로막는다. 함포들에 장전되어 있던 어뢰들이 발사되어 드론들의 움직임을 차단했다.

초계함들은 어뢰의 폭발을 우회해서 지원선을 치기 위해 움직인다. 지원선에 실린 어뢰는 한정되어 있어서 초계함들에게 함부로 쏘기는 어려운 상태. 지원선이 위기에 처하자, 작은 함재기 하나가 격납고를 떠났다.

그리폰 수인으로 변한 하늘의 어머니가 초계함의 시선을 끌기 위해 나선 거다.

함재기 자체는 평범한 스펙이었으나 탑승자가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능숙한 회피 기동을 선보이며 쏟아지는 어뢰의 포화 속을 돌파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함재기에 장착된 스톰건으로 초계함의 함교 부분을 향해 견제사격을 가했다.

스톰건만으로는 초계함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없었지만, 적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충분했다. 초계함 무리 중 일부가 진영에서 이탈해 하늘의 어머니를 뒤쫓았다.

조종 실력은 함재기 쪽이 압도하지만, 함선 스펙은 초계함 쪽이 월등하다. 뒤가 물린 상태에서 그녀가 탄 함재기가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데, 어디선가 구세주가 나타났다.

머리와 날개에 붉은 화장을 한 붉은 여왕. 녀석이 혜성처럼 가속해 초계함들을 꿰뚫었다. 살아남은 초계함들이 어뢰를 발사했지만, 하늘의 어머니가 스톰건으로 어뢰들을 모조리 격추시켰다.

초계함들이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유효 사격 거리에 접어든 구축함들이 일제 사격을 시도하려 한다.

나는 PS-111 주변에 모여 있는 초계함들을 향해 사이킥 브레스를 먼저 쏜 뒤, 구축함을 향해 날아갔다.

구축함들의 목표가 나로 바뀌고, 엄청난 양의 어뢰들이 나를 덮쳤다.

이중, 삼중으로 몸을 보호해주는 갑각 덕택에 고통은 크지 않았다. 그저 연달아 발생하는 폭발에 턱 아래 보조기관이 울리는 것이 거슬릴 뿐. 나는 포화를 그대로 맞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 등에서 침식 촉수가 튀어나와 각기 다른 구축함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촉수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내 덩치보다 큰 구축함들이 촉수로 인해 흔들리다가 서로 충돌했다. 몇몇은 도망치려고 무리하게 가속하다가 역으로 다른 구축함을 들이받았다.

후방에 위치한 함선들이 어뢰들을 쐈지만, 나는 구축함을 방패로 삼아서 막아 냈다. 촉수에 붙들린 함선들이 터져 나가고, 사이보그 승무원들이 우주로 사출되었다.

‘잘 버티고 있어.’

다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뛰어난 전투 실력을 보여 주고 있다. 갤러곤들 중 부상을 입은 녀석도 없고, PS-111이나 하늘의 어머니도 잘 싸워주고 있다.

게다가 스타유니언의 함대와 싸우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나는 백색 행성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번쩍거리는 불빛들을 쳐다봤다.

시현 유진의 세력이 끌고 온 메가콥 전함. 놈들도 스타유니언의 공격 대상이 되는 바람에 싸우고 있는 중이다.

‘저쪽이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이쪽의 부담이 줄었어.’

다만 이 여유가 언제까지 갈 지는 불확실하다.

당장은 이쪽이 유리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저쪽은 아직도 다수의 함선들이 남아 있고, 거기에 더 많은 배들이 추가될 예정이다. 현재 이 자리에 대수령이 없어서 다행이지, 그가 도착한다면 전황은 크게 불리해질 거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해.’

5번 함대와의 접전이 시작된 후 워프파인더가 실린 전함 4척을 파괴했다. 확인된 것만 아직 6개나 남았고, 그 외 숨겨져 있는 워프파인더들도 있다.

‘브레스로 파괴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

놈들은 바보가 아니다. 처음 몇 번만 당했지, 지금은 내가 브레스를 쏠 기미만 보여도 즉시 산개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돌진해서 한 척씩 파괴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워프파인더를 실은 배들도 나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는 반 토막이 난 구축함들을 적들을 향해 던지면서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무기 중 함선들을 상대로 유용할 만한 것이 뭐가 더 있을까.

‘심연의 색채는 패스.’

‘심연의 색채’로 강화된 사이킥 브레스는 유기물을 파괴하는데 특화되어 있고, 강화된 ‘공포의 주시자’는 생물체가 아닌 이상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초능력 반사 장갑도 적이 에너지 위주의 무기가 아닌 어뢰 위주로 무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제사장의 황금창을 먹어야 하나?’

제사장의 황금창은 피를 많이 묻힐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무기. ‘약탈자의 부정형 다면체’ 효과를 이용해서 포식한다면 그 고유 특성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대규모 사상자가 나오는 이 전투에서 어마무시한 공격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터.

‘다만 문제는 그렇게 되면 만에 하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치료하기가 힘들어져.’

‘용의 심장’ 덕분에 에너지가 부족할 일은 없지만, 부상 회복은 또 다른 문제다. 몸에 상처가 생겼을 때 재빨리 치료하려면 ‘포식 거머리의 손’이 필요하다.

제사장의 황금창을 먹으면 포식 거머리의 손은 포기해야 하니까.

‘남은 것은….’

주둥이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전함 하나를 물면서 눈으로는 텍스트박스를 확인한다.

‘위대한 감염체.’

4번째 우주괴물 타입 특성인 ‘위대한 감염체’는 감염, 둥지 계열 특성 중 타입별로 3개씩 강화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아직 실험해 보지 않았기에 강화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불명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실험할 때야.’

나는 감염 관련 융합 특성인 ‘그렘린 이끼’를 강화 대상으로 선택했다.

내 몸에 기계에 오작동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을 분비하는 특성. 그 특성이 강화되기 시작한다.

「‘그렘린 이끼’ 강화 설정이 완료됐습니다.」

‘됐나?’

텍스트박스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몸에 딱히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강화된 그렘린 이끼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몸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변이가 발생했다.

위대한 감염체 특성을 습득하고 내 몸에 있던 뭉툭한 발톱들은 전부 사라졌다. 발톱이 있던 자리에는 원통 모양의 생체 파이프 같은 기관들이 돋아났다.

여태껏 특별한 효과를 보여 주지 않던 파이프의 구멍에서 뭔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은 마치 공장의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연기 같았다. 짙은 스모그 같은 것들이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와 내 몸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성체가 됐을 때도 이와 비슷한 특성을 얻긴 한다. 등에 파이프 같은 생체 관이 생기고, 거기서 본체를 보호해주는 연기를 내뿜는다. 성체가 되면 별다른 특성이 없어도 몸이 커져서 피격 면적이 넓어지는데 이를 보호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성체 때 얻는 특성의 효과와는 차원이 달랐다.

넓게 퍼진 연기구름들이 근처의 함선들에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함선의 빛이 전부 꺼졌다.

빛이 사라진 배들은 움직이지 않고 완전히 정지했다. 내가 가까이 가도 배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렘린 이끼를 퍼뜨리는 효과구나!’

몸에 닿은 기계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특성에서 ‘접촉한 기계를 무력화시키는 연기구름을 생성’하는 특성으로 강화된 거다.

‘이게 있으면 얘기가 다르지.’

기계로 구성된 적과 난전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최고의 특성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연기구름의 움직임을 내가 직접 조종할 수는 없다는 점이라고 할까.

나는 정지한 함선들을 때려 부순 뒤,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전함들을 향해 날아갔다.

놈들이 나를 보고 어뢰들을 발사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첨단기기의 통제를 받는 어뢰들은 연기구름, 아니 그렘린 구름에 닿자마자 바로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에서 둥둥 떠다니는 어뢰들을 유유히 피하고 함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강철의 배에 치명적인 그렘린 구름과 함께 말이다.

-

“어뢰로 인한 함체 손상 25% 돌파!”

“함선 기동 프로그램을 피터 에저튼식으로 전환하고, 추진기에 에너지 할당을 5%로 추가하라.”

“알겠습니다!”

“함재기 D팀 전멸! B팀 중 남은 수 5대!”

“B팀은 귀환, 나머지 A, C, E, F팀 중 함재기에 손상이 발생한 자들도 순차적으로 귀환시키도록.”

“알겠습니다! 여기는 기함….”

시현 유진의 명령에 승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상황실 중앙에는 함선의 상태와 이를 공격하는 스타유니언의 함대가 3D 홀로그램으로 출력되어 있었다.

부하들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시현은 냉철한 눈빛으로 홀로그램을 주시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이 기함(旗艦)의 은폐 장비는 에저튼의 비밀무기를 빼돌려 탑재한 거라 상당한 성능을 자랑하지만, 저쪽에서는 더 우월한 탐지 장비를 들고 왔다. 추가로 워프파인더까지 다수 들고 왔기에 이쪽에서는 숨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저들이 죽으면….’

현재는 갤러곤 무리와 정체불명의 함선이 적들, 5번 정예함대와 싸우느라 버틸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갤러곤들이 전멸한다면 다음 목표는 그들이 될 테니까.

‘그걸 사용해야 하는가.’

눈은 홀로그램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신경은 의자 아래에 놓아둔 물건에 쏠려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정우 유진이 남긴 유산.

그녀는 그 무기를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기를 얻을 때, 그 위험성은 엿볼 수 있었다.

초대형 화산 내부에서 찾은 유물은 두 파츠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기로 기능하는 ‘심연 파괴자’와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크리스털 형태의 배터리. 배터리를 무기에 장착하면 에너지를 쏠 수 있다는 심플한 구조지만, 문제는 그 에너지였다.

그녀가 화산에서 배터리를 회수하고 난 뒤,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동안 먹통이던 통신은 얼마 안 가 복구되었고, 탈출하던 중에는 그 어떠한 짐승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치 괴물들이 그녀의 일행을 피하는 것처럼.

이것만 봐도 이 무기가 굉장힌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가 망설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해석하기로 이 무기는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삼아 살상 목표를 설정한다.

사이보그는 기계를 장착한 인간. 사이보그를 공격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공격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잘못 사용하면 적들과 전투 중인 함재기의 조종사들 또한 즉사한다.

함재기가 없는데 적들이 남아 있으면 그때는 끝장이다. 그렇기에 시현은 아까부터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때 부하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긴급 보고입니다!대규모 에너지 집중 현상 발생! 스타유니언의 추가 지원 함대가 초광속 항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뭣?!”

그 말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 뒤에 기립해 있던 집사, 민석 유진이 다급히 외쳤다.

“도착 예정 시간은?”

“5, 5분 이내로 추정됩니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때 또 다른 부하 한 명이 급히 보고했다.

“저, 적 함대가 한 지점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초광속 항해 중인 지원 함대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보호하려는 건가?”

“그, 그게 이상합니다! 에너지 집중 지점과 거리가 상당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함선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함재기의 카메라와 연결하겠습니다!”

이윽고 홀로그램 위에 좋지 않은 화질의 영상이 출력되었다.

함재기들하고도 거리가 꽤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전함과 구축함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주에서의 전투를 겪어보지 않은 자들이 봐도 이상했다.

전함들은 그 크기로 인해 다른 함선과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영상에 나오는 배들은 모두 함선 간의 충돌이 우려될 정도로 바짝 붙어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왜 불빛이 없지? 은폐장의 효과인가?”

제멋대로 거리를 좁히는 배들로부터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강제로 전원이 차단된 것처럼 말이다.

“어, 그게, 아무래도 함선들의 기능이 정지된 것 같습니다.”

“EMP라고? 도대체 누가 한 짓이지?”

민석과 승무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시현은 함선들의 틈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성분을 알 수 없는 연기구름 같은 것이 빠르게 함선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전함 하나가 구름에 닿자마자 곧 불이 나가며 다른 배처럼 고철 덩어리로 화했다.

그 모습을 본 시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함재기 팀들을 기함으로 귀환시켜라! 그리고 내가 돌아오면 바로 도약할 수 있도록 초광속 엔진을 준비시켜라!”

“시현 님, 지금 무슨…?”

“민석. 함장 대리 역할을 맡기지.”

민석에게 함선 운용을 맡긴 시현은 자리 옆에 놓아 뒀던 유물을 들고 상황실을 나섰다.

「시현 님! 지금 무슨 짓입니까! 당장 돌아오십시오!」

스피커로 들리는 민석의 목소리를 무시한 그녀는 재빠르게 격납고로 달려갔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연기구름에 휩싸인 저 생물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좋은 기회를 줬다.

격납고에 도착한 그녀는 함재기에 탑승하는 대신, 문을 열고 그대로 우주 밖으로 뛰어내렸다.

무중력의 공간에 들어가자 그녀가 입고 있던 백색의 강화복, ‘화이트 메이든’이 활성화되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하얀색 헬멧 같은 것이 덮였고, 등에서는 추진기가 장착된 날개가 튀어나왔다. 날개에 달린 추진기가 작동하며 그녀를 앞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하나둘씩 기함으로 돌아오는 함재기들, 망가진 우주선의 잔해들, 이리저리 오가는 어뢰와 에너지 빔들. 그녀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뚫고 날아가며 손에 든 무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무기 안에 들어 있는 크리스털 배터리가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

5번 정예함대, 네메아 함대의 함대사령관이 탑승한 XAX01급 전함.

강철로 만든 요새 옥좌 위에 기계위원회의 일원 네메아 파이브가 앉아 있었다.

일반 안드로이드에 비해 2배 정도 큰 몸, 풍성한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수많은 케이블. 범상치 않은 외모를 지닌 네메아 파이브는 눈을 감고 있었다.

현재 그는 길게 늘어뜨린 케이블들을 통해 함대 전체를 통제 중이었다. 기계와 금속으로 세워진 정신 세계에서는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오고 가고 있다.

「네메아 파이브. 에로우 나인으로부터 보고. 9번 함대 초광속 항해 준비 완료.」

「에우로파 투, 레드테일 에이트로부터 보고. 2, 8번 함대 에너지 충전 80% 달성.」

「메네브오 보고! 특수목표A가 분사 중인 물질 분석 실패!」

「카잔스키유 보고합니다. EMP에 상응하는 효과로 추정됩니다.」

「시무라비 요청합니다! 함선 주포 사용을 허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네메아 파이브. 불허. 특수목표A는 에너지 계열 무기에 내성을 지님. 2, 8, 9번 함대 도착 전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됨.」

네메아 파이브의 관심은 현재 특수목표A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가 총괄하는 5번 함대는 메탈릭 그렘린들 떼거리한테 걸린 것처럼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중이었다.

아니,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놈은 메탈릭 그렘린들처럼 EMP 공격으로 스타유니언의 함선들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놈이 살포하는 미세물질에 닿는 순간, 함선의 모든 기능은 바로 정지했다.

기계 자체에 영향을 주는 것인지, AI로 통제되는 어뢰들도 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세물질 구름이 놈의 몸을 휘감고 있어서 날아가다가 도중에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그 탓에 5번 함대의 손해는 막심했다. 이 자리에 다른 함대들이 올 예정이 아니었다면 후퇴해야 했을 정도로.

「에로우 나인으로부터 보고. 9번 함대 1분 12초 후, 초광속 항해에 진입.」

「에우로파 투, 레드테일 에이트로부터 보고. 2, 8번 함대 초광속 항해 준비 완료.」

앞으로 몇 분이 지나면 네메아 파이브가 승리한다. 특수목표A의 시체를 확보한다면 심도 깊은 연구도 가능해지리라.

그때 다른 함선의 사이보그 함장으로부터 보고가 날아왔다.

소속 불명의 메가콥산(産) 함선으로부터 미확인 비행체가 발사되어 이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말이다.

네메아 파이브는 그것이 EMP 어뢰라고 판단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초계함들이 어뢰를 견제하기 위해 움직였다.

어뢰는 격추될 것이고, 메가콥산 함선은 다른 최고위원들이 도착하면 바로 정리될 것이다.

충분히 합리적인 계산을 거쳐서 나온 판단이었으나,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그의 계산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카잔스키유! 미확인 비행체로부터 알 수 없는 파장 발….」

사이보그 함장의 보고는 도중에 끊겼다. 이어서 수없이 오가던 보고와 메시지들이 한순간에 끊겼다.

마치 청각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가 확인하기 위해 재차 명령을 내렸지만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 네메아 파이브는 급히 잠들어 있는 육체에 의식을 전송했다.

전송이 완료되자, 그는 강철 옥좌 위에서 눈을 번쩍 떴다. 카메라 렌즈를 닮은 눈에 들어오는 상황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다.

그를 보좌해야 할 사이보그 전원이 상황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렌즈를 통해 분석된 결과, 모두 기능이 정지되었다.

그가 있는 상황실은 사이보그의 무덤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케이블을 이용해 함선 밖 카메라와 시각 기능을 동기화했다. XAX01급 전함의 모든 카메라가 그의 눈이 되었다.

그 덕분에 그는 이 사태가 그의 배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번 함대 휘하의 수많은 함선들이 진영을 이탈해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모두 사이보그 함장들이 급사했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함장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함선AI들이 기존에 내려진 명령을 반복해서 수행하느라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 사이보그 함장의 마지막 보고대로였다. 5번 함대는 메가콥이 쏜 정체불명의 무기로 인해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네메아 파이브는 즉시 다른 함대를 향해 연락했다. 당장 초광속 항해를 중단한 다음, 대기하라고. 특히 대수령만큼은 절대로 이곳에 오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자 이를 이해하지 못한 대수령의 통신이 날아왔다.

「나다! 어떻게 된 일인가?」

「네메아 파이브. 보고함. 위원장 각하. 정체불명의 파장이 이곳에 퍼졌습니다. 사이보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지?!」

네메아 파이브의 시선이 연결된 카메라 너머에 특수목표A의 모습이 보인다. 놈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난 사태에 잠깐 멈칫하더니 곧 엄청난 양의 화염을 토해냈다.

태양을 마주하면 저런 느낌일까. 놈은 무한에 가까운 사이킥 파워를 쏟아 내 함선들을 고철로 만들었다. 네메아 파이브가 함선AI에 간섭해서 움직이려고 해도 놈의 몸에서 나오는 미세물질 구름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전함 대부분을 불태우고 나서야 공격을 멈춘 놈은 미세물질 구름을 제거한 뒤, 몸을 돌렸다. 다른 곳에서 초계함과 겨루고 있던 갤러곤들도 특수목표A를 따라 후퇴했다.

「네메아 파이브. 건의함. 현재는 원인 파악이 먼저입니다. 작전 중단을 건의 드립니다.」

「애로우 나인. 동의함.」

「레드테일 에이트. 동의함.」

「놈이 코앞인데 여기서 놔주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던 대수령 주바카는 네메아 파이브가 공유한 영상 데이터를 확인하고 입을 다물었다.

두 번째 최고위원, 에우로파 투가 순식간에 영상을 분석하고 통신을 보냈다.

「에우로파 투. 동의함. 위원장 각하. 현재 해당 구역에는 사이보그에 치명적인 파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각하의 안전이 확보된 다음 진입할 것을 권고 드립니다.」

현재 이곳에는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 양자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가 있다. 특수목표A는 안드로이드나 함선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이 있고, 메가콥 기함이 날린 비행체는 사이보그를 즉사시키는 효과가 있으니까. 둘이 함께 있는 이상, 작전을 수행하면 피해가 너무 커진다.

그렇기에 최고위원 넷은 사실상 임무를 중단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들은 스타유니언의 존속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들. 스타유니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인 주바카를 어떻게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여기서 대수령이 강행한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따를 것이다. 하나 최고위원들 중 그 누구도 주바카가 그렇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이곳에서 발생한 문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또한 자기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이이이익! 모프박이 그 개자식이 저기 있는데! Блять(씨발)!」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통신을 끝으로 대수령 주바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네메아 파이브의 시야에서는 특수목표A와 갤러곤들을 태운 함선과 메가콥산 전함이 푸른빛에 휩싸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푸른색 입자들만 남아 있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