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55화 (256/400)

Ep.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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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공간을 꽉 채우는 고치.

큰애기가 쑥쑥 자라기 위해 고치에 들어가는 건 이미 여러 번 봐서 익숙하다.

그녀는 촉수 한 가닥을 뽑아서 고치에 갖다 댔다.

수면 위에서 느껴지는 온기, 파도처럼 거친 맥동 등의 낯익은 감각들. 어지럽게 뒤엉킨 감각과 요소들은 그녀가 진작 경험해 본 것들이었다.

그녀는 신비한 ‘힘’과 몸 전체로 사물과 움직임을 느낀다. 다른 동물처럼 냄새를 맡는다거나 눈으로 본다거나 귀로 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감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중한다면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는 이 거대한 돌덩어리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넓은 영역까지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가 느끼는 것들은 전과 사뭇 달랐다.

지금 그녀는 완전히 다른 생물의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촉수와 연결된 고치 속 존재, 큰애기의 생각 말이다.

본래 그녀는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선천적인 ‘힘’을 이용해 다른 생물의 생각을 읽고, 또 그 생각을 다른 생물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그녀의 친구는 ‘나쁜 친구들’의 생각을 뽑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걸 보고 큰애기는 기뻐했다.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친구에게 배우는 것이 좋다. 그러면 친구가 할 수 있다면, 그녀도 할 수 있다.

지극히 단순한 추론 과정을 거쳐 그녀는 친구가 힘을 다루는 방식을 그 자리에서 배웠다. 아직은 친구만큼 능숙하지는 않지만, 성장한다면 점점 나아지리라.

실제로 작은애기와 작은애기의 엄마가 서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이후 그녀의 실력은 크게 늘어났다. 지금 그녀는 전보다 훨씬 매끄럽게 큰애기의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고치 속 큰애기는 어떤 곳을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고향과 비슷하게 넓은 곳인데,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났다. 몸을 찌르는 것처럼 불쾌한 냄새는 과거 그녀가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녀는 참았다. 이상한 곳에 큰애기가 혼자 있으면 얼마나 무섭겠는가. 곁에서 지켜봐 줘야 큰애기의 마음도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녀의 마음이 통했는지, 큰애기는 점점 안정을 되찾았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그는 길쭉한 부속지를 들어서 벽을 꽉 밀었다.

벽이 밀려나고 그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공간이 나타나는 순간.

「작은어른?」

익숙한 사념파가 그녀를 깨웠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촉수를 고치에서 뗐다. 그녀의 의식이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돌덩어리의 뱃속으로 돌아왔다.

「뭐해?」

「그냥.」

「?」

그녀의 이상한 대답에 작은애기가 돌출된 감각기관을 갸웃거렸다. 딱히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말하기가 꺼려졌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얼버무린 것이었다.

다행히 작은애기는 그녀의 수상한 행동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관심을 갖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큰어른」「또」「달라질까?」

「응. 쑥쑥 커질 거야.」

그러자 작은애기는 돌출된 감각기관을 휙휙 흔들었다.

「더」「커지면」「곤란해」

「왜? 크면 힘이 세져서 좋아.」

「커지면」「알」「어려워」

그 말을 듣자 기분이 확 안 좋아졌다.

「작은애기는 아직 알 안 돼.」

「왜?」「나」「하얀색」「성장」「성공」「작은어른」「약속」「나」「성장」「알」「가능하다고」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안 돼!」

「큰어른」「나」「어른」「인정했어」

작은애기의 논리정연한 말에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큰어른」「성장」「완료」「나」「알」「질문할 거야」

「작은애기랑 큰애기랑 둘 다 애기야! 애기는 아기 못 만들어!」

「아직」「몰라」「확인해야 해」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번에는 단단히 각오를 한 것처럼 보였다.

작은애기가 말한 것처럼 그녀에게는 둘의 짝짓기를 막을 명분이 없었다. 작은애기가 성장하면 그녀도 말리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

게다가 작은애기는 자기를 따르는 가족들을 지켜서 가장의 의무를 다 했다. 몸만 작을 뿐 작은애기는 이미 어엿한 어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큰애기랑 작은애기가 짝짓기하면 기분이 매우, 매우 심각하게 안 좋아질 것 같았다. 이 냄새 나는 거대한 돌덩어리를 다 부숴버릴 정도로.

「큰애기 바빠. 그래서 아기 못 만들어.」

「번식」「중요해」「동족」「번영」「알」「반드시」「필요해」

「…….」

성장했다더니 머리도 좋아진 것일까. 그녀가 말을 꺼낼 때마다 작은애기는 즉시 반박했다. 그녀는 저 맹랑한 아이를 막을 수 있을 만한 것을 찾았지만, 딱히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중간애기였다.

「중간애기야, 큰애기 지금 아기 못 낳지?」

「어? 어어?」

「친구」「모른다고」「말했어」「친구」「말」「도움」「안 돼」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기분 나쁜걸.」

중간애기라면 아마 그녀의 편에 서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중간애기의 행동은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아마 가능하긴 할 건데….」

「나」「친구」「말」「들었어」

「진짜? 진짜 큰애기 아기 낳을 수 있어?」

「말은 끝까지 들어. 크, 큰애기는 크흠, 지금 알은 못 만들 거야.」

「봐봐. 내 말 맞지? 큰애기, 아기 못 낳아.」

「부정」「친구」「‘지금’이라고」「말했어」「나중에」「알」「생산」「가능」

「…너희들 이해력이 좋구나. 아니. 이것도 성장한 거라 봐야 하나.」

중간애기는 부속지로 돌출된 감지기관을 긁었다. 여태까지 함께 한 것을 봤을 때 중간애기는 그녀와 작은애기의 질문에 난처해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큰애기가 다 큰 게 아니라서 알은 못 만든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자세한 것은 큰애기한테 물어봐.」

「동의」「직접」「확인할 거야」

결국 중간애기도 작은애기를 막지 못했다. 더 이상 작은애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제 남은 수단은 힘으로 작은애기를 막는 것뿐.

하지만 명분이 없는데 억지로 혼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작은애기가 나쁜 아이라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닌 이상 무턱대고 때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는 문득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작은애기와 작은애기 엄마의 생각을 이어줬을 때, 그녀는 봤다. 작은애기 엄마가 어떻게 짝짓기를 했는지.

「기다려.」

「아직」「말」「남았어?」

「응. 큰애기랑 짝짓기하려면 나랑 경쟁해야 해.」

「?」

그녀의 말에 작은애기, 중간애기 모두 돌출된 감지기관을 갸웃거렸다.

「왜?」「작은어른」「나」「경쟁해?」

「나도 큰애기랑 짝짓기할 거야.」

작은애기네 가족들은 그녀의 가족들과 다른 방식으로 짝짓기를 했다. 하나의 가장과 여러 가족들이 맺어지는 것은 동일하나 순서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가장 강하거나, 혹은 가장 오래 함께한 가족이 먼저 짝짓기를 했다.

그녀의 선언에 작은애기는 입을 다물었다. 녀석도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어른」「큰어른」「좋아해?」

「응.」

「나」「짝짓기」「먼저」「말했어」「작은어른」「나」「다음」

「아닌데. 내가 작은애기보다 강하고 큰애기랑 오래 있었는데.」

「부정」「나」「성장했어」

그녀는 작은애기로부터 익숙한 힘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지닌 ‘힘’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힘. 녀석은 먹이를 잡을 때나 나쁜 아이들을 혼내줄 때 저 힘을 사용했다.

작은애기는 그녀와 싸울 생각이었다.

그녀 또한 힘을 꺼내 들려고 했는데, 중간애기가 사이에 뛰어들었다.

「잠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힘을 겨룰 거면 나가서 해! 여기서 하면 큰애기가 싫어할 테니까.」

「동의」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바로 힘을 거뒀다. 작은애기도 그녀와 똑같이 힘을 풀었다.

그리고 함께 냄새 나는 돌덩어리 밖으로 나갔다.

-

아드하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는 자기가 동족과 짝짓기 쟁탈전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보다 매력적인 꼬리를 지녔지만, 몸이 너무 작았다.

그렇기에 이런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줄 존재는 큰어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큰어른처럼 우람하고 또 야성적인 뿔은 지닌 멋진 수컷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컷치고 꼬리가 좀 많이 굵었지만, 그녀는 그런 단점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른이니까 말이다.

동족들 또한 그녀의 마음을 알고 큰어른을 노리는 녀석은 없었다.

그래서 아드하이는 큰어른을 두고 다른 누구와 경쟁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경쟁 상대가 작은어른이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그녀는 저 멀리 하얀 눈 위에 있는 존재를 노려봤다.

그건 이 행성에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작고 연약한 존재로 보였다. 물론 외형만 그렇다는 사실을 아드하이는 잘 알고 있었다.

저 작은 생물, 아드하이가 작은어른이라 부르는 생물은 매우 강력한 힘을 지녔다. 그녀의 어머니만큼 강했으니까.

그런 강적과 홀로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으나, 아드하이는 자신이 있었다.

별의 힘을 가진 그녀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녀가 생각했을 때, 자기보다 확실히 강한 상대는 큰어른과 거짓말쟁이 오드 그라드 뿐이었다. 둘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싸울 만한 상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드하이는 슬슬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몸에 잠재된 사나운 포식자의 피가 스멀스멀 깨어났다.

그녀도 강한 수컷들이 다수의 암컷과 짝짓기한다는 사실은 안다. 큰어른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도.

하지만 큰어른의 첫 번째 반려라는 지위를 놓칠 수는 없다. 작은어른은 존경할 만한 대상이지만, 첫 번째 반려를 양보할 정도는 아니다.

「이건 사냥이 아니야. 서로 힘 조절해.」

「알았어.」

「확인」

중간애기의 말에 대답하면서 아드하이는 별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작은어른이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작은어른의 몸에서 길쭉한 촉수가 튀어나와 그녀의 머리를 때린 것이었다. 작은어른이 그녀를 혼낼 때 하는 행동이었지만 힘은 차원이 달랐다.

만약 그녀가 별의 힘으로 머리를 감싸지 않았다면 지금 공격으로 정신을 잃었으리라.

별의 힘으로 첫 공격을 막아 낸 아드하이는 반격했다. 그녀의 입에서 압축된 힘이 발사되어 작은어른을 향해 날아갔다.

작은어른은 아무렇지도 않게 촉수를 흔들어서 아드하이의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하지만 이는 아드하이도 예측하고 있었던 것. 그녀는 힘을 발사하자마자 바로 도약했다. 큰어른이 하던 것처럼 그녀는 상대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 것이었다.

작은어른과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졌다. 이대로 들이받을 생각이었지만, 작은어른은 그녀의 공격을 막아 냈다.

보이지 않는 물체가 그녀를 얽매듯 꽉 붙들었다. 하지만 아직 별의 힘이 스며든 날개는 아직 멀쩡한 상황.

그녀는 큰어른이 하듯 날개를 무기 삼아 강하게 휘둘렀다. 작은어른도 이건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 급히 촉수를 들어 날개를 막았다.

그리고 날개의 예리한 피막이 작은어른의 촉수를 벴다. 지금껏 작은어른한테 반항한 적조차 없는데 처음으로 몸에 상처를 낸 것이었다.

희열과 죄책감, 두 가지 감정이 그녀의 속에서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작은어른은 촉수 하나가 잘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촉수를 휘둘렀다. 아드하이는 재빨리 별의 힘으로 머리를 감싸서 촉수를 막았다.

촉수와 부딪치는 순간 공기가 크게 진동하고 그녀의 목뼈가 비명을 질렀다. 워낙 강하게 후려치는 바람에 작은어른의 힘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 괜찮았다. 그녀의 머리에는 상처 하나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작은어른의 파장이 그녀의 촉수에 닿았다.

「작은애기 많이 컸네. 이제 안 봐줄 거야.」

「?」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아드하이는 자기 몸이 의지와 무관하게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작은어른이 그녀를 얽매던 힘을 조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봤다.

작은어른 주변에 있는 얼음들이 전부 갈라지고 공중에 떠오르는 것을.

「야야! 적당히 하라니까!」

「작은애기 다 컸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함선까지 휘말린다고!」

어느새 작은어른의 몸은 아드하이보다 몇 배 이상 커진 상태였다. 수많은 촉수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있었고, 몸 위에는 큰어른한테서나 느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그다음 일어난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엄청난 수의 얼음덩어리가 아드하이에게 날아든 탓에 그녀는 막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잠재된 별의 힘은 결코 작지 않았지만, 무한하게 쏟아지는 공격을 쉬지 않고 막아 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힘이 빠져 버린 아드하이는 작은어른이 날린 촉수에 맞고 뻗어 버렸다.

「내가 이겼으니까 아기 얘기는 끝이야! 큰애기한테도 알 달라는 얘기 금지!」

기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아드하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 아드하이는 생각했다.

그녀는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을 타고 났지만, 무리의 여왕이 된 존재.

그녀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없다.

언젠가는 기필코 큰어른과 짝짓기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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