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57화 (258/400)

E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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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아 조직원들을 부리던 볼프가 군항을 떠난 뒤, 5명의 해적이 배에 다가왔다.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다른 곳에 향하고 있었지만, 눈만큼은 배를 흘낏거렸다.

“내 말 맞지?”

“…배를 지키는 새끼들이 하나도 없다니 확실히 이상하네.”

요새의 지배자 마르시오 카르텔은 영역 내의 소란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지만, 소소한 범죄 행위들까지 다 잡아내는 것은 아니다. 군항에 있는 경비원들은 최소한의 검문만 할 뿐, 배의 보안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즉, 정박한 배들은 각자 알아서 지켜야 한다. 다른 배들을 보면 해적이나 용병들이 열심히 경비를 서고 있다.

하지만 사투아 카르텔의 강습함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배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배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들어가 봐도 될 것 같은데.”

지키는 사람 없이 활짝 열린 문이 해적들을 유혹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들어오면 된다고.

5명의 해적들은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뒤, 함선 문에 달린 계단에 발을 올렸다.

“크크, 일이 잘 풀리는데?”

“그냥 우리가 이 배 들고 날라도 되지 않아?”

“오버하지 말고 씹새야. 좆같이 큰 배를 어떻게 조종할….

잡담을 나누며 승선한 해적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내부 복도에는 최소한의 불빛만 켜져 있었다. 예상대로 선내에는 사람이 없었지만 5명 중 기쁨을 표하는 자는 없었다.

어둑한 빛이 내리깔린 복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씨이벌, 좆나 으슥하네.”

“미친 새끼들. 이런 배를 타고 왔다고?”

단순히 어두운 것에 그쳤다면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무한한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스페이스독이니까.

하지만 이 배는 뭔가 달랐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음습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

“빨리 확인하고 나가자.”

머리를 녹색으로 염색한 해적이 말하자 넷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불길함을 느꼈으나 나가자고 하는 자는 없었다. 뭐라도 손에 쥐고 나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들은 그늘진 복도 위를 걷기 시작했다.

선내의 온도는 딱히 낮지 않았다. 생명 유지 장치가 가동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적들은 영문 모를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차디찬 공기가 살갗 안으로 스며들었다.

게다가 이상한 점은 냄새였다. 씻지 않은 해적, 밀수한 동물의 냄새 따위가 아니다. 배 전체에 기묘한 악취가 깔려 있다.

이 정도면 철제 계단에 발을 올렸을 때부터 코가 찡 하고 울렸어야 했다. 그런데 다섯 중 누구도 문을 건너기 전 코에 손을 쥔 자가 없었다.

이건 마치 배가 그들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안감과 별개로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움직이던 그들 앞에 커다란 쇠문이 나타났다.

“이 앞이 화물칸 같은데?”

“…도대체 뭐가 있는지 보자고.”

한쪽 눈을 의안(義眼)으로 대체한 해적이 단말기를 꺼냈다. 문과 케이블을 연결한 그는 문을 쉽게 해킹했다.

큼지막한 철문이 덜컹거리며 열리고, 어둠으로 가득 찬 화물칸이 외부인을 반겼다.

“불 좀 켜 봐.”

“함선 컴퓨터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선 힘들 것 같은데?”

“에이씨, 진짜.”

해적들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허리춤에 찬 레이저 권총을 뽑아 들었다. 권총 끝에 달린 소형 플래시라이트가 화물칸 안을 비췄다.

“좆같이 어둡네.”

“도색 문제 아냐? 그래서 이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둘 다 조용. 흩어져서 찾자.”

“동감이야.”

빛이 깜빡이는 복도도 께름칙했는데, 이곳은 그보다 훨씬 어둡고 기분 나쁜 공간이었다. 이곳에 조금이라도 더 있다간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해적들은 최대한 빨리 귀중품을 찾기 위해 흩어졌다.

‘…들어올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총 위에 달린 불빛에 의존해 쇠 감옥 사이를 나아가던 녹색 머리 해적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부유한 함선을 약탈하는 것도 아니고, 노예나 팔아먹고 사는 배에 뭐가 있다고 들어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사투아 놈들이 경비를 안 세운 것부터가 수상했다. 그놈들도 이곳에 한두 번 온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뭐라도 좀 나와…헉?!”

쇠 감옥 안에 라이트의 빛을 쬐고 있던 그는 기겁했다. 감옥 안에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석상?”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감옥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조각상이었다. 크리스털 같은 반투명 광물로 조각한 인간 조각상.

“하, 사람인 줄 알았네.”

녹색 머리 해적은 감옥 문을 열고 들어가 조각상을 만져봤다. 무기물 특유의 서늘한 냉기, 단단한 광물의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엄청 잘 만들었는데?’

조각상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했다. 특히 저 표정. 두려운 무언가를 본 것처럼 눈과 입을 벌린 조각상의 얼굴은 생기가 넘쳤다.

마치 산 사람을 일시에 조각상으로 만든 것처럼.

‘이건 값 좀 나가겠는데?’

“이봐! 이쪽에 좀 와봐!”

크래딧 냄새를 맡은 것은 그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래서 그는 알지 못했다.

조각상의 눈이 그의 등을 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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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만 가져가도 짭짤하겠어.”

“너무 많이 가져가면 걸릴 수도 있으니까 3개만 먼저 챙기자고.”

널려 있는 쇠 감옥들에는 인간을 닮은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 조각상의 수가 못해도 백 개는 넘을 것 같았다.

엿 같은 곳을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다. 다섯 해적들은 조각상을 앞에 두고 만족스러움을 표시했다.

선내 보안도 엉망인 놈들이 조각상 한두 개 없어진다고 알아차릴 리 없다. 해적들은 안심하며 조각상을 옮기기 시작했다.

“셋 세면 동시에 드는 거야. 하나, 둘, 셋!”

“으으, 좆나 무겁네.”

“거기 잘 좀 들어…어어!”

조각상들은 굉장히 무거웠다. 성인 남성 넷이 달라붙어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해적 한 명이 실수하는 바람에 조각상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미안.”

“다들 닥쳐! 깨지면 값이 뚝 떨어진다고.”

의안을 낀 해적은 쓰러진 조각상이 멀쩡한지 살펴봤다. 다행히 부서진 부분은 없었다. 안심하며 조각상을 바라보던 해적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것처럼 역동적인 인간 조각상. 그 얼굴이 왠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여기 폰차 애들하고 연락되는 애 있냐?”

“폰차? 걔네 컬트한테 걸려서 토벌된 거 아니었어?”

녹색 머리 해적 말대로 폰차 카르텔과의 연락이 두절된 것이 벌써 한 달 전이다. 의안을 낀 해적도 그걸 안다.

그런데도 그 말을 꺼낸 이유는 쓰러진 조각상의 외모가 누군가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분명 폰차 카르텔에 있던 애인데.’

두 달 전부터 연락이 끊긴 사투아 카르텔의 배에서 한 달 전 토벌됐다는 폰차 카르텔의 조직원과 똑같이 생긴 조각상이 발견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씨발, 뭐야 이거?’

일이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됐다.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그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그때 녹색 머리 해적이 그를 불렀다.

“…야.”

“왜?”

“저 조각상들, 원래 이쪽을 보고 있었냐?”

“어?”

그 말을 들은 해적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4개의 라이트의 빛이 화물칸에 널려 있는 쇠 감옥 안을 향했다. 조각상들은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철창 안에 서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이었다.

모든 조각상들의 시선이 그들이 서 있는 방향에 쏠려 있었다.

“씨, 씨발!”

“쏘지 마! 병신 새끼야!”

“다, 당장 나가야 해! 여긴 위험해!”

“기다려! 이대로 나가면 아무것도 못 챙긴다고!”

“젠장! 빨리 들…야, 한 놈 어디 갔어?”

그러고 보니 들어올 때는 다섯이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는 넷 밖에 없었다.

“어, 언제 없어졌지?”

“씹! 그게 지금 중요해?”

“크래딧이고 나발이고 빨리 도망치자!”

“걔는 알아서 나오겠지!”

그들은 사라진 동료를 찾는 대신, 화물칸 문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넓지 않은 화물칸이다. 밖으로 도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끝이 없잖아?!’

숨이 찰 정도로 달렸는데도 문이 안 보였다. 의안을 낀 해적은 렌즈를 야간투시 모드로 조정했지만 문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은? 다들 어디 갔지?’

방금까지 같이 달리던 동료들도 사라졌다. 그는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화물칸에는 동료들 대신 기분 나쁠 정도로 집요하게 노려보는 조각상들만 있었다.

소름 끼치는 시선과 마주한 그는 덜덜 떨면서 권총을 든 손에 힘을 바짝 쥐었다. 손에 든 작은 무기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거라도 없으면 심장이 마비되어 죽을 것만 같았다.

“…꿀꺽.”

침을 한 번 삼킨 그는 조심스럽게 쇠 감옥 사이를 걸었다. 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철창 너머에 있는 눈들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평생 약탈당한 자들의 증오 어린 시선을 받아온 그다. 하지만 자기를 주시하는 저 눈들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벌벌 떨며 걷던 그의 앞에 사람이 튀어나왔다. 도망치던 도중 사라진 녹색 머리 해적이었다.

하마터면 동료를 쏠 뻔했기에 그는 고함을 질렀다.

“씹, 쏠 뻔했잖아!”

“…….”

녹색 머리 해적은 대꾸 없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가까워진 상대의 얼굴을 본 그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 ……! ……!”

화물칸의 조각상들에서 본 반투명한 결정 물질이 녹색 머리 해적의 목과 입을 뒤덮고 있었다.

그는 일부러 말을 안 한 게 아니었다. 소리 자체를 낼 수 없는 상태라서 그런 것이었다.

녹색 머리 해적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도와달라고 필사적인 눈짓을 보내는 그의 몸이 빠르게 굳어갔다.

“으, 으아아아악!”

의안을 낀 해적은 동료를 밀치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는 이 조각상들이 뭐로 만든 것인지 안다.

이 배는 저주받은 배다. 사투아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배가 지옥보다 어두운 무언가를 방문했다 돌아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주변에서 그를 노려보던 조각상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바닥에 쓰러진 동료의 시선도 그의 머리 위를 향했다.

의안을 낀 해적은 자기 머리 위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호기심은 그의 통제를 거부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곳에 ‘지옥의 존재’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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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미야.」

새로 추가된 5개의 해적 피규어를 보고 하늘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가?’

배에 들어온 녀석들은 딱히 괴롭히지 않고 짧게 끝냈다. 새로 얻은 유일 특성들 중 2개만 썼으니까.

「대혼란의 전령: 현실은 감각에 좌우됩니다. 사이킥 파워를 퍼뜨려 반경 500m 이내의 모든 지성체들이 느끼는 감각을 왜곡시킵니다. 영향을 받는 생물 중 무작위로 ‘광기 폭탄’을 심습니다.

*‘광기 폭탄’: 대상의 감각과 정신을 뒤흔들어 미치광이로 만듭니다. 죽을 때 가장 가까운 지성체에게 ‘광기 폭탄’ 효과가 전염됩니다.

*주의: 사이킥 파워 내성이 있는 생물에게는 효과가 반감됩니다. 특성 사용 시 민첩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추신: 현실을 너무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메두사 기관: 규소 기반 미생물을 대상에게 주입해서 유전자를 변이시킵니다. 유전자가 변이된 존재는 시간에 따라 단계적으로 결정화됩니다.

*주의: 상대와 접촉해야만 사용 가능합니다.」

하나는 초월 시스템으로 만든 특성, 다른 하나는 새로 획득한 타입 ‘환경적응’에 속하는 유일 특성이다. 이것 말고 새로 만든 유일 특성이 하나 더 있지만, 이 자리에서 쓸 특성은 아니다.

‘메두사 기관, 이거 얻느라 정말 고생했지.’

블랙 갤러곤, 그중에서도 오드 그라드에 버금가는 적을 잡느라 아주 개고생을 했다. 잡는 시간만 해도 2주나 걸렸고.

물론 그 보상은 매우 달콤했지만 말이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얘네가 쓸모 있다는 것은 너도 알 텐데)]

「…뭐, 그렇긴 하지.」

나는 침식 촉수로 조각상 하나를 휘감았다.

‘이 녀석이면 되겠지?’

놈은 내가 쉬고 있던 화물칸에 침입한 해적 중 하나다.

애들이 나간 뒤 홀로 남은 나는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대혼란의 전령’을 사용해서 그들의 감각을 왜곡시켰다.

인지 능력이 완전 엉망이 된 놈들은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며 뛰거나 벽을 따라 화물칸 내를 배회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도망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들어온 이상 내 손바닥 안이지.’

천장에 붙어 있던 나는 ‘메두사 기관’이 내장된 침식 촉수를 이용해 미쳐 버린 해적들을 하나씩 석영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메두사 기관의 효과는 몸 안에 저장된 규소 기반 미생물을 상대에게 이식하는 것. 미생물에 당한 적이나 물건은 순식간에 크리스털과 비슷한 물질로 변해 버린다.

다시 말해, 이름처럼 적을 광물 덩어리로 만든다. 이를 막으려면 미생물이 퍼지기 전에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다.

만약 막지 못한다면? 화물칸에 있는 조각상들처럼 육신의 감옥 속에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 괜히 블랙 갤러곤 이상의 힘을 지닌 에이펙스한테서 얻을 수 있는 특성이 아니다.

‘그래도 다른 특성들하고 궁합이 좋아.’

메두사 기관으로 석화시킨 상대는 쓸모가 많다. 예를 들면 의태 기관의 재료로 쓴다거나.

나는 주둥이를 크게 벌려서 결정화된 해적을 통째로 깨물었다. 과즙이 든 사탕을 깨물었을 때처럼 딱딱한 결정이 깨지고 달달한 육즙이 입안을 적셨다.

생전에 녹색 머리카락을 지녔던 해적의 육신이 목 아래 소화기관을 지나며 양분으로 화한다. 그 과정에서 휴면 상태에 있던 의태 기관이 깨어나 유전자 정보를 습득한다.

천장에 붙어 있던 나는 바닥 위로 뛰어내렸다. 약간의 소음도 내지 않고 착지한 나는 오줌을 지리고 있는 해적에게 걸어갔다.

“너, 너는…?!”

의안을 낀 해적은 공포와 혼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나는 완벽히 녹색 머리 해적으로 보일 거다. 머리로는 내가 자기 동료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테지만, 육체가 그 해석을 거부할 테니.

몇 달 전에 얻은 ‘형상 지배자’ 특성 덕분에 의태 기관의 효력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기존에는 페로몬만으로 상대의 감각을 교란했다. 하나 이제는 외피의 모공에서 흘러나오는 사이킥 파워가 내 몸 위에 초능력으로 이루어진 거짓 이미지를 덧씌운다.

일종의 사이킥 파워를 동력으로 삼는 광학 장비를 몸에 두른 것이나 다름없어서 카메라에도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귀신 사진을 찍은 것처럼 일그러진 형상으로 나오지만, 괴물 모습 그대로 찍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용의 둥지를 떠난 이후, 나는 여러 성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지성체들을 포식했다. 그들 중 중요한 인물은 인면충 기관으로 체내에 유전자 정보를 저장해두고, 그보다 약간 처지는 인물들은 지금처럼 메두사 기관으로 조각상을 만들어 놨다.

지금처럼 다른 행성이나 함선을 습격할 때 써먹기 위해서 말이다.

“애들은?”

「컨테이너에 있어. 26호는 가만히 있는데 아드하이는 배고픈 것 같더라.」

“먹을 거라도 챙겨줘야겠네.”

나는 날개 팔로 의안을 낀 해적을 집어 들었다. 내 손에 붙잡힌 놈이 덜덜 떨며 빌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

아드하이의 간식거리로 쓰려고 했는데,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하늘의 어머니에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 현실에서는 여기 처음 와보지?”

「어. 원래 여기 컬트의 우주요새잖아. 왜 이렇게 바뀐 건지 모르겠지만.」

“그럼 안내인이 하나 필요하겠네.”

“네, 네?”

내 말에 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경비를 지배하는데 기생충을 쓰긴 했지만, 아직 몇 마리 남았다.

내 몸을 뒤덮은 환각이 살짝 일그러지고 내 전투용 팔에서 검은색 장어 같은 생물이 기어 나왔다.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기생충을 보자 그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질렸다.

“자, 잠깐! 기다려! 기다…우왜애액!”

긴 몸통으로 얼굴을 휘감은 기생충이 놈의 목구멍으로 파고들었다. 기생충이 목구멍을 통해 머리 쪽으로 파고들자 해적은 눈과 코에서 피를 쏟아 냈다.

잠시 후, 해적은 아주 행복한 미소를 띠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새 주, 주인, 주인, 에이모프 섬긴다! 에이모프를 섬깁니다! 에이모프 만세!”

「…와.」

낚시 자리를 바꿨으니 미끼도 새로 끼워야 하는 법.

애들의 간식은 새 미끼로 낚은 물고기로 대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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