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58화 (259/400)

Ep.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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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 기드큐는 기분이 좋았다.

인간 투기장에서 역배로 딴 크래딧이 그의 단말기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오랜만에 손에 쥔 희망 덕분일까? 일하러 가는 길인데도 힘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힘이 들지 않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출근 중이다.

「다음 착륙 지점은 ‘군항’입니다.」

그를 태우고 날아가는 중인 호버 버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요새 지하에 있는 군용 열차를 타고 출근했을 거다. 득실거리는 군중들 사이에 껴서 기분을 완전 잡쳤겠지.

물론 호버 버스라고 사람이 꽉 안 차 있는 것은 아니지만, 냄새가 달랐다.

이곳에서는 술과 땀, 토사물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신 차량 내부에 설치된 비싼 방향제, 부유한 고객들의 향수 냄새가 빈자리를 채운다.

사람이 많은 것은 열차나 버스나 똑같지만 냄새가 다르니 기분도 달라질 수밖에.

사실 기드큐의 벌이를 생각하면 호버 버스는 엄청난 사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씩 이런데 크래딧을 쓸 필요가 있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이 자기부양 버스는 방금 막 혼란스러운 도시 구역을 빠져 나와 군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군항 앞에 착륙하자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갔다.

호버 버스의 주 고객은 요새를 방문한 외부인들. 볼일을 마친 이들이 군항에 정박된 배를 타고 떠나려는 거다.

사람이 빠져서 공간에 여유가 좀 생겼다. 기드큐는 굳어 있던 몸을 가볍게 풀었다.

문이 닫히지 전, 밖을 보던 그는 아는 사람을 발견했다.

상대는 군항의 경비. 전에 한 번 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는 자였다. 경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웃는 얼굴이었으나, 기드큐는 그의 모습에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눈 때문이었다.

웃고 있는 경비의 동공, 일말의 흔들림이 없었다. 정자세로 입만 웃고 있는 그는 시선을 버스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기드큐는 과거 스타유니언에 있던 시절에 본 스크리머를 떠올렸다. 기계의 통제 하에서 스스로 숨을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불행한 존재들.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기드큐는 경비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런데 그곳에도 경비와 비슷한 꼴을 한 자가 있었다. 군항을 바삐 오가는 군중들 사이에 기묘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자들이 간간이 보였다.

어떤 자는 부랑자였고, 어떤 자는 카르텔의 해적이었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자들이 똑같은 자세로 서 있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약 오지게 빨았나 보군.’

케샤 아르마는 범죄로 먹고 사는 우주요새. 어디서든 약에 취한 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기에 저 이상한 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팔자 좋구먼.’

기드큐는 약쟁이에게 관심을 껐다. 문이 닫히고 버스가 다시 이륙했다. 이 다음 착륙 지점은 그가 경호원으로 일하는 직장, 제2사령부다.

기드큐를 태운 버스가 떠난 뒤에도 약쟁이들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그들의 정신을 장악한 주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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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의 버려진 요새, 케샤 아르마에 도착한 지 3일이 지났다.

그동안 한 일은 정보 수집. 이곳이 내 기억과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썼다.

‘광물이 바닥났다라.’

새로 낚은 먹이들의 말에 의하면, 요새가 지켜야 할 행성에서 광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바람에 버려졌다고 한다.

‘하긴 게임에서야 광물이 무한이지만, 현실은 아니지.’

자원이든 생물이든 다시 번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튼 자원은 다 떨어졌지, 그렇다고 군사적 요충지라고 할 만한 성계도 아니다. 제국에서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궤도거주시설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행정상으로는 여전히 제국 소유 시설이지만….’

보아하니 스페이스독의 카르텔이 로비를 통해 관리권이라도 얻은 것 같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가장 처음 잡아먹은 플레이어, 뮤리엘도 제이슨의 후원을 받아 성지 행성에 침입했으니까.

‘자세한 것은 다음 타깃을 잡아서 들을까.’

마침 하수인들이 요새의 지배자, 마르시오 카르텔에 속한 조직원들을 발견했다. 흔하디흔한 하급 조직원이 아니라 이 도시의 중요 시설인 제2사령부에서 근무하는 자를 말이다.

‘똑똑한 녀석이면 좋겠네.’

나와 애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해적의 요새에서 아주 큰 규모의 경매가 시작될 거란 소문 때문이다.

용의 둥지를 떠난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희귀 에이펙스 생물 ‘고르곤 스웜’을 사냥하던 중, 우리의 이동 수단인 스크리머 지원선이 크게 손상됐다. 덕분에 갤러곤 무리와 같이 다니기 힘들어졌다.

‘주변에 용의 둥지로 삼을 만한 장소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고르곤 스웜이 있던 성계에 갤러곤들이 서식해도 좋을 만한 행성이 있었다. 거기에 갤러곤 무리가 새 둥지를 틀었다.

안타까운 점은 배를 상실했기에 갤러곤 무리와 한동안 이별해야 한다는 것.

아드하이는 나를 따르는 것을 선택했기에 무리의 우두머리에서 잠깐 물러났다. 녀석 대신 함 오르트가 임시 우두머리가 됐다.

언젠가 필요한 순간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우리는 떠났다.

새로운 목표를 찾아 성계를 벗어난 우리는 새로운 함선으로 갈아탔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노예시장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거기서 깽판을 제대로 쳤었는데.’

노예시장이 설치된 행성에서 다양한 생물들을 포식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듯 밀수꾼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케샤 아르마에서 밀수 동물 및 노예 경매가 아주 큰 규모로 열릴 것이라는 정보 말이다.

‘유일 특성 2개만 더 얻으면 성체야.’

여러 일을 겪으면서 성체가 되기 위한 진화 조건을 거의 다 채웠다.

나는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활성화했다.

「‘준성체’->‘성체’ 진화 조건

에이펙스(APEX) 30/30(달성완료), 보유한 유일 특성 8/10(미달성), 보유한 타입 6/6(달성완료)」

내가 가진 유일 특성은 초월 시스템을 활용해서 만든 것이 6개, 에이펙스 생물을 사냥해서 얻은 것이 2개, 합쳐서 총 8개다. 앞으로 희귀 생물을 더 포식하거나, 아니면 여러 개의 특성들을 마구잡이로 모아서 초월 시스템을 사용해야 진화할 수 있다.

‘그래서 경매장을 노리는 거지만.’

유일 특성을 지닌 생물이 경매에 나올 가능성은 0에 가깝고, 내가 노리는 방법은 후자 쪽이다. 초월 시스템으로 유일 특성 2개를 더 얻어 진화하는 것.

‘완전한 유기체,’ ‘악몽의 지평선’, ‘유기적 진화’, ‘위대한 감염체’, ‘대혼란의 전령’, 그리고 아직 이곳에서 사용하지 않은 유일 특성.

그외 블랙 갤러곤을 잡아서 얻은 ‘용의 심장’, 고르곤 스웜을 잡아 얻은 ‘메두사 기관’이 있다.

에이펙스 생물을 잡아서 얻은 유일 특성을 제외하고, 6개가 우주괴물 타입으로 분류된 상황이다. 여기서 2개가 추가되면 8개가 되므로 우주괴물 타입 2단계 보상이 해금된다.

‘그렇게 하면 진화랑 2단계 보상을 동시에 얻을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가 내가 이곳에 온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나보다는 하늘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

현재 하늘의 어머니는 나와 비슷한 상태다. 신격화 단계를 진전시키기까지 하나의 제물만이 남았다.

‘타락한 볼프의 심장.’

용의 둥지에서 떠날 때 챙긴 스타펄 광석을 해적의 노예시장에서 제련을 마친 지금, 그녀에게 남은 일은 볼프의 심장을 섭취하는 일뿐이다.

쉬워 보이는 목표인 것처럼, 실제로 쉬운 목표다. 변신 가능한 볼프 플레이어의 심장을 뽑으면 되기 때문이다.

‘게임이었다면 말이지.’

게임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하늘의 어머니만큼 강한 힘을 지닌 볼프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부분의 볼프들은 신격화라는 개념조차 몰랐으니까.

만약 노예시장에서 우주요새에 변신이 가능한 볼프가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한참 더 찾아다녔을 거다.

‘경매를 주관하는 마르시오 카르텔의 부두목이 볼프라고 했지.’

하수인들이 보고한 조직원을 잡으면 부두목을 꾀어낼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아무튼 여기까지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다.

나와 하늘의 어머니가 정한 목적지이긴 하지만, 다른 애들도 딱히 반발하지는 않았다.

‘착한 애들이지.’

적과 싸울 때는 누구보다 무섭지만, 내게는 예쁘게만 보이는 녀석들.

나의 가족은 현재 군항으로 옮겨진 컨테이너에 들어가 있다.

내가 타고 온 이 배의 전(前) 주인들이 보유한 컨테이너인데, 여러 종류의 에너지에 대한 차폐 효과를 제공해 준다. 그 안에 있으면 녀석들이 발산하는 사이킥 파워가 외부로 전혀 빠져나가지 않는다.

원래 이곳은 컬트 함대가 관리하는 우주요새. 해적 기지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오긴 했지만, 혹시 군대가 남아 있을지 몰라서 녀석들을 컨테이너에 숨긴 거다.

‘스페이스독 관할인 것이 확실해졌으니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지.’

본격적으로 요새를 침공할 때, 녀석들도 꺼내서 활용해야겠다.

‘아직은 아니지만.’

열매가 무르익지 않았다. 지금은 그 밑 작업을 할 시간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그때 녀석들과 함께 전쟁에 나설 생각이다.

화물칸에서 엎드려 있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용의 둥지를 떠날 당시, 내 몸은 거미를 닮은 체형이었다. 25m짜리의 크기에 꼬리와 날개를 지닌 거미 말이다.

그 이후 많은 특성들을 얻었지만, 내 모습은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대혼란의 전령’으로 인해 머리 갑각이 커진 것과 괴물의 촉수가 더 길어졌다는 점 정도가 그나마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리 오거라.”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 20명의 하수인들이 내 앞에 다가왔다.

기생충에 의해 지배를 받는 그들은 나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게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두 가지 특성의 강화 효과가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감염, 둥지 특성 중 각각 3개씩 강화 효과를 부여해 주는 위대한 감염체. 이걸 통해 강화 효과를 받은 ‘기생 군체’는 20마리의 기생충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 말은 지배할 수 있는 대상도 20명으로 늘어났다는 뜻.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강적의 증표 특성 중 하나인 ‘형상 지배자’ 또한 기생 군체를 강화시켜줬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기생충의 질 자체도 올라갔다.

장어만한 사이즈로 커진 기생충은 상대의 뇌를 파먹고 그 부위를 대신한다. 이제 기생충에 당한 자는 모든 뇌 활동이 기생충의 영향을 받는다.

단순히 나를 섬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나는 삶의 일부, 아니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는 존재. 강제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온 진심을 다해 나를 따른다.

‘안 좋은 점이라면 기생충을 수거할 때인데.’

전에 어떻게 되나 실험해봤는데, 기생충이 빠져나갔다고 바로 죽지는 않았다. 뇌가 일부 없어졌기에 완전히 폐인이 됐지만.

즉, 전과 달리 이제는 한번 기생충을 심으면 그 상대는 끝장난다.

‘하늘의 어머니한테 진작 빼 놔서 다행인가.’

희생자의 입에서 뇌 조각이 범벅된 장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본 그녀는 한동안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딴생각은 그만하고. 집중해야지.’

20명을 앞에 세운 나는 ‘대혼란의 전령’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뒷머리 갑각과 목에 숨겨져 있던 괴물의 촉수가 튀어나왔다.

문어가 물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촉수들이 꿈틀거린다. 생물의 육신과 정신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사이킥 파워가 촉수를 타고 허공에 퍼져 나간다.

에너지에 민감한 사람은 볼 수 있을 거다. 아주 가느다란 사이킥 파워의 줄기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공중에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대혼란의 전령이 활성화 되자 내 앞의 스무 명이 즉각 반응했다.

“쯉쯉, 히히, 쯉쥽, 히히!”

“헉, 헉, 헉, 헉, 헉, 헉, 헉.”

“오옥, 억, 아아, 우히히히히!”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

제복을 입은 경비원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보는 것인지 손가락을 쭉쭉 빨았다.

의안을 낀 해적은 과거 자기가 죽인 희생자들과 조우한 것인지 연신 사과했다.

어떤 자는 극한의 쾌락을 느끼는 중인지 침을 질질 흘리며 허공에 허리를 마구 튕겨댔고, 어떤 자는 헐떡거리며 바닥을 마구 핥았다.

감각의 노예들이 감각을 뒤틀고 왜곡시키는 사이킥 파워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대혼란의 전령은 스크리머 지원선을 털었을 당시, 재료 정보를 확보했던 유일 특성이다. 재료로 초능력 관련 특성이 많이 들어간 만큼 사이킥 파워를 이용한 정신 조작, 군중 제어에 특화되어 있다.

‘범위도 원래는 더 넓지만….’

반경 500m에 있는 모든 지성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지금은 범위를 극도로 제한했다. 이 자리의 스무 명들을 대상으로 작업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가 점점 격해지고 동물에 가까워졌을 때쯤, 나는 몇몇 머리 위에 연보라색 빛이 번뜩인 것을 확인했다.

‘됐다.’

저 빛무리는 ‘광기 폭탄’. 대혼란의 전령을 쓸 때 따라오는 일종의 부가효과다.

그걸 확인한 나는 대혼란의 전령을 바로 해제했다. 현실로 돌아온 하수인들은 완전히 지친 채로 자리에 나자빠졌다.

‘첫 스타트는 이걸로 끊을까.’

광기 폭탄이 터지면 적지 않은 소동이 발생하겠지.

나는 그들 중 연보라색 빛무리가 감돈 자들에게 명령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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