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0
‘거울이라.’
나는 피 묻은 거울 조각을 집어 들었다. 금이 잔뜩 간 거울 표면에서 거미를 닮은 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뿌옇게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형상 지배자’로 강화된 ‘의태 기관’은 카메라에도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몸 전체에 퍼져 있는 미세구멍으로부터 페로몬과 사이킥 파워가 함께 분사되어 첨단기계가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도록 교란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카메라가 나를 찍어도 사진을 찍었을 때 빛이 잘못 반사되어 뿌옇게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부분은 ‘위대한 감염체’ 덕분에 안개 형태로 살포할 수 있게 된 ‘그렘린 이끼’로 해결할 수 있다. 기계를 고장 내는 그렘린 이끼라면 카메라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
‘물론 이것도 자주 쓰면 걸리겠지만.’
그건 내가 잘 조절하면 해결될 부분이니 큰 위험 요소는 아니다. 그것보다 문제는 거울이다.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만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
‘그래도 뭐, 거울로 걸릴 일이 얼마나 있겠어.’
의태 기관은 상대에게 위화감을 준다. 20m를 훌쩍 넘기는 덩치로 자기 몸에 10분의 1도 안 되는 인간을 흉내 내는 건데 당연히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에 잡아먹은 사이보그, 기드큐라는 자는 내 외모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페로몬과 사이킥 파워가 이중으로 작용하며 그가 기억하던 ‘녹색 머리 해적’의 모습을 완벽히 구현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물건은 구현이 안 돼.’
의태 기관의 성능 자체는 올라갔지만 그 근본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케샤 아르마에 오기 전에 들린 노예시장에서도 다른 건 몰라도 물건을 속이는 일 만큼은 쉽지 않았다. 의태 기관을 쓰고 해적인 척 돌아다니다가 무기가 없어서 걸린 적도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놈이 날 알아차린 것은 손전등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에서 탐색 장비 하나 없이 물건을 찾겠다고 하니 의심할 수밖에.
카메라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인다는 점, 그리고 사람을 속일 때 복식까지 완벽히 속일 수는 없다는 점. 이렇게 두 가지가 강화된 의태 기관의 약점이다.
물론 이미 게임 속 의태 기관보다 훨씬 좋아진 상태다. 여기서 더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리라.
“그래도 재밌는 실험이었어. 게다가 네가 도움이 되는 자라 다행이구나.”
나는 거울에 묻은 피를 핥았다. 그러자 날개 팔 위에 앉아 있던 벌레 괴물이 꿈틀거렸다.
발톱이 달린 6개의 다리, 사마귀와 파리를 뒤섞은 몸, 그리고 등에 달린 2장의 날개.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인 벌레 괴물과 다른 점이 없다. 딱 한 가지를 빼고.
“■ ■■■!”
벌레의 머리 대신 달린 성인 남성의 머리가 해석 불가능한 소리를 낸다. 그 남자의 얼굴은 방금 내가 잡아먹은 해적과 매우 닮아 있다.
사이보그 기드큐는 나의 의지에 속박된 인면충이 됐다.
원래는 잡아먹지 않고 기생충으로 지배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놈은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지원을 요청한 상태.
‘그러면 굳이 얘를 남겨둘 필요가 없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빠르게 행동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역으로 목숨을 단축시켰으니 말이다.
‘슬슬 놈의 동료가 올 때가 됐나.’
나는 주변에 흩어져서 맴돌고 있는 하수인들을 불렀다.
‘손님이 온다.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나의 명령을 듣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이라 여기는 충성스러운 시종들이 내 의지에 복종한다. 그들이 기습하기 위해 버려진 건물들에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기생충은 다섯 마리 남았지.’
나를 섬기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목에서 한때 제이슨이라 불리던 컬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인면충이 고개를 숙였다.
-
“빌어먹을 약쟁이 새끼들, 야밤에 이게 뭔 지랄이야.”
“위에서도 최대한 빨리 처리하라더라.”
10명의 해적들이 조병창 구역에 진입했다.
무법자답지 않게 이들은 중급 강화복과 가우스 소총 혹은 사이킥 라이플로 무장한 상태였다. 일부는 컬트 전사단이 사용하는 사이킥 실드와 메디컬 키트들까지 챙겨 왔다.
해적 주제에 이렇게 좋은 장비를 쓸 수 있는 이유는 과거 컬트 제국군이 떠나면서 남겨둔 무기들을 마르시오 카르텔이 획득했기 때문이다. 몬타나 마르시오는 노획한 무기들을 판 크래딧으로 강화복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 덕분에 메가콥의 무장경찰, 하급 장교들이나 쓸 수 있는 중급 강화복을 일반 해적들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기드큐가 연락한 장소가 어디지?”
“조금 더 가야 해.”
“걔 사이보그 아니었어? 약쟁이 정도는 혼자 처리할 수 있잖아.”
“조나스 당한 거 몰라? 강화복을 입고도 당했잖아.”
“쯧. 그건 걔가 멍청해서 그런 거고. 나라면 그 새끼가 달려들 때 몸을 이렇게 피해….”
잡담을 나누며 이동하던 중, 선두에 있던 해적이 손을 들었다. 앞에서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자 해적들은 바로 무기를 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약탈과 범죄가 생업인 자들인 만큼 다른 것은 몰라도 전투 경험은 풍부하다.
순식간에 노련한 군인으로 화한 해적들이 전방을 주시했다. 버려진 건물들이 만든 그림자 아래에 무언가가 있었다.
분명 기드큐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사이보그 해적은 한 사람이지, 지금처럼 다수가 아니었으니까.
“놈들이다!”
해적의 고함 소리가 신호탄이 된 걸까?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자들이 강화복을 입은 해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선두에 선 해적이 가우스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가격과 파괴력, 양쪽 모두 무시무시한 텅스텐 탄환이 적의 복부를 사정 없이 관통했다.
가슴에 주먹 크기의 구멍이 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적을 끝장냈다고 생각한 해적은 다른 이를 도우려고 했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텅스텐 탄환을 맞고 주춤거리던 약쟁이가 다시금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웃는 표정을 유지한 채로 말이다.
“미친!”
그는 급히 총의 몸통을 휘둘러서 웃는 광인의 얼굴을 후려쳤다. 살이 으깨지는 소리가 나고, 놈은 뒤로 자빠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적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다른 해적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달려드는 적 때문에 당황해하는 중이었다.
“이런 씹! 도대체 뭘 처먹은 거야?!”
“몸 대신 머리를 노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약쟁이들의 신체 능력이 별 볼일 없다는 점이었다. 해적들은 침착하게 약쟁이들을 정리했다.
“부상당한 새끼는 없어?”
“난 괜찮아.”
“잠깐, 뭐야? 왜 6명밖에 없어?”
“어? 어, 어라? 방금까지 뒤에 있었는데?”
10명이 왔는데 여섯 밖에 보이지 않자 모두가 당황했다. 혹시 실수로 동료를 쏜 것인가 싶어 시체들을 확인했지만, 그들의 동료는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연락해 볼게.”
해적 하나가 단말기를 들어서 통신을 보내려 한 순간.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게 뭐야?”
“안개잖아?”
어느새 그들이 서 있는 거리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 회색 구름 속에 버려진 건물들의 윗부분만 툭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생명 유지 설비가 고장 났을지도 몰라!”
“젠장! 모두 산소 캡슐 물어!”
해적들은 재빨리 강화복에 탑재된 산소 캡슐을 입에 넣었다. 캡슐이 천천히 녹으며 산소를 공급해주기에 구역을 빠져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다.
“…이거 우리 선에서 해결 못 할 것 같은데?”
“위에 보고할게.”
사라진 동료 넷은 이미 그들 머리에서 잊혀졌다. 이곳은 행성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우주요새. 괴기스러운 약쟁이나 실종된 동료들 따위보다 생명 유지 설비 오작동 문제가 훨씬 중요했다.
단말기를 꺼낸 해적이 위에다 보고하려고 하는데, 뿌연 안개 너머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어?”
“저게 뭐야?”
그걸 목격한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폐공장의 건물인 줄 알았으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저것」은 아니었다.
거미를 닮은 그 존재가 소리 하나 없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
“젠장! 이건 또 왜 말을 안 들어?”
“다시 해 봐.”
“씨발, 안 되는데 왜 자꾸 다시 하래! 니가 해 봐!”
“이 씨발놈이 뒤지고 싶냐?”
같이 온 동료들로부터 떨어진 4명의 해적들은 근처 폐건물 안에 숨었다. 약쟁이들을 잡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안개가 깔리는 바람에 급히 대피한 것이었다.
생명 유지 설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 단말기로 급히 보고하려고 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기계가 완전 먹통이 됐다.
“그냥 나가서 달리는 게 낫지 않아?”
“뭐? 저 안개에 뭐가 섞여 있을 줄 알고 나가?”
“둘 다 입 닥쳐.”
이들 중 조직 생활을 가장 오래한 해적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으니 입 다물어.”
“소리?”
“약쟁이들인가?”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한 채 깨진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가스라도 유출된 것마냥 짙게 깔린 안개. 그 속에서 해적 말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적들을 여기에 부른 조직원, 기드큐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저거 기드큐 목소리 같은데?”
“어떻게 하지?
동료 의식 때문에 구하러 가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곳에서 발생한 괴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지원을 요청한 기드큐가 가장 잘 알 테니까 말이다.
“일단 저 새끼부터 데려온 다음 생각하자.”
“씹, 이 지랄이 날 거라면 진작 말하던가.”
해적들은 기드큐를 욕하면서 조심스레 움직였다. 목소리를 따라 걷던 그들은 반쯤 무너진 상태의 폐건물에 도착했다.
“여기서 들렸는데 어디 갔지?”
“이쪽이야!”
대답이라도 하듯 사이보그의 외침이 들려온다. 해적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기드큐가 어디 있는지 살폈다.
“여기야!”
“미친놈. 어디인지 정확히 말을 해야 알지.”
무너진 계단 위에서 목소리가 들리기에 4명 모두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쪽이야! 이쪽!”
“여기를 봐!”
기드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만이 에코처럼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목소리 중간에는 커다란 벌레가 날개를 흔드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제야 해적들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 목소리의 주인. 기드큐가 아니다.
“여, 여기를 나가야 해! 당장!”
“미친 씨발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어? 야야야, 왜 셋 밖에 없어? 한 명은?”
“무슨 씹소리를…어?”
“씨, 씨발!”
계단에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분명 넷이었는데, 어느새 셋만 남았다.
“다들 왜 그래?”
“나 여기 있다니까?”
그들 말고 아무도 없는 폐건물에서 계속 기드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목소리 사이에 섞인 날갯짓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서로 붙어!”
짙은 안개, 정체불명의 목소리, 게다가 동료의 실종까지. 남은 3명은 당장 울부짖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총을 들었다.
등을 맞댄 그들의 눈이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방아쇠에 올라간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건물 내부가 침묵에 잠겼다.
“가, 갔나?”
“정신 차려! 병신아!”
“놈은 아직 여기 있어.”
그들 중 유독 소심한 자가 침을 꿀꺽 삼킨 순간,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이 푹 꺼졌다.
셋 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었기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모두 조심…!”
경력이 긴 해적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조심하라고 외치려 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개에서 길쭉한 검은 팔이 튀어나와 그를 낚아챘다.
“히, 히이익!”
“으아아악!”
그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한 둘은 울음에 가까운 비명을 내질렀다. 해적 중 한 명이 가우스 소총을 들고 안개에 마구 쏴대기 시작했다.
동료와 다르게 소심한 해적은 싸우는 것 대신 도주를 택했다. 혼비백산하며 건물 밖으로 나온 그는 네 발로 기다시피 하며 거리를 달렸다.
“으아아아…악?!”
뒤에서 들리던 총소리가 뚝 끊겼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소심한 해적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거리를 달렸다.
마르시오 카르텔의 부두목과 마주했을 때도 이렇게 무섭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두려움을 유발하는 존재다.
하나 저 안개 속에 있는 존재는 그렇지 않다.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 불경한 진흙 같은 공포. 불가해의 존재를 앞에 두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도망치는 것뿐이다.
그렇게 도망치던 중 어느새 안개가 잦아들었다. 저 멀리 구역 간에 세워진 경계 표지판이 보인다. 저기만 넘어가면 고급 유흥 시설들이 있는 유흥 구역이 나온다. 그곳에 도착하면 다른 조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리라.
두려움에 잠식된 마음에 한 줄기의 희망이 피어오른다. 그는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그의 다리가 움직이기만 했어도 그랬을 거다.
“?”
두려움 때문에 다리가 굳은 것일까? 당황한 그는 다리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귓구멍에서 뜨끈한 느낌이 들었다. 손으로 귀를 만지려고 했지만, 팔이 말을 안 들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전신이 완전히 마비된 그의 귀에 익숙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기드큐의 목소리를 따라 하던 존재가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마구 흘려 내렸다.
방금 그는 불가해의 공포가 진정한 두려움이라 여겼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이 우주에는 그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났다.
가령 그의 동료의 머리를 지닌 벌레라든가 말이다.
“주인이시여. 그자는 생명 유지 설비 관리자와 아는 사이입니다.”
기드큐의 머리를 가진 벌레가 말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위에서 총 한 자루가 떨어졌다.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그 소리가 흡사 귓가에 천둥이 치는 것처럼 들렸다.
저 가우스 소총은 괴물에게 대항하던 동료가 들고 있던 총이었다.
그리고 목뒤로 기분 나쁜 숨결이 느껴졌다. 마비가 됐음에도 그의 감각은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저 숨결에 피 냄새가 짙게 배여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너는 쓸모가 있어 보이는구나.”
평온하다 못해 부드럽다고 느껴지는 남성의 목소리.
하지만 소심한 해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모른다.
끔찍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일이 그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초라한 상상력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