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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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샤 아르마의 제1사령부.
커다란 원통형 기둥처럼 생긴 사령부는 요새 안의 요새처럼 삼엄한 경비를 자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1사령부는 우주요새의 원자로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원자로가 심장이라면 제1사령부는 뇌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그곳에는 요새의 지배자 몬타나 마르시오가 거주하고 있다.
귀중한 보물과 희귀 동물의 박제로 가득한 집무실에서 두 남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경매에 상품을 내놓을 손님들께서 1시간 전에 군항에 도착했습니다. 접대 준비는 30시간 전에 모두 끝냈으니 문제 될 부분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일반인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거구의 남성, 몬타나 마르시오는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시가를 빼 물었다.
그는 방금까지 대화 중이던 수컷 볼프에게 시가 하나를 내밀었다.
하얀색 털이 인상적인 백호 수인의 이름은 카둔. ‘눈발톱’이라는 이명을 지닌 마르시오 카르텔의 부두목이다.
“감사합니다.”
카둔은 정중하게 몬타나가 권한 시가를 받았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몬타나도 그가 그럴 것이라 알고 혼자 시가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 번 크래딧으로 메가콥 측과 거래할 거다. 잘하면 쓸 만한 행성을 구입할 수 있겠지.”
“행성을 구매하실 생각입니까?”
“음. 현재 제국의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웃스페이서 재침공 문제로 군비 증강이 공공연하게 화두로 오르고 있어.”
“케샤 아르마도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카둔의 말에 몬타나는 대답하지 않고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마르시오 카르텔이 케샤 아르마를 지배하고 있긴 하나, 이 도시의 진짜 주인은 어디까지나 컬트 제국이다. 몬타나가 제국의회에 적극적으로 로비를 한 덕분에 넘어간 것이지, 제국의 정책이 수정된다면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몬타나는 이번 기회에 새 행성을 구매해서 카르텔의 본거지를 옮길 생각이었다.
“가능하다면 메가콥 노블캐피탈에게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무리겠지.”
“가르멜다 가문에서는 저희와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말입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이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이후 둘은 한참 동안 요새 운영과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카둔은 집무실을 나섰다. 그가 밖에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부하들이 그에게 따라붙었다.
“약쟁이 건은 어떻게 됐지?”
“어, 그게…마약이 아니라 전염병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급증….”
“뭐?”
보고하던 부하는 카둔이 인상을 확 찌푸리자 입을 다물었다.
마르시오 카르텔에서 가장 높은 자는 두목이지만, ‘가장 위험한 자’는 그의 앞에 있는 카둔이다. 그는 실수를 저지른 부하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말없이 부하를 노려보던 카둔이 입을 열었다.
“두목님께서는 이번 사업에 집중하고 계신다. 한 치의 착오도 용납할 수 없다.”
“네, 넵!”
“12시간 안에 처리하도록. 인력과 장비, 필요한 대로 동원해라.”
“어, 그게….”
부두목의 이름을 걸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부하는 알겠다고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색한 표정으로 머뭇거리고 있을 뿐.
“뭐지?”
“그, 며칠동안 조직원 중 이탈하는 자들이 늘었습니다. 아마 약에 전염될까 봐 두려워서…켁!”
이번에도 부하는 보고를 다 끝마치지 못했다. 카둔이 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부하의 몸이 축 늘어졌다.
“크르르, 그걸 이제 와서 얘기해?”
카둔이 으르렁거렸지만, 머리가 으깨져 버린 부하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부하를 죽인 그는 다른 조직원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부하들은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이놈 다음으로 높은 놈이 누구지?”
“저, 접니다!”
“무단으로 이탈한 놈, 약쟁이인지 병균인지 하는 것들. 모두 네가 맡아라. 손님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피를 봐도 상관없다. 의심 가는 새끼들은 다 죽여라.”
“아, 알겠습니다!”
“12시간이다. 그 안에 처리하도록.”
카둔은 머리가 부서진 시체를 던져두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간부로 승진한 해적은 부하들에게 다급히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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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궤도거주지의 가치는 매우 높다.
성계 수만 수백 개고 행성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은데 굳이 궤도거주지를 보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 설치할 수 있으니까.
전략적으로 중요한 성계, 혹은 중요하게 만들고 싶은 성계에 우주요새 같은 것을 두면 성계를 장악하기가 쉬워진다. 그래서 랭커, 대형 클랜 중 궤도거주지를 보유하지 않는 자가 더 적을 정도다.
‘물론 나는 예외지만.’
나는 궤도거주지를 설치하는 자가 아니라 그곳에 침투하고 파괴하는 에이모프다. 수많은 우주요새가 내 손에 걸려 우주의 먼지가 됐다.
내가 있는 이 요새, 케샤 아르마도 그중 하나다. 이 요새는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처럼 시스템상 존재하는 우주구조물이다. 플레이어가 만든 것이 아니므로 파괴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 생긴다.
그 말은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공략이 가능하다는 뜻.
실제로 나는 케샤 아르마를 세 번 파괴했다. 그것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말이다.
‘게임 속과 달라져서 살짝 걱정했는데.’
막상 와 보니 게임보다 공략이 수월할 것 같다.
요새의 관리자, 마르시오 카르텔의 조직원들 몇 명을 지배하는데 성공한 나는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이 요새는 제국이 운영할 때처럼 완벽하게 가동하고 있지 않다.
유지비 문제 때문에 해적들은 필요한 구역에만 생명 유지 시설을 가동시켜 유지 중이다. 군항이나 유흥 구역처럼 수익이 나오는 곳, 물 정화 시설이나 식량 생산 시설 같이 생필품을 조달하는 곳 등만 활성화 되어 있다.
그밖에 컬트 전사단이 주둔하는 구역이라든가, 종교 시설이 밀집한 구역은 버려진 상태다. 수도와 전기 공급도 전부 끊겼고, 산소 공급 시설과 중력 생성 시설만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게임에서는 이런 식으로 방치된 구역이 없었지.’
어딜 가든 요새를 지키는 컬트 전사단이 있었으니까.
나는 바닥에 떨어진 금속판을 집어 들었다.
금속판에는 둥근 원 안에 마름모, 그 안에 삼각형 2개가 배치된 형상의 심벌이 새겨져 있었다. 컬트의 종교적 상징물 중 예언자회가 주로 사용하는 표식이다.
‘원은 세계, 마름모는 눈, 삼각형은 지혜와 지식을 상징한다고 했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이 요새에 배치된 예언자회 소속 예언자들이 머무는 구역이다. 주변에는 금속으로 만든 종교 건축물들이 잔뜩 있다.
조병창 구역처럼 부서진 건물들은 없지만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표식, 표면이 부식되기 시작한 건축물들을 보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 꽤 된 것 같다.
‘순찰을 오는 놈들을 빼고는 아무도 안 온다고 했지.’
그러니 몸을 숨기기 적절한 장소라 할 수 있으리라.
그때 내 보조기관이 공기 중의 진동을 감지했다. 누군가가 이곳에 접근하고 있다.
‘왔구나.’
외부에 비치는 불을 전부 다 끈 채 날아오는 그것은 순찰용 초계함이었다. 초계함은 내 주변에 있는 광장에 착륙했다.
초계함의 후방 해치가 열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모습의 생물들이 튀어나왔다. 50cm 크기의 분홍색 해파리와 붉은색 날개 4장을 가진 하얀 용이 내게 달려왔다.
「큰애기야!」
「큰어른」「안녕」
요새에 도착한 이후, 줄곧 컨테이너에 있던 26호와 아드하이다.
안 본 지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았지만, 녀석들은 몇 주 동안 못 본 것처럼 나를 반겼다. 26호는 내 머리 위에 올라탔고, 아드하이는 내 팔에 목을 부드럽게 비볐다.
[즈즈즈즈(잘 있었어?)]
「응. 혼자 공부했어.」
「나」「지루했어」「아픈 아이」「재미없어」
“저는 갤러곤에게 즐거워할 만한 요소들을 최대한 종합해 유머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그 평가는 부당합니다.”
이어서 뮤턴트 스크리머 PS-111이 기어 나왔다.
“합리적인 판단 아래, 평가의 재고를 요청합니다.”
「봐봐」「너무」「진지해」
용의 둥지를 떠난 이후, 우리 중 모습이 가장 많이 변한 존재는 내가 아니라 PS-111이다.
거미와 전갈을 합친 것처럼 보이는 기본 체형만 그대로고, 그밖에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일단 크기가 전보다 더 커졌다. 몸통 길이만 7m에 꼬리까지 합치면 12m에 달한다. 여덟 개의 다리들도 몸이 커진 것처럼 길고 두꺼워졌다. 전에는 금속 골격과 근육 조직, 살점들이 그대로 노출되던 다리였으나, 지금은 단단한 갑각이 감싸고 있다.
다리 말고 다른 부위에도 금속 골격 위에 동물의 외피와 갑각이 덮였다. 누가 보면 스크리머가 아니라 헐크 뮤턴트나 유전자를 개조한 짐승으로 오해할 정도다.
머리는 여전히 창백한 여성의 얼굴에 두꺼운 케이블이 얽혀 있는 형태였다. 생긴 것은 예전과 비슷하나 추가된 기능이 있는데, 바로 사이킥 파워 조정 기능이다. 덕분에 내가 괴물의 촉수로 대화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파장을 쏘아 보낼 수 있게 됐다.
또 하나 달라진 부분이라면 턱 아래에 가느다란 케이블 네 가닥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함선의 컴퓨터와 링크할 때마다 등에서 케이블을 꺼내는 것이 불편해서 새로 만든 부위였다.
‘전반적으로 나를 닮아간다고 해야 하나.’
「과연. 여기를 둥지로 삼으려는 생각이구나.」
PS-111에 대해 생각하는데, 뒤늦게 초계함에서 내린 하늘의 어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원래 생각은 요새를 치기 전까지 애들을 컨테이너에 숨기는 것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곳에는 해적들이 거의 찾아오지 않으니 애들이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방치된 구역이라 괜찮을 거야)]
「종교 구역에 숨는다니. 게임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텐데.」
제국 3대 권력 기구의 상징이 바닥에 나뒹구는 꼴을 본 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녀 말대로 컬트는 섭리의 가르침을 무엇보다 중시한다는 설정이다. 나도 케샤 아르마를 세 번 침공하면서 중 종교 구역부터 공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지.’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초계함의 해적 한 명을 불렀다. 그는 행복한 미소를 띤 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6시간 전에 경매에 나올 상품들이 도착했고, 일부는 제3사령부로 이송 완료되었습니다.”
“그래?”
그건 희소식이다. 내가 노리는 것은 케샤 아르마의 대규모 경매에 나올 예정인 희귀 생물들의 유전자 정수니까.
“상품 관리 목록도 제3사령부에 있나?”
“총 목록은 제2사령부의 부두목이 보관 중입니다.”
“부두목이면 호랑이 볼프를 말하는 건가?”
“예. 카둔 부두목입니다.”
나는 하늘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시했다.
그녀가 신격화 단계를 올리려면 변신이 가능한 볼프의 심장이 필요하다. 카둔 부두목이라는 자는 그 조건에 부합하는 제물이다.
‘잘됐다.’
부두목을 잡는다면 두 가지 목표를 한 번에 달성할 수 있다.
‘마침 준비도 끝났고.’
케샤 아르마에 뿌린 씨앗이 슬슬 싹을 틔우고 있는 중이다.
‘대혼란의 전령이 빠르게 퍼지고 있어.’
‘광기 폭탄’이 옮겨붙은 해적이 이미 병원에 간 상태다. 위에서는 경매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대혼란의 전령은 미친 듯이 퍼져나가고 있다.
아마 3, 4일 쯤 지나면 광기에 빠진 수많은 군중들이 곳곳에서 날뛰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다.
여기서 생명 유지 시설을 공격하면 피해가 더 커질 거다. 그쪽 관리자 중 하나를 기생충으로 지배한 상태이므로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
‘물론 그건 희귀 생물을 다 먹은 다음에 할 일이지만.’
“더 보고할 내용은?”
내 질문에 충성스러운 하수인이 대답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현재 약쟁이를 근절하기 위해 위에서 대규모 수색대를 조직 중입니다. 이곳도 수색 루트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색대라.
내 특성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숨을 수 있으니까 딱히 걱정되지는 않는다. 아니면 우리를 찾아온 수색대원을 잡아다가 기생충을 넣는 것도 나쁘지 않고.
‘잠깐? 그러지 말고….’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수색대에 혹시 부두목을 포함시킬 수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라.
그렇다면 저쪽에서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면 되겠지.
이 버려진 구역에 호랑이가 찾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