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62화 (263/400)

E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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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둔은 한때 노예였다.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볼프들이 노예로 사니까.

남자는 전투 노예로, 여자는 성노예로. 운이 없으면 메가콥, 스타유니언의 실험체가 되어 연구실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볼프에게 그나마 나은 삶이라고 한다면 우주의 해적이 되는 일뿐.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가? 어린 카둔이 부족의 족장에게 울부짖었을 때, 족장이 말했다.

그들은 한때 행성을 지배하는 신이었으나 오만함과 폭력성으로 인해 서로 다투었다고 한다. 영원에 가까운 투쟁 끝에 볼프는 신의 힘을 잃고 영락해 버렸다. 그리고 신의 자손들은 선조의 죄 값을 치르는 중이라고.

족장의 이야기가 헛소리라는 것을 깨달기까지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미 죽은 족장, 우주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진 부족들. 그들은 전부 틀렸다.

볼프가 핍박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컬트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는 냉혹한 법. 포식자가 피식자를 먹는데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지 않듯, 강대한 컬트가 나약한 볼프를 짓밟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강자에게 밟히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자가 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투기장을 전전하며 두 손을 피로 적신 그는 그 어떤 볼프보다도 강해졌다.

컬트와는 또 다른 종류의 강자, 몬타나 마르시오는 그의 잠재력을 읽어낸 유일한 자였다. 그는 카둔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카둔 또한 몬타나를 섬긴다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복종했다.

카둔이 마르시오 카르텔의 부두목이 된 지 10년. 그는 과거에 족장이 말했던 ‘신의 육신’까지 얻었다.

엄청난 힘을 손에 쥐었지만 그는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볼프의 신화는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기에.

컬트가 섭리를 따르듯, 카둔은 약육강식의 질서를 섬겼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사령부에 위치한 개인 수련장에서 트레이닝을 할 예정이었다. 갑자기 부하가 수련장으로 뛰어들어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비활성 구역에 안개가 꼈다고?”

“예! 순찰 나간 해적이 이를 촬영했습니다!”

잔뜩 기합이 든 부하가 그에게 단말기를 건넸다. 버튼을 꾹 누르자 기록된 영상이 재생됐다.

“컬트 놈들의 종교 구역이군. 생명 유지 장치 관리자는 이상이 없다고 했나?”

“기기 문제는 아니고 누가 인위적으로 퍼뜨린 것이라 합니다.”

“인위적이라. 분석 결과는?”

“그건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구역 내에 오염 물질이 퍼지는 것은 심각한 사안이긴 하나, 카둔이 직접 관여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권한 문제라기보다는 전문성 문제로, 그보다는 엔지니어들과 얘기해서 푸는 쪽이 더 합리적이니까.

그 사실을 눈앞의 부하도 모르지 않을 터. 그가 카둔에게 보고하러 온 이유는 다른 것에 있다.

“그, 그게, 저 안개와 약쟁이들 간에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약쟁이들이 죽기 전에 안개 속의 거미에 대해 얘기했거든요.”

“안개 속의 거미?”

카둔은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안개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비정상적이었다. 마치 속에 있는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것처럼.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안개, 이를 조종하는 생물.’

비슷한 생물들이 몇 종류 떠오른다. 사이킥 파워로 이루어진 거미줄로 먹이를 낚는 ‘천사거미’, 환각 페로몬을 뿌려 먹이를 무력화시키는 맹수 ‘레드미스트’ 등등. 해적들의 거래를 중계하는 마르시오 카르텔의 부두목답게 그는 희귀한 생물들을 많이 접해봤다.

“이 영상을 찍은 녀석들을 데려와라.”

“어, 영상을 찍은 순찰대로부터 약쟁이들과 비슷한 증상이 나와서….”

저 생물의 정체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나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부하가 카둔을 찾아온 것이리라.

‘어떤 개새끼가 저런 걸 풀어놓고 갔지?’

요새에 찾아온 모든 해적들이 밀수 동물 거래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거래가 불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래에 실패한 해적들 중 일부는 운송비를 부담하기 싫어서 비활성 구역에 희귀 동물을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다.

카둔은 이번 일도 그와 비슷한 케이스라 봤다.

문제는 피해가 다른 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지만.

“크르르, 놈을 잡으려면 내가 있어야겠지. 출동하겠다. 같이 갈 놈들 전부 준비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들어가기 전, 구역에 가스를 살포해라. 놈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약화시킬 수 있겠지.”

“옙.”

오늘 트레이닝은 저 괴물을 잡는 걸로 해야겠다고, 카둔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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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끼는 물었고.’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나와 의식이 연결된 기생충으로부터 신호가 왔다. 적을 낚기 위해 보낸 하수인 5명. 그들과의 연결이 끊겼다.

‘지금쯤 열심히 준비 중이겠지?’

종교 구역으로 애들까지 모두 데려온 뒤, 나는 부두목을 끌어내기 위해 미끼를 던졌다.

내가 이 요새에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떡밥 말이다.

요 며칠간 요새에는 나로 인해 정신이 나간 자들이 돌아다니는 중이다. 기생충에 의해 지배당하는 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대혼란의 전령’ 때문에 광인이 된 자들이다.

그들 중 몇 명의 머리에는 ‘광기 폭탄’이라는 정신 기생물이 자리 잡고 있다. 광기 폭탄에 감염된 자가 죽으면 주변에 근접한 자들에게 전염된다. 민들레가 바람에 날려 씨를 뿌리듯, 광기 폭탄도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이제는 해적들도 불특정 다수가 갑자기 미쳐 버리니까 이게 마약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의사를 시켜 조사하면 나오겠지만, 놈들은 대신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이상 증세를 보이면 즉각 소각시키는 것.

무식해 보이긴 해도 놈들 입장에서는 나름 이유가 있는 행동이다. 어느 카르텔을 막론하고 스페이스독에게 의사의 존재는 귀한 편이다.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혹시나 의사가 감염된다면 손해가 막심하다.

그나마 마르시오 카르텔은 우주요새를 본거지로 삼는 부유한 카르텔. 당연히 의사나 연구원들도 많이 데리고 있을 테지만, 시기가 문제다. 지금 놈들은 대규모 경매를 앞두고 있다. 수많은 귀빈들이 이곳을 방문할 텐데, 자칫 잘못해서 의사를 잃으면 큰일이다.

‘의사를 잃을 바에는 부하 수백 명이 죽는 게 더 나으니까.’

구성원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는 스페이스독이라면 능히 그렇게 생각할 거다.

물론 이 방법은 임시방편이고, 제일 좋은 방법은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상한 안개를 두른 내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하물며 나의 모습을 촬영한 자들이 이상 증세를 보이기까지 한다면? 저쪽에서는 무조건 내가 오염원이라고 생각하리라.

‘연출이지만 말이야.’

안개는 강화된 그렘린 이끼 효과로 인한 거고,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것은 대혼란의 전령과 강화된 기생충 효과 때문이니까.

물론 놈들은 자기들이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를 거다. 설령 알아차린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요새가 망하기 직전일 거다.

‘응?’

놈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한쪽 벽이 무너진 교회에 엎드려 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공간 전체에서 일어난 변화를 빠르게 읽어냈다.

‘과연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공기에 유독한 가스가 섞여 있다. 나를 잡으러 들어오기 전, 구역에 독가스를 살포해서 약화시키려는 속셈이리라.

‘그래 봐야 소용없지만.’

전에 갔던 컬트 성지 행성의 늪지대 정도가 아닌 이상, 우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없다.

‘26호는 이 정도는 버틸 수 있고, 아드하이는 성장하면서 더 강해졌으니까 중독되지 않아.’

PS-111은 애초에 기계생명체다 보니 중독 문제에서 자유롭다. 그나마 하늘의 어머니가 살짝 걱정될 정도일까.

나는 숨겨놨던 괴물의 촉수를 꺼내 그녀에게 파장을 쐈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놈들이 독가스를 살포 중이야)]

「걱정 마. 이미 변신했으니까.」

“공기 중 다량의 화학 물질이 확인됐습니다. ‘중간애기’는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중간애기라고만 안 불렀으면 참 고마웠을 텐데.」

「무슨 일」「있어?」

「하늘에 꾸물꾸물 이상해.」

「꾸물꾸물?」「이해」「불가」

「꾸물꾸물 모아놔야지.」

「나」「안 보여」「어디 있어?」

“갤러곤은 가스의 흐름을 시야로 관측 불가능합니다.”

다들 다른 장소에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몸을 숨긴 상태. 구역 전체에 유독성 가스가 깔렸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나름 머리를 쓴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안 좋았다.

나는 애들의 잡담을 들으며 놈들이 들어오기까지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나자, 구역 내에 깔린 유독 가스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놈들도 슬슬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 중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해적들을 가득 실은 초계함 3척이 구역 상공에 진입했다.

‘왔구나.’

초계함에 탑승한 해적들은 죄다 중급 강화복에 사이킥 라이플, 가우스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다. 게다가 부두목이라는 자는 볼프 주제에 상급 강화복까지 입고 왔다.

‘해적 주제에 어마어마한 스펙이네.’

뮤리엘의 부하들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궤도거주지를 운영하는 해적답다고 할까.

‘문제는 다 읽히고 있다는 거지.’

아직 발각되지 않은 하수인이 3명이다. 그들은 초계함 한 척에 한 명씩 탑승한 채 내게 정보를 보내주는 중이다.

놈들은 미끼역으로 던진 5명이 끝인 줄 알고 있다. 3명의 스파이가 자기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럼 시작해볼까.’

나는 획득한 정보를 잘 정리해서 애들에게 파장을 보냈다. 지금까지 함께 싸운 경험만 수십 번이 넘는다. 녀석들은 내 파장을 금방 이해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들의 움직임에 맞춰 나 또한 교회 밖으로 기어 나왔다. 나의 거대한 날개 팔이 바닥에 깔린 컬트의 상징물을 짓밟아 으스러트렸다.

‘놈들과의 거리는 1km.’

초계함 중 하나가 1km 밖에 있는 광장에 착륙을 시도하는 중이다. 내가 움직이는 속도를 고려해 보면 결코 멀지 않은 거리다.

나는 날개 팔과 전투용 팔들을 움직여서 놈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중간에 합금 재질의 건축물들이 나를 가로막았지만, 내 몸은 장애물들을 그대로 꿰뚫었다. 건물들을 무너트리며 질주하다 보니 해적의 배가 보인다.

초계함이 착지하기까지 거리가 수십m 가량 남은 상황. 나는 등에 숨겨진 침식 촉수를 밖으로 꺼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뱀처럼 거대한 촉수 6개가 배를 향해 날아든다. 착지하던 중에 습격 받을 줄은 몰랐는지 초계함의 함포들이 급히 움직인다.

그러나 그 선택은 오답이다. 놈들은 내 촉수를 피해 회피 기동을 펼쳤어야 했다.

내 촉수들이 초계함의 후미를 휘감았다. 선체가 크게 흔들리고 함포의 사격은 목표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초계함을 사로잡은 나는 촉수를 내 쪽으로 당겼다. 배에 탑승한 해적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후미의 해치를 열었다. 중급 강화복을 입었으니 수십m에서 뛰어내리는 걸로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오답이다. 왜냐하면 내 침식 촉수들이 배의 후미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촉수 중 일부가 공중에 떠 있는 해적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조심해!”

“애미씹!”

“으, 으아아악!”

아쉽게도 적들을 모조리 삼키기에는 내 침식 촉수의 수가 부족하다. 촉수가 잡아먹은 해적은 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무사히 바닥에 착지했다.

‘아직 안 끝났어.’

“모두 흩어져!”

“미친 괴물 새…어어어어?!”

“배가 떨어진다! 피해!”

나는 촉수로 휘감고 있던 초계함을 그들 머리 위에 떨어뜨렸다.

폭음과 화약 냄새, 그리고 피.

에이모프에게 친숙한 요소들이 사냥의 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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