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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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야?”
쩌렁쩌렁 울리는 폭음과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
간부가 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이노는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방금 저거, 어떻게 된 거야?”
“저, 저쪽과 연락이 안 됩니다!”
“뭐? 다시 해 봐!”
“옙!”
오염원 소각 작전은 마르시오 카르텔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카둔 부두목이 지휘를 맡았다. 그래서 그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피해가 생겨봐야 부하들이나 좀 죽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랬는데 전투 전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진입하기 전에 오염원을 쉽게 제거하려고 유독 가스로 양념을 잔뜩 쳤다. 돌입과 함께 가스를 구역에서 뺐지만, 아직도 유독 성분이 공기 속에 있다. 이노를 비롯한 모든 해적이 방독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놈을 약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부두목 쪽은 어떻게 됐어?”
이노의 질문에 해적은 고개를 저었다.
‘…폭발은 한 번밖에 없었어. 카둔 님과 같이 간 애들은 괜찮을 거야.’
연락이 안 되기는 하지만, 부두목 쪽에 뭔가 일이 생겼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괴물이 강하다 해도 소음 하나 없이 카둔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저쪽도 폭발이 발생한 방향으로 이동 중일 거다.
이쪽이 오염원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으리라.
“일단 저쪽으로 이동한다. 전투에 돌입했을 테니 우리가 지원해야 해.”
“…제기랄. 이럴 줄은 몰랐는데.”
해적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이노의 말을 따랐다. 그의 카리스마가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다. 그의 뒤에 있는 부두목, 카둔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노와 해적들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다들 약탈을 위해 함선에 몰래 진입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은밀히 이동하는데 도가 텄다. 각자 들고 있던 무기를 장전하고 발걸음에 신경을 썼다. 전원이 방독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해적들은 조심스러운 몸놀림으로 버려진 건물들 사이를 달렸다.
부식이 진행되는 중인 컬트의 상징물들, 방치된 교회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이노는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순찰로 인해 이 구역 상공을 몇 번 돈 적이 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강철 위에 세워진 서늘한 금속 구조물에 불과한 것들이 지금은 살아 있는 생물마냥 그를 옥죄어왔다.
이노 혼자만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는 게 아니었다. 방독마스크를 쓴 부하들의 숨소리도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다.
“목표까지 남은 거리 300m.”
그때 선두에 선 해적의 목소리가 이노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들이 막 건물 모퉁이를 돌려는 순간, 선두에 선 해적이 급히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다른 조직원들이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목표인가?”
“…알 수 없는 생물이 교차로에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생물이라니? 그는 모퉁이 밖 거리 쪽에 고개를 약간 내밀었다.
“!”
교차로에 있는 그것을 확인한 그는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저, 저건 도대체 뭐지?’
저걸 감히 생물이라 할 수 있을까?
그가 본 존재는 8개의 다리와 꼬리를 지닌 존재였다. 긴 다리들은 두꺼운 갑각으로 뒤덮였고, 그 새카만 갈고리 발톱과 섬뜩한 백색 낫이 달려 있었다. 몸의 크기는 꼬리를 제외하고 6m에서 7m 어간으로 상당한 크기였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흉측한데, 그를 진정 경악하게 만든 건 바로 머리였다. 길고 두꺼운 케이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건 분명 인간의 머리였다.
최대한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놈은 여자의 머리를 지닌 전갈이었다.
‘허, 헐크 뮤턴트?’
이노는 마르시오 카르텔에 가입하기 전, 메가콥의 연구원이었다. 그래서 헐크 뮤턴트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조예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노도 저렇게 흉측하게 생긴 헐크 뮤턴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놈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놈의 얼굴을 본 이노는 숨을 삼켰다.
예상대로 놈의 얼굴은 여성이었다. 눈처럼 새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
하지만 이노는 장담할 수 있었다. 누구도 피에 물든 것처럼 새빨간 안구를 지닌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놈의 붉은색 눈이 고개를 따라 천천히 흔들린다. 그와 함께 턱 아래에 달린 가느다란 케이블도 찰랑거린다.
순간 놈과 눈을 마주칠 뻔한 이노는 급히 고개를 뒤로 뺐다. 그의 뒷목에서 식은땀이 마구 쏟아졌다.
“씨발, 모두 전투 준비….”
그의 말이 끝나기 전, 남색의 광자탄이 그들이 숨어 있는 건물에 날아왔다. 아무리 관리를 받지 않았다고 해도 이곳의 건물들은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상당한 내구도를 자랑한다. 그런데도 남색 에너지탄을 맞은 교회는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이런 씹?! 데몰리셔다!”
조직원 중 누군가가 외쳤다.
케샤 아르마는 컬트의 우주요새. 다들 제1사령부 무기고에 비치된 데몰리셔를 본 적이 있다. 모양은 물론이고 그 위력이 어떤지도 잘 안다.
“모두 흩어져!”
“젠장! 데몰리셔가 왜 여기에 있어!”
그들은 욕지기를 내뱉으며 흩어졌다.
폐허에서 피어오르는 먼지들 사이로 재차 광자탄이 날아왔다. 후퇴 중이던 조직원 중 한 명이 피하지 못하고 피격 당했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먼지가 됐다.
“썅!”
“대가리 숙여 이 새끼들아!”
이노와 조직원 둘이 다급히 대응사격을 갈겼다. 그사이 부하들이 몸을 낮춘 채 주변에 엄폐할 만한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코일건! 내가 시간을 끌 테니까 코일건으로 저 괴물 놈의 대가리를 뚫어버려!”
“옙!”
옆에 있던 해적이 가우스 소총을 놓고 등에 멘 길쭉한 코일건을 빼 들었다. 그동안 이노와 다른 해적은 남아 있는 벽 뒤에서 먼지들을 향해 사이킥 라이플을 난사했다.
그때, 새까만 갈고리 발톱이 먼지 속에서 튀어나왔다. 발톱이 아슬아슬하게 이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사이킥 잔량을 확인하느라 아주 잠깐 고개를 숙였는데 그 덕분에 빗나간 것이었다.
“으헉?!”
이어서 창백한 피부를 가진 붉은 눈의 여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눈에 카메라 렌즈를 단 것처럼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적안이 그를 주시했다.
그 순간, 갑자기 놈의 목이 홱 돌아갔다. 옆에 있던 해적이 근거리에서 코일건을 발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분명 머리에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다리는 여전히 움직이는 중이었기에.
“물러나!”
놈이 언제 다시 정신을 차릴지 모른다. 셋은 등을 돌려 곧장 뛰었다.
“다른 새끼들은 어디 갔어?”
“분명 건물에 숨었….”
함께 달리던 조직원이 말을 하다 말고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건물 위에 꽂혀 있었다.
“미쳤어? 왜 멈춰….”
부하의 이상 행동에 이노 또한 부하가 보고 있는 건물 옥상에 시선을 뒀다. 그리고 그는 왜 자기 부하가 넋이 나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건물 위에 부하들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건물 위의 상공에 떠 있었다.
수십 명의 부하들은 하나 같이 기괴한 자세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날파리들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들을 얽어매고 있다.
그리고 부하들 뒤에는 황색의 먹구름이 떠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구역에 진입하기 전, 분사했던 유독 가스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저, 저게 무슨…?’
이노를 얼어붙게 만든 기괴한 현상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황색 구름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눈이다. 수백, 아니 수천 개의 눈이 모두 이노를 주시하고 있다.
「그것」은 수많은 뱀이다. 거대한 크기의 촉수 수백 개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꿈틀거린다.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눈들이 공중에 떠 있는 부하들을 주시한다. 조직원들은 저항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저 존재 앞에서는 그저 애처로운 꿈틀거림에 불과했다.
길고 거대한 촉수들이 부하들에게 가까워진다. 그리고 방독마스크를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케, 케엑! 끄에에에에엑….”
이 주변에는 아직 유독 가스가 남아 있다. 하물며 저 보기만 해도 불경한 존재의 주변에는 그 가스가 진득하게 응집된 상황. 마스크가 벗겨진 조직원들은 피거품을 물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씨, 씨발!”
옆에 있던 부하가 코일건을 들어서 놈을 향해 쐈다. 여자의 머리를 가진 전갈도 못 피한 코일건이다. 엄청난 속도로 쏘아진 탄환이 놈의 촉수를 꿰뚫었다.
아니, 꿰뚫을 뻔했다.
거의 닿기 직전, 탄환이 공중에서 멈췄다. 건물 위에 떠 있는 다른 조직원들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작게 찌그러진 탄환이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말도 안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코일건을 쏜 부하가 기겁했다. 그러자 「그것」의 눈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 ■ ■■■ ■■■ ■■!」
“어?”
「■■!」
그 직후 발생한 일을 이노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상한 느낌의 바람이 한 차례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옆을 보니 코일건을 든 부하는 어느새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붉은색 덩어리만 남아 있었다.
그가 어떻게 됐는지는 「그것」에게 붙잡혀 있는 조직원들이 천천히 보여주는 중이었다.
“끄, 끄아아아악!”
“사, 살려…!”
“아아아아악!”
“으게엑!”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부하들의 전신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있었다.
어떤 자는 손가락 끝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어떤 자는 고무줄을 튕기듯 무언가에 사지가 늘어나고 있었다.
약탈, 강간, 살인. 온갖 범죄를 저지른 우주의 무법자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에게 압도당하는 미물만 있을 뿐.
“히, 히이이이익!”
조직원들이 처참하게 죽어 가는 꼴을 본 이노는 뒷걸음쳤다.
도망쳐야 한다. 그는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
이제 한 명만 남은 부하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이 일을 받은 것이 실수였다. 카둔이 그에게 임무를 줬을 때 그냥 무시하고 요새를 떠났어야 했다.
‘아냐. 도망치면 돼. 아직 기회는 있어.’
그는 생각했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고. 초계함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사령부로 복귀하지 않고 즉시 이 요새를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저 우주 어딘가에 있는 행성으로 도망치리라. 그동안 해왔던 일은 모두 잊고 조용히 살면 된다고.
“크악!”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의 부하가 넘어졌다. 부하의 등에는 길쭉한 백색 낫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무언가가 이노의 다리를 걸었다. 그의 목을 따려고 했던 그 갈고리 발톱이었다.
발톱의 주인이 넘어진 그의 다리를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갈고리 발톱이 다리를 쥐어뜯고 있었으나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전신을 장악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거꾸로 매달린 그에게 하얀 얼굴이 다가온다.
“이, 이러지 마! 이러지 마!”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카메라 렌즈를 닮은 붉은색 눈동자는 얼굴을 한 번 훑더니 그를 바닥에 내려놨다. 놈은 이노 대신 등에 구멍이 난 조직원을 붙잡았다.
“어, 어어, 나, 나는 왜…끄아아아악!”
이노의 부하는 살아남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혼자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저 괴물이 그를 예뻐해서 살려 둔 것은 아닐 테니까.
‘그 이유’가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 자의 뇌는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 ■■■■ ■?」
“인간의 뇌는 섬세한 기관입니다. 신중히 열지 않으면 죽을 테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
아까까지는 건물만큼이나 컸지만, 지금은 1m도 안 되는 사이즈로 줄어든 「그것」. 분홍색의 동그란 몸통에서 긴 촉수들이 튀어나와 그에게 가까워진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머리가 부서져 죽은 부하, 온몸이 비틀어져서 죽은 조직원, 가스에 중독되어 질식한 부하. 그리고 그.
누가 더 나은 죽음일까.
뭐가 됐든 사실 이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선택권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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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목! 후퇴해야 합니다!”
“씨발 도대체 어디서 공격하…아아악!”
“미친! 총알보다 빠른 놈을 어떻게 맞춰!”
“부두목!”
몬타나 마르시오에게 거둬지기 전까지 카둔은 투기장을 전전하며 살았다.
때로는 그와 같은 동족을 죽였고, 때로는 그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짐승을 죽였다. 매번 죽음을 넘나드는 위기를 겪었고, 실제 죽다가 소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감각이 경고하고 있다.
이 자리가 그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
부하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초계함이 상륙하자마자 맞닥뜨린 고속 비행체가 그들을 유인하고 있는 거다.
당장에라도 부하들을 도와서 고속 비행체와 싸워야 겠지만,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와 수십m 떨어진 곳에 서 있는 한 마리의 볼프가 있었다.
두 개의 뿔이 난 흰색 맹금류의 머리,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와 찬란한 황금색 갈기를 지닌 암컷 볼프.
빛나는 황금색 단창과 검은색 단검으로 무장한 존재가 그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다.
‘…강하다.’
수많은 강적들과 싸운 경험 덕분에 카둔은 상대의 그 강함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암컷 볼프는 도대체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건 둘 중 하나다. 카둔보다 터무니없이 약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최근 그가 이런 감각을 느낀 적은 단 한 번. 몬타나가 극진히 모시고 있는 여성 컬트뿐이었다.
“꿀꺽.”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킨 그는 입고 있는 상급 강화복의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그와 함께 내장된 강화제도 전부 투여했다.
강화제가 가진 부작용을 그도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크르르르르.”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카둔이 으르렁거렸다. 상대도 황금색 단창을 한 차례 크게 털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정체불명의 암컷 볼프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승리를 믿었다.
“크허어어엉!”
백색 털을 가진 호랑이 볼프가 크게 포효하며 땅을 박찼다.
과거 그의 부족장이 말했던 ‘신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여정.’
카둔이 미신으로 치부했던 싸움이 우주요새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