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5
예상했던 대로 마르시오 카르텔의 부두목, 카둔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요새 내부의 방위 시설이라든가 해적들의 숫자와 무장 수준, 손님들이 끌고 온 함선의 스펙 등. 기생충에 의해 조종당하는 그는 요새 공략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술술 토해냈다.
‘생각보다 해볼 만하겠는데?’
주의해야 할 방어 시설은 내 기억과 다르지 않았으나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자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케샤 아르마는 컬트들이 지은 우주요새. 내부에 침입한 적들을 격퇴하기 위한 시설들은 컬트가 사용하기 용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마르시오 카르텔의 주축은 인간이지.’
심지어 조직원 중에 컬트는 아예 한 명도 없다. 그 탓에 요새의 무기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 중이다. 그나마 사령부 건물들에 탑재된 초대형 포탑들만이 제대로 기동하는 유일한 시설이라고 한다.
‘대신 해적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전부 오합지졸.’
일반 해적들로는 우리를 꺾을 수 없다. 수가 많아 봐야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늘어날 뿐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얘기가 있었다.
제2사령부 100층에 숙박 중이라는 컬트 손님. 반년 전 마르시오 카르텔이 초빙한 중요한 고객인데, 상당한 실력자라고 한다. 하늘의 어머니와 싸우고도 후퇴하지 않았던 카둔이 바로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강하다고.
‘얘기만 들었을 때는 신전수호단, 아니면 계시의 눈 사제단 같은데.’
아마 ‘계시의 눈’ 사제는 아닐 거다. 그들은 어렵게 길들인 ‘특별한 짐승’을 타고 다니니까. 카둔이 말하길, 그녀는 동물하고 함께 오는 대신, 소수의 수행원만 데리고 왔다.
그렇다고 신전수호단원이라 보기도 애매하다. 그들은 제국 안보를 위해 사악한 존재, 괴물들을 사냥하러 다니는 사냥꾼들. 해적 소굴에서 반년씩이나 머물만한 자들이 아니다.
‘조심해 둬야지.’
정체가 누군지는 몰라도 강한 힘을 가진 적인 것은 틀림없다.
수수께끼의 컬트에 대해 머리에 깊게 새겨둔 나는 몸을 일으켰다.
경매에 나올 상품들이 어디 있는지 이미 들었다. 그것 말고 카둔이 알고 있는 것들 중 유용한 정보들도 전부 빼냈고.
‘이제 남은 건….’
나는 하늘의 어머니를 쳐다봤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내가 잡아먹었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다. 카둔의 심장은 그녀의 성장에 필요한 제물이 될 예정이니.
다만 여기서 바로 심장을 뺄 수는 없다. 볼프의 신격화 단계 상승은 에이모프의 성장과 비슷하게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신격화 단계가 올라가는 동안 외부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즈즈즈즈 즈즈즈즈(여기서는 곤란하지?)]
「응. 전에 신격화 단계를 올릴 때도 2시간 동안 꼼짝도 못했어.」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2시간? 원래 30분 아니었나?)]
「게임하고는 달라진 것 같더라.」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즈(함선으로 돌아가야겠네)]
그곳이라면 몇 시간이 지나도 안전할 거다. 케샤 아르마에 도착하자마자 기생충에 지배된 경비원들을 시켜 서류를 조작해 놨기에 수색을 받을 염려도 없고.
‘문제는 도둑들인데.’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총 세 번 도둑이 들었다. 그때는 기생충으로 삼을 노예가 알아서 찾아왔기에 좋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
‘하늘의 어머니를 지켜 줄 녀석이 필요해.’
나는 이제부터 밀수 생물을 털러갈 것이기에 그녀를 보호할 수 없다. 기계 조작에 능숙한 PS-111의 경우도 나와 함께 가야 하고.
26호와 아드하이 중 하나가 함선에서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
그때 아드하이가 내 등을 툭툭 쳤다.
「못생긴 친구」「아파?」
[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아니. 성장하려는 거야)]
「성장?」「큰어른처럼?」
[즈(그래)]
그러자 녀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사념파를 보냈다.
「나」「못생긴 친구」「도와줄게」
[즈즈(네가?)]
「친구」「나」「여러 번」「도와줬어」「은혜」「갚을 거야」
뜻밖에도 아드하이가 하늘의 어머니를 지키는 역할에 자원하고 나섰다. 녀석 말대로 그동안 둘이 함께 다닌 경우가 많아서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괜찮겠지.’
함선 내부에서의 싸움은 26호가 더 유리하긴 하나, 녀석은 갤러곤이다. 그것도 무려 레드 갤러곤의 힘을 보유한 갤러곤. 일개 도둑놈이 녀석을 위협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웬일이래? 날 도와준다고 하고.」
「못생긴 친구」「도와준 것」「보답하려고」
「그럴 거면 호칭부터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따라해 봐. ‘예쁜 친구’.」
「거짓말」「친구」「좋지만」「생긴 거」「별로야」
「…하, 진짜 한 대 때려주고 싶네.」
「폭력」「안 아파」「나」「별의 힘」「사용」「막을 수 있어」
「진짜 아픈지 안 아픈지 실험해볼래?」
둘이서 사이좋게 노는 동안, 나는 카둔이 벗어둔 강화복를 집어 들어 통신기를 분리했다. 그리고 카둔에게 통신기를 내밀었다. 그의 심장을 뽑기 전 마지막으로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초계함 한 척. 지원을 요청한다.”
「알겠습니다!」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를 실고 갈 배를 마련하는 것 말이다.
“병력도 필요하다.”
「예? 아, 옙!」
물론 하수인들도 많이 소모했으니 새로 충원하면 좋겠지.
그렇게 카둔을 이용해 새 희생자를 유인한지 30분이 지났다. 새 초계함이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두목의 명령에 따라 이곳에 온 자들을 정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럼 가 볼게.」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가 초계함에 올랐다. 그리고 나의 새 하수인들이 만신창이가 된 카둔을 배에 실었다.
‘일단 신격화 문제는 끝났고.’
이제 내가 먹을 것들을 챙길 시간이다.
‘군항 근처의 지하 저장고라고 했지?’
케샤 아르마는 채굴선과 무역선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우주요새. 그래서 요새 내부에 추출한 자원을 보관하는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다. 지하 저장고도 이러한 시설 중 하나다.
‘게임에서는 지하 벙커 비슷한 곳이었는데.’
카둔이 말하길, 현재 그곳은 다수의 해적과 물품의 주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철통경비 중이라고 했다. 해적들의 무장은 좀 전 우리가 잡아먹은 놈들과 별 차이가 없고, 용병들은 무엇으로 무장했는지 그도 모른다.
‘해적보다는 좋겠지만 우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닐 거야.’
지구에 있는 메가콥 정예 방위팀이나 컬트의 신전수호단급이 아닌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원래는 목록을 먼저 얻은 뒤 가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목록이 보관된 장소가 지하 저장고보다 보안이 좋다. 목록은 제3사령부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령부는 방어 시설이 지키고 있기에, 차라리 해적들이 있는 곳이 뚫기 더 편하다.
‘뭐가 있는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볼까?’
나는 26호를 머리 위에 태우고 지하 저장고가 있는 위치를 향해 움직였다. PS-111도 내 곁에 붙어서 따라왔다.
「우리 어디가?」
“서브컨트롤러 ‘에이모프’는 성장에 필요한 양분을 얻으러 갑니다.”
「큰애기 성장하는 거야?」
[즈(응)]
「좋겠다. 나도 쭉쭉 크고 싶다.」
26호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주변과 달리 자기만 그대로인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꼭 그렇지는 않은데.’
26호는 외형 면에서만 그대로일 뿐,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 중이다.
녀석의 진정한 강점은 전투력보다는 지능.
언제나 새롭고 유용한 것들을 보면 자기 식으로 응용해서 사용한다. ‘속박’ 기술을 응용해서 초능력 드릴을 만든다거나, 기계들에게 사이킥 파워를 퍼뜨려 EMP 비슷한 효과를 만든다거나 등등. 응용력 자체는 플레이어들 이상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지.’
녀석이 없었으면 결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나도 큰애기처럼 더 크고 싶어.」
“맞습니다. 그래야 지금 보다 균형이 맞습니다.”
[즈즈(균형?)]
이해가 잘 안 돼서 되물었지만 PS-111은 대답하지 않았다. 26호도 파장을 더이상 흘리지 않고 있었지만, 섭섭해하는 중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얘기를 안 해서 신경을 안 쓰는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한 것 같다.
‘녀석을 성장시킬 방법을 더 찾아봐야 하나.’
블랙 갤러곤을 먹인 이후에도 크게 변한 부분이 없었다. 아드하이와 녀석의 어미 함 오르트 사이에 기억을 이어 준 것을 빼고 말이다.
이후 고르곤 스웜의 살점을 섭취하기도 했으나, 놈은 사이킥 파워를 쓰는 생물이 아니다 보니 26호에게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녀석의 촉수와 지느러미가 전보다 단단해지긴 했지만, 전투력이 크게 상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하 저장고에서 녀석이 먹을 만한 걸 찾아봐야겠네.’
케샤 아르마에서 이루어지는 희귀 동물 경매는 한참 먼 성계에 있는 해적들까지 알 정도로 규모가 크다. 녀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생물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애초에 나도 그것 때문에 요새에 온 것이니까.
26호에게 이것저것 먹이다 보면, 분명 녀석도 만족스러워 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함께 먹으면 같이 커질 거야)]
「진짜? 나도 다른 애기들처럼 쭉쭉 커지는 거야?」
[즈 즈즈즈(응. 아마도)]
차마 자신할 수 없어서 미적지근하게 답했지만, 그것만으로도 26호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다. 녀석이 촉수를 빼서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렸기 때문이다.
「신난다! 빨리 가자!」
[즈즈(그래)]
나는 의태 기관을 활성화한 뒤, 군항 주변에 위치한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우리 뒤에서는 버려진 도시가 계속해서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
“하아암, 쩝. 오지게 지루하구먼.”
“이상한 점 같은 거 없어?”
“전혀.”
지하 저장고 내부에 있는 A경비실.
수십 개의 카메라와 연결된 경비실에서 해적 다섯이 하품을 쩍쩍 해댔다.
“그러니까 내가 약이라도 빨자고 그랬잖아.”
“애미, 그러다가 카둔 님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다른 새끼들도 다 하는데 뭐.”
“그 ‘다른 새끼들’도 다 같이 죽겠지 머저리 새끼야.”
동료의 면박에 비쩍 마른 해적은 입을 툴툴 대며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씹에이 경비실이다. 다른 곳은 이상 없나?”
「B경비실. 이상 없음.」
「C경비실. 이상 업…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어디서 약을 팔….」
「D경비실. 이상 없음. 통화 기록 녹음되니까 자제합시다. 좀.」
「E경비실. 여긴 이상 없음. 바깥쪽은 별일 없어?」
지하 저장고는 총 다섯 구역으로 나눠져 있고, 중간마다 경비실을 두고 있다. 각 구역에 위치한 경비실들은 구역 내 감시 및 이상 현상 발생 시 구역 차폐 업무를 수행한다. 그밖에 각 구역마다 배치된 안드로이드들이 지속해서 내부 순찰을 도는데, 이들에 대한 관리도 경비실이 담당한다.
다섯 개의 경비실 중 A경비실은 A구역과 지하 저장고 입구에 위치한 감시 초소들을 총괄한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응?”
지루한 표정으로 무전기에 답하려던 마른 해적은 카메라를 보고 말하던 것을 멈췄다. 옆에 있던 해적도 감시카메라를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개?”
“야. 감시 초소에 연락해 봐.”
“어. 이쪽은 A경비실. 카메라에 안개가 관측된다. 확인 바람.”
「여기는 감시 초, 치직, 딱히 이상한, 치직, 보이지, 지직, 어? 치지직, 사람, 지지, 뚝」
“감시 초소? 응답하라. 감시 초소. 여기는 A경비실.”
다른 해적이 무전기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불쾌한 소음뿐이었다. 해적들의 시선이 감시 초소 내부를 촬영 중인 화면으로 쏠렸다.
초소에서 경비원이 들고 있던 통신기를 툭툭 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경비원들은 뭔가를 발견했다는 듯 일제히 서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입구 쪽과 연결된 모니터가 일제히 꺼졌다.
“뭐야?”
“야, 당장 다른 구역에 연락해.”
“여기는 A경비실. 관할 구역 카메라 중 입구 카메라에 문제가 발생했다.”
「치지지지지직」
“여기는 A경비실. 여기는…이건 또 왜 이래?”
“어?”
“내 것도 안 돼.”
“뭐? 다른 애들 다 무전기 꺼내 봐.”
“잠깐만 기다려.”
“야야.”
해적 넷은 무전기를 꺼내서 통신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 홀로 넋이 나간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던 해적이 고함을 질렀다.
“야야. 다들 저것 좀 봐봐!”
“지금 그럴 시간이…어?”
모니터를 다시 쳐다본 넷은 입을 다물었다.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들이 하나씩, 하나씩 실시간으로 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