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66화 (267/400)

Episode 266 - 악몽의 화신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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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경비실의 해적들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모니터들을 주시했다.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보여주는 화면이 빠른 속도로 꺼져가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감시 초소, 그 이후에는 입구, 그리고 지하 통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카메라의 순서를 보면 점점 그들이 있는 경비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메라가 이유 없이 고장난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 자리의 모두가 안다. 지금도 경비실의 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일 때처럼 간헐적으로 공간이 진동한다.

문제는 그 진동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 알 수 없는 존재가 통로에 있는 카메라와 차폐문을 뚫고 이곳에 오고 있다.

“통로 폐쇄 절차는?”

“감시 초소 카메라가 날아갔을 때 이미 작동했어.”

“…빌어먹을. 플라즈마 커터를 쓴다고 해도 저렇게 빨리 올 수 없어.”

“안 되겠다. 다들 장비 챙기고. 말라깽이, 너. B구역으로 가.”

“가는 김에 용병들한테도 얘기하고.”

“…젠장. 알았어.”

해적들은 경비실에 비치된 장비들을 다급히 챙겼다. 동료들이 싸울 준비를 하는 동안, 비쩍 마른 해적은 사이킥 라이플 한 정만 들고 경비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통로 천장에 박혀 있는 전등이 환한 빛을 내며 그의 머리 위를 비추었다. 아무 장식 없이 단순한 원통형 디자인의 통로는 평소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전등의 빛을 흔드는 진동만 아니라면 말이다.

마른 해적은 짧은 통로 건너편에 있는 차폐문으로 뛰어가서 문 옆에 달린 단말기를 조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동의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빨리 좀 열려라!”

해적은 천천히 열리는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그의 머리 위에 있던 전등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흠칫 놀란 그가 돌아보니 경비실 쪽에 있던 전등이 깜빡 거리다가 꺼졌다. 남은 불은 그저 경비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빛뿐.

그마저도 촛불이 꺼지듯 훅하고 꺼졌다.

“…꿀꺽.”

그 광경을 목격한 해적이 침을 삼키는 사이, 때마침 차폐문이 열렸다. 그는 거의 반쯤 기다시피 하며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통로 사이마다 설치된 이 차폐문은 두께만 1m가 넘는데다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 플라즈마 커터로도 뚫기 힘들다. 입구의 문보다 통로 간의 차폐문이 더 튼튼하니까 수수께끼의 침입자도 쉽게 들어오지 못할 거다.

문이 완벽히 닫힐 때까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검은 통로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정적만 있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쉰 그는 문에서 떨어졌다.

놈이 오기 전, B구역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공간은 천장을 보기 위해 목을 한계까지 젖혀야 할 정도로 넓었다. 그렇다고 텅텅 빈 것이 아니라 곳곳마다 냉동 컨테이너들이 몇 층씩 쌓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A구역 저장고.

저 컨테이너들은 전부 경매에 내놓기 위해 이 도시를 방문한 고객들이 챙겨 온 물건.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컨테이너를 지키는 용병과 안드로이드들이 있을 거다.

마른 해적은 사이킥 라이플에 배터리를 연결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로부터 흘러나오는 냉기 때문인지 공간의 온도는 낮은 편이었다. 만약 컨테이너 앞에 서 있는 안드로이드만 아니었다면, 추위와 두려움 때문에 덜덜 떨면서 걸었으리라.

“괜찮을 거야. 뭔가 착오가 생긴 거겠지. 그렇고말고.”

혼잣말하며 몇 분 걷다 보니 큼지막한 컨테이너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를 돌아가자 잡담을 나누는 중인 5명의 용병이 보였다.

“응? 경비실에 있던 해적 아냐?”

“여기는 무슨 볼일이지?”

용병들과 조우한 마른 해적은 다급히 소리쳤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바깥쪽은 완전 난리가 났다고요!”

“바깥?”

“그게 무슨 개소리야?”

“우리 팀 애들로부터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당연히 다 당했으니 연락이 없죠! 지금이라도 빨리 외부에 알려야….”

“뭐? 허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지?”

용병들이 전혀 말을 들을 기색을 보이지 않자 마른 해적은 답답했다. 그의 외침을 들은 것인지 다른 컨테이너를 지키는 용병들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밖에서 지키는 우리 팀 애들이 당했다는데?”

“제발 좀! 정 못 믿겠으면 누구라도 한 번 확인해 봐요!”

순식간에 모인 스무 명가량 모인 용병들에다 대고 해적이 악을 썼다.

“세상 좋아졌어. 해적 나부랭이 새끼가 우리한테 큰소리나 치고.”

“니네는 그럴 만하지. 좆밥이니까.”

“뭐 이 새끼야?”

스페이스독 중 용병으로 뛰는 자들이 많고, 용병 중 해적질을 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라서 그다지 질이 좋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마른 해적도 그 사실에 대해 잘 안다. 하지만 적어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자기들의 동료들이 어떻게 됐는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었다.

“야, 경비원님께서 요청하신다. 아무나 전화 좀 해 봐.”

“틀리면 뒤질 줄 알아라.”

용병들 대부분이 팔짱을 낀 채 비웃는 가운데, 용병 중 한 명이 무전기를 들었다.

“밖에서는 뭐라고 하시냐?”

“…….”

“왜? 지랄하지 말라디?”

“연락이 안 되는데?”

무전기를 든 용병의 말에 다른 용병들이 멈칫했다.

“에이, 지랄 말고.”

“아니 진짜야. 너희들도 한 번 연락해 봐.”

농담이라고 보기에는 무전기를 든 용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다른 용병들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밖에 있을 자기 팀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들의 표정에서도 웃음이 사라졌다.

“왜 연락이 안 되지?”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이 당황해하는 중, 갑자기 천장에 붙어 있던 전등들이 일제히 꺼졌다. 금세 암흑천지가 된 그곳에서 용병들 중 몇몇이 물고 있는 담뱃불만이 유일한 불빛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

빛이 사라졌지만 용병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투시 기능이 있는 고글을 쓰거나, 사이보그의 경우에는 눈에 낀 렌즈를 활성화하는 식으로 어둠 속 전투를 대비했다.

“어이 경비원 양반. 안쪽에서는 이러는 거 모르지?”

“그, 알 수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거 쓰고 가 봐. 가서 지원군 좀 불러와.”

“아, 옙.”

해적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용병들은 그를 B구역으로 보냈다. 안쪽에 가면 그의 동료들이 있으니 직접 가서 지원을 요청하라고 보낸 것이었다.

용병이 건네준 고글을 받아 쓴 해적은 B구역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달리는 중, 다수의 안드로이드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이상 상황을 인지하고 반대편에 있는 용병들과 합류하려는 거다.

안드로이드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직후, 시끄러운 총소리가 났다. 공장의 자동화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뚝뚝 끊기며 나는 소음들이 컨테이너에 반사되어 점점 크게 울렸다.

완전무장한 용병과 값비싼 안드로이드. 객관적으로 보면 안심하고도 남을 상황인데도 그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불길했다. 지하 저장고 전체가 바닥없는 수렁 속에 잠기는 기분이었다. A구역 보관소에 들어온 이후, 진동이 뚝 끊겼음에도 이 불안감은 어디서 기인하는 건가. 그가 열심히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헉, 헉, 헉….”

공동에 가득 찬 정적을 깨는 것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였다.

그것 말고 다른 소리는 없었다. 총소리도, 사람의 비명 소리도, 안드로이드가 파괴될 때 나는 기계음도, 아무것도.

용병들이 이긴 것일까? 그러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

마른 해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단말기를 작동시켰다. 커다란 차폐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마자 기어들어간 그는 다 열리기도 전에 차폐문을 폐쇄시켰다.

뭐가 그리 느긋한지 느릿느릿 닫히는 문. 그가 초조해하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

“기다려!”

아까 얼굴을 마주했던 용병 한 명이 차폐문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씨발!”

해적은 그냥 닫아버릴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수수께끼의 침입자로부터 빠져나가려면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더 나을 터. 그는 단말기를 조종해서 이제 막 닫히기 시작한 문을 멈췄다.

용병이 막 차폐문을 넘으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문이 크게 흔들렸다.

“무, 뭐야?!”

“놈이야! 괴물이 쫓아오고 있어!”

“이런 씹!”

용병의 외침을 들은 해적은 급히 문을 닫았다. 천천히 닫히는 문. 그 너머에 용병의 말대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

아주 잠깐 보였지만 해적은 평생 그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은 수많은 눈이 달린 분홍색 뱀이었다. 뱀은 마치 인사하듯 그들을 향해 꿈틀거리다가 사라졌다.

“저, 저게 뭡니까? 평생 저런 흉물은 처음 봅니다.”

“…나도 모르겠군.”

“젠장! 빨리 B구역에 얘기해야…무기는 어쨌습니까?”

“놈한테 도망치느라 버렸다.”

용병의 말에 마른 해적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기가 없다면 괴물이 그들을 뒤쫓아도 막을 수단이 없지 않은가.

‘아니, 미끼로 쓰면 되려나.’

이 자리에 총을 들고 있는 건 마른 해적뿐이다. 만에 하나 그들이 B구역으로 가기 전에 괴물이 차폐문을 뚫고 들어오면, 저 용병을 먹이로 던져 주면 될 것이다.

“일단 B구역 경비실부터 갑시다.”

“그러지.”

용병은 마른 해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둘은 B구역 경비실과 이어져 있는 통로 위를 걸었다.

‘일단 카메라는 건재해.’

마른 해적은 걸으며 통로에 설치된 카메라를 살펴봤다. 다행히도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들은 전원이 나가지 않았다. B구역 경비실에서도 그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고 있을 거다.

‘아니야. 여기서 연락을 취하자.’

무선 통신기가 작동하지 않아도 연락을 취할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이 지하 저장고에는 각 구역 사이에 폐쇄회로로 작동하는 유선통신기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지금과도 같이 통신기가 작동하지 않거나 타 종족의 EMP 공격을 받았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마르시오 카르텔이 설치해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으로 건너오기 전에 연락하고 싶었으나, A구역 유선통신기는 지하 저장고 입구 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마른 해적은 통로의 카메라에 대고 유선통신기를 사용하겠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뭐 하는 거지?”

“알 거 없습니다.”

어차피 미끼로 쓸 용병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짧게 답한 그는 통로 벽에 다가 갔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벽 중 한 부분만 작은 스위치가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벽 내부와 줄이 연결된 아이보리색 막대기가 튀어나왔다.

“그게 뭐지?”

“컬트식 유선통신기입니다.”

“흐음? 여기에 그런 게 있었나?”

용병이 흥미롭다는 투로 말했지만, 마른 해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사이킥 라이플에 연결된 충전기를 분리해 막대기의 포트 부분에 연결했다. 컬트들이 만든 통신기다 보니 사이킥 파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통신기에 불이 들어왔다.

“됐어! 여기는 A구역 경비실. 들리나?”

「치지지지지직, 를, 봐, 치지지지직」

마른 해적은 짧게 쾌재를 부르고 통신기에다 대고 외쳤다. 그러자 통신기에서 잡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안 들린다. 여기는 A구역 경비실. 들리나?”

「치지직, 뒤, 치지직, 뒤, 치지지지직」

“뭐라고?”

「뒤! 뒤! 뒤를 보라고!」

통신이 안정되자마자 들린 것은 다급한 외침이었다.

“뒤? 뒤가 왜…?”

이해가 안 된 마른 해적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는 B구역 경비실에서 뭘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뒤에 괴물이 있어!」

벽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통신기에 대고 대답할 수 있는 인간은 이 통로 위에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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