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68화 (269/400)

Episode 268 - 수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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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샤 아르마의 제1사령부.

이곳은 도시의 지배자 몬타나 마르시오가 거주하는 장소. 원기둥 모양의 투박한 외형과 달리 내부는 매우 화려했다.

화려한 장식들, 삼엄한 경비라는 이중적인 요소들로 치장된 강철 요새의 심부에는 초대형 욕탕이 있다.

대리석이 깔린 욕탕에서 몬타나 마르시오는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그의 주변에는 수십 명의 첩들이 시중을 드는 중이었다.

몬타나의 첩들은 전부 주인의 취향에 맞춰 유전자 개조를 받은 생체인형이나 다름없는 존재들. 하루라도 관리를 받지 않는다면 극도의 고통에 시달릴 정도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남편에게 외면 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양을 떨었다.

아름다운 암컷들의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 그것이야말로 몬타나를 가장 즐겁게 만드는 요소였다.

느긋이 봉사를 받으며 오늘 아침은 누구와 즐길까 고민하던 중, 욕탕 밖에 있던 안드로이드가 그에게 다가왔다.

“뭐냐?”

“주인님. 긴급 보고입니다.”

“긴급 보고?”

“제2사령부에 묵고 계신 손님들께서 상품을 지키는 용병들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매 물품 관리는 부두목에게 일임했다. 카둔한테 가서 물어봐.”

“카둔 님께서는 어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연락이 안 된다고?”

지금까지 카둔이 연락을 받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부두목은 일할 때가 아니면 항상 제3사령부의 훈련실에서 수련에 몰두하는 자다. 만에 하나 통신기로 연락을 못 받는다고 해도 직접 찾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안드로이드가 그를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카둔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

‘잠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카둔의 얘기를 꺼내기 전, 안드로이드는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 몬타나는 그에게 봉사하는 첩들을 밀어낸 뒤 안드로이드에게 물었다.

“상품을 지키는 용병이 연락이 안 된다고 했지?”

“예.”

“보관소 경비들한테 연락해봤나?”“모두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

“…….”

그 말을 듣자 몬타나는 잠에서 확 깨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있던 첩들이 재빨리 수건과 가운을 가져왔다.

“당장 군항에 연락해서 지하 보관소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준비시켜.”

“각 사령부에 전달하겠습니다.”

첩들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으나 몬타나는 그 쾌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경매에 나갈 물건들도 무사히 이송되었고, 손님들도 그가 제공한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마자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제까지의 평온함이 거짓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 별일 아니겠지.’

마르시오 카르텔은 스페이스독 내부에서도 감히 도전하는 자가 드물 정도로 막강한 세력이다. 애초에 그들처럼 우주요새를 관리하고, 수백 척의 함선을 굴리는 카르텔 자체가 몇 안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몬타나는 메가콥의 노블캐피탈과 컬트 제국의 귀족들의 비호를 받는 자다. 사실상 그는 열강의 인정을 받은 군벌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그런 그가 지배하는 요새에 테러를 가하는 자가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통신 설비의 문제일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킨 그는 욕탕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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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끝인가?’

나는 텅 빈 냉동 컨테이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하에 만들어진 넓은 구조물 내부에는 부서진 컨테이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전부 나와 26호, PS-111이 내용물을 먹어 치우고 남은 잔해들이다.

‘보관된 생물이 많다 보니 특성을 꽤 많이 얻었어.’

사냥의 표상이 끝난 뒤에도 수십, 수백 마리에 달하는 생물을 먹어 치우다 보니 얻은 특성이 적지 않았다.

‘덕분에 합성식도 2개나 더 열었고.’

하나는 육체 관련 특성을 다수 요구하는 유일 특성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둥지 관련 특성과 초능력 관련 특성을 요구했다. 지금 나는 전자만 만들 수 있고, 후자는 재료를 다 모으지 못해 합성이 불가능하다.

‘레드미스트를 잡아야 하니까.’

레드미스트는 밀림형 행성에 사는 최상위 포식자. 아이스 호러만큼이나 까다로운 에이펙스 생물이다. 어지간한 각오로 놈을 잡으러 갔다가 역으로 당할 거다.

‘이건 나중에 노리고.’

일단 다수의 특성을 확보한 덕분에 유일 특성 2개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나는 이 자리에서 즉시 제작 가능한 융합식들을 띄웠다.

「‘초월’ 재료 목록: 강화 두개골, 갤러곤의 뿔, 가시털 발사 꼬리, 단백질동화 작용, 군집 피부 조직」

「‘초월’ 재료 목록(신규!): 강화 대형 꼬리, 생체전기 방출관, 폭발성 체액 발사기, 파괴 음파, 포자 대포」

‘전자는 뭐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후자는 왠지 알 것 같네.’

초월 시스템으로 만든 특성은 전부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유일 특성이나 강적의 증표를 얻을 때마다 자주 고민하게 된다.

다만 지하 보관소에서 새로 해금한 융합식을 보니 결과물이 왠지 예상이 됐다. 재료들을 보니 원거리 공격 수단과 관련된 유일 특성이 분명했다.

실제로 내 몸에는 새로운 기관 하나가 생겼다. ‘폭발성 체액 발사기’와 ‘포자 대포’ 특성이 반영되면서 등을 덮은 배갑(背甲)에 생체 대포 같은 길쭉한 포신 2개가 추가되었다.

목을 아래로 쭉 빼고 고개를 낮추면 등이 쭉 당기는 느낌과 함께 포신이 튀어나오며 전방을 겨냥했다. 이대로 힘을 주면 위험한 물질을 가득 담은 포자가 발사되리라.

‘산성 진균샘하고 궁합이 좋지.’

게임에서도 진균을 던지고 그 위에 폭발성 체액을 뿌리는 콤보를 자주 사용했다. 백린탄을 쏜 것하고 비슷해서 기계와 일반 생물 모두에게 효과적이다.

게다가 지금은 산성 진균이 브레스 형태로 바뀌었으니까 훨씬 더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겠지.

그것 외에 ‘파괴 음파’ 특성도 제법 유용하다.

인면충의 마비 음파와 달리 이건 순수하게 음파로 상대를 파괴하는 공격적인 특성. 낮은 파괴력과 사용 조건이 까다롭다는 약점이 있으나 여러 타입의 적들에게 고루고루 효과가 있는 범용 공격기라 할 수 있다.

‘일단 이건 됐고. 이것들만 완성만 하면 바로 성체로 진화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성체까지 남은 조건은 유일 특성 2개를 더 얻는 것. 이 자리에서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바로 진화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인데….’

컨테이너를 터는 도중에 용병들이 떨어뜨린 통신기가 여러 번 울렸다. 그들에게 물건을 지키는 임무를 맡긴 고객들의 확인 전화였다. 통신기의 소유자들은 모두 나와 26호의 뱃속에 들어가 버렸으니 놈들이 직접 확인하러 올 거다.

다시 말해 요새의 해적들과 전면전을 벌이게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태까지 초월 시스템을 활용해서 유일 특성을 만들 때면 항상 내 몸이 고치 속에 들어갔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유일 특성을 얻는 것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전리품 상자는 나중에 까보도록 하고.’

텍스트박스 확인을 마친 나는 26호와 PS-111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눈길을 읽은 26호가 폴짝 폴짝 튀며 다가왔다.

「큰애기야! 봐봐!」

녀석이 집중하자 몸을 덮은 분홍색 빛이 한층 진해졌다. 분홍빛 몸통에서 나온 촉수가 꿈틀거리더니 모양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촉수 한 가닥이 전에 있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모양으로 변이했다. 기존에 보유한 촉수들은 전부 안쪽 면에 날카로운 톱날이 자글자글 달린 형태였다.

반면 지금 녀석이 변이시킨 촉수는 그 끝에 여섯 개의 부속지, 입처럼 생긴 기관이 달린 형태였다. 그 모습은 내가 보유한 침식 촉수와 매우 흡사했다.

「나도 큰애기랑 똑같다! 그지? 그지?」

[즈즈즈(그러네)]

평이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아까 전에 한 번 봤음에도 다시 보니 또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까.

‘신체 변이라니.’

보관소의 먹이는 26호에게 충분히 유의미한 성장을 촉진시켰다.

일단 첫 번째로 몸 크기가 실제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키울 수 있는 몸 크기의 한계가 최대 25m까지 늘어났으니까.

피부도 그에 따라 상당히 두꺼워졌고, 지느러미와 촉수도 전보다 강인해졌다. 지금은 몸을 작게 줄인 상태지만, 최대 크기로 키웠을 때는 준레이드급 보스의 풍모가 확 살아났다.

‘쩝.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26호는 불만족스러워했다. 녀석 표현을 빌리자면 ‘작은애기처럼 반짝반짝한 것’이 없다고.

지금도 충분하다고 위로했지만, 꽤나 실망한 것 같았다. 내가 다른 먹이를 먹는 동안 컨테이너 옆에서 쭈그린 채 의기소침해 했으니.

‘여태껏 그 정도로 우울해 한 적이 없었지.’

굳이 찾자면 처음 연구선의 실험관 속에 있었을 때와 비슷했다. 지금처럼 내 앞에서 새 능력을 뽐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원래 내가 먹을 예정이었던 먹이를 녀석에게 넘겼다.

26호에게 준 먹이의 이름은 페이스리스.

수백 개의 이빨을 지닌 육식성 달팽이인데 ‘미믹 기관’이라는 특성을 지닌 희귀 생물이다. 특성 이름에서 드러나듯 놈은 자기 몸을 물건으로 위장할 수 있다. 놈은 평소에는 나무나 바위 같은 지형지물로 위장하고 있다가 먹이가 가까이 오면 몸을 원래대로 변화시켜 덮친다.

이 요새에 오기 전 나는 노예 시장 행성에서 해적들이 포획한 페이스리스를 포식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대혼란의 전령’ 특성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미믹 기관 자체도 유용한 특성이다 보니 이후에도 한 번쯤은 더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쩝. 보관소 목록에 있어서 좋아했는데.’

원래는 26호가 슬퍼해 하는 것과 상관없이 페이스리스를 바로 먹으려 했다. 문득 든 생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씨 데몬한테는 위장 관련 특성이 있었지.’

씨 데몬은 피부를 산호 비슷한 형태로 바꾸는 특성이 있다. 아주 감쪽같아서 맨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고, 특별한 탐지 장비를 활용해야 볼 수 있다. 전투 중에도 종종 써 대서 공략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아무튼 그 생각이 난 나는 위로 겸 실험의 차원에서 페이스리스를 26호에게 넘겼다. 게임과 다르게 새로운 능력을 얻지 않을까 기대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예상이 맞았다. 아니,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얻었다.

보다시피 녀석은 촉수 하나의 외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다. 단순히 크기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실로 ‘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수준의 변화였다.

‘아직은 촉수 하나밖에 못 바꾸지만….’

녀석이 보유한 수백 개의 촉수가 각기 다른 무기, 혹은 신체 기관으로 변화한다면 전투력이 급상승할 거다.

‘26호가 강해지면 내게도 이득이고.’

나는 잘했다는 의미를 담아 녀석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제자리에서 퐁퐁 튀면서 몸을 반짝반짝 빛냈다. 오랜만에 새 능력을 얻은 것이 어지간히도 기쁜 것처럼 보였다.

“좋으시겠습니다.”

PS-111이 기뻐하는 26호에게 다가왔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너의 변화도 나쁘지 않아)]

“‘타당한 지적입니다만, 기대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PS-111은 의외로 살아 있는 생물의 특징을 적용하는 것에는 미숙한 모습을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적용의 결과가 복불복이지만.’

유전자 샘플을 흡수한다거나 장비를 포식하는 경우에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반면 살아 있는 생물을 먹은 경우, 몸 구조가 의도대로 완벽히 바뀌지 않았다. 어딘가 하자가 있다거나 아니면 PS-111의 기대에 한참이나 못 미치는 형태로 변화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성공한 편인데.’

PS-111의 몸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는 한 가지. 모든 다리 갑각에 신경독이 담긴 가시가 생긴 것이다. 녀석이 원한다면 독이 담긴 가시를 발사할 수도 있다. 적을 살아 있는 채로 제압할 때 유용한 신체 기관이라 봐도 좋으리라.

‘그래도 불만족스러운 것 같지만.’

페이스리스는 26호에게 넘겼기에 녀석에게는 따로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PS-111도 그 사실을 알기에 딱히 내게 다른 먹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진화 조건 달성, 26호와 하늘의 어머니의 성장은 고무적이네.’

이 정도로 큰 성과를 얻은 적은 고르곤 스웜을 잡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일부러 케샤 아르마에 온 보람이 있었다.

‘그나저나 하늘의 어머니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신격화 단계 상승이 끝나면 아드하이와 함께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 벌써 수 시간이 지났는데 안 오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한 시간만 더 기다리고 가 볼…응?’

그렇게 생각하던 중, 내 보조기관이 공기의 변화를 감지했다. 우리가 있는 C구역에서 제법 떨어진 곳, 그러니까 지하 보관소의 입구 부근에 누군가가 서성이고 있다.

입구에 들어오기 전, 경비원과 용병들은 전부 잡아먹었다. 그러니 저 발소리의 주인은 외부인이다.

‘걸렸구나.’

용병, 경비원과 연락이 안 되니 놈들이 확인하러 것이 분명했다. 곧이어 작은 발자국 소리가 수십, 수백 개로 증가했다.

[즈즈 즈즈즈즈(다들 배부르지?)]

「응. 배불러.」

“제 체내 에너지는 과충전 상태입니다.”

[즈즈즈(잘됐네)]

배는 충분히 채웠다.

이제 적당한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

“주변에 생체 활동 감지되지 않습니다.”

“돌입해도 무방합니다.”

“…좋아. 들어가자고.”

두꺼운 장갑과 무거운 전면 방패를 장착한 안드로이드를 앞세우고 해적들이 지하 보관소에 발을 내디뎠다. 수십 명에 달하는 해적들 또한 중무장한 상태였으나,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야, 부두목 좆됐다는 거 진짜야?”

“에이씨, 좆 같은 소리 하지 마.”

“마르시오 카르텔은 좋다고 해서 왔더니 이게 뭔 지랄이야.”

“내 동생이 병원에 갔다가 연락이 안 되는데. 이거랑 관련 있을까?”

“내가 신이냐? 다 알게?”

“다들 아가리 닥치고 경계 유지해.”

새로 임명된 간부들의 명령에도 해적들의 사기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특히 A구역으로 향하는 통로에 진입하자마자 그들의 분위기는 훨씬 안 좋아졌다.

“씨이벌….”

“…좆됐네 진짜.”

두께 1m의 이중 차폐문이 본래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채 외부인들을 맞이했다. 차폐문의 모양새는 마치 종이 뭉치를 찢어놓은 꼴이었다.

케샤 아르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쟁이들도 지하 보관소의 문이 저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거다.

더 문제는 차폐문을 저 꼴로 만든 존재가 보관소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간부를 포함해 이 자리의 모든 해적들의 마음속에 도주 욕구가 스멀스멀 치솟았지만, 그 누구도 도망치는 자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도망칠 기미가 보인다면 안드로이드들이 바로 벌집으로 만들 테니까.

해적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망가진 차폐문을 지나 A구역 경비실로 향하는 통로로 들어갔다.

“전방에서 진동 발생.”

“적 이동으로 추정됩니다.”

“대응 준비. 대응 준비.”

경비실에 가까워지던 중, 선두에 선 안드로이드들이 일제히 경고음을 냈다.

깜빡깜빡 빛나는 불빛, 여기저기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금속 통로, 그리고 시끄러운 기계음까지. 모든 요소가 해적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해적들은 덜덜 떠는 손으로 무기를 꽉 쥐었다. 그들의 팔에는 비싼 걸로 유명한 컬트의 사이킥 실드가 장착되어 있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해적과 안드로이드들이 전투 준비를 완료한 그때.

통로 너머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에 불과했다. 그것이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통로 전체를 울리는 것으로 모자라 외부로 노출된 잔털들까지 떨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긴장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진동을 일으키는 존재가 금방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에.

“히, 히이이익!”

“괴, 괴물이다앗!”

“사격 개시!”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별 상관없었다. 어차피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겁먹은 해적들은 알아서 사격을 개시했을 거니까 말이다.

「그르르르르」

천장에 닿으려면 성인 남성 대여섯 명을 늘여놓아야 할 정도로 폭이 넓은 그 통로가 괴물로 꽉 찼다. 그 무서운 존재가 쏟아지는 포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온다.

그리고 놈의 등에서 튀어나온 두꺼운 뱀이 선두에 선 안드로이드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크게 흔들리며 안드로이드들을 후려쳤다.

안드로이드가 든 방패는 플라즈마탄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내구도가 좋지만, 본체가 직접 타격을 받는 이상 큰 의미를 갖기 힘들었다. 값비싼 로봇들은 단단한 방패를 든 채 벽에 처박혔다.

“도, 도망쳐! 도망쳐야 해!”

“도망치지 마! 이 새끼들아!”

간부들이 악을 쓰며 해적들의 이탈을 막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하는 해적들.

등에서 튀어나온 촉수를 이용해 안드로이드들을 상대하고 있던 괴물이 도망치는 해적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노, 놈이 뭔가 하려고 한다!”

“모두 조심…!”

감이 좋은 해적들이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그들의 외침이 끝나기 전, 괴물의 입에서 어마어마하게 강렬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

괴물 앞에 있던 안드로이드를 고철 덩어리로 만든 음파가 통로의 벽을 매개로 퍼져나갔다.

도망치던 해적들, 괴물의 앞에 서 있던 해적들도 압도적인 소리에 휩쓸려 순식간에 핏물로 화했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안 들려!”

음파의 범위에서 운이 좋게 벗어난 해적들이 비틀거리며 중얼거렸다. 청각을 완벽히 상실한 그들은 귀 말고 눈과 코, 입에서도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한순간에 주요 감각 기관들을 상실한 해적들. 그들에게 다행이라고 할지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도, 도망….”

“히이이익?!”

코앞에서 비틀거리던 해적이 한순간에 핏물로 화했다. 핏물과 살점이 그 뒤에 서 있던 동료에게 튀었다.

흉악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두터운 발로 해적을 짓밟은 괴물이 그를 향해 주둥이를 내밀었다.

활짝 벌어지는 괴물의 입.

피범벅 된 해적은 비명을 질렀지만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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