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70 - 쥐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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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샤 아르마의 지하철은 컬트 기준으로는 나름 신기술이 적용된 시설이었다.
일반적으로 컬트들은 땅 위, 혹은 공중에서 움직이는 이동 시설을 선호한다. 우주를 호령하는 제국이 되기 전, 그들은 사막형 행성에서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렇다 보니 모래 아래에 뭔가를 짓는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이러한 면모는 제국이 된 후에도 컬트들의 의식에 남아 있었다. 바이오 돔 타입의 식민지, 궤도거주지 등 여러 설비를 정비할 때도 호버 버스라든가 사이킥 트레인 같은 지상을 활용한 이동 수단이 주로 깔렸다.
이러한 컬트들의 의식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의외로 제국이 몰락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제국의 권역이 줄어들면서 경제적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자, 컬트들의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가령 기존에 만들어 놓은 구조물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든가.
케샤 아르마의 지하철 또한 이러한 의식 변화의 산물이었다.
사이킥 파워 엔진에 저품질 문실버를 투입해 가동하는 컬트의 지하철은 행성 채굴에 필요한 장비, 채굴한 광물 등을 빠르게 운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호버 버스만으로는 하루 동안 오가는 자재의 3분의 1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요새의 주인이 바뀌었으나, 지하철은 여전히 우주시설물의 혈관으로 기능했다.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싣는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우주시대에 둘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열차 내부에는 각 구역에서 탑승한 해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무기를 챙겨 왔기에 평소처럼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리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자리가 넉넉하다고 해서 쾌적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땀 냄새, 술과 약물 냄새가 차량 내부에 눌러 붙어 있었다. 당연히 역한 냄새의 칵테일을 기관지로 빨아들여야 하는 해적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에이 씨벌, 오래도 걸리네.”
“빌어먹을, 용병 놈들은 다들 버스타거나 배타고 가던데.”
“위에서도 약쟁이 새끼는 버스에 안 태워.”
“뭐 이 새끼야?”
“좁아 뒈지겠는데 싸우지 마라. 어차피 몇 분이면 도착이야.”
해적들이 구시렁대는 동안에도 열차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몇 분만 지나면 그들은 지하 보관소 근처에 있는 군항에 도착한다.
다들 목적지에 도착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때.
사이킥 파워로 움직이던 열차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 반동 때문에 서 있던 해적들이 죄다 앞으로 쓰러졌다.
“으어어억?”
“아악! 이런 썅!”
세워둔 총과 부딪쳐 이빨이 부러진 인간, 무거운 사이보그에 깔린 인섹트맨 등, 차량 내부는 완전히 엉망이 됐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분위기가 급격히 흉흉해졌다.
“차량이 멈춘 것 같은데?”
“아직 도착 안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
컬트가 만든 이 지하철은 사람의 조종을 받지 않고 알아서 정해진 트랙을 왕복한다. 연료가 떨어졌거나 선로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멈추지 않는다.
“누가 좀 나가서 확인해 봐.”
해적 중 몇몇이 차량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확인했다. 열차에서 나오는 빛이 지하 통로에 깔린 선로를 은은히 비추었다.
“멀쩡한데?”
“미친 놈, 그렇게 해서 보이겠냐? 나가서 확인해.”
“…새끼가. 자기가 할 것이지. 쳇.”
덩치 큰 사이보그 해적이 눈을 부라리며 위협하니 인간 해적은 어쩔 수 없이 열차 밖으로 나왔다. 다른 칸에서도 그와 비슷한 입장의 해적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발견한 거 있어?”
“몰라. 나도 지금 나왔어.”
“열차가 고장 난 적은 처음인데.”
잠깐 나온 김에 인간 해적은 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합성마약을 있는 힘껏 빨아들이자 정제되지 않은 환각제가 그의 폐부에 스며들었다. 머릿속 뇌세포를 유린하는 아찔한 쾌감에 그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열차는 멀쩡한 것 같은데. 선로 문제인가?”
“어이, 너도 나왔으니까 빨리 와서 봐봐.”
“이것만 피고.”
그는 한모금만 더 빨아들이고 동료들과 합류하려 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앞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응?’
그의 눈이 열차 앞쪽에 쭉 이어진 선로 위에 향했다.
‘…….’
담배를 문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눈이 금세 어둠에 적응하고, 주변 풍경이 한층 더 선명하게 보였다.
거기에 아지랑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불이라도 난 줄 알았다. 왜냐하면 암흑 속에서 일렁거리는 것들은 새까만 흑색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연기 따위가 아닌 ‘살아 있는 무언가’라는 알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주를 연상케 하는 심연 속에서 수많은 것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독사들로 가득 찬 뱀굴 같기도 했고, 시체의 피부에서 들끓는 구더기 같기도 했다.
탐욕스럽고 무질서한 혼돈. 약에 취한 그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은 위험한 존재였다.
‘들끓는 존재’가 움직였다. 물속에서 흔들리는 수초와 같던 줄기가 쭉 늘어나더니 열차 앞에 있던 그의 동료 하나를 낚아챘다.
“어라?”
해적들은 순식간에 사라진 동료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동료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 위로 손전등이 부착된 권총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이 둔탁한 소음을 내자 해적들의 표정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이 벌어지며 비명을 내지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 도사리는 악한 존재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끄트머리가 세 갈래로 갈라진 줄기 수십 개가 튀어나와 그의 동료들을 모조리 끌고 가 버렸다.
열차 밖으로 나온 동료들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몇 초도 되지 않았다.
“…….”
인간 해적의 다리가 전투에 처음 나간 신병마냥 마구 떨렸다. 천천히 뒷걸음질 친 그는 열차에 도로 올라탔다.
“뭐야? 어떻게 됐어?”
“고친 거 맞아? 뭐가 문제였어?”
그는 대답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닫으면서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자담배를 집고 깊게 한 모금 더 빨았다.
“이 약쟁이 왜 이래?”
“씨발 도대체 뭔데?”
담배의 마약 덕분에 한층 진정한 인간 해적은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밖에 괴물이 있어.”
“뭐?”
“다른 칸에 있던 애들, 다 잡아갔어.”
그 말을 듣자 열차에 있던 해적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 새끼 맛이 간 것 같은데?”
“여기가 지하 보관소도 아닌데 괴물은 무슨.”
“하여간 약 빠는 놈들 중 정상이 없다더니.”
어이없다는 해적들이 그를 조롱했다. 그때 덩치 큰 사이보그 해적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야, 이러지 말고 그냥 걸어서 가자. 어차피 목적지까지 멀지도 않고.”
그렇게 말한 그는 차량의 문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 모습을 본 인간 해적이 기겁하며 말렸다.
“열면 안…켁!”
그는 인간 해적을 걷어차고 차량 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예상대로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었던 사이보그 해적은 입꼬리를 올렸다.
“병신아, 봐봐. 아무것도 없잖….”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암흑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를 덮쳤다.
“크억?!”
“그기기기기기”
사이보그 해적을 덮친 존재는 갈비뼈가 비정상적으로 자라나 마치 흉부에 입이 달린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었다. 그는 튀어나온 뼈로 사이보그의 허리를 마구 난도질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동료들은 그제야 인간 해적이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급히 무기를 드려는 순간, 차량의 창문들이 깨지며 수많은 검은 줄기들이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비명, 총 소리, 불안하게 깜빡거리는 차량 내부의 전등.
그곳에서 인간 해적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이 악몽이 끝나길 기도했다.
그 후, 지하 통로에 울리던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짐승 떼거리의 거친 숨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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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예? 먼저 진입하라고요? 아, 아닙니다! 당장 진입하겠습니다!”
메가콥에서 건너온 손님들이 데리고 온 용병과 헐크 뮤턴트, 케샤 아르마에 있는 수많은 카르텔의 해적들이 지하 저장고 앞을 포위 중이었다.
그중 사령부와의 연락을 담당하던 해적이 통신기를 종료했다. 그는 식은땀을 닦으며 각 팀의 대표들에게 위에서 날아온 명령을 전달했다.
“위에서 작전을 개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애들 아직 도착 안 했는데?”
“적이 강력하다고 들었소만. 괜히 따로 진입했다가 각개격파 당하는 거 아니오?”
“위, 위에서는 현재 물건 상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확인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그 말을 들은 용병 대표들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경매에 내놓을 물건이 털린다면 ‘상품의 주인’들이 누구한테 지랄을 할까? 분명 상품을 지키라고 고용한 그들에게 책임을 물릴 거다.
이 자리의 용병들의 주인은 메가콥 상류층들이 고용한 대리인. 서드캐피탈, 혹은 미드캐피탈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우했다간 후환이 두려웠다.
“할 수 없군. 소수만 돌입해서 물건부터 확인하고 바로 빠져나오는 것이 좋겠소.”
“그 뒤는 군항 역에 도착한 병력과 합류해서 밀어붙이자고.”
“으음, 어, 어쩔 수 없죠. 그렇게 합시다.”
결정을 내린 대표들은 각자 자기가 속한 팀으로 돌아갔다. 각 팀에서 차출된 수색원들이 한 곳에 모여 지하 보관소 안으로 진입했다.
“…왜 연락이 안 됐는지 알 것 같군.”
수색대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끈적끈적한 물소리가 통로를 채웠다. 누수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걷고 있는 통로 전체가 피투성이었다.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강렬한 피 냄새에 수색대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어두워졌다. 통로부터가 이런데 물건이 정상적일 것이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그들은 고용주에게 뭐라 변명할지 고민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박살난 경비실을 지나 그들은 A구역의 보관소에 도착했다.
“물건은 멀쩡하다!”
“이쪽도!”
“여기는 안 건드렸나? 그나마 다행이군.”
우려와는 달리 사치품과 귀중 문서들을 실은 컨테이너는 멀쩡했다. 흩어진 용병들은 자기 주인이 챙겨 온 물건들에 손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이건 멀쩡하지? 귀중품을 노린 것이 아니었나?”
“일단 안쪽도 확인하자고.”
“이동할 테니 모두 모여!”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흩어진 용병들이 다시 한곳에 모였다. 그들이 막 출발하려고 하는 그때, 볼프 용병이 손을 들었다.
“왜 그래?”
“무슨 소리가 들려.”
“소리?”
“누가 오고 있어.”
쥐머리를 가진 볼프의 말을 들은 수색대 전부가 무기를 들었다. 볼프가 큰 귀를 연신 쫑긋거리다가 어느 한쪽 방향에 시선을 향했다.
“?!”
“저게 뭐야?”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두 발로 걷는 무언가’였다. 오른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그것은 너덜너덜해진 강화복을 걸친 채 수색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실패한 헐크 뮤턴트?”
“설마. 불량품을 본 적 있는데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
“…끔찍하게도 생겼군.”
다가오는 저 존재는 아무리 봐도 대화가 통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용병 중 한 명이 가우스 소총으로 놈을 쐈다.
“그기기긱”
머리의 절반이 박살난 놈이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쓰러진 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놈이 이곳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인가?”
“글쎄,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약한데.”
“…잠깐, 모두 조심해.”
“응?”
쥐머리 볼프의 조심하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쓰러진 괴물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기기기기”
머리가 부서진 놈의 입에서 듣기 싫은 신음과 점도 높은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역겨운 모습에 용병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쯧.”
가우스 소총을 든 용병이 놈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겨냥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목표물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부서진 놈 뒤에서 똑같이 기괴한 형태를 띤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
적을 본 용병들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왜냐하면 보관소 안쪽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괴물이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기기기기”
“그기기기기기기”
“그기기기”
“기기기기기”
“기기기기기기기기기”
수십, 아니 수백에 달하는 존재들이 내뱉는 기괴한 울음소리.
그것은 수색대원들의 저항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