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71화 (272/400)

Episode 271 - 쥐떼(2)

“모, 모두 물러나! 끄아아악!”

“퇴로가 막혔어!”

상체에 팔이 5개 추가된 사이보그가 괴성을 지르며 용병들의 정면을 향해 뛰어갔다. 다리에 관절이 3개씩 늘어난 볼프는 컨테이너에 기어 올라가 위에서 덮쳤다. 용병들의 시선이 다른 감염자들에게 쏠린 사이, 턱이 부러지고 입 안에 또 다른 입이 돋아난 인간이 후방에서 급습했다.

변이자들의 수는 대략 100 이상. 열차에 탑승했던 병력 중 3분의 1에 달하는 숫자다.

나머지 인원은 이동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변이가 됐거나, 다른 변이자들에게 공격당해 죽어 버린 탓에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내가 의태 기관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조정할 수 없듯이 변이 역시 마찬가지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는 완전히 무작위로 변하기에 꼭 효율적인 형태로만 변하지 않는다.

‘뭐든지 좋기만 할 수는 없지.’

비효율적으로 변한다고 해도 변이자의 전투력은 나쁘지 않다. 변화한 부위에 따라 야생동물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사람의 신체를 두 쪽 낼 수 있으니까.

물론 이는 근접전에 한한 얘기고, 적이 일제사격을 가한다면 생물인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 머리나 심장이 완전히 파괴된다면 기능을 정지한다. 적들도 처음에는 머리와 심장 같은 중요 부위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했다.

만약 이 자리에 내가 없었으면 저쪽이 이겼을 거다. 적측에는 경험이 풍부한 용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든 공략 방법을 찾아냈겠지.

“젠장! 놈들이 너무 빨라!”

“아군이다! 쏘지마!”

하지만 지금 용병들은 우왕좌왕하며 변이자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대혼란의 전령.’

괴물의 촉수로부터 흘러나오는 파장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정신과 감각을 희롱하고 있다. 용병들은 코앞에서 적들이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아군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변이자들도 자기들끼리 싸우는 대신 용병들한테만 달려들고 있었다.

모두 내가 퍼뜨리는 사이킥 파워의 파장 때문에 감각이 왜곡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끄, 끄억?”

세로로 갈라진 얼굴 안에 수백 개의 송곳니가 돋아난 변이자가 용병의 뒤를 쳤다. 용병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팔을 휘적거렸으나 소용없었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그의 머리와 등골을 부수고 뜯어냈다.

“미친?!”

“씨바아알!”

엄청난 힘에 경악하는 용병들. 다들 변이자에 신경 쓰는 사이, 나는 용병들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가까운 거리에 괴물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용병이 있다. 쥐머리를 달고 있는 볼프 용병은 컨테이너 위를 뛰어다니는 괴물들을 쏘느라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소리를 죽인 채 그에게 다가가 촉수를 날렸다.

“우웁?!”

문어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촉수가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기 전, 촉수 끄트머리가 놈의 주둥이 안에 처박혔다.

“……!”

세 갈래로 갈라진 촉수가 목구멍을 틀어막자 용병이 전신을 파르르 떨며 캑캑 거린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몸에서 생산된 변이 바이러스는 새 숙주를 찾아 이동했다.

“쿠왜애애애애애액!”

촉수가 붙어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촉수가 떨어지자마자 용병은 바닥에 엎드린 채 구역질했다. 그의 입에서 미처 소화되지 않은 내용물과 검은색 타르 비슷한 물질이 섞여서 쏟아졌다.

“크, 크어어억! 왜애액! 에, 에에, 그, 기, 기기….”

“야! 괜찮아?”

다른 동료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그가 검은색 액체를 쉴 새 없이 쏟아 내는 동료를 부축했다.

용병치고는 마음씨가 참 고운 친구지만, 이 상황에서는 딱히 좋은 행동이라 보기 힘들었다.

“당장 치료제를 투입해야….”

“그기기기기긱”

“어? 어어?”

부축한 용병의 몸이 기괴하게 뒤틀린다. 변이가 시작된 거다. 그의 척추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살점과 강화복을 뚫고 외부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코브라가 몸을 세우듯 척추와 머리가 너덜너덜해진 상반신 위에 꼿꼿이 섰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용병은 동료의 척추에 얻어맞고 날아가 버렸다.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컨테이너에 처박힌 용병. 나는 허리가 꺾인 그도 친구와 함께 하도록 도와줬다.

“기기기기기긱”

새 변이자가 된 용병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린다. 나는 감각을 교란시키는 파장으로 그를 다른 용병을 노리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기기긱”

그런데 내가 약간 늦었는지 놈이 먼저 나를 감지하고 말았다. 허리 부근에서 팔이 4개 자라나 거미처럼 움직이는 변이자가 나를 보며 포효하고 이를 드러낸다.

“긱?!”

그 순간, 놈의 목이 공기총에 맞은 것처럼 세차게 돌아갔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목이 180도 꺾인 놈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이킥 파워로 놈의 몸을 꺾은 것은 내 등 위에 올라타 있는 26호였다. 녀석이 ‘속박’으로 변이자의 몸을 강제로 다른 용병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려놨다.

「애기는 여기서 놀면 안 돼. 저기 가서 놀아.」

“기기기기”

새로운 목표가 보이자 변이자는 그쪽을 향해 뛰어갔다. 다른 변이자들과 싸우고 있던 용병들은 후방에서 나타난 적에 비명을 질러댔다.

“으, 으아아악! 여기 또 있어!”

「나 잘했지?」

[즈 즈즈즈(응. 잘했어)]

「응응!」

평소처럼 쓰다듬어주면 좋겠지만, 팔이 짧아지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물론 26호는 내가 말로만 칭찬한다고 해서 딱히 싫어하지 않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보관소에서는 총소리도, 비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살육 욕구만을 채우고 싶어 하는 짐승들의 숨소리만 가득할 뿐.

감각이 왜곡된 그들은 죽은 시체나 컨테이너를 질겅질겅 물어뜯는 중이었다. 아직은 근처에 공격할 거리가 있으니까 순응하고 있지만, 그것이 떨어지면 감각도 무시하고 미쳐 날뛸 거다.

‘그렇다면 새 먹이를 줘야지.’

먹이만 있다면 아무리 굶주려도 무리가 유지되는 황충처럼, 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손톱과 이빨에 피를 적실 수 있다면 그들은 비축한 에너지를 다 소모하기 전까지 끝없이 날뛸 거다.

나는 ‘대혼란의 전령’을 조정했다. 갈기처럼 뒷머리와 목을 덮은 괴물의 촉수들이 흔들거리며 왜곡 파장을 조율한다.

“기기기기”

“기긱”

시체에 고개를 처박고 내장을 뜯어먹던 변이자들이 일제히 반응한다. 흐리멍덩한 그들의 눈이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향한다.

그곳에 그들이 바라는 먹이가 있다.

“기기기기기긱”

“그기기기기기”

“기기기기”

굶주린 쥐떼가 포효한다. 혼란을 불러오는 전령의 인도에 따라 변이자들이 밖으로 뛰어갔다.

‘아직은 수가 좀 부족하네.’

요새의 질서를 붕괴시키려면 더 많은 혼란, 더 많은 공포가 필요하다. 밖에 있는 인간들로 변이자 수를 더 늘려야 할 것 같다.

[즈즈 즈즈(그럼 갈까?)]

「응.」

나는 26호를 태운 상태로 변이자들의 뒤를 따라갔다. 이 자리에 PS-111은 없다. 녀석은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선로를 따라 다른 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피투성이가 된 통로를 지나자 시끄러운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지하 보관소 밖의 비명 소리가 이곳까지 울렸다.

‘그냥 입구를 폐쇄했으면 시간을 좀 더 벌었겠지만.’

플레이어라면 모를까, 일반 해적들에게 그런 기민한 대처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거다. 타인을 죽이고 빼앗는데 익숙한 자들이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너무 늦으면 변이자 재료도 못 구하…어라?’

뜯어진 지하 보관소의 문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해적으로 보이는 자들 세 명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시, 시끄러워! 놈들이 듣는다고!”

“젠장젠장젠장! 이럴 거면 마르시오 카르텔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었어!”

정신이 나간 자들처럼 떠들고 있는 셋. 그들의 눈은 밖에서 벌어지는 학살의 현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탓에 내가 기어 나오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잘됐네. 일단 이 셋도 변이자로 만들까.’

세 가닥의 촉수가 그림자를 타고 움직였다.

겁쟁이 해적 중 하나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린다. 나를 발견한 그의 눈이 찢어질 정도로 벌어진다.

그와 동시에 세 가닥으로 갈라진 검은 촉수가 그의 얼굴을 집어삼켰다.

-

“흐아아암, 나 드링크 하나 뽑아올게.”

“그래.”

군항과 그 주변의 산소 공급 시설과 중력 유지 장치 등의 보안을 담당하는 제8 환경 관리소. 마름모 2개가 겹쳐진 독특한 형태의 건물 내부의 분위기는 언제나 그렇듯 평온했다.

배불뚝이 해적이 나가다 말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것 하나 챙겨올까?”

“그거 이틀 참은 오줌 맛이 나서 난 싫더라.”

“…선배가 그걸 어찌 압니까?”

“너도 해적 생활 1년 이상 해 봐라. 싫은 일도 다 알게 될 테니.”

진저리치는 동료들을 두고 배불뚝이 해적은 관리실을 나섰다.

그는 깔끔한 복도를 지나 복도 끄트머리에 배치된 냉장고를 열었다. 손바닥만한 에너지 드링크 캔을 꺼낸 그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안에서 병 하나를 더 꺼냈다.

합성주 병을 챙긴 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앉아 뚜껑을 딴 그는 병 안에 든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크으으으!”

혓바닥에서부터 목구멍과 식도로 이어지는 불길. 그는 재빨리 드링크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끄어어억, 좋다.”

환경 관리소는 요새 거주민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데 중요한 시설이다. 이곳이 뚫린다면 군항을 비롯한 휘하 구역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배불뚝이 해적도 그 사실을 잘 안다. 부두목 카둔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를 찢어 죽일 것이 분명했다. 사실 부두목까지 가지 않아도 관리소장이 안다면 그를 우주 밖으로 배출시켜 버리리라.

하지만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인 그는 미래에 있을 위험보다 당장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드링크 캔과 합성주 전부 비운 그는 붉어진 얼굴로 칸을 나왔다. 이대로 관리실에 돌아가면 멍청한 동료들도 눈치챌 터. 그는 세면대에 물을 받아 세게 문질렀다.

“이 정도면 되겠지?”

아까보다 안색이 돌아온 그는 화장실 밖을 나섰다.

“응?”

관리실로 돌아가던 그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복도 끝에 있는 비상구 문이 열려 있었다.

‘누가 담배 피러 갔나?’

케샤 아르마의 주요 시설들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벙커가 설치되어 있다. 저 비상구를 이용하면 군항의 지하철 역, 환경 관리소, 이렇게 두 시설에 근무하는 인원들이 대피할 수 있는 벙커가 나온다.

“뭐 물어보면 되겠지.”

그는 비상구 안쪽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며 관리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누가 관리소에서 담배….”

관리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동료들에게 한소리를 하려고 했다.

만약 관리실 안에 있던 것이 동료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거기에는 동료의 익숙한 뒷모습 대신 전혀 다른 존재가 앉아 있었다. 어찌나 큰지 몸을 굽히고 있음에도 관리실 천장에 등이 닿을 정도로 거대한 존재.

‘그것’은 몇 분 전까지 살아 있던 동료들의 잔해를 깔고 앉아 있었다. 커다란 갈고리를 닮은 손가락으로 앞에 있는 컴퓨터들을 조작하던 ‘그것’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 명이 남아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실수입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기괴하게 목을 꺾으며 그렇게 말했다.

“너, 너너너, 뭐, 뭐야?”

“체형 분석 결과, 풍부한 영양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괴물은 갈고리 손톱으로 피에 젖은 키보드를 꾹 눌렀다.

“당신의 에너지는 제가 갖겠습니다.”

해적 뒤에 있는 문이 조용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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