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73 - 대혼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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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사령부 100층의 귀빈, 신시아는 연회장에 가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해적의 영역, 케샤 아르마에 은둔 중이다. 연회장에 가면 그녀를 알아보는 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몬타나 마르시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녀에게 따로 대접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곧 값비싼 고급 요리가 올라와 그녀가 머무는 방의 식탁 위를 가득 채울 시간이다. 식사가 오기 전, 그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디오룸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축음기 형태로 디자인된 고풍스러운 스피커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현악기들의 아름다운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눈을 감은 채 음악의 세계에 심취해 있던 그녀를 깨운 것은 미세한 진동이었다.
단순히 음악 소리가 커서 방이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있는 층, 아니 건물 전체가 무언가 강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울렸다.
‘뭐지?’
지금껏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난 그녀는 방을 나왔다.
발코니 쪽에서 익숙한 소음이 은은하게 들렸다. 한 때 그녀가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자주 들었던 소리.
그것은 에너지탄이 무언가에 적중했을 때 나는 폭음이었다.
‘설마 아키라가?’
그녀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일까? 그녀는 다급히 발코니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신시아가 본 광경은 예상과 약간 달랐다.
요새를 침공한 거대 군함도, 벌떼처럼 깔린 함재기도, 하늘에서 강하하는 헐크 뮤턴트와 군인들도, 그 어느 것도 없었다.
대신 그곳에는 유성우가 있었다.
수많은 불이 요새를 불태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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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요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공중에 떠다니며 나와 26호를 보호해주는 투명한 쟁반을 올려다봤다.
여러 종류의 빛을 머금은 거울, 혹은 원형 프리즘처럼 생긴 저 물체는 ‘복잡화 분광체’가 발동될 때마다 생성된다.
그 주요 능력은 바로 에너지 계열 공격의 반사.
이전에 내가 지니고 있던 ‘모방비늘’이나 ‘초능력 반사 장갑’ 같은 방어 계열 특성들을 합쳐서 만든 유일 특성이다.
‘방어 계열 특성은 액티브 형태인 경우가 잘 없는데 말이지.’
지금껏 내가 얻은 방어 계열의 특성은 조건이 충족되면 활성화 되거나, 아니면 평소에도 자동으로 활성화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임에서도 에이모프 플레이어가 원할 때 방어 능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특성은 희귀했다.
또한 액티브 형태의 방어 특성은 대개 효과가 좋은 대신 리스크가 있었다. 사용 조건이 까다롭다거나 아니면 얻기가 매우 어렵다거나 등등.
당연히 복잡화 분광체도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특성은 아니다.
나는 에너지를 반사하는 투명한 거울의 보호를 받으며 텍스트박스를 열었다.
「복잡화 분광체: 자연에서 파동은 곧 힘입니다. 여러 차례 타격을 받은 적이 있는 에너지 계열의 공격을 반사하는 매질을 형성합니다. 반사가 불가능한 에너지 계열 공격의 피해를 절반 이하로 줄여줍니다.
*반사 대상: 레이저, 플라즈마, 사이킥 파워, 결정화 파장
*지속 시간: 5분(쿨타임 30분)
*추신: 전략가라면 적의 힘을 역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잡화 분광체의 효과는 지금껏 내가 지녔던 방어 특성들과 컬트들의 방어 기술인 ‘리플렉션’의 효과가 합쳐진 구조다.
여러 번 공격받은 적이 있는 에너지 계열 공격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는 모방비늘과 비슷하고, 이를 반사한다는 점에서는 초능력 반사 장갑, 리플렉션과 유사하다.
‘거기에 부가 효과로 반사 불가능한 공격의 피해도 줄여주지.’
레드 갤러곤이나 볼텍스원처럼 고유 에너지 체계를 사용하는 적들과 싸울 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놈들의 공격은 방어 특성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서 성체 상태의 에이모프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그들로부터 받을 피해를 반사할 수는 없어도, 줄여서 받는다는 것은 분명 메리트다.
‘단점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야.’
반사하는 매질이 유지되는 시간이 5분이고, 쿨타임이 30분이다.
아무 때나 마구 쓸 수 없는 것은 맞지만, 다시 사용하려면 24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다른 특성에 비하면 리스크가 없는 거나 다름없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걸로 내게 반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저쪽도 알았을 거다. 요새포로 사격하는 대신 다른 수단을 꺼내 들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재차 멀리 위치한 제2사령부에서 빛이 번뜩였다. 요새포 두 개가 일제 사격을 가했다.
‘착각했다고 생각했나?’
적들은 자신들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용, 아니 오히려 반사되어 요새를 공격하는 것을 믿지 못한 것 같다.
‘믿음이 부족하네.’
그리고 불신의 대가는 작지 않았다.
웬만한 전함 이상의 화력을 지닌 보라색 열선이 거대한 투명 거울과 충돌한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는 거울. 내 몸의 두께보다 굵은 열선이 잘게 쪼개지고 수백, 수천 개의 얇은 빔으로 화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간다.
고도로 응축된 사이킥 파워의 비가 요새 위를 덮었다. 죽음의 비는 컬트들이 만든 시설, 새로 이주한 자들이 지은 건물을 가리지 않았다. 내게 귀가 있었다면 고막이 터졌을 정도로 강렬한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사이킥 파워의 빔 중 일부는 요새의 사령부가 있는 방향으로도 날아갔다. 원기둥 형태의 드높은 사령부의 중단 부근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그제야 놈들도 내가 반사 수단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는지 사격을 멈췄다. 다른 제1, 제3사령부도 요새포를 사용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카둔이 그랬지. 요새에 다른 계통의 무기도 있다고.’
요새의 주인 몬타나는 여러 종류의 함포를 배치해놨다고 했다.
물론 놈들이 가진 공격 수단 중 최고 화력을 지닌 것은 어디까지나 사이킥 요새포. 최강의 무기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다른 무기를 꺼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복잡화 분광체는 에너지 계열의 공격에만 유효하다. 물리적인 힘으로 타격을 주는 무기들에는 소용없다. 내 몸에 거의 피해를 줄 수 없는 텅스텐 탄환도 막지 못한다.
만에 하나 적이 다른 대(對)함선용 무기를 내게 쏴보고 유효하다고 판단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러니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복잡화 분광체의 지속시간은 5분밖에 안 되지만 저쪽은 그걸 모른다. 놈들이 사격을 멈춘 사이, 사령부를 공략해야 한다.
[즈즈즈 즈즈즈 즈 즈즈즈즈(쓰러진 사람들 좀 모아줄래?)]
「애기 만드는 거야?」
[즈(응)]
내 옆구리에 붙어 있던 26호는 알았다는 뜻을 담아 몸을 빛냈다. 녀석은 몸을 다시 커다랗게 키운 뒤, 촉수들과 사이킥 파워를 이용해 쓰러진 사람들을 집어 왔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상태로 무거운 중력에 짓눌린 자들이 26호에게 저항할 리 만무했다.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못해보고 변이자가 됐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거의 천 명가량 되는 변이자들이 각각의 사령부로 향했다.
그중 일부의 머리에는 ‘대혼란의 전령’ 효과를 전파시키는 ‘광기 폭탄’이 심어진 상태. 사령부에서 대응하려고 변이자를 죽일수록 혼란은 더 커지리라.
변이자를 만드는 것은 이쯤에서 마무리할까 생각하던 중, 익숙한 사념파가 내 괴물의 촉수를 간질였다.
「큰어른」
[즈으으으(아드하이?)]
사념파의 주인은 우리가 타고 온 배에서 하늘의 어머니를 지키는 아드하이였다.
「밖」「시끄러워」
[즈즈 즈즈즈(사냥 중이야)]
「부러워」「나」「심심해」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하늘의 어머니는 아직 안 끝났어?)]
「응」「알」「그대로」
에이모프가 진화할 때마다 고치에 들어가듯, 볼프도 신격화 단계를 상승시킬 때 몸 상태가 변한다.
‘알 모양의 보석상(寶石像)으로 변하지.’
신격화 단계에 처음 오를 때 정한 환수에 따라 석상을 구성하는 보석의 종류가 달라진다. 하늘의 어머니는 그리폰이니 마노로 이루어진 알 형태를 띠고 있을 거다.
[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 즈즈즈즈(곧 끝날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이해」「나」「못생긴 친구」「약속」「지키는 거」
기특하게 답하는 아드하이.
요새가 전부 정리되면 녀석에게 선물을 줄 만한 것이 있을지 찾아봐야겠다.
녀석과의 대화를 끝낸 나는 26호와 함께 군항을 벗어났다. 군항 주변의 구역들은 완전히 쑥대밭이 된 지 오래였다.
요새포의 공격을 반사한 여파로 인해 건물들은 죄다 붕괴되었다. 안에 있다가 도망쳐 나온 자들은 변이자들의 습격을 받았다.
바이러스에 의해 변이한 괴물들이 군항 주변도 한 차례 쓸고 가서 그런지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변신을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변이 바이러스 숙주’는 짜리몽땅한 다리와 두꺼운 몸통 등 체형 특징상 이동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그 상태로 대혼란의 전령까지 유지하면 움직임이 더 느려진다.
전투력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변이 바이러스 숙주 상태에서는 육체, 내부기관 계열 특성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변이자 수도 충분히 늘었겠다, 이 다음부터는 요새 사령부를 직접 칠 생각이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결정을 내린 나는 변신 상태를 유지하는 ‘유기적 진화’를 해제했다. 그러자 내 몸이 급격히 변하며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왔다.
풍뎅이 애벌레를 연상시킬 정도로 푸짐하게 찐 몸통은 얇아졌고, 짧은 다리들은 거미의 다리처럼 길쭉하게 늘어났다. 몸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검은색 촉수들 역시 모두 모습을 감췄다.
「큰애기 다시 변했어.」
내 모습이 거미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돌아오자 따라오던 26호가 아쉽다는 듯 빛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내 머리 위에 폴짝 올라탔다.
「그래도 큰애기는 항상 멋있어! 좋아!」
[즈즈즈(고마워)]
나는 원래대로 돌아온 날개 팔을 들어서 녀석을 살짝 쓰다듬었다. 녀석도 촉수를 꺼내서 나한테 악수하듯 날개 팔 끝의 손가락을 휘감았다.
‘몸도 돌아왔고, 움직여볼까.’
현재 PS-111은 생명 유지 설비를 총괄하는 제3사령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암약 중이다. 직접 사령부를 치는 것이 아니다. 녀석은 하위 시설인 환경 관리소부터 장악, 이를 기반으로 삼아 제3사령부의 시스템을 해킹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나와 26호가 노리는 목표는 다른 사령부, 그러니까 제1, 또는 제2사령부다.
‘반응이 제일 기민한 것은 제2사령부였지.’
요새포를 제일 먼저 쏜 것을 보면 그쪽에 수뇌부들이 모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목표를 정한 나는 날개 팔을 양옆으로 쭉 뻗었다. 갑각 안에 덮여 있던 피막이 밖으로 활짝 펼쳐졌다.
오랜만에 날개를 꺼낸 나는 거의 내 몸 길이에 육박하는 두 날개를 몇 번 휘저었다. 피막이 펄럭이며 공기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잔해들까지 밀어냈다.
‘좋아.’
간단히 점검을 마친 나는 날개를 크게 흔들었다. 엄청난 공기의 압력이 주변 건물을 무너트리고, 육중한 내 몸을 요새의 하늘 위로 띄웠다.
나는 날개를 조절해서 고도를 낮췄다. 날갯짓을 하며 아래를 내려다 보니 내 몸이 만들어 낸 그림자가 거리 위에 짙게 깔렸다.
“기이이이이”
“기이이”
“기이이이이이익”
“그기기기기”
거리를 가득 채우며 요새를 향해 달려가는 변이자들이 나를 보고 울부짖는다.
놈들에게 맞서 저항하는 해적들도 자기들 머리에 그림자가 깔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저, 저게 뭐야?”
“저런 것은 듣지 못했다고!”
그 감정을 간단히 묘사하자면 ‘경악’이었다.
압도적인 존재를 목격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 나는 저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기로 했다.
나로부터 반경 500m의 영역에 대혼란의 전령이 내리깔린다. 인간의 감각을 왜곡시키고 미치게 만드는 강력한 사이킥 파워가 저항하는 해적들의 머리 안에 파고든다.
“으, 으아아악! 도망쳐! 도망쳐!”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엄마! 엄마! 무서워! 엄마!”
앞에는 변이자 떼거리, 위에는 수십m에 달하는 비행 괴수. 거기에 정신을 오염시키는 사이킥 파워까지 겹쳐지자 해적들의 진영은 급격히 붕괴되었다.
“도망치지 마! 맞서 싸…쿠억?!”
“히, 히히히!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어! 히히히히히!”
“키, 키히히히히히,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그뿐만이 아니다. 정신이 붕괴하다 못해 아예 미쳐 버린 해적들이 동료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해적들과 힘을 합쳐 변이자를 막던 용병들은 자신들이 단련한 살인 기술을 동료에게 펼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광기가 악성 종양처럼 거리에 퍼져나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가 만든 변이자 무리들은 거리와 건물 위를 질주하며 사령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대혼란의 전령이 만든 미치광이들의 목표를 수정했다. 옆자리에 있는 동료의 배에 칼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목표를 노리라고 말이다.
예를 들면, 그들에게 이런 불행한 일을 시킨 장본인들.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죽,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야.”
“죽이고 싶어! 빨리! 빨리 피를!”
나는 위에서 그들이 먹고 싶어 하는 당근의 위치를 조절했다.
미친 해적, 살인광 용병들이 변이자들 뒤를 따라갔다. 방금까지 서로 물어뜯고 총알을 박아 넣은 놈들이 지금은 사이좋게 미쳐서 새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농도 짙은 광기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는 제2사령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