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74 - 대혼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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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사령부 전체 폐쇄 완료. 실드 활성화합니다.”
“연회장 내 VIP, 전부 지하 벙커로 대피 완료. 상층의 VIP 대피 진행 중.”
총관리실에서 수십 개체의 안드로이드들이 머리 뒤에 케이블을 꽂은 채 제2사령부을 통제 중이었다. 요새의 주인 몬타나 마르시오는 초조한 얼굴로 뒤에서 로봇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 안드로이드들은 전부 스타유니언에서 만들어진 고급 로봇들이다. 함선 컴퓨터 보조용으로 제작된 안드로이드를 요새 관리용으로 개조한 물건들이다.
마르시오 카르텔이라고 해도 궤도거주지를 관리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 정도 높은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스페이스독으로 넘어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몬타나는 천문학적인 크래딧을 들여 스타유니언의 고사양 안드로이드들을 다수 구매했다. 거기에 그들이 관리할 다양한 무기들까지도.
“대공용 충격포 및 방위용 레일건 활성화 및 장전 완료.”
“적에게 사이킥 파워 계열 공격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탄환을 교체합니다.”
“대구경 고속충격탄, 확산탄 미사일로 교체 중.”
“사령부 휘하의 순찰용 초계함의 무장도 동일한 사양으로 변경함.”
과연 투자한 보람이 있는지, 안드로이드들은 위기에 매우 빠르게 대처하고 있었다. 강력한 방어 시설인 요새포가 무력화됐지만, 바로 준비해놨던 대체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몬타나는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의 안목이 옳았다는 안심,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 말이다.
‘젠장! 이번 사업만 잘 풀리면 이곳을 뜰 생각이었거늘.’
최근 아웃스페이서의 준동, 대형 카르텔들의 갑작스러운 소멸 등등 뒤숭숭한 소문이 여기저기 퍼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로비를 통해 얻은 케샤 아르마의 관리권은 너무나도 불안정했다.
그렇기에 경매 중개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메가콥의 권역 내에 있는 작은 행성 하나를 구매할 계획이었다. 합법적인 영역에서 사업을 한다면 메가콥의 보호를 받기 수월해진다. 자연히 그의 안전도 보장될 거고.
그랬었는데 그 계획이 완전히 엉망이 됐다.
밖에서 조직원들을 감염시켜 기괴한 괴물로 만드는 정체불명의 존재. 아웃스페이서의 괴물인지, 어떤 정신 나간 메가콥 고객이 데려온 실험체인지는 알 수 없다.
뭐가 됐든 놈 때문에 적지 않은 손해를 봤고, 이제는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탈출을 준비해야 하나?’
행성 궤도를 떠도는 케샤 아르마에는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수단이 군항 말고 하나가 더 있다. 정확히 그들 머리 위에 떠 있는 행성까지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몬타나는 최후의 수단을 떠올리며 총관리실의 모니터들을 바라봤다.
화면 너머에는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싸울 준비를 하는 그의 부하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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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내부의 어디 구역에서도 보일 정도로 세 개의 원통형 기둥들.
케샤 아르마를 지탱하는 세 개의 사령부 중 하나가 완전 무장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저 차폐벽은 단단하지.’
사령부가 뚫리면 요새도 끝장이기에 이를 보호하는 벽 또한 단단할 수밖에 없다.
사이킥 파워의 위력을 반감시키는 블랙실버 기반에 각종 고강도 금속들을 섞어 만든 벽이라 뚫기가 꽤 까다롭다. 내가 쏘는 사이킥 브레스와 산성 브레스라면 뚫을 수 있겠으나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의 약점도 적에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내 육신이 튼튼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아무 공격이나 맞고 다닐 생각은 없다.
언제나 말하지만, 에이모프에게 정면 싸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을 기만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곳에서 급습하는 것. 그게 에이모프의 싸움이니.
나는 발아래에 있는 변이자와 광인 군단에게 전진을 명했다. 육신이 변이된 자와 정신이 오염된 자들이 뒤섞인 혼종의 군대가 강철의 요새를 향해 질주한다.
그들과 요새 간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방해는 없는 상황.
하지만 케샤 아르마의 방어 시설은 요새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통형 사령부를 감싸는 두꺼운 차폐벽. 그 틈 사이로부터 불꽃들이 번뜩인다. 강렬한 폭음과 그에 뒤따른 폭발이 변이자 무리를 휩쓸었다.
‘지금 거는 충격포인 것 같고….’
직격당한 변이자들은 그대로 분해됐고, 스친 놈들도 팔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고작 이런걸로는 변이자를 막을 수 없다.
“기기기기기”
“그기이이이”
다리가 떨어진 변이자는 대신 튀어나온 촉수를 다리 삼아 달렸고, 허리가 끊어진 놈은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두 팔을 이용해 뛰었다.
그러는 사이, 사령부에서 다시 빛이 반짝였다. 막대한 양의 전자기력이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밀집된 변이자 군단 가운데에 붉은색 줄이 생겼다.
초속으로 날아온 투사체가 변이자와 용병들을 꿰뚫으며 고깃덩어리로 만든 것이다.
‘저게 비싸게 구했다는 그 레일건이구나.’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레일건은 메가콥의 우주요새에 주로 사용되는 무기다. 나처럼 에너지 계열 공격에 저항력이 있는 적을 상대할 때 활약하게 된다. 메가콥의 권역, 그중에서도 태양계에 진입하면 지겨울 정도로 자주 보게 될 거다.
카둔이 말하길, 저 레일건은 마르시오 카르텔이 요새를 점거한 뒤 각 사령부마다 하나씩 설치했다고 한다. 위력이 많이 떨어지는 소형 모델 세 개를 구매하는데도 천문학적 비용이 소모됐다나.
‘하긴 레일건이 비싸긴 하지. 유지비도 많이 들고.’
일반 해적과 비교하면 실례일 정도로 마르시오 카르텔은 많은 준비를 했다.
다만 상대가 나라는 것이 그들의 불행이라 해도 좋으리라.
‘레일건은 휴식 상태에 들어갔고.’
사령부의 차폐벽 사이마다 배치된 충격포가 연신 불을 뿜는다. 내가 만든 변이자와 광인 군단은 포탄에 맞아 죽으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만든 변이자만 해도 수가 천을 넘는다. 여기에 ‘대혼란의 전령’에 의해 광기에 빠진 거주민들이 속속 합류하는 중이다.
죽는 수만큼이나 빠르게 늘어나는 광기의 군단은 어느새 사령부의 차폐벽 앞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 앞으로는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변이자들의 날카로운 발톱, 용병과 해적들이 든 무기로는 차폐벽에 흠집도 낼 수 없었으니까.
사령부 측에서는 접근한 적들을 향해 클레이모어 비슷한 미사일들을 갈기기 시작했다. 사람 머리만한 확산탄으로 가득 찬 미사일이 공중에서 폭발할 때마다 그 아래에 있는 변이자와 용병들이 육편이 됐다.
“끄아아아아악! 씨바아아아알!”
“죽일 거야! 이 개씨부럴! 크아아아악!”
광기에 빠진 용병, 해적 무리가 비명과 같은 괴성을 내지른다. 정신이 오염되었지만 그렇다고 고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들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용병, 해적이라면 적들이 주춤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적은 내 예상보다 훨씬 단호하게 나오고 있었다.
사령부에서는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지, 그들 머리 위에 거침없이 확산탄을 쏴댔다. 붉은색 불길이 차폐벽을 그을릴 때마다 수십 명이 죽어나갔다.
‘놈들이 벌써 죽으면 곤란해.’
광기 폭탄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려면 사령부 내부에 들어간 뒤 죽어야 한다.
‘슬슬 시작해볼까.’
사령부가 다른 적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나는 땅에 내려앉았다. 커다란 피막을 접어서 날개 팔의 빈 갑각 안에 수납한 다음, 고개를 낮춰 주둥이 끝을 바닥에 가까이 댔다.
‘이 근처인데.’
보조기관으로 바닥을 더듬던 나는 한쪽 벽이 무너진 건물 앞에서 멈췄다. 게임 속 요새와 달라진 점이 많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맞을 거다.
나는 날개 팔로 벽을 후려쳐 건물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그리고 잔해 위에 대고 입을 크게 벌렸다.
목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진균샘이 작동하며 대량의 산성액을 토해낸다. 녹색의 액체는 폐허를 집어삼키는 것으로 모자라 바닥까지 파고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적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다만 눈먼 충격탄이 내 근처로 날아오기는 했다.
그래도 걱정되지는 않는다. 26호가 나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큰애기 방해하지 못하게 내가 치워줄게.」
내 머리 위에 올라가 있던 녀석이 다른 건물들을 무너트린 뒤 그 잔해를 공중에 띄웠다. 날아오는 포탄들은 허공에서 회전하는 장애물과 부딪쳐 폭발했다.
‘기특한 녀석.’
역시 오랫동안 함께 다녀서 그런지 척하면 척이다.
나는 26호의 보호를 받으며 굴착 작업을 계속했다. 진균샘에 저장된 액체를 다 쏟아 낸 뒤에는 등에 달린 포신을 이용해 폭발성 체액이 담긴 포자를 안쪽에 던져 넣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지하 보관소보다 이쪽은 더 깊은 곳까지 뚫어야 한다.
뒷머리갑각과 목까지 걸쳐 갈기처럼 주렁주렁 달린 괴물의 촉수가 내 의지에 맞춰 흔들린다. 촉수들이 만든 고농도의 사이킥 파워가 내 주둥이 앞에 응축되어 형태를 이룬다.
활활 타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보랏빛 구체가 거대한 불길이 되어 내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뿜어졌다. 그 엄청난 화력에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내 주변 구역이 크게 흔들렸다. 멀쩡하던 건물들도 폭삭 주저앉았고, 갈라진 바닥에서 사이킥 파워의 불길이 용암처럼 솟구쳤다.
‘좋아.’
에이펙스 생물들조차 태워 죽인 강렬한 사이킥 파워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검은 구덩이로부터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학적 반응이 만들어 낸 독한 연기 속에서 나의 보조기관이 낯익은 냄새를 맡았다.
공포에 빠진 인간의 냄새. 그건 내가 바라는 목표와 이 구덩이가 가깝다는 신호였다.
‘이게 사령부 차폐벽의 약점이지.’
차폐벽은 지상 위에 튀어나온 원통형 기둥 형태의 사령부 전체를 보호한다. 그 말은 즉 지하 안쪽에 심어진 시설물, 가령 지하 벙커 같은 곳은 지키지 못한다는 것.
적이 세운 벽이 견고하다면 돌아가면 그만이다.
‘게임에서는 아예 지하까지 차폐벽과 동일한 재질로 도배하는 놈도 있었지만….’
레일건 하나 사는데도 허리가 휘는 해적들이 그렇게까지 하기는 쉽지 않을 터.
설령 적이 그렇게 한다고 해도 뚫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한 것일 뿐.
나는 사이킥 브레스를 쏘느라 취소된 대혼란의 전령을 다시 활성화했다. 나로부터 반경 500m 내에 있는 변이자들이 초능력의 파장에 반응했다. 사령부의 차폐벽을 정신없이 때리던 이들 중 일부가 나의 인도에 이끌려 구덩이 위로 뛰어내렸다.
나도 26호와 함께 심연 속 구덩이로 몸을 날렸다.
저 아래에 있는 벙커와 그곳이 가장 안전한 곳일 거라 믿는 자들.
그들에게 대혼란이 닥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