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76화 (277/400)

Episode 276 - 붕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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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큰 사업을 앞두고 보안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카르텔들과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다.

불법과 합법 둘 다 발을 걸치고 있는 몬타나는 불필요한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해적의 방식이 아니라 사업가의 방식으로 카르텔을 운영해나갔다.

그 결과 그는 스페이스독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대한 카르텔을 구축했다. 그의 방식은 충분히 성공적이라 해도 좋으리라.

적어도 오늘까지는 말이다.

방금 막 제2사령부의 개인 엘리베이터에 오른 몬타나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날뛰고 싶다는 욕구를 간신히 참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도 그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매끄러운 피아노의 선율 사이에 섞여 있는 총소리가 현실을 자각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요새는 몰락하는 중이다.

“…씨발.”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욕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가 낮게 욕설을 읊조리자 뒤에 선 경호원들이 움찔했다.

지금 공격받는 것은 제2사령부만의 일이 아니다. 제3사령부하고는 연락이 아예 두절됐고, 제1사령부의 지원군들은 사방에 깔린 기괴한 괴물들 때문에 고립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요새를 탈출하는 길 밖에 없다.

각 사령부의 110층에는 요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 수단이 있다. 오래전 제국에서 요새를 관리할 당시, 사령부의 관료들이 행성을 시찰하기 위해 만든 개인수송기다.

일종의 로켓 형식으로 행성 특정 지점에 바로 사출되는 형식이라서 매우 빠른 속도로 행성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수송기 자체가 전함에서나 사용하는 강화 실드로 보호받고 있어서 안전하기도 하다.

다만 조종이 불가능하고 정해진 지점에만 착지가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착지한 뒤에는 다른 구조대를 기다리는 길 밖에 없다.

‘다른 카르텔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무리다.’

그가 총관리실을 떠난 결정적인 이유는 적이 지하 벙커가 있는 곳을 뚫고 들어왔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 무자비한 괴물이 그곳에 있는 VIP들을 내버려 뒀을 리 없다.

요새는 무너지는 중이고, 그의 뒷배를 봐줄 VIP들도 사라진 상황. 다른 카르텔에서는 절대로 그를 돕지 않을 거다.

‘…아니 잠깐.’

연회실에 있던 자들은 모두 끝장났지만, 위층에 머무는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그가 가장 귀하게 대한 여성 컬트.

그녀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연회장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타인과 조우하는 것을 꺼려하는 그녀라면 아직 위에 있을 거다.

여성 컬트는 가르멜다의 가주가 잘 대접하라고 직접 언급한 존재. 그녀와 함께 행성에 숨어 있으면 분명 가르멜다에서 구조의 손길을 보내리라.

디스플레이에 뜬 숫자가 막 90대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숫자 100을 눌렀다. 그곳에 그의 마지막 보험이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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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뒈져어어어!”

“물러나! 물러…아아아악!”

쏟아지는 총탄 소리 사이에 간간이 섞이는 욕설과 비명들.

익숙한 소리가 만드는 진동을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감지해낸다. 그리고 거기에 달콤한 향기가 한 술 더 첨가된다.

침식 촉수들이 복도의 갈림길 뒤에 엄폐 중인 해적들을 끄집어냈다. 그들이 저항하기 전, 촉수 끝의 여섯 개의 부속지가 붙잡은 고기를 잘게 해체했다.

뜨뜻한 피, 원래라면 밖에 나와서는 안 되는 내장과 살점 조각. 그 향취를 음악으로 비교한다면 그것은 개성 있는 현악기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우아한 선율과 같았다.

‘인간이었다면 진저리를 쳤겠지만.’

실제로 동료들의 피를 뒤집어쓴 해적들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 보였다. 멍하니 육편이 된 동료를 지켜보던 그들은 내 다리 사이에서 튀어나온 변이자들의 손에 잘게 찢어졌다.

“그기기기기”

머리와 함께 뽑힌 촉수를 들고 포효하는 변이자. 다른 녀석들은 자기도 트로피를 챙기기 위해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어떻게 됐으려나.’

PS-111이 제3사령부를 상대로 해킹에 들어간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요새에 오기 전 몇 차례 개조를 거친 녀석이다. 지금쯤이면 제3사령부의 시스템 방호벽을 뚫고 있으리라.

‘끝나려면 10분은 걸리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밖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뱃고동과 비슷한 그 소리는 이 요새에 있는 자라면 어디에 있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리고 바닥을 적시던 피와 살점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다가 다시 바닥에 쏟아졌다.

‘성공했구나!’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진 현상은 요새에서 유지되던 중력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신호다. 그 말은 즉, PS-111이 요새의 생명 유지 장치를 전부 장악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요새 전체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굉음. 저것도 내게 호신호다.

‘산소를 배출시키고 있어.’

나도 게임에서 비슷한 짓을 해서 잘 알고 있다.

녀석은 요새 전체에 공급되는 산소를 차단하는 것으로 모자라 외부로 유출하고 있다. 제1, 제2사령부에서 어떻게든 산소를 과잉 공급해 막아보려고 해도, 나가는 양이 들어오는 양보다 많은 만큼 쉽지 않을 거다.

한 시간쯤 지나면 이 요새의 모든 생물이 산소 부족으로 인해 쓰러지겠지.

‘이 이상 해적 병력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어.’

남은 것은 변이자들과 부지런히 광기 폭탄을 전염시키는 용병들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일을 해야겠다.

‘탈출 수단의 정리.’

현재 대규모 함선이 정박된 군항은 초토화됐다. 이 상황에서 녀석들이 탈출하려면 딱 하나밖에 없다.

‘사령부에 있는 수송선.’

케샤 아르마는 광산 행성의 궤도를 따라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우주시설물. 사령부에는 광산 행성 직행의 초고속 수송기가 배치되어 있다. 관할 행성 내에 문제가 없는지 요새의 관료들이 시찰할 때 이용하는 일종의 우주 로켓이다.

원통형 사령부 꼭대기로부터 요새를 덮은 강화유리까지 이어진 긴 사일로 위에서 수송선이 발사되는 형식으로, 수송선 자체를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이를 이용하면 1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광산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만약 사령부의 생존자들이 그걸 이용하면 귀찮아져.’

행성까지 따라 내려가서 놈들을 잡아야 하니까 말이다.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현재 나는 진화를 앞두고 있는 몸.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은 피하고 싶다.

‘수송선의 위치가 꼭대기였나?’

사령부의 꼭대기는 110층. 지금 내가 있는 곳은 3층이다.

‘부수면서 올라가야겠네.’

[즈즈즈즈 즈(이쪽으로 와)]

「응.」

나는 머리 위에 앉아 있는 26호의 위치를 옮겼다. 녀석을 가슴쪽 팔로 살짝 안은 뒤, 천장에 닿는 중인 생체 대포를 활성화시켰다.

폭발성 액체를 담은 포자가 포신을 떠나자마자 천장에 부딪쳐 폭발했다. 내가 있던 층의 천장 중 3분의 1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등 위의 갑각과 머리에서 후끈한 느낌이 살짝 들었지만 딱히 큰 손상은 없었다.

‘문제는 없을 것 같네.’

나는 빠른 속도로 건물 내부를 부수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씹?!”

“피해…으악!”

위에서 복도에 엄폐물을 잔뜩 깔아 두고 변이자들과 싸우던 해적들은 바닥을 부수며 튀어나온 나 때문에 박살이 났다. 몇몇은 구멍 아래로 추락해 버렸고, 몇몇은 잔해에 깔려서 버둥거리다가 변이자들에게 찢겨 죽었다.

「큰애기 안 아파?」

머리와 등 위에 가득 쌓인 잔해를 보고 26호가 걱정했다.

[즈즈즈즈 즈즈즈(튼튼해서 안 아파)]

「튼튼해! 튼튼!」

내가 쌓인 잔해들을 가뿐히 털어버리자 녀석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좋아한다.

그 후에도 나는 폭발성 포자로 천장을 부수거나 날개 팔로 강하게 후려쳐 부수거나 하는 방식으로 천장을 무너트리며 올라갔다.

때로는 해적이 점거한 복도를, 때로는 사치스러운 장식품들로 치장된 거대한 방을, 때로는 물이 둥둥 떠다니는 수영장을. 건물 각 층에 10m를 훌쩍 넘기는 구멍이 뚫렸지만 사령부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마 건물 외벽을 둘러싼 차폐벽 때문이리라.

사령부 내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올라가던 나는 어느새 꼭대기에 가까워졌다.

‘슬슬 도착인가.’

화려하게 꾸며진 100층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층을 나누는 벽이 다른 곳에 비해 배 이상 두꺼워졌다. 수송선이 위치한 층과 가까워져서 그런 거다.

‘그래 봐야 산성 브레스 앞에서는 의미가 없지.’

두껍다고 해도 차폐벽 정도의 단단함은 아니다. 나는 주둥이를 벌려서 강산성을 띠는 진균 브레스를 토해냈다.

고전 SF호러 영화에서 크리쳐들이 산성피로 실험실을 탈출할 때처럼 천장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다. 단순히 한 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 위층에도 브레스에 의해 녹아내린 흔적이 보였다.

나는 녹아내린 벽을 뚫고 위로 계속 올라가자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했다.

사령부의 높이 이상으로 길게 이어진 사일로가 나를 맞이한다. 지금은 차폐벽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본래 이곳에서는 요새의 전경과 강화 유리 너머에 보이는 행성까지 볼 수 있다.

금속 벽으로 몇 겹 둘러싸인 사일로 아래에 작은 크기의 수송선이 보인다. 그 곁에 막 탑승을 준비 중이던 소수의 인원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상당히 뚱뚱한 몸매를 가진 해적과 그를 경호하는 경호원 셋, 그리고 머리에 사슴뿔이 달린 여성 컬트.

‘사슴뿔?’

사슴뿔 컬트와 몇 번 싸웠기에 흔할 것 같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슴뿔 컬트는 컬트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사이킥 파워 사용자이자 동시에 최고의 귀족층이다. 그 숫자가 적을뿐더러 애초에 대외적인 활동도 자주 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한 자들 중 사슴뿔을 가진 컬트는 뮤리엘과 제이슨. 둘 다 플레이어였으니 일반적인 컬트라 볼 수 없다.

‘혹시 플레이어인가?’

그러고 보면 카둔이 말했다. 마르시오 카르텔의 고객 중 상당한 힘을 지닌 실력자가 있다고.

‘일단 수송선부터 처리하자.’

상대가 플레이어든 그렇지 않든 퇴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즉시 사이킥 브레스를 준비했다.

보라색으로 물든 괴물의 촉수가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오직 용들에게만 허가된 막대한 권능을 모방한 보라색 열선이 수송선을 향해 날아간다.

막강한 실드를 갖추고 있는 수송선이나 현재는 실드가 비활성화된 상태다. 당연히 나의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이후 일어난 일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사슴뿔 컬트가 오른팔을 위로 쳐들자 보라색 실로 이루어진 원형 만다라가 펼쳐지며 사이킥 브레스를 막아 냈다. 아니, 막아 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았다.

초능력의 불길은 만다라에 닿자마자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그대로 소멸해 버렸다.

만다라는 돔 형태로 구부러지며 수송선과 그녀 주변의 일행을 덮었다.

‘무슨 기술이지?’

내가 아는 방어 기술 중 지금처럼 부드럽게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기술은 몇 없다.

레드 갤러곤이 쓰는 레드아머라든가 볼텍스원의 방어 기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적은 어디까지나 컬트. 일반적인 사이킥 파워 기술 중 사이킥 브레스를 막아 낼 수 있는 기술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반탄력이 느껴지지 않았어.’

아드하이의 경우, 레드아머로 공격을 방어하는 것과 별개로 충격 때문에 몸이 밀려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반면 상대는 마치 나의 브레스의 성질을 조작, 무효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복잡화 분광체’를 썼을 때처럼 말이다.

‘설마?’

내가 모르는 기술, 해적의 요새에 돌아다니는 사슴뿔 컬트.

이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 보면 답은 하나뿐이다.

‘컬트 랭커.’

“…5위.”

차가운 인상의 컬트가 나를 보고 서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예상외의 장소, 예상외의 상황에서 마주친 적은 나와 같은 랭커였다.

그녀가 활짝 펼친 왼손으로부터 강렬한 사이킥 파워가 나를 향해 닥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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