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77 - 붕괴(2)
사슴뿔 컬트로부터 뿜어져 나온 사이킥 파워가 내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26호가 주로 사용하는 ‘속박’, 고급 사이킥 기술인 ‘그래비티 컨트롤’을 짧은 순간에 연달아 펼친 거다. 내 움직임을 봉쇄한 뒤, 강한 공격 기술을 날리려는 것이리라.
물론 굳이 상대의 의도를 맞춰줄 필요는 없을 터. 대응하려고 했는데, 내 가슴쪽 팔에 안겨 있는 26호가 나보다 먼저 나섰다.
씨 데몬의 사이킥 파워가 폭발적으로 방출되며 나를 휘감은 사이킥 파워를 제거했다. 한순간에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 나는 날개 팔을 활짝 펼쳐 사일로 위로 날아올랐다.
거의 동시에 내 꼬리 아래로 무지개 색깔의 구체들이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구체들은 사령부를 감싸는 차폐벽에 부딪쳐 소멸했다.
상대가 쏜 기술은 컬러 밤. 적중한 상대에게 무작위로 부정적 효과를 유발시키고 큰 피해를 주는 기술이다.
사일로 중간에 거꾸로 매달린 나는 등의 생체 대포의 각도를 조절했다. 목표는 컬트 랭커와 수송선. 폭발성 진액이 가득 담긴 포자 2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내 공격은 무효로 돌아갔다. 포자들은 상대가 펼친 보라색 만다라에 부딪치자마자 사라졌다.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는 것 같은 그 모습은 사이킥 브레스가 사라질 때와 비슷했다.
‘에너지만 막는 게 아니야.’
한 차례 공격을 주고받은 뒤, 우리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상대는 내 정체를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방금의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신중하게 검토하려는 것일 터.
나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다. 나는 사일로에 매달린 채 그녀를 면밀히 주시했다.
‘컬트 랭커가 왜 여기에 있지?’
케샤 아르마에 오기 전 들은 소문에 의하면 이 요새가 해적들의 손에 들어가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상태다. 게임처럼 컬트의 요새였다면 모를까, 현 상황에 컬트 랭커가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뮤리엘처럼 해적 같지도 않고.’
그랬으면 카둔이 자기 두목이 컬트 해적이라고 했겠지.
‘아니면 제이슨이 말한 동료들 중 하나인가?’
제이슨의 기억하는 컬트 랭커는 총 두 명. 하나는 다른 파벌이라서 놈도 자세히는 모르고, 나머지 하나는 제국 내에서 같이 활동하는 자라고 했다.
마침 상대도 사슴뿔 컬트. 제이슨이 아는 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이 신시아라고 했지.’
사슴뿔 컬트, 신시아는 제이슨보다도 뛰어난 강력한 방어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같이 움직일 때마다 서포터 역할을 주로 했다고.
랭커라고 해서 모두가 직접적인 전투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제이슨처럼 공격적인 기술을 즐겨 쓰는 플레이어가 있는 한편, 아군 지원 및 보호에 특화된 자도 있다.
‘방어에 특화된 랭커라.’
그녀와 그녀 뒤의 해적들, 수송선까지 덮고 있는 보라색 만다라.
제이슨이 말하길, 저 능력은 자신이 펼치는 방어 기술보다 성능이 우월하다고 했다.
실제로 보라색 만다라는 에너지 계열 공격인 사이킥 브레스만 막아 낸 것이 아니라 폭발 포자도 똑같이 무효화시켰다. 들은 정보에 따르면 그것 외에도 다양한 계통의 공격들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저 만다라는 여러 각도에서 들어온 공격도 수월히 방어할 수 있도록 사용자가 조율할 수 있다. 지금도 그녀는 만다라를 돔 형태로 만들어서 자기와 주변인들을 보호하는 중이다.
‘복잡화 분광체처럼 설치형 기술인가?’
게임에서 설치형이면서 방어 효과를 발휘하는 기술이나 특성은 매우 드물다. 그나마도 보스급 생물 전용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플레이어가 쓸 수 있는 설치형 방어 기술 및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제한이 매우 까다롭거나 효과가 굉장히 떨어진다.
‘문제는 약점인데….’
안타깝지만 제이슨은 저 여성 컬트의 특전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지는 않았다.
인면수가 되면서 기억 부분에 이상이 생긴 탓도 있고, 놈 자체가 오만하다 보니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도 있었다. 놈의 성격이라면 사슴뿔 컬트를 편한 버프 자판기로 여겼을 가능성도 있고.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어.’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적의 복장부터 살폈다.
‘방어구는 평범해.’
그녀는 품이 넓은 스톨라(Stola)와 비슷하게 생긴 옷을 걸치고 있었다. 저건 컬트 귀족들이 일상에서 주로 입는 옷이다.
보아하니 저쪽은 나의 정체를 아는 것과 별개로 내가 이곳에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다. 게임에서 케샤 아르마는 에이모프의 진화에 크게 도움이 되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나도 노예시장에서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다면 이곳에 올 생각을 안 했을 거다.
‘그나마 적이 약한 상태일 때 조우해서 다행이야.’
「큰애기야. 저 애 무서워.」
그때 가슴팔에 안겨 있는 26호가 귓속말을 하듯 얕게 파장을 보냈다. 사이킥 파워 감지와 운용에 관해서는 나보다 26호가 더 민감하다.
사실 나도 녀석과 비슷하게 생각 중이다. 복장이 허접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보조 계열에 특화된 상대라고 해도 랭커는 랭커. 쉬운 적이 결코 아니다.
나는 적을 경계하면서 26호에게 물어봤다.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다른 애들 잡는 것처럼 쟤도 붙잡아 둘 수 있어?)]
「해볼게.」
녀석의 사이킥 파워가 몰래 뿜어져 나와 사일로의 금속 벽에 스며든다. 포식자가 갈대밭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은밀히 기어가던 사이킥 파워가 일제히 만다라의 돔 위를 덮쳤다.
하지만 앞의 두 사례와 마찬가지로 26호의 사이킥 파워도 돔에 가로막혀 사라졌다.
[즈즈즈(안 되네)]
「저 삐릿삐릿한게 방해해.」
나는 작은 팔로 시무룩해 하는 녀석을 쓰다듬었다.
‘똑같은 공격인데도 안쪽에서 쏜 것은 통과, 바깥에서 들어온 것은 불가.’
26호가 쓴 속박이나 저쪽에서 쓴 속박이나 사이킥 파워의 총량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메커니즘 자체는 동일하다. 그런데도 안 되는 것을 보면 사용자의 공격만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보인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어.’
이 사령부만 해도 내 사이킥 브레스를 버틸 수 있는 차폐벽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결국 뚫리지 않았는가. 저 방어 기술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 되는 성능을 지녔다고 해도 분명 어딘가에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접힌 날개의 피막을 다시 넓게 펼쳤다. 금속 벽에서 떨어진 내 몸이 사일로 속에서 활공했다.
신시아가 만든 요새에 과연 어디에 허점이 있을지, 한번 살펴봐야겠다.
-
“저, 저게 뭡니까?”
“…이 요새를 공격한 괴물입니다.”
“비, 빌어먹을! 어디서 저딴 괴물이….”
“놈은 매우 강력한 적. 절대 이 에너지장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습니까?”
“가만히 계시는 것이 제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뒤에서 경악하는 몬타나를 안심시키는 것과 달리 신시아의 속은 매우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냉정을 유지하려고 해도 상황이 몹시 심각하다 보니 마음을 가다듬기 어려웠다.
그녀가 5위, 그러니까 에이모프 랭커와 겨룬 경험은 단 두 번. 즉 이번이 세 번째다.
에이모프와 직접 겨룬 경험은 적으나, 놈의 전설적인 악명에 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진화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결국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올린 제이슨.
놈과 싸우다가 식민지 행성 3개를 잃고 패배한 아키라.
놈이 기계위원회를 전멸시키는 바람에 2주 동안 대수령으로 진급하지 못한 주바카.
‘지배파’에 속하는 멤버들은 모두 에이모프에게 두려움에 가까운 원한을 품고 있다.
문제는 지배파 멤버들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녀가 속한 진짜 파벌인 ‘귀환파’의 멤버도 그녀에게 경고했다.
절대로 놈과 마주치지 말라고.
싸우게 될 것 같으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말이다.
그 경고를 남긴 멤버는 누구보다도 에이모프와 많이 겨뤘던 자였다. 그는 5위보다 랭킹은 낮지만 천재적인 두뇌 플레이로 놈을 여러 번 꺾었다.
그런 뛰어난 실력자조차도 무조건 도망치라고 말했다.
‘도망칠 수 있으면 진작 도망쳤겠지.’
놈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수송선을 노렸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퇴로부터 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만약 그녀가 가진 특전, ‘위상 방어의 만트라’가 아니었다면 쉽게 막아 내지 못했을 거다.
일정 지역에 보라색의 만다라로 이루어진 보호막을 설치하는 위상 방어의 만트라는 매우 강력한 방어 기술이다. 물리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에너지 계통의 공격, 볼텍스원 등의 방어 불가 공격 등까지 전부 방어한다.
이 능력 덕분에 신시아는 지배파의 멤버들이 플레이어 사냥을 할 때 서포터 역할로 주로 참여했다. 보호막의 범위는 최대 반경 10m로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소수의 멤버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아예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좁은 범위 말고도 위상 방어의 만트라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물론 그녀는 그 부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활동한 플레이어들도 꽤 나중에 깨달은 약점이기 때문이다. 조우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은 에이모프가 이를 알아차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오히려 지금은 위상 방어의 만트라보다 다른 걸 걱정해야 한다.
그녀의 손에는 최강의 방패가 있으나, 무기가 변변치 않다. 그녀의 힘으로 놈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놈이 데리고 있는 펫.’
에이모프 가슴에 안겨 있는 작은 분홍색 생물. 버블아메바를 닮은 저 생물의 정체는 씨 데몬이다.
사이킥 파워의 통제에 능한 저 준보스급 생물을 상대로 초능력전을 펼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다.
실제로 그녀가 쉬지 않고 에이모프에게 사이킥 기술들을 걸고 있지만 씨 데몬 때문에 전부 무력화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놈은 온갖 특성들을 사용하며 그녀의 보호막을 공략 중이었다.
등에 달린 대포에서 날아온 생체 폭탄, 꼬리의 집게발 안쪽에서 발사되는 가시침 등은 게임에서도 익히 봐 왔던 특성이었다.
하지만 놈의 몸이 기분 나쁜 색깔로 변한 상태에서 발사된 거품 덩어리는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불길한 거품은 보호막에 막혀 소멸되었다.
놈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포기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 갔다. 구체 효과가 소실되자마자 놈이 그녀의 지근거리까지 날아들었다. 여러 개의 팔 중 날개 대신 다른 팔이 그녀의 보호막을 할퀴었다.
「그르르르」
보호막에 닿은 에이모프의 발톱이 아이스크림이 녹듯 사라져 버렸다.
놈과 싸우고 처음으로 부상을 입혔으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그녀는 놈을 향해 재빨리 왼손을 펼쳤다. 보라색 에너지로 이루어진 거대한 낫이 놈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저 낫의 이름은 ‘리퍼스 핸드’. 중장갑의 적을 베는 것에 특화된 사이킥 기술로 전함의 전면부 장갑도 쉽게 잘라낸다. 이거라면 놈의 머리갑각도 쉽게 부술 수 있을 터.
낫이 놈의 머리를 막 두 동강 내려는 순간, 놈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튼다. 낫은 놈의 비대칭 뿔과 맞부딪치자 그대로 분해되어 버렸다.
‘갤러곤의 뿔!’
사이킥 기술 중 방어 기술만 무력화시키는 줄 알았는데 저런 식으로 응용할 줄은 몰랐다. 당황한 그녀가 재차 반격하려 했지만, 놈이 한 발자국 빨랐다.
놈의 흉측한 아가리가 활짝 벌어지고 그 안에서 녹색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고름 덩어리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모습에 그녀는 순간 움찔했다.
“씨발 저게 뭐야?!”
“…혐오스럽군.”
그들이 느끼는 생리적 혐오감과 별개로 위상 방어의 만트라는 건재했다. 액체의 단 한 방울도 그녀에게 닿지 못하고 주변 바닥에 쏟아졌다.
만트라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금속 바닥이 독한 연기를 내뿜으며 녹아내렸다.
‘…산성 액체야.’
산성 브레스는 신시아도 처음 보는 특성이다. 놈의 새 특성에 대해 머리에 잘 새기는 한편, 그녀는 재차 리퍼스 핸드를 날렸다.
이번 목표는 놈의 다리. 보라색 낫이 자욱하게 깔린 연기를 베며 날아간다. 놈은 거대한 날개를 펼쳐 뒤로 날아가며 공격을 피해냈다.
‘좋아!’
놈이 뒤로 피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녀는 리퍼스 핸드를 쏘자마자 준비한 컬러 밤을 놈에게 날렸다. 놈은 피하려 했으나 덩치가 워낙 컸기에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다. 컬러 밤이 놈의 복부에 적중하고 갑각의 일부를 파괴했다.
「그르르!」
“잘하셨습니다!”
“저 개새끼!”
에이모프의 짧은 신음과 뒤에서 응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컬러 밤을 맞은 놈은 살짝 비틀거리며 사일로에 매달렸다.
‘좋아. 이렇게만 하면….’
한 방 먹인 것을 좋아하기도 잠시. 그녀는 놈의 모습이 방금과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씨 데몬이 없어?’
가슴에 안고 있던 분홍색 생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사실을 눈치챈 순간, 그녀가 서 있는 바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녹아내린 구멍, 사라진 씨 데몬.
놈은 보호막이 보호하지 못하는 곳을 노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놈의 의도를 눈치챈 그녀가 급히 위상 방어의 만트라를 재조정했다.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바닥에 금이 가고 파편들이 위로 솟구쳤다.
사람 머리만한 구멍이 여러 개 생기고 거기서 분홍색 촉수들이 올라온다. 그것들이 그녀의 다리를 휘감기 직전, 보호막의 조율이 완료되었다.
살이 통째로 썰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촉수가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돔 형태로 덮인 보호막이 구체 형태로 변화하면서 안쪽에 침입한 촉수들을 잘라 낸 것이다.
‘위험할 뻔했….’
안심하려던 찰나, 그녀는 복부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니 배 부근을 감싸는 천이 붉게 물든 것이 보였다.
“미친!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어, 주, 죽여야 하는데, 주, 죽여야, 죽여야 해!”
멍하니 뒤를 돌아본 그녀의 시야에 몬타나와 경호원의 모습이 들어온다.
가우스 소총을 꽉 쥔 채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경호원, 그리고 힘들게 경호원을 막고 있는 몬타나.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속박 기술을 사용, 경호원을 보호막 밖으로 밀어냈다.
“죽일 거야! 죽여? 죽, 죽, 죽여야지! 히히! 하하하!”
정신이 나간 경호원은 보호막에 돌진했다가 그대로 소멸했다.
신시아는 경호원에 신경을 끄고 재빨리 회복 기술을 사용했다. 출혈이 멎고 관통된 상처가 회복되면서 통증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지, 지금 것은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놈이, 놈이 한 짓 같습니다.”
이를 악문 그녀가 사일로에 매달린 괴물을 노려봤다.
괴물의 뒷머리와 목 부근에 갈기처럼 달린 촉수들이 바람이 분 것처럼 일렁거리다가 멈췄다.
“아쉽네.”
전투를 시작한 지 처음으로 들은 놈의 목소리.
어디에서나 들을 듯한 그 목소리가 누군가로부터 빼앗은 것이라는 사실을 신시아는 안다. 놈과 싸우던 중 한 번 겪어 봤기에.
그런데 직접 그걸 들은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빠르게 자라났다.
그것은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