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78 - 붕괴(3)
‘시각 손상인가.’
사일로에 매달린 나는 몸 상태를 체크했다.
컬러 밤은 상대에게 강한 피해를 주면서 동시에 무작위로 부정적인 효과를 유발시킨다. 이 중 성가신 부분은 전자보다는 후자다. 감각, 근육 같은 신체 기관을 약화시킨다거나 집중력을 흩트린다거나 등등.
복부에 무지개 색깔 에너지탄을 맞은 탓에 시각 기능이 굉장히 저해되었다. 주변 사물 전부가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보조기관이 없었으면 꽤 곤란했겠지.’
에이모프의 감지 기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턱 아래에 달린 보조기관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이 사일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훤히 감지된다.
나는 사일로 벽에 매달린 채, 보조기관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현재 신시아는 상처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 냄새, 통증 때문에 흐르는 식은땀 냄새가 점점 약해지고 있으니까.
그사이, 나는 새로 얻은 중요한 정보들을 정리했다.
그녀와 싸우면서 몇 가지 실험을 했다.
투사체 계열만 방어하는 것인가 싶어 직접 손으로 때려 보기도 했고, ‘포식 거머리의 손’으로 방어막을 먹어 치울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실패. 그 대가로 전투용 팔 하나의 손가락과 손바닥 안쪽이 날아가 버렸다.
그 다음 내가 시도한 것은 26호와 합동 작전이었다.
그녀가 설치한 보호막은 바닥 위에 깔린 돔 형태다. 그렇다면 바닥을 뚫고 공격하는 방식도 유효할 터.
나는 산성 브레스를 보호막 위에 쏟아부었다. 신시아는 내가 보호막을 공격하려는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실은 바닥에 구멍을 내기 위한 거였다.
26호는 바닥이 녹으면서 발생한 독성 연기에 몸을 숨기며 무사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몸을 거대화, 촉수로 보호막 아래에 있는 바닥을 때렸다.
그러는 동안 나도 놀고 있었던 게 아니다. 녀석이 바닥을 부수는 타이밍에 맞춰 ‘대혼란의 전령’을 썼고, 해적 한 명을 광증에 빠뜨렸으니까.
안타깝게도 신시아가 보호막을 구체 형태로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대혼란의 전령 효과도 차단됐다. 그 탓에 해적은 신시아를 죽이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중요한 정보를 얻었어.’
보호막은 내부에서 발생한 공격은 막아 내지 못한다. 그녀는 경호원이 쏜 총을 맞고 부상을 입었다.
보스급 생물들이 사용하는 설치형 방어 기술 중에 보호받는 구역 내에서는 절대 피해를 받지 않는 유형이 있다. 그녀의 기술은 그런 타입은 아니다.
‘다만 내부에서의 공격을 유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네.’
보호막 안에서 불의의 공격을 당한 신시아는 경호원을 밖으로 밀어내서 위협 요인을 제거했다. 랭커답게 무언가에 감염당한 것이라 판단하고 빠르게 대처했다.
경호원이 보호막 내부에서 죽었다면, 광기 폭탄이 퍼질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었을 텐데 살짝 아쉬웠다.
저쪽도 한 번 제대로 당한 터라 바짝 경계할 거다.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랭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똑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할 리 없겠지.
‘아니면 이걸 역이용해볼까?’
신시아와 싸운 지 시간이 꽤 지났다. 이쯤 되면 그녀도 내게 방어막을 뚫을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따라서 내가 공략을 위해 다른 방식을 취하려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현재까지 밝혀진 보호막의 약점은 내부에서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 나도,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이 부분이 공략의 핵심 열쇠가 된다.
‘…라고 생각하겠지.’
그녀가 그렇게 착각하는 동안, 나는 다른 곳을 노릴 생각이다.
나의 보조기관이 꿈틀거리며 신시아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가 내뱉은 숨결이 보호막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치료 기술 덕분에 통증이 완화되어서 그런지 헐떡거림이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좋아.’
어떻게 공략할지 얼개가 잡혔다.
마지막으로 이번 계획에 제일 중요한 시간을 체크한 뒤, 아래층에서 대기 중인 26호한테 파장을 보냈다.
[즈즈 즈즈즈(몸은 괜찮아?)]
「응! 괜찮아!」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미안한데 하나 부탁할게)]
「뭐야? 뭐야?」
[즈으으으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아드하이한테 가서 얘기를 전해 줘)]
나는 26호에게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전달했다.
녀석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결국 수긍했다.
「큰애기야, 더 다치면 안 돼!」
[즈즈즈즈즈(걱정하지 마)]
녀석을 안심시킨 나는 괴물의 촉수로 사이킥 브레스를 발사했다. 목표는 그녀의 보호막이 아닌 그 주변 공간.
“칫!”
내가 그녀 주변의 바닥을 전부 박살내려 한다는 것을 안 그녀가 짧게 혀를 찼다. 그녀의 의지 아래에 있는 초능력의 낫이 허공에서 튀어나와 나를 내려찍었다.
눈이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더 민감해진 걸까. 사이킥 파워가 공기 중에 집중된다는 것을 미리 감지한 나는 날개 팔을 펼쳐서 날아올랐다. 리퍼스 핸드를 어렵지 않게 피해낸 나는 건너편의 벽에 날아가 매달리려고 했다.
넓은 사일로 중앙을 날던 중 내 몸이 급격히 무거워진다. 아래에 있는 신시아의 왼손에 강한 사이킥 파워가 집중된 것이 느껴졌다.
‘속박’으로 나를 붙잡은 그녀가 왼팔을 확 뒤로 당겼다. 내 몸이 아래로 확 쏠리며 바닥과 충돌했다.
딱히 아프지는 않았으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 내 등에 있던 생체 대포가 내 짜증을 담아 포탄을 발사했다. 폭발성 포자 2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보호막 위를 지나쳤다.
포자가 터지고 얕은 진동이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을 울린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신시아.
내 몸 위로 각종 부정적인 효과를 유발시키는 사이킥 기술들이 쏟아졌다.
모래수렁에 빠진 것처럼 내 몸이 느려진다. 나를 묶어둔 그녀가 컬러 밤을 마구 쏴댄다.
이에 대응하여 나는 ‘복잡화 분광체’를 발동시켰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연기들이 허공에 빠르게 뭉쳤다. 내 몸은 물론이고 뒤의 벽들까지 가릴 정도로 거대한 쟁반 형태로 변한 복잡화 분광체가 신시아가 쏜 컬러 밤을 방어했다.
“!”
반사된 컬러 밤들이 냄비에서 튀겨지는 팝콘마냥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 주변의 바닥은 물론이고 사일로의 벽들에도 푹 파인 흔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그녀의 심장 박동이 아까보다 올라갔다.
아마 저놈이 가진 숨겨진 능력이 얼마나 되는가 싶겠지.
그 이후로는 서로 소극적인 공방이 이어졌다.
복잡화 분광체를 확인한 그녀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기술보다는 내 움직임을 묶고 방해하는 기술을 위주로 나를 공격했다.
확실히 제이슨의 말대로 후방 지원에 특화된 랭커답게 실력은 뛰어났다. 결정적인 한 방만 없을 뿐, 적재적소에 필요한 기술로 나를 방해하고 있었으니까.
복잡화 분광체가 사라진 이후에 나는 신시아가 날린 컬러 밤을 몇 번 더 맞았다. 한 번은 뿔로 파훼한 덕에 부정적인 효과를 받지 않았으나 나머지는 알짤 없이 내 몸에 피해를 누적시켰다.
전투용 팔 한쪽은 감각이 없었고, 목 안쪽에 있는 산성 진균샘은 진균을 생산하는 능력이 극도로 저하되었다.
그리고 사이킥 파워로 조작된 중력이 나를 짓눌렀다.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향해 신시아가 컬러 밤을 준비한다.
‘오른쪽 날개 팔을 노리는구나.’
잘 보이지 않는 눈 대신 보조기관으로 사이킥 파워의 흐름을 읽은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막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그녀가 쏜 무지갯빛 에너지탄이 날아온다. 나의 비행 능력을 빼앗으려는 의도를 담아 맹렬한 속도로 날아온 컬러 밤은 내 날개 팔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젠장!”
싸우기 시작한 지 10분쯤 지난 지금, 그녀의 공격이 처음으로 빗나갔다. 그녀의 짧은 욕설에는 짙은 당혹감이 배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기어서 그녀가 펼친 그래비티 컨트롤의 영역을 빠져나왔다. 내 뒤로 그녀가 다시 컬러 밤을 쐈지만 이번에도 역시 엉뚱한 곳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왜 이런….”
그녀가 의문에 찬 넋두리를 내뱉는다. 어째서 자기가 계속 빗나가는지를 생각하고 싶어도 제대로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인지 알고 있다. 내가 친절히 날개 팔의 손가락으로 그녀 뒤를 가리켰다.
그녀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 뒤에 있는 해적들. 아까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그들의 안색은 매우 창백했다. 특히 상당한 거구를 자랑하는 해적은 손으로 가슴팍을 쥐어짜듯 붙잡고 헐떡거리는 중이었다.
“설마?”
고개를 홱 돌린 그녀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녀의 붉은 눈은 단순히 분노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녀가 펼친 보호막을 뚫기 위한 무기로 내가 택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시간.’
이 요새는 PS-111의 공작으로 인해 산소량이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 시간이 지나면 이 요새 내부에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남지 않을 거다.
원래라면 각 사령부 내부에도 이럴 때를 대비해 자체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시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사령부를 박살내면서 올라온 터라, 내부에 공급되는 산소량보다 밖으로 헛되이 빠져나가는 양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녀석이 산소를 우주 밖으로 배출하기 시작한 지 20분 이상 지난 상황. 그녀와 해적들에게도 슬슬 반응이 올 시간이다.
“숨을 못 쉬면 죽는 것. 컬트도 똑같지.”
이런 면에서 에이모프는 참 좋다. 숨을 안 쉬어도 오랜 기간 버틸 수 있으니까.
“…몬타나 씨, 안으로 들어가세요.”
“괜, 찮으, 시겠습니까?”
그녀는 내 말에 대꾸하는 대신, 뒤에 있는 해적들을 수송선에 태웠다. 선내에서는 소량의 산소가 공급되므로 조금은 더 버틸 수 있다.
물론 신시아는 나를 상대해야 하니까 예외다.
다시 싸울 준비를 하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5위, 할 말이 있습니다.”
시간을 끌면 나보다 그녀에게 더 불리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의외다.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진 건가?’
쉴 새 없이 흐르는 식은땀, 불안정한 숨소리 등을 보면 그녀의 심정이 매우 절박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게임에서면 모를까 여기는 현실. 대화가 가능한데 굳이 피할 필요는 없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굳이 대화할 필요는 없다. 그녀와 나는 서로 죽이기 위해 싸우는 중이었고, 이 대화가 그녀에게 반격의 기회도 줄 수 있으니까.
“같은 인간과의 대화도 거부할 정도로 에이모프의 삶에 빠진 겁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같은 인간이라고?”
“예.”
“다른 플레이어들을 사냥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제이슨의 일행 중 하나. 그들은 하늘의 어머니를 노예로 삼으려 했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여서 특전을 강탈했다.
“당신에게 대화를 요청한 것도 그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저는 그들의 뜻에는 전혀 공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특전도 받지 않았고요.”
그녀가 말한 내용 중 하나는 제이슨에게도 들었던 거다. 신시아는 제이슨과 함께 활동하면서 한 번도 직접 특전을 취하려 한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내 경험상 특전은 상대를 직접 죽여야만 빼앗을 수 있다. 뮤리엘, 제이슨의 특전도 모두 그러한 방식으로 강탈했다.
“그런 변명은 아무 의미가 없다. 네가 다른 플레이어의 죽음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니.”
“그건 제가 속한 파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어울린 이유는 첩보를 위해서였죠.”
“첩보?”
신시아는 숨쉬기가 답답한지 옷의 가슴팍 부근에 손을 집어넣었다.
“5위. 당신이 다른 이들을 포식하는 이유는 진화의 끝, 그러니까 승천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래.”
딱히 숨길 일은 아니었기에 간단히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방금보다 안정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와 제 동료들은 게임을 클리어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에 하늘의 어머니가 말한 얘기가 떠올랐다.
엔딩을 보려 하는 플레이어들, 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플레이어들 간에 다툼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이 중 전자에 가까운 존재다.
“저희와 협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기에 신시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협력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녀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플레이어들이 한때 서로 협력해서 엔딩을 보려고 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실패했다는 사실은 신시아의 파벌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엔딩을 노리는 자들이라면 내가 모르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임과 많이 달라진 지금, 미리 알고 움직이는 것과 모르고 움직이는 것 간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특히 엔딩 미션의 난이도가 급상승했다면 저들과 협력하는 것이 필시 유리할 터.
‘당연히 그렇겠지만….’
하지만 그녀의 제안에는 함정이 있다. 잠시 고민한 나는 선택을 내렸다.
“거절하겠다.”
“잘 생각…예?”
당연히 내가 수락할 것이라 여겼던 신시아.
그녀는 내 거절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