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79화 (280/400)

Episode 279 - 붕괴(4)

“…제가 스파이라서 거절한 겁니까? 그렇다면 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만.”

예상외의 답변에 당황해하던 그녀가 가까스로 꺼낸 말이었다.

아직도 오해하는 것 같은데, 그녀가 다른 파벌에서 첩자 짓을 했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 아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은 잔혹한 디스토피아 세계다. 아무리 좋은 조건, 좋은 특전을 받아도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게임으로 치면 목숨 하나로 엔딩까지 달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런 가혹한 조건에서 그 정도 기만술 없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그 말이야말로 거짓말이다.

내가 거절한 건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그녀의 파벌은 엔딩을 목표로 하는 자들이 모인 곳. 그리고 컬트의 엔딩 조건에는 에이모프 사냥이 포함되어 있다.

엔딩을 보기 전, 컬트가 달성해야 하는 최종 퀘스트 내용은 ‘우주를 위협하는 괴물을 사살하는 것’. 에이모프 성체, 메탈릭 그렘린 최상위종, 10마리의 여왕을 통솔하는 아웃스페이서 중 하나를 잡아야 한다.

반대로 에이모프도 컬트와 비슷하게 ‘세 가지의 큰 카테고리’에 속하는 종족 리더들을 포식해야만 승천에 이를 수 있다. 컬트 사회에서 예비 황제로 여겨지는 대제사장이라든가 말이다.

신시아가 속한 파벌의 힘과 권세가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조건까지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하지는 않을 터.

‘그랬으면 진작 엔딩을 봤겠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나를 동료로 영입한다? 나를 도축할 돼지로 보고 있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짓을 했으니까.

하늘의 어머니를 살리고자 마음먹을 당시, 나는 그녀를 보험으로 여겼다. 볼프도 에이모프가 사냥해야 할 ‘세 가지 카테고리’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와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녀를 승천의 제물로 쓰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으로. 그래서 기생충도 제거했다.

하지만 이는 내가 그녀와 지속적인 교류를 했기 때문에 마음이 바뀐 거다. 만약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최후는 변하지 않았겠지.

그렇다면 저들과 나는 어떤가?

현시점에서 저들과 나는 아무런 정신적 교류도 없다. 가진 힘도 저쪽이 나보다 우월하다.

협력이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행해지는 것. 여기서 저 파벌에 합류해 봐야 노예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신시아를 봐도 그렇다.

그녀가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명확해 보였다. 그런데도 플레이어 사냥꾼들에 껴서 첩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걸 보면 저쪽 파벌의 분위기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당신 혼자 엔딩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랭킹 1위도 실패한….”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

“에이모프가 된 것 때문에 정신이 나간 겁니까?”

“미안하지만 지금 나는 지극히 이성적이야.”

“이성? 하, 이성이라니. 당신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래. 맞아. 나는 아무 것도 모르지. 아직은.”

이제부터 알아가면 된다. 마침 좋은 정보원이 있으니까.

내 말뜻을 이해한 신시아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워졌다.

“역겹군요. 당신도 제이슨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깟 게임 세계에 빠져서 현실을 잊어버린 살인자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무수히 많은 생명을 빼앗은 나,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타인을 죽인 제이슨과 뮤리엘. 동기가 다르다고 해도 결과는 동일하다. 현실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미치광이 살인 괴물이라 여기겠지.

다만, 나는 적어도 나와 함께하는 녀석들을 물건 취급하지 않는다.

26호, 아드하이, 하늘의 어머니, 그리고 비교적 나중에 합류한 PS-111.

이 세계가 진짜 게임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내게 소중한 존재이자 지켜야 할 대상이다.

‘협상은 결렬이야.’

나는 보조기관으로 신시아의 상태를 살펴봤다.

산소 부족으로 인해 그녀의 호흡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컬트의 신체 능력은 인간에 비해 더 떨어진다. 나를 공격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보면 그녀의 지각력 또한 이미 엉망진창.

그녀가 내게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인정하죠. 저는 당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당신을 죽일 수단도, 전략도 없습니다.”

신시아가 붉게 물든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수는 있죠.”‘응?’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옷의 가슴팍에 집어넣고 있던 팔을 뺐다. 손에는 작은 크기의 은색 보주(寶珠)가 들려 있었다.

‘뭐지?’

처음 보는 물건을 보자마자 나는 날개 팔을 펼쳐서 뒤로 뛰었다.

이제 와서 그녀가 치명적인 무기를 꺼낼 가능성은 낮다. 갖고 있었다면 진작 썼을 터. 하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신시아와 거리를 벌렸다.

“원래는 제가 사용할 물건이 아니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은색 보주가 조응한다. 손가락 3개 만한 작은 구체가 짧게 빛나더니 곧 칙칙한 검은색으로 변했다.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한데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요새 전체에서 경보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경보음? 설마?’

우주요새에서 저 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아웃스페이서 무리가 습격했다거나, 아니면….

“앞으로 5분 후면 이곳에 메탈릭 그렘린 무리가 들이닥칠 겁니다.”

“뭐?”

대규모 메탈릭 그렘린 무리가 나타났을 때 저 경보음을 들을 수 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보주. 저 물건이 메탈릭 그렘린을 부른 원흉인 것 같다.

‘나와 함께 자폭할 생각인가?’

메탈릭 그렘린이 케샤 아르마를 공격했을 때, 위험해지는 것은 나보다는 신시아 쪽이다. 나야 우주 공간에 떨어져도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지만 저쪽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포기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걸 본 나는 깨달았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애들을 노린 거구나!’

“그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실 텐데요. 당신이 그렇게 아끼는 ‘펫’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서두르시지요.”

산소 부족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죽어 가는 그녀가 나를 비웃는다.

불행히도 지금은 그녀의 말이 맞다.

26호나 PS-111은 함선에 탑승한 상태라면 모를까, 맨몸으로 메탈릭 그렘린과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하늘의 어머니는 아직 신격화 단계 상승을 끝내지 못했다. 성장이 끝나기 전에 습격받는다면 100% 죽는다.

결국 나는 신시아를 잡는 일을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기만 하고 갈 생각은 없다.

나는 보호막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바닥을 향해 사이킥 브레스를 쏟아 냈다. 계속된 전투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바닥이 결국 무너졌다.

“!”

바닥이 무너지자 수송선과 그녀도 아래층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보호막이 있으니 수송선이나 그녀나 피해를 보지 않을 거다. 단, 사일로를 이용해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요새를 떠나려면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내가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야 할 거야.”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진 그녀를 향해 경고한 나는 날개를 펼쳤다. 내 몸이 빠르게 상승하며 사령부 위에 길게 뻗은 사일로를 날아올랐다.

차가운 강철의 선로가 끝나자마자 별들의 바다가 나를 반긴다. 내 발아래에 컬트들이 만든 거대한 우주건축물, 케샤 아르마의 전경이 보인다.

본래라면 강화 유리로 인해 도시의 모습이 훤히 보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투에 대비해 요새 전체가 차폐벽으로 덮여 있었다. 요새 하단과 상단에 있는 거대한 포탑들도 곧 들이닥칠 적에게 대비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내 몸만큼이나 큰 포탑들 중 하나가 나를 겨냥하더니 위아래로 움직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움직이는 포탑을 보니 통제권을 누가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PS-111이구나.’

제2사령부는 내 손에 박살이 났으니 지휘권이 부재한 상황이다. 제1사령부는 아까 내가 떠나보낸 26호 때문에 정신이 없을 거다.

‘아드하이랑 같이 가서 점령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곳곳에 돌아다니는 변이자들과 광인들, 거기에 씨 데몬과 갤러곤까지. 제1사령부에서는 녀석들을 막느라 벅찰 터. 그 사이를 틈타 PS-111이 요새의 방위 시설을 전체를 장악한 것이리라.

후방은 녀석에게 맡기고, 나는 어두컴컴한 전방을 주시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검은색 공간. 그곳에 푸른색 불꽃이 점화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불꽃에서 시작한 그것은 산 전체를 넘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정도로 크게 확대되었다.

거칠게 타오르던 푸른 불이 사그라진 뒤에 남은 것은 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알갱이였다.

검은색 종이 위에 흩뿌려진 생쌀처럼 보이는 저것이 바로 메탈릭 그렘린 무리였다.

수천, 아니 적어도 만 마리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대규모 무리가 케샤 아르마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

‘빌어먹을….’

신시아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끝까지 엿을 먹이고 간 에이모프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파탄이 났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 오브(Orb)의 이름은 ‘야만의 보주.’ 조건을 달성하면 ‘특정 괴물’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물건이다.

과거 스페이스 서바이벌 최강자가 만든 이 물건은 신시아가 갖고 있었다. 물건의 사용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간신히 메탈릭 그렘린 무리를 지배하는데 성공했거늘!’

그것 때문에 그녀는 플레이어 살인까지 불사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소모되다니. ‘귀환파’의 대계를 위해 쓰일 유물이 헛되이 낭비되고 말았다.

본래 야만의 보주는 ‘귀환파의 인도를 받은 자’가 사용하기로 된 물건이었다.

신시아가 케샤 아르마에서 기다리는 동안, 동료들은 이 물건의 정당한 사용자가 이곳에 오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며칠만 더 기다렸다면 귀환파의 인도에 따라 그 자, 아니 ‘그녀’가 요새에서 열릴 경매에 참여했을 거다. 그때 신시아는 ‘그녀’에게 야만의 보주를 건네고, 새로운 유물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것이 귀환파의 시나리오였는데 예상외의 암표를 만나는 바람에 엉망이 됐다. 검은색으로 변한 오브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또다시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

‘…일단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그녀보다 메탈릭 그렘린을 공격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놈은 함께 데리고 있던 씨 데몬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보호막에 촉수가 다치자 바로 후퇴시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게다가 그녀 입에서 ‘펫’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도 기분 나빠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더러운 변태 새끼.’

아무튼 놈이 자리를 뜬 덕분에 그녀의 목숨은 조금 더 연장되었다.

다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놈은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가장 악명 높은 존재. 이곳에 온 메탈릭 그렘린 무리의 수는 결코 적지 않지만, 혹시 또 모른다. 만일 놈이 전부 학살하고 돌아오면 그녀는 무조건 죽은 목숨이다.

살아남고 싶다면 어떻게든 이 요새를 빠져나가야 한다.

“시, 신시아 님. 놈은 간 겁니까?”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돌아보니 몬타나와 경호원이 수송선에서 내리고 있었다.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합니까?”

공황 상태에 빠져 덜덜 떠는 이 남자가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우주요새를 지배하던 자였다고 누가 생각이라도 할까.

신시아는 반쯤 폐인이 된 몬타나에게 말했다.

“제1사령부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거기의 수송선은 멀쩡할 테니까요.”

“그렇군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신시아는 몬타나와 경호원에게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사이킥 기술을 건 뒤, 에이모프가 만든 구멍 위로 뛰어내렸다.

단번에 1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피의 바다에 잠겨 있는 강화복을 뒤졌다. 거기서 산소 캡슐들을 꺼낸 그녀는 하나를 입에 물었다.

“휴우.”

이걸로 죽기 전까지 시간이 살짝 연기됐다. 몬타나와 경호원들에게도 캡슐 하나씩 건넨 신시아는 사령부 밖으로 나왔다.

메탈릭 그렘린과 싸우기 위해 덮인 차폐벽으로 인해 요새 내부에는 짙은 암흑이 깔렸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길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야말로 세기말. 영광의 상징 케샤 아르마는 이제 없다. 몰락하고, 붕괴한 폐허만이 있을뿐.

“이럴 수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몬타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나중에라도 복수하려면 지금은 살아야 합니다.”

“으득, 그렇죠.”

신시아는 이를 악문 몬타나와 함께 근처에 있는 호버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내부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유리는 전부 깨졌고, 바닥에는 사지가 뜯겨진 시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엔진의 에너지도 전부 바닥나 있었다.

만약 인간이었다면 손을 쓸 수 없었겠지만, 그녀는 컬트다. 그것도 막강한 힘을 지닌 사슴뿔 컬트.

그녀가 엔진에 손을 얹자 호버 버스가 허공에 떠올랐다.

“길가에 적이 있어 위험하니 이걸 타고 가겠습니다.”

“그 특수한 막 같은 것으로 보호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 능력을 쓰면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몬타나의 질문에 짧게 답한 그녀는 호버 버스를 조종해 제1사령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속도를 일부러 늦추고 있었기에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대신 아래쪽에서 연신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이 세계에 푹 빠졌다는 놈이 한 짓거리를 보라. 이래서야 대량살인마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더 무서운 점은 이런 정신머리를 가진 놈이 실력도 좋다는 것이다. 직접 싸워본 신시아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만약 오브가 없었다면, 놈에게 펫이 없었다면 그녀는 분명 죽었을 터.

‘…계획을 수정해야 해.’

귀환파의 멤버들은 5위도 계획의 일부로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너무나도 무모했다. 지배파의 수장 아키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를 컨트롤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신시아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 갈 때, 깨진 창문 너머로 제1사령부가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때, 원통형 차폐벽은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입구 쪽 차폐벽, 외부에서도 해제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이 도시의 주요 시설에는 제 안구 인식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으니까요.”

“곧 도착합니다. 내리면 모두 뛸 준비를 하시길.”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긴장하는 그때.

호버 버스가 무언가와 충돌해 박살났다. 차체가 두 동강 나는 바람에 버스 안에 있던 셋은 그대로 밖으로 퉁겨져 나갔다.

‘이런!’

바닥으로 급격히 추락하던 그녀는 급히 공중 부양 기술을 사용했다.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그녀와 달리 다른 둘은 가진 능력이 없었다. 수십m 상공에서 추락한 그들은 몸이 박살났다.

특히 일반인보다 비대한 몸매를 자랑하던 몬타나의 경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이 됐다. 스페이스독의 카르텔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지닌 두목의 최후는 실로 비참했다.

“…….”

몬타나의 죽음보다 지금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버스를 습격한 존재가 근처에 있다. 그녀는 재빨리 ‘위상 보호의 만트라’를 전개했다. 돔 형태로 펼쳐진 보라색 만다라가 그녀가 서 있는 금속 바닥 위를 덮었다.

‘누구지?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그녀의 눈이 정신없이 주위를 향해 돌아갔다.

주변의 바닥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건물들은 죄다 땅 아래로 주저앉은 상태였고, 도로들은 다 뒤집어졌다.

엉망이 된 구역 위에는 사람, 괴물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호버 버스를 타고 날아갈 때도 으스스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직접 발을 디디니까 기분이 완전히 달랐다. 여태껏 사람 죽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본 그녀지만 이번만큼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 봤자 게임. 무서워 할 것 없어.’

신시아가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던 중, 머리 위로 붉은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워낙 빨라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그녀는 다급히 컬러 밤을 준비했다. 그사이에 또다시 날아드는 무언가. 그녀의 귀에 펄럭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에이모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는 이내 부정했다. 놈이 날아다닐 때 나는 소리는 이것보다 컸다. 날아다니는 것은 그보다 작은 존재다.

그리고 날갯짓 소리가 급격히 커졌다. 붉은빛이 엄청난 속도로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녀의 왼손에 있던 컬러 밤이 뒤늦게 적을 향해 발사됐지만, 한참 늦었다.

붉은색 뿔과 날개를 가진 그것이 그녀가 펼친 보호막을 뿔로 들이받았다.

원래라면 상대의 뿔은 물론이고 머리 자체가 사라졌어야 했지만, 놀랍게도 놈은 멀쩡했다.

“갤, 러곤?”

4개의 날개를 가진 뱀처럼 생긴 그 괴물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기습한 괴물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그녀는 오른손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어?”

바닥에서 피어난 가느다란 분홍색 덩굴이 그녀의 오른손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상 보호의 만트라를 펼칠 때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사용했다.

그래서 오른손이 당했다는 사실에 평소보다 보호막의 조정이 느려졌다. 그래 봐야 찰나. 눈 한 번 깜빡 거릴 정도의 오차였다.

하지만 그 오차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오른손을 꿰뚫은 분홍색 덩굴이 번개와 같은 속도로 그녀의 눈을 찔렀다.

“!”

바늘로 눈 한가운데를 찌른 것 같은 통증에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고통은 길지 않았다.

신시아는 자기가 보는 세상이 급격히 어두워진다고 생각했다.

그건 요새의 불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 꺼져가는 신호였으나, 그녀가 그 사실을 깨달을 일은 없었다.

-

큰애기가 부탁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애기를 데리고 가던 중 그녀의 눈에 나쁜 녀석이 보였다.

큰애기를 괴롭히던 나쁜 녀석은 요상한 껍데기를 쓰고 커다란 덩어리 바위로 가고 있었다.

저 껍데기 안에 큰애기를 못살게 구는 나쁜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자 작은애기는 통통한 부속지로 땅을 때리며 화를 냈다.

누구든 큰애기를 괴롭히는 녀석은 혼이 나야만 한다.

그 누구든.

그래서 혼내줬다.

촉수를 아주 얇게 변형시켜 땅속에 숨겨 놓은 그녀는 나쁜 녀석의 몸에서 촉수를 뽑았다. 몸에 구멍이 난 나쁜 녀석은 부속지를 늘어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나」「덕분에」「이겼어」

작은애기가 나쁜 녀석 옆에 착지했다.

어리다 보니 자주 틀린 말을 하지만 이번만큼은 녀석이 옳았다. 작은애기가 없었다면 나쁜 녀석을 이렇게 쉽게 혼내주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만큼은 작은애기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녀는 촉수로 나쁜 녀석을 휘어 감아 작은애기에게 건넸다.

「작은애기가 맞아. 이번에는 너 먹어.」

「진짜?」

「응.」

작은애기는 촉수가 잔뜩 달린 부위를 까딱거렸다. 잠시 후 작은애기가 말했다.

「적」「강해」「나」「혼자」「힘들어」「그러니까」「같이」「먹자」

「괜찮아.」

「작은어른」「힘」「덕분에」「이겼어」「큰어른」「식사」「함께」「하는 것」「좋아해」

그렇게 말하며 작은애기는 촉수가 잔뜩 달린 부위로 그녀의 촉수를 살짝 밀어냈다.

어리지만 대견하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큰애기가 하는 것처럼 촉수로 작은애기를 살살 쓰다듬었다.

「잘했어!」

「싫어」「하지 마」

큰애기가 할 때는 좋아했으면서.

살짝 기분이 나빠질 뻔했지만, 그녀는 참았다. 그녀는 작은애기보다 어른이니까 이럴 때 참는 게 맞다.

그렇게 둘은 함께 사냥한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

「괜찮네」

「먹으니까 기분이 좋아.」

「동의」「별의 힘」「강해졌어」

나쁜 녀석의 고기는 그녀 기준으로도 꽤 괜찮았다. 먹을 때마다 그녀의 몸에 힘이 가득 차는 기분이 들었다. 작은애기도 마음에 드는 듯 ‘파닥파닥’을 열심히 흔들었다.

먹던 중 뭔가 동그랗고 딱딱한 것이 몸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뱃속에 들어가면 소화되기 마련이니까.

「다 먹었으면 가자.」

「응」

먹이를 남김없이 먹어 치운 그녀와 작은애기는 다시 커다란 덩어리 바위로 출발했다.

그곳에 나쁜 녀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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