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81화 (282/400)

Episode 281 - 신수와 야수(2)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볼프는 꽤 독특한 종족이다.

수인 형태로 시작했을 때는 인간이나 사이보그와 비슷한 식으로 흘러간다. 용병으로 일해서 함선을 구매하고, 좋은 무기와 장비를 찾으러 다니는 등. 인간형 종족과 비슷한 루트를 밟는다.

그러다가 신격화에 이르러서 환수(幻獸)로 변신이 가능해지면 플레이 방식이 훨씬 다채로워진다. 환수 상태가 되면 뛰어난 신체 능력, 강력한 고유 특성을 얻으므로 특별한 무기 없이도 적을 박살낼 수 있다.

평소에는 수인 모드로 싸우다가, 필요할 때 환수로 변신해서 적을 압도하는 거다.

요컨대, 볼프는 인간형 종족과 괴물형 종족의 특징을 모두 갖는 하이브리드형 종족이라 볼 수 있다.

다른 게임에서 하이브리드 종족은 대개 후반으로 갈수록 이도 저도 아닌 종족이 되지만, 볼프는 비교적 그런 면이 덜한 편이다.

이는 볼프 고유의 시스템인 ‘원시의 길’ 덕분이다.

소위 신격화라 부르는 이 시스템의 조건들을 달성하면 환수의 능력이 강해진다. 볼프 플레이어들도 후반에 이르면 환수 상태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쯤 되면 수인 모드 중 사용하는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좋아진다. 강해진 환수 모드로 강한 적을 해치우고, 그 대가로 얻은 귀한 재료를 강력한 장비로 가공한다. 인간형, 괴물형 이 두 가지 모드가 시너지를 발휘해 점점 강해지는 것이 볼프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그만큼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볼프는 수인 상태에서 싸우는 것, 환수 상태에서 싸우는 것 모두 능숙해야 제 성능을 발휘한다. 어느 한쪽이든 숙달되지 못하면 모든 면에서 아쉬운 캐릭터가 되고 만다.

아무튼 하늘의 어머니는 신격화 단계를 상급까지 올렸다. 에이모프와 비교하면 준성체와 성체 사이. 전투력은 내가 용의 둥지에 도착하기 직전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준이다.

단, 한 가지 에이모프보다 우월한 점이 있다.

제약 없이 우주비행이 가능하다는 것.

모래가 바람에 날리듯 마노(瑪瑙)빛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신비로운 날개. 보석의 매력을 품은 날개 덕분에 하늘의 어머니는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확실히 멋지네.’

신격화 단계가 상승했다고 해서 그녀의 모습이 에이모프처럼 격변하지는 않았다. 흰머리수리의 머리와 황금색 털을 가진 사자의 몸 등, 날개를 제외한 다른 부분은 거의 그대로였다.

하지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다.

아름다운 날개로 비행하며 적들과 싸우는 그녀의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을.

마노의 날개를 가진 그리폰이 메탈릭 그렘린 무리 속에서 날아다닌다. 은색의 그렘린들이 적을 깨물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

메탈릭 그렘린 몇 마리가 그녀의 궤도를 예측해 앞에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부리로 물고 있는 황금색 단창을 휘둘렀다.

「■?!」

놈 따위가 수많은 이들의 피를 머금은 ‘제사장의 황금창’을 버틸 리 만무했다. 일격에 3마리의 메탈릭 그렘린을 두 동강 낸 그녀는 유유히 적들의 포위를 빠져나갔다.

「■■!」

그때 뒤로 빠진 볼프람 고블린들이 그녀가 날아가는 방향을 향해 양팔을 들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날개 팔을 양 끝으로 쭉 뻗었다. 범선의 돛이 펴지듯 살짝 접혀 있던 피막이 활짝 펼쳐졌다. 3배 이상 거대해진 날개를 한 번 크게 휘두르자 내 몸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메탈릭 그렘린의 크기는 30cm에서 80cm 사이. 현재 내 몸의 크기는 100배에 육박한다. 거기서 날개까지 펼치면 몇 배 이상 커진다.

거기에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추진력과 겹친다면? 그야말로 상상 이상의 파괴력이 나온다.

삽시간에 거리를 좁힌 내 몸과 은빛의 무리가 충돌했다.

검은색 도화지 위에 은색 물감을 끼얹은 것처럼 내 갑각이 은빛으로 번들거린다. 전부 놈들의 피다. 나와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몸이 산산이 조각난 거다.

머리의 뿔과 입가 양옆에 솟은 엄니에는 볼프람 고블린들이 꼬챙이처럼 걸려서 흔들렸다. 엄니에 걸린 일부는 내 입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초합금피부’라는 방어 특성을 지닌 볼프람 고블린이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위종인 메탈릭 그렘린처럼 한 줌의 핏물이 됐겠지.

「■■■■■!」

동족들이 곤죽이 되는 모습을 본 워프보이가 서둘러 ‘워프가이드’를 준비했다. 그런 놈을 향해 내 등에 숨어 있던 침식 촉수들이 즉각 반응했다. 내 몸 길이 이상으로 긴 침식 촉수들이 모습을 드러내 워프보이를 향해 날아갔다.

「■■?!」

놈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내 몸 크기가 ‘뼈 야수’를 쓰기 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침식 촉수는 사정거리를 잘못 잰 워프보이 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은색 괴물들까지 꿀꺽 삼켜 버렸다.

「■■■■!」

「■■■!」

「■■■■■!」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은색의 약탈자들이 내 몸 위에 올라탔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메탈릭 그렘린들이 내 몸에 달라붙어 깨물어댔다.

몸을 흔들어서 놈들을 털어내려고 하는데, 내 위에 있던 놈들이 갑자기 손바닥에 맞은 모기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알 수 없는 힘에 동족이 으깨지는 것을 본 놈들은 깨물던 것을 멈추고 내 몸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무형의 힘은 도망자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꽁무니를 빼던 놈들도 하나둘씩 온몸이 뒤틀리고 오그라들었다.

‘하늘의 어머니구나.’

나는 멀지 않은 곳에서 적들과 싸우는 중인 그녀를 흘낏 쳐다봤다. 그녀의 날개 끝에서 미세한 입자들이 우주 공간으로 방출되고 있다.

하늘의 어머니가 신격화 상급에 이르면서 얻은 새 능력이다.

‘압력을 조작하는 능력.’

저 입자가 퍼진 영역 내에서 그녀는 물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생성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 메탈릭 그렘린들이 몸이 으깨지거나 뒤틀리는 이유는 저 입자에 닿거나 무의식적으로 삼켰기 때문이다.

아무리 산소 없이 생존이 가능한 놈들이라 해도 체내의 압력이 극단적으로 뒤틀리는 상황에서도 살아날 수는 없는 법. 저 입자 앞에서는 볼프람 고블린의 단단한 피부도 소용이 없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딱히 평이 좋지 않았지만 말이야.’

강력한 능력인 것은 맞으나 입자가 눈에 보인다는 점이 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입자가 깔린 영역 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되니까. 그렇기에 압력 조종 능력을 얻은 볼프는 이를 어떻게 잘 숨겨서 적을 유인해야 할지가 관건이 된다.

하나 저 메탈릭 그렘린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놈들은 입자가 문제라는 사실을 모른 채 죽어 나갔다.

나를 덮쳤던 그렘린들을 박살낸 하늘의 어머니가 입자를 뿌리며 내 곁으로 날아왔다.

「괜한 방해였나?」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아니. 적절한 지원이었어)]

그녀는 은색 약탈자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으쓱했다.

「이래도 줄지를 않네. 역시 우두머리를 찾아야겠지?」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그래. 최대한 빨리 놈을 잡아야 해)]

「요새 때문에?」

우리 뒤에서는 PS-111의 통제를 받는 케샤 아르마가 메탈릭 그렘린들과 싸우는 중이다. 그녀는 요새가 붕괴할 것을 우려한 것 같으나 내가 걱정하는 바는 그쪽이 아니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요새에 랭커가 있어)]

「뭐?」

[즈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제압해 두고 나왔는데 언제 도망칠지 몰라)]

「…그 전에 녀석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거지?」

그녀의 선명한 호박색 눈이 가늘어진다. 플레이어에게 혹독하게 당한 그녀다. 신시아가 도망쳤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지.」

[즈즈(맞아)]

「그런데 타이타보스라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텐데. 혹시 생각하는 거라도 있어?」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내가 놈들을 흩어지게 할게. 너는 놈을 찾는데 집중해)]

하늘의 어머니는 우리들 중 가장 시력이 좋다. 그녀라면 내 보조기관이 발견하지 못한 타이타보스를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내 의도를 파악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보다 살짝 앞에 나선 나는 적들을 크게 동요시킬 수단을 준비했다.

그러는 동안, 놈들은 진영을 새로 바꿨다. 포위 진영에서 뱀처럼 길게 늘어진 진영으로 바꾼 놈들은 우리를 지나쳐 요새로 날아갔다. 우리와 싸우면 손해가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마음대로 둘 수는 없지.’

나는 그렘린으로 이루어진 뱀의 꽁무니를 향해 준비한 사이킥 브레스를 발사했다. 80m에 달하는 거대한 괴수가 내뿜은 에너지의 숨결. 그건 ‘우주의 용이 내뱉는 불’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 방출하는 홍염 같았다.

‘역시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네.’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빠져나가자 현기증이 느껴졌다. 용의 심장을 얻은 이후, 단기간에 이 정도로 에너지를 소모했던 적은 ‘고르곤 스웜’과 싸웠을 때뿐이었다.

경천동지. 그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초대형 사이킥 브레스가 케샤 아르마의 앞에서 펼쳐졌다.

보랏빛 홍염처럼 은색 뱀을 바짝 뒤쫓는다.

함대와 맞서 싸울 정도로 튼튼한 신체 조건도 저 신화적인 불꽃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뱀의 꽁무니가 압도적인 힘에 닿자마자 그대로 소멸했다.

「■■■!」

「■■■■!」

「■!」

아무리 메탈릭 그렘린이 겁이 없다고 해도 수천에 달하는 동족의 죽음은 충격이었나 보다. 공황에 빠진 놈들이 속속히 진영을 이탈했다.

자리를 유지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공포를 느끼는 것은 매한가지. 꼬리 잘린 뱀의 몸통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초광속 항해로 이동한 뒤 다시 전열을 정비하려는 거다.

나는 다급히 하늘의 어머니를 불렀다.

[즈즈즈(찾았어?)]

「찾는 중이야!」

아무래도 좀 더 가까이 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전투용 팔로 그녀를 붙잡은 뒤,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즈즈즈 즈즈(시간이 없어)]

「나도 알아!」

내가 접근해도 아까처럼 내게 이빨을 들이미는 놈들은 없었다. 사이킥 브레스에 당한 충격에 무리에 대한 타이타보스의 통제력이 크게 상실되어서 그렇다.

‘하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육체가 일반적인 생물과 다른 만큼 메탈릭 그렘린의 정신세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수천이 죽어도 남은 수는 여전히 수만 마리. 죽은 동족보다 살아 있는 동족이 더 많으므로 두려움을 금세 극복할 거다.

흩어진 채 나를 에워싸기만 하는 놈들 사이를 날아가고 있는데 하늘의 어머니가 앞발로 내 전투용 팔을 툭 쳤다.

「저쪽이야!」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 우주의 어둠과 똑같은 색깔을 가진 작은 괴물이 있었다. 동족들과 달리 블랙홀처럼 새까만 피부를 지닌 메탈릭 그렘린. 놈이 바로 대규모 무리를 이끄는 리더, 타이타보스다.

하늘의 어머니를 놓은 나는 놈이 있는 방향을 향해 침식 촉수를 뻗었다. 앞을 가로막는 은색 괴물들을 박살내며 나아간 촉수가 여섯 개의 부속지로 놈을 움켜쥐려 했다.

「■■■■!」

막 놈을 붙잡으려 한 순간, 놈의 몸이 파랗게 빛나며 사라졌다. 놈의 뒤에 있던 워프보이가 우두머리를 재빨리 피신시킨 거였다. 침식 촉수는 원래 노리던 목표 대신 워프보이를 집어삼켰다.

「포식 효과 발동!」

‘놈은 어디 갔지?’

포식을 알리는 텍스트박스가 떠올랐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놈은 무리의 리더. 필시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터이니 빨리 찾아야 한다.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수많은 냄새와 신체반응 속에서 특정 목표의 움직임을 감지해 냈다. 내 뒤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놈이 있다.

침식 촉수가 내 의지에 반응했으나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존재가 있었다.

내 손에서 벗어난 하늘의 어머니가 놈이 있는 곳을 향해 이미 날아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물고 있던 단창이 놈을 벴다.

「■■■!」

「칫! 얕았어!」

목을 노린 그녀의 공격은 실패였다. 가슴팍을 베인 타이타보스가 또다시 모습을 감췄다. 놈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던 모든 메탈릭 그렘린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떨어진 곳에서 푸른빛과 함께 놈들이 나타났다.

「…내 실수야. 좀 더 빨리 움직였어야 하는데.」

[즈즈 즈즈즈 즈즈(아니, 그렇지 않아)]

순간이동 지점을 예측한 하늘의 어머니는 나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가 자책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귀찮아졌어.’

운 좋게 간신히 살아났으니 공략하기가 더 까다로워질 것은 자명한 이치. 타이타보스가 소극적으로 움직인다면 잡는데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거다.

‘이번에는 다른 전략을….’

놈을 어떻게 꾀어낼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메탈릭 그렘린 무리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응?’

「저 녀석들 왜 저러지?」

하늘의 어머니도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놈들의 움직임이 묘했다.

사이킥 브레스의 충격 속에서도 나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놈들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겁을 먹은 건가?’

무리를 통솔하는 타이타보스가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맞지만,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니 저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놈의 의도에 의한 것. 짧은 시간동안 마치 리더의 인격이 바뀐 것처럼 놈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여태 우리가 싸운 무리가 군대와 비슷했다면 지금 놈들은 사나운 동물들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차라리 잘 됐어.’

놈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공격하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터.

다시 공격을 개시하려는데,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은색 구름이 파랗게 빛났다. 구름을 물들인 푸른빛이 사라진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뒤편에서 요새를 공격하던 놈들도 전부 사라졌다.

「떠났네.」

케샤 아르마를 습격한 메탈릭 그렘린 무리. 마침내 그들이 물러났다.

그걸로 요새 내부에서 시작된 긴 싸움도 함께 끝이 났다.

‘아니, 아직 하나 남았구나.’

요새에 있을 컬트 랭커, 신시아.

그녀와의 싸움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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