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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82화 (283/400)

Episode 282 - 뒷정리(1)

메탈릭 그렘린이 물러간 후, 요새를 보호하던 차폐벽이 해제되었다. 나와 하늘의 어머니는 군항을 통해 요새로 복귀했다.

「어디로 가면 돼?」

하늘의 어머니는 요새에 들어온 이후 날개 달린 그리폰 형태에서 수인형으로 돌아왔다.

조밀한 근육으로 엮인 등에는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그리폰 상태일 때보다 훨씬 작아져서 접으면 허벅지 부근까지 밖에 오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마노 색깔이 흐르듯 움직이는 모습은 여전했다.

그녀는 제사장의 황금창을 어깨에 얹은 채 내게 물었다.

‘원래라면 제2사령부로 가야겠지만….’

신시아가 망가진 사일로 위에서 어영부영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다른 사령부의 수송선을 타기 위해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1사령부로 갔을 거야.’

그녀는 컬트 랭커이니 케샤 아르마의 구조에 대해서는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터. 자기가 겪은 산소 부족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다. 요새의 생명 유지 시설들을 총괄하는 제3사령부가 내 손에 이미 함락됐다고 판단했겠지.

그러니 그나마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제1사령부로 이동했을 거다.

‘지금쯤이면 애들하고 싸우고 있을지도.’

전투 도중, 나는 26호에게 아드하이를 데리고 제1사령부를 공략해 달라고 했다. 신시아가 제1사령부로 향했다면 녀석들과 이미 조우했을 거다.

‘둘이 함께라면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는 않을 거야.’

26호와 아드하이 둘 다 막강한 사이킥 생물로 악명 높은 씨 데몬, 레드 갤러곤이다. 컬트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상성상 최악이라 해도 좋으리라.

만약 신시아가 제이슨처럼 강력한 공격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위험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 정도 공격 수단이 없다.

[즈즈즈즈 즈즈(제1사령부로 가자)]

하늘의 어머니에게 파장을 보낸 나는 날개 팔의 갑각 안에 감춰둔 피막을 꺼냈다. ‘뼈 야수’가 해제되지 않은 터라 내 몸의 크기는 여전히 거대한 상태. 범선의 돛이 펼쳐지듯 피막이 넓게 펴지자 내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확 밀려났다.

「크긴 진짜 크네.」

작게 감탄한 그녀도 함께 날개를 펼쳤다. 그리폰 때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날개를 펼친 그녀가 나보다 먼저 날아올랐다.

그녀를 뒤따라 나 역시 날개를 흔들었다. 익장(翼長)만 100m에 달하는 거대한 두 날개가 날갯짓을 하자 내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쓸려 나갔다.

날개를 한 번 휘저을 때마다 폐건물들이 부서지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이 휩쓸려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수많은 잔해 중에는 호버 버스도 있었다. 무슨 일이 겪었는지 반쪽만 남은 버스의 잔해는 바람에 날아가다가 어떤 건물 위에 처박혔다.

폐허가 된 구역들 위를 날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원통형의 길쭉한 건물이 보였다. 우리는 차폐벽으로 둘러싸인 제1사령부 앞에 착지했다.

「이미 싸우고 있나 본데?」

그녀 말대로 차폐벽에는 아주 커다란 드릴로 뚫은 것 같은 구멍 하나가 있었다. 그 안쪽에서는 해적들의 비명과 총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일단 입구부터 넓혀야….’

차폐벽의 구멍을 잡아 늘리기 위해 날개 팔로 붙잡은 순간, 안쪽에서 들리던 소리가 뚝 멎었다. 그리고 익숙한 파장과 사념파가 흘러나와 내 괴물의 촉수를 간질였다.

「큰애기 느낌이다!」

「큰어른」「맞아」「나가자」

「응! 나가자!」

잠시 후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 중이었는지 26호는 몸을 크게 키운 상태였고, 아드하이는 머리와 앞다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큰애기 크다!」

「큰어른」「변신?」

[즈(응)]

내가 뼈 야수를 사용한 것을 몇 번 봤기에 녀석들은 무지막지한 크기의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날개를 지닌 하늘의 어머니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둘 다 놀란 반응을 보였다.

「중간애기도 파닥파닥 생겼어? 성장하면 생기는 거야?」

「응. 네 말대로 성장해서 날개가 생겼어.」

「신기하다! 나도 파닥파닥 갖고 싶다!」

「못생긴 친구」「약간」「나아졌어」

「그러면 못생겼다는 말을 빼야하지 않을까.」

「꼬리」「얇아」「못생겼어」

「…너 나 지켜 준다더니 그냥 가 버리고 그렇게 말하기야?」

「어차피」「성장」「거의」「끝난 것」「알아」「그래서」「간 거」

「한 마디도 안 지는구먼.」

둘은 새로운 모습의 하늘의 어머니가 꽤 인상 깊은 것 같았다. 26호는 촉수 끝으로 그녀의 날개를 살살 건드리며 신기해했다. 아드하이도 말과는 달리 그녀의 날개가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그녀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싸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녀석들의 뒤편을 보니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든 시체들이 즐비했다. 신시아가 벌써 죽었을 리는 없으니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보조기관에 집중해 봐도 살아 있는 존재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설마 다른 곳으로 갔나?’

[즈즈 즈즈 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여기 오던 중에 강한 적을 본 적 있어?)]

「강한 적?」

[즈 즈즈 즈즈즈즈(응. 나와 싸우던 적)]

26호도 나와 함께 싸우다가 도중에 이탈한 것이니 신시아를 기억할 터. 만약 그녀가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숨었다면 찾기가 난감해진다.

그런데 녀석의 답변은 나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나랑 작은애기랑 같이 나쁜 녀석 혼내줬어!」

[즈(응?)]

「딱딱한 껍데기 쓰고 파닥파닥하던 나쁜 녀석을 작은애기가 때려줬어!」

「동의」「별의 힘」「이용」「뿔난 인간」「습격」「하지만」「뿔난 인간」「이상한 힘」「사용」「죽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이걸로 파박했어! 파박!」

26호가 두꺼운 촉수 하나의 형태를 바꿨다. 실에 묶인 바늘처럼 가느다랗게 변한 촉수가 허공을 찌르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둘이서 신시아를 죽였다고?)]

둘로부터 믿기 어려운 대답이 튀어나와 재차 물었다.

「응. 혼내주고 먹었어.」

「맛」「안정적」

「맞아! 맛있었어!」

「잠깐. 둘이서 랭커를 죽이고 잡아먹었다고?」

[즈(와)]

아무래도 둘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신시아를 해치운 것 같다. 단순히 제압하거나 시간을 끄는데 그친 것이 아니다. 잡아 죽이고 시체까지 남김없이 먹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메탈릭 그렘린.’

미친 듯이 달려들던 놈들은 도망치기 전,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그게 사이킥 브레스가 두려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게 원인이라기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신시아가 죽으면서 그녀가 메탈렉 그렘린을 불러들인 도구에도 문제가 생긴 거다.

‘거참.’

씨 데몬, 레드 갤러곤 조합이 컬트와 극상성이라고 해도 상대는 랭커. 게임에서도 보스급 생물을 여러 번 사냥한 자들이니 당연히 공략법도 훤히 꿰고 있다.

나도 녀석들이 신시아를 붙잡아 두고 있을 줄 알았지, 거뜬히 패 죽이고 시체까지 먹어 치울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 둘이서 랭커를 잡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가슴 속으로부터 치밀어 올랐다.

녀석들이 랭커를 잡아먹는 바람에 특전을 잃어버려서? 필요한 정보원을 상실했기 때문에?

전부 아니다. 내 가슴을 울리는 이 감정은 분노라든가 아쉬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다.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둘 다 잘했어. 정말 훌륭해)]

그것은 기쁨이었다.

「와! 큰애기가 칭찬했어!」

「나」「대단해」「위대한 아드하이!」

괴물의 촉수가 만들어 낸 파장에서 나의 감정을 느낀 녀석들이 기뻐한다. 26호는 커진 덩치를 생각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쿵쿵 뛰었고, 아드하이도 내 등 위에 올라타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솔직히 신시아의 특전과 정보가 아쉽긴 했으나 녀석들의 성장은 그보다 가치가 있었다.

녀석들은 나의 도움이나 지휘 없이도 스스로 작전을 짜 신시아를 잡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랭커들과 싸우게 될지 모른다. 지금도 제이슨이 속했던 파벌과 신시아가 속한 ‘귀환파’, 이렇게 두 파벌이 나와 적대 중이다. 각 파벌에 속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모르지만, 결코 적은 수는 아닐 거다.

‘녀석들이 랭커급 실력을 갖춘다면 앞으로 적과 싸울 때도 훨씬 수월해지겠지.’

그런 실리적인 생각이 드는 한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도 있었다.

예전에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 앞에서 연기자 흉내를 낸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유명한 여배우였던 어머니는 항상 깐깐한 사람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평상시 감정 기복이 거의 없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말없이 웃으셨다. 기자들을 만났을 때, 세트장에 섰을 때 짓던 연기자의 웃음이 아닌 진실한 웃음.

‘…그때는 정말 기뻤지.’

그 이후 다시는 본 적 없던 어머니의 웃음이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어쩌면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어린 나를 보던 어머니가 느끼던 그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더 이상 위협 요소는 없는 건가?」

상념인지 감동인지 모를 감정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 것은 하늘의 어머니가 쏜 사념이었다.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그래. 랭커가 죽었으니까)]

「요새가 이 지경인 것을 봐서는 유전자 정수들 얻으러 간 것은 이미 처리했을 거고. 남은 해적들만 잡으면 되겠네.」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PS-111이 생명 유지 장치를 장악했어. 놈들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게임에서 한 짓을 여기서도 했어?」

[즈즈 즈즈즈즈즈(그게 효율적이야)]

요새에 남은 해적과 생존자들은 사실상 시한부 목숨이다. 강화복을 입은 자라면 산소 캡슐이 있을 테니 조금 더 버티겠지만, 그래 봐야 몇십 분 연장하는데 불과하다.

그들까지 마저 정리하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물 필요가 없다.

‘성체 진화 조건은 이미 달성했어.’

지하 보관소를 턴 덕분에 유일 특성 2개 합성에 필요한 재료 특성들을 전부 모았다. 이것들이 완성되면 바로 성체로 진화 가능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포식한 특성이 있었지.’

특성에 대해 생각하다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타이타보스를 잡으려다가 대신 잡아먹은 워프보이한테서 포식 효과가 떴었다.

신시아 때문에 정신이 팔린 터라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자동 취소될 때까지의 시간도 몇 분 안 남았을 거다.

나는 바로 텍스트박스를 띄웠다.

「포식 효과 발동! ‘워프 생물’ 유전자 정수 획득 성공.」

「‘워프보이’의 생물 특성 중 ‘워프 생물’을 탈취.」

「‘워프 생물’을 적용하시겠습니까?」

‘오?’

짧은 시간 동안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두 번씩이나 터지다니.

‘워프 생물’ 특성은 에이모프에게 준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용한 특성이다. 저 특성을 보유하면 초광속 항해를 준비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도주할 때 상당히 좋은 능력이지.’

‘괴수의 강화 날개’를 얻은 지금, 나는 홀로 초광속 항해를 쓸 수 있다. 그런데도 전투 중에 쓰지 않는 이유는 초광속 항해를 준비하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거의 5분 이상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 하므로 적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여기서 워프 생물 특성을 얻으면 초광속 항해에 돌입하기까지의 시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런 좋은 특성을 여기서 얻다니.’

워프보이한테 워프 생물을 얻을 확률은 매우 낮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수락을 선택했다.

그리고….

「증표 저장 기관에 보관된 ‘제이슨(제이슨 터닝햄)’의 특전과 ‘워프 생물’ 융합 가능.」

「특성 강화 시스템 사용 대상입니다. 시스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텍스트박스가 또다시 내 예상에서 빗나가는 메시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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