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83화 (284/400)

Episode 283 - 뒷정리(2)

‘이건?’

텍스트박스의 메시지는 새 강적의 증표에 관한 것이었다.

전에 제이슨을 먹고 빼앗은 특전은 총 3개. 그중 2개는 내가 보유하고 있던 특성들과 합쳐져서 각각 ‘심연의 색채’와 ‘형상 지배자’가 됐다.

딱 한 개만 합성할 재료 특성이 없어서 불완전한 강적의 증표로 남아 있었다. 요새에 오기 전까지 수많은 특성들을 얻었으나 호응하는 특성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여기서 얻을 줄이야.

‘워프 생물을 요구한다면 그건가?’

하나 짐작 가는 것이 있다.

제이슨이 사용한 순간이동 능력.

놈은 능력 사용 도중에 내게 목이 잘리는 바람에 몸만 이동했다.

사이킥 파워 기술 중에 장거리를 단번에 이동시키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를 강화시켜서 빠르게 이동하거나, 아니면 우호적인 대상을 근처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수준에 그친다.

그리고 함선이 아니라 개인이 착용하는 장비 중에서 장거리 순간이동 장비는 내가 알기로 없다. 기껏 해야 퀘스트 보상 장비로 얻는 ‘조율자’ 정도가 있을까?

제이슨이 존재하지 않던 장비를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면, 이 특전은 순간이동 능력과 관련이 깊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 마침 호응하는 특성도 초광속 항해의 준비 시간은 단축시키는 ‘워프 생물’이다.

‘뭐가 됐든 직접 보는 것이 빠르겠지.’

강적의 증표도 특성 강화 대상. 최대 10개까지 재료 특성을 소모해서 더 강한 ‘강적의 증표’로 만들 수 있다.

‘마침 잘됐네.’

내부기관 타입을 얻기 전, 나는 최대한 특성 수를 늘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받았다. 덕분에 내게는 다수의 특성들이 쌓여 있다.

우주괴물 타입의 1단계 보상인 ‘정수 재배열’ 효과 덕분에 한 번 얻은 타입은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니 불필요한 특성들을 여기서 소모해도 괜찮으리라.

‘그렇다고 다 쓸 수는 없고 한 5개 정도만 쓰자.’

유일 특성 2개를 합성하는 것도 아직 남아 있으니 굳이 여기에 다 투자할 필요는 없다.

‘방열 분비물이랑 열 방출, 이거 2개는 필요가 없지. 그리고 소화액 분비 강화는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이것도 넣고, 나머지는 근육 보강이랑 골밀도 강화를 넣자.’

재료 특성 5개를 설정하고 확인을 선택하자 강적의 증표 시스템이 즉시 가동되었다.

「‘제이슨(제이슨 터닝햄)’의 특전과 ‘워프 생물’ 특성이 융합. ‘워프의 ■⫯⪿⨕∬특성 강화 시스템 개입!」

「‘별빛 좌표’ 특성으로 진화!」

「별빛 좌표: 일반 물건 및 우호적인 생물을 특정 좌표로 순간이동, 또는 초광속 항해를 시킬 수 있습니다.

*주의: 특성 사용 후 최소 1분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 물건의 크기가 클수록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추신: 별자리를 정하던 자들도 별 사이를 직접 오가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별빛 좌표?’

순간이동에 관련된 특성이긴 한데 예상과는 약간 달랐다.

‘다른 생물을 이동시키는 특성이라니.’

스페이스 서바이벌에서 홀로 다른 존재를 이동시킬 수 있는 생물은 단 둘. 새로 얻은 강적의 증표 특성은 둘만 보유한 능력과 비슷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당장 실험해 봐야겠어.’

초광속 항해를 시키면 확인이 불가능하니까 당장은 순간이동부터 확인해야겠다. 주위를 둘러본 나는 망가진 총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용해야 하지?’

옮길 물건은 정했는데 막상 어떻게 이동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악몽의 지평선’과 비슷하게 침식 촉수로 옮기는 것인가 싶어 촉수를 뽑아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초광속 항해를 할 때처럼 날개 피막을 펼쳐봤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옮겨야….’

고민하던 중 손가락으로 집은 총과 가까워지자 턱 아래의 보조기관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렸다. 보조기관의 끝이 총을 향하자 텍스트박스가 떠올랐다.

「이동 가능 ‘물건’으로 확인. 이동 후 ‘1분’ 동안 활동 정지함.」

‘보조기관으로 지정하는 거구나.’

섬세한 감각기관 역할, 미래의 위험을 감지하는 역할에 이어 세 번째 역할이 생겼다. 나는 보조기관으로 이동시킬 물건을 지정하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저기면 되겠지.’

물건을 옮길 장소는 차폐벽으로 덮인 사령부 윗부분.

이미지를 기억하고 초광속 항해를 할 때처럼 집중했다. 그러자 보조기관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보조기관과 공명이라도 하듯 총도 파랗게 빛나더니 곧 내 손가락 사이에서 사라졌다.

‘확인을…아차.’

제대로 이동했는지 고개를 들어 확인하려고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정신은 멀쩡해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근처에서 총이 땅과 부딪친 소리가 들렸다.

「음?」

「큰어른」「난쟁이」「물건」「사라졌어」

「큰애기 졸려? 왜 가만히 있어?」

「뭔가 실험하는 게 있나 보네. 잠깐 기다려보자.」

「응.」

내가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늘의 어머니만은 내가 새로 얻은 힘을 실험 중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 같다.

모두가 얌전히 기다리는 동안, 1분이 지나니 몸의 통제권이 빠르게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한 차례 털었다.

‘1분하고도 텀이 조금 있네.’

1분 동안은 꼼짝도 할 수 없고, 그 시간이 다 지나도 굳어 있던 몸이 회복되기까지 몇 초 정도 더 걸린다.

‘전투 중에 사용하려면 잘 판단하고 써야겠네.’

‘별빛 좌표’는 잘 사용하면 굉장히 유용한 만큼 리스크도 큰 특성이었다.

‘총 말고 다른 것도 실험해볼까?’

텍스트박스를 보면 물건의 크기가 커질수록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진다고 한다. 그것 말고는 딱히 제한이 없었다.

‘혹시 이 요새도 옮길 수 있으려나?’

나는 몸을 숙여 보조기관을 바닥에 가까이 댔다.

「이동 가능 ‘물건’으로 확인. 이동 후 ‘6872시간’ 동안 활동 정지함.」

‘이건 안 되겠네.’

6천 시간 이상 못 움직인다는 메시지를 본 나는 깔끔히 포기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6천 시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생기지 않는 한, 거대한 물건을 옮기는 것은 보류다.

‘그 다음이 우호적인 생물.’

설정상, 시스템상 에이모프에게 우호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다.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공생물 포자가 이식된 대상을 말하는 거겠지.’

텍스트박스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지 않으나 아마 맞을 거다. 나는 턱 아래의 보조기관으로 애들에게 한 차례 가까이 댔다.

「간지러워!」

「뭐임?」「뭐임?」

「…야, 잠깐. 갑자기 왜 그래?」

녀석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텍스트박스의 메시지도 달랐다.

26호와 아드하이는 우호적인 생물로 분류되었지만 하늘의 어머니는 아니었다. 신격화 단계를 올리면서 공생물 포자가 강제로 해제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잠깐 도와줘. 실험할 게 있어)]

「그럴 거면 미리 말부터 해.」

하늘의 어머니에게 공생물 포자를 다시 이식한 나는 별빛 좌표를 준비했다. 그녀의 몸을 덮은 황금색 털 위에 푸른색 빛이 내리깔리고 그녀의 모습이 앞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 무너진 건물 위에서 초광속 항해를 할 때처럼 푸른빛이 번뜩이고 그녀가 튀어나왔다.

「이건 워프가이드랑 비슷한 것 같은데, 약간 다른가?」

「와! 어떻게 한 거야?」

「못생긴 친구」「별의 힘」「사용 가능?」「신기해」

그녀는 건물 위에서 날개를 펼쳐 이쪽으로 날아왔다. 26호와 아드하이는 순간이동이 신기한지 재잘거렸다.

「대신 제약이 좀 있나 보네.」

내가 페널티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그녀가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1분 후 페널티가 해제된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생물이나 물건을 순간이동 시키는 특성이야. 초광속 항해도 가능하다고 하네)]

「그 대가로 사용한 다음 못 움직이고?」

[즈즈즈(정확해)]

「흠흠. 배가 없을 때나 급습할 때 유용할 것 같네.」

역시 랭커답게 장단점을 금방 캐치해낸다.

그녀와 별빛 좌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려는데 26호가 촉수로 나를 툭툭 쳤다.

「큰애기야. 나도. 나도 해 줘」

[즈(응?)]

「나도 짜잔하고 싶어. 짜잔!」

「나」「궁금해」「나도」

녀석의 반응을 보니 별빛 좌표 실험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 이후.

새 특성을 이용할 실험은 뼈 야수 효과가 종료된 이후에 끝이 났다.

녀석들은 실컷 논, 아니 실험 결과에 충분히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좋아하면 됐지.’

덕분에 텍스트박스에 적혀 있지 않은 부분들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대상을 옮기고 난 뒤에 받는 페널티를 보면 나의 몸 크기에 영향을 받았다. 뼈 야수로 인해 길이가 80m까지 늘어났을 때와 원래 크기로 돌아왔을 때를 비교해 보면 페널티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

‘몸을 키우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성체가 되면 지금보다 몸이 커지긴 한다. 그래도 요새처럼 거대한 구조물을 옮기는 것은 벅차겠지. 페널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터.

일단 새로 얻은 강적의 증표에 대한 분석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나는 다시 작아진 몸으로 차폐벽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즈즈 즈즈 즈즈 즈즈(안에 남은 사람 있어?)]

「난쟁이」「아직」「있어」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여기 정리하고 PS-111 데리러 가자)]

「응! 친구 배고플 수도 있으니까 밥도 챙겨 가자!」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밥이라. 여기도 식량 창고가 있을 테니 찾아보자)]

「식량 창고?」「무슨 의미?」

「나 알아! 맛있는 먹이가 가득한 곳이야!」

「휴. 오랜만에 사람 먹는 음식 좀 먹겠네.」

[즈즈 즈즈 즈즈 즈즈(남은 것은 배에 실자)]

「고마워.」

우리는 서로 잡담을 나누며 사령부 안을 뒤졌다.

숨어 있던 해적과 생존자들이 우리를 공격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제1사령부든, 제3사령부든 상관없었다. 우리 말고 움직이는 모든 존재는 정화되었다.

한때 컬트 제국의 영광을 드높였던 케샤 아르마.

위대한 우주요새에 단 하나의 인간도 남지 않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하루가 채 되지 않았다.

뒷정리를 마친 나와 애들은 함선을 타고 요새를 떠났다.

우리가 떠난 직후, 요새는 근처에 있는 광산 행성 위로 추락했다. 떠나기 전에 PS-111이 요새의 원자로를 망가트려 행성 궤도에 떠 있을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관련한 모든 흔적이 사라졌으니 누가 와도 케샤 아르마를 붕괴시킨 원흉을 찾지 못할 거다.

폭발하는 요새를 뒤로하고 PS-111의 통제를 받는 해적선은 초광속 항해에 접어들었다.

나는 함선 내부에 흐르는 에너지를 느끼며 화물칸의 바닥에 엎드렸다.

화물칸의 전경은 케샤 아르마에 도착했을 당시와 많이 달라졌다. 못보던 새로운 컨테이너들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저 거대한 냉동 컨테이너 안에는 사령부에서 가져온 식재료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 탓에 경질화된 인간 석상들은 구석 한 켠으로 밀려난 신세가 됐다.

‘자,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는 석상 하나를 사탕 먹듯 까먹으며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열었다.

「‘준성체’->‘성체’

에이펙스(APEX) 30/30(달성 완료)

보유한 유일 특성 8/10(미달성)

보유한 타입 6/6(달성 완료)」

「‘초월’ 재료 목록: 강화 두개골, 갤러곤의 뿔, 가시털 발사 꼬리, 단백질동화 작용, 군집 피부 조직」

「‘초월’ 재료 목록: 강화 대형 꼬리, 생체전기 방출관, 폭발성 체액 발사기, 파괴 음파, 포자 대포」

이 두 특성을 완성시키면 성체 진화 조건을 전부 달성한다.

‘성체가 코앞이구나.’

진화를 앞두고 남은 마지막 남은 관문이다. 유일 특성 2개의 재료에 강화용 재료 특성들까지 투입한 나는 합성을 선택했다.

몸에서 점액질이 쏟아진다.

내 의식도 쏟아지는 점액 속으로 점점 가라앉았다.

-

죽은 행성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는다. 행성의 궤도를 맴돌던 금속의 천공성이 그 운명을 다한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백 개의 감지 기관이 일제히 시야를 돌렸다.

천공성을 죽인 자들은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어둠 속에 작은 푸른빛만 남기고 떠났다.

푸른빛의 잔영을 바라보는 수백 개의 감지 기관들. 가느다란 외부 기관을 잔뜩 늘어놓은 존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주에 떠도는 암석 파편처럼 고요하기만 한 겉모습과 달리 그 존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들만이 사용하는 고유 통신 체계를 통해 대량의 의견들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종자는 죽었다.]

[종자를 죽인 자는 위험하다.]

[‘포식자’인가?]

[‘포식자’다.]

[‘포식자’, 쫓지 않는가?]

[‘여제(女帝)’께서 말씀하셨다. ‘포식자’는 ‘여왕’보다 강하다. 그러니 쫓지 않는다.]

[여제께 종자의 죽음, 보고한다.]

[여왕은 군체에 중요하다. 돌아오라.]

원하는 답변을 얻은 ‘여왕’은 외피 위에 돌출된 감각 기관, 그러니까 ‘수백 개의 눈’을 몸 안으로 회수했다. 눈을 모두 집어넣자 여왕의 몸통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족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저편에서 왔다.

인간들은 그들을 가리켜 바깥에 존재하는 자, 즉 ‘아웃스페이서’라 부른다.

아웃스페이서 여왕이 떠난 자리에는 파란색 빛무리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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