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86 - 우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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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를 중심으로 번성한 인류 집단, 메가콥은 일곱 가문의 지배를 받는다.
지구를 기반으로 한 노블캐피탈 다섯 가문.
화성 식민지를 기반으로 한 프라임캐피탈 두 가문.
한때 거대한 기업 연합체였던 그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가문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일곱 가문의 관심사가 태양계가 아닌 다른 성계에 쏠려 있다.
A-11 성계.
메가콥이 태양계 다음으로 장악한 성계 중 하나인 그곳에는 매우 중요한 시설이 있다.
그건 바로 메가콥 분쟁조정팀의 사옥(社屋).
테라포밍한 행성에 위치한 분쟁조정팀 CEO의 직속 기관으로 메가콥 내 가문 간에 발생한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존재한다.
메가콥에서 ‘법’의 역할은 일곱 가문의 이익을 효율적으로 보호하는 것. 그렇기에 메가콥의 법은 전부 7대 가문의 가주와 수뇌부들이 밀실 회의를 해서 정한다.
물론 아무리 시간을 들여서 만든다고 해도 ‘법’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법 자체에 모순이 생길 때도 있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분쟁조정팀이다.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
그곳 중앙에 분쟁중재팀장이 서 있었다.
“이상으로 ‘T&C·에저튼 무력 분쟁에 관한 임시 휴전 중재안’ 작성에 대한 제17차 회의를 종료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평소에는 텅텅 빈 강당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7대 가문에서 파견된 변호사들, 거대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분쟁중재팀장의 말대로였다.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의 몰락을 기점으로 노블캐피탈 티앤씨와 프라임캐피탈 에저튼 간에 발생한 무력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분쟁조정팀에 조정 신청이 들어간 이상, 관련 가문들은 무조건 합의를 봐야 한다. 합의를 거부한 가문은 상위 캐피탈의 지위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분쟁에서 지는 것보다 캐피탈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 훨씬 손해이기에 그런 일은 지금껏 합의를 거부한 가문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합의로 인한 불이익 역시 결코 적지 않다. 가문의 세가 크게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따라서 조정 회의에 참여한 가문의 변호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가문에 이익이 되도록 적 변호사를 매수하는 것은 양반이고, 필요하다면 협박, 납치 및 고문도 불사한다. 그것이 바로 메가콥식 중재라 할 수 있다.
“이의 신청은 24시간 후에 다시 받겠습니다.”
분쟁중재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당에 앉아 있던 인간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강당 뒤편에 위치한 밀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키라 유진은 모니터를 껐다. 그의 뒤에는 늙은 집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장기간 이어지던 내전이 마침내 끝을 고했다.
분쟁 초기 티앤씨 가문은 우주도시 하나를 통째로 상실했고, 그 과정에서 가문의 후계자 중 한 명까지 잃었다. 그 손해가 실로 천문학적 수준이었기에 에저튼의 우세로 내전이 종식될 거라 예측한 이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에저튼 가문에서는 얼마 전 신형 군함을 양산하는데 성공한 상황. 당연히 초기 전황은 에저튼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만약 에저튼이 가주를 잃지 않았다면 내전은 진작 티앤씨의 패배로 끝났을 거다.
“이 사태가 티앤씨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구나.”
“에저튼 쪽에서 가주를 잃은 것이 치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하다. 에저튼은 아직도 안정화가 덜 된 상황이지.”
화성의 흑사자라는 이명을 지닌 덴버 에저튼. 그는 티앤씨 특수무역중심지가 무너질 때 실종됐다. 에저튼의 가신, 장로들은 각자의 이익에만 정신이 팔려 티앤씨와의 전쟁에 신경 쓰지 못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저울의 무게는 티앤씨 쪽으로 흘러갔다.
지휘부의 혼란, 생산 공정에 발생한 문제. 이 두 가지 요소가 에저튼을 패배로 이끌었다.
아직 조정안이 완성되지 않았으나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티앤씨는 저 조정안을 토대로 에저튼에게 온갖 이권을 뜯어낼 터.
“덕분에 유진 가문의 손길이 에저튼에게도 미치게 됐다만, 이래서야 큰 이익을 보지는 못하겠구나.”
“…….”
아키라가 내전 중에 에저튼을 밀어줬다는 것은 집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헤아리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주인이 에저튼을 지원한 것은 그들이 좋아서가 아니다. 티앤씨의 성세가 유진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아키라는 티앤씨 쪽에 몰래 그림자를 보내 사보타주를 하는 한편, 에저튼 측에는 헐크 뮤턴트를 비밀리에 지원했다. 그가 도운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에저튼은 훨씬 큰 손해를 봤을 거다.
덕분에 에저튼 내부에서도 아키라를 지지하는 자가 크게 늘어났지만 아키라는 만족할 수 없었다.
집사는 주인의 분노가 티앤씨 약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반만 맞았다.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아키라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전의 시발점.
티앤씨의 우주도시를 붕괴시킨 원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아키라 유진은 누가 이 내전을 유도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에이모프!’
그 빌어먹을 모프박이 놈은 게임에서 했던 방법으로 도시를 오염시켰다. 놈 때문에 우주요새를 잃은 적이 있는 그였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를 더 화나게 만드는 것은 놈과 그가 짧은 시간이지만 한 도시에 같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우주도시를 방문했을 때, 놈은 도시 어딘가에서 암약 중이었다.
당시에는 배신한 그림자, 시현 유진이 한 짓이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일찍 눈치챘다면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
자기를 비웃으며 저 우주 어딘가를 싸돌아다닐 놈을 생각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실제로 놈이 애완 갤러곤의 반지를 강탈해서 비석으로 조롱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에이모프, 범호!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범호의 꼭두각시 시현 유진. 벌써 두 번이나 엿을 먹인 모프박이. 현실에서도 그를 괴롭히던 자들이 다른 세계에서도 똑같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주바카는 연락을 안 한지 반년이 넘었고, 클로에는 수성의 연구기지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는 중이다.
전부 제이슨의 죽음 이후 일어난 일이었다.
‘어차피 내전도 끝. 슬슬 정리할 때인가.’
아키라가 이후에 어떻게 나설지에 대해 생각하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집사가 문을 열자 검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들어와 아키라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키라 님. 세인트케이 가문의 가주 월터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아, 오랜만에 기쁜 소식이구나.”
기다리던 인물이 왔다는 소식에 아키라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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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 오랜만이네.’
게임이 아닌 이곳에서 성체가 된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다.
전에 제국모함의 코스믹 볼트를 막기 위해 나는 사이오니움을 복용했었다. 그때 짧은 시간이나마 성체의 위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괴수의 왕’도 같이 썼다고 해도 무려 제국모함과 모함전단(母艦戰團)을 궤멸시켰으니까.
지금 나의 상태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정직히 말하자면 게임 속에서도 이런 모습을 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초월 시스템으로 만든 유일 특성이 내 몸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초월’은 게임에 존재하지 않은 시스템. 당연히 이를 통해 만든 유일 특성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특성을 얻은 상태로 성장했기에 외형도 기본적인 성체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 한다면 셋. 몸 크기, 체형, 머리일 거다.
먼저 몸길이부터 보면,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의 길이가 60m 가량으로 늘어났다. 고치에 들어가기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그뿐 만일까. 체형도 달라졌다. 준성체에 막 접어들었을 때의 형태가 뱀, 성체가 되기 직전의 형태가 거미라고 한다면, 지금은 과거 유체, 아성체 시절처럼 이족보행에 적합한 체형으로 돌아왔다.
허리에서 꼬리가 시작되기 전에 위치한 전투용 팔이 아래로 내려가 다리로 변화했다. 역할 변화에 맞춰 관절도 지행(趾行)형 다리의 형태가 됐다.
단, 날개 팔 2개, 전투용 팔 2개도 여전히 크고 길었기에 고릴라를 비롯한 유인원처럼 앞발을 땅에 집고 걷는 이족보행에 가까웠다.
두 다리로 선 내 몸의 높이는 얼추 40m 정도. 직립했을 때의 높이만 해도 화이트 갤러곤의 몸길이를 능가한다. 물론 목의 길이가 길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걸 제한다고 해도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게임에서는 이 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말이야.’
여기서 20m 정도 빼야 본래 성체의 크기다. 크기만 커진 것이 아니라 힘도, 방어력도 그만큼 증가한 것 같았다.
「큰애기 크다!」
내가 고치에서 깨어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던 26호는 고치가 깨지자마자 모두를 불렀다. 해적선에 있다가 크레이터로 모인 애들은 변한 내 몸을 보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와, 크기 봐.」
하늘의 어머니는 게임 속보다 훨씬 큰 내 모습에 넋이 나간 반응을 보였다. 그녀도 게임 속의 성체 모습을 알고 있을 테니 나와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리라.
「뿔!」「많아」「커」「완벽해!」
아드하이는 내 변화가 매우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날개를 펼친 채 내 머리 위를 뱅뱅 돌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녀석의 격렬한 반응대로 성체가 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변한 부분은 머리다.
에이모프 성체가 되면 머리가 3개로 증가한다. 중앙의 머리 양옆에 뻗어 나온 긴 목 끝에 새로 자란 머리 2개가 보인다.
성체 특전으로 받은 특성 ‘세 개의 머리’ 효과다
내 의식을 느낀 머리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양옆의 두 머리의 형태는 전반적으로는 중앙의 머리와 유사했다. 길쭉한 2개의 엄니, 뱀처럼 길게 뻗은 주둥이, 턱 아래에 달린 보조기관, 머리에 달린 뿔 등등.
그 대신 두 머리에는 눈이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 부분에는 뿔이 자리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뿔도 없어야 하지만, 성장하기 직전 얻은 유일 특성 덕분일까. 두 개의 머리에는 각각 뿔이 4개씩 솟아 있었다.
「그르르」
「그르르르」
머리 2개가 추가되었다고 해서 내 지능이 높아진다거나 머리 안에서 둘의 목소리가 들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두 개의 머리와 연결된 감각을 보면 둘에게 뇌는 존재하지만 나의 팔이나 다리와 비슷한 부위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자의식을 갖되 본체의 명령에 복종하는 생체로봇이라고 할까.
‘게임에서 이 머리 때문에 답답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AI가 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기습에 실패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 개의 머리가 지뢰 특성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세 개의 머리를 지닌 채로 본체, 그러니까 중앙의 머리가 파괴되어도 죽지 않는다. 남은 두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의식을 이어받아 몸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두 개의 머리에는 눈이 없지만 보조기관은 달려 있다. 머리 세 개가 턱 아래에 보조기관을 달고 있는 덕분에 내 감각은 이전에 비할 데 없이 높아졌다.
‘…이건 익숙해질 때까지 좀 걸릴 것 같네.’
수km 밖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코앞에서 감지하는 느낌이라 생각보다 성가셨다. 게임에서는 관측 가능한 미니맵이 넓어지는 것에 끝났기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두 개의 머리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애써 차단했다.
「그르?」
「그르르」
「간지러워!」
내 의식이 빠져나가자 두 개의 머리들은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들은 목을 숙여서 26호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혓바닥으로 녀석을 핥아댔다. 녀석은 기분이 좋은지 황량한 행성 한복판에서 빛을 반짝반짝 내뿜었다.
「나도」「나도」
「그르르르」
「기분」「이상해」「신기해」
“저도 그 감각이 어떤지 매우 궁금합니다. 제게도 부탁드립니다.”
「그르르?」
“감사합니다. 매우 도움이 됐습니다.”
「어, 나는 안 해 줘도 돼.」
「그르」
‘리트리버 같네.’
본능만 남은 것인지, 아니면 내 감정이 왜곡되어 전달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두 개의 머리는 애들에게 친숙한 태도를 보였다. 에이모프를 아는 자가 보면 절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애초에 멀쩡한 사람이 내 모습을 보면 졸도하겠지.’
하늘의 어머니만 빼고 나머지 애들은 두 개의 머리와 노는 것이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원래라면 고치 속에서 본 환상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하늘의 어머니도 이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녀가 본 환상 중에는 자기 자신과 겨루는 것이 없었으니까.
인면충이 된 제이슨에게 확인하려고 했으나, 즐겁게 노는 녀석들을 모습을 보니 그건 뒤로 미뤄둬야겠다.
대신 나는 나머지 변한 부분들을 체크했다.
중앙 머리에 달린 여섯 개의 뿔, 날개 팔은 몸의 성장에 맞춰 더 거대해졌고, 몸의 외피는 우주요새의 외벽처럼 두꺼워졌다. 몸을 지탱하는 전투용 팔과 다리의 근육은 생체갑주라 해도 좋을 정도로 굵어졌다.
‘아, 이것도 달라진 점이라 봐야 하나?’
내 등에 달린 생체대포가 새로 얻은 유일 특성 때문에 꼬리로 옮겨갔다.
그 덕분에 현재 내 꼬리는 두 개. 체형이 변하면서 생긴 골반 부위부터 갈라진 두 개의 꼬리는 각각 길이만 수십m에 달했다.
꼬리의 형태도 서로 달랐다. 한쪽 꼬리는 집게발이 달려 있었고, 다른 한쪽 꼬리는 생체대포가 달려 있었다. 이 중 생체대포가 달린 부분은 진화 직전에 내가 확보한 2개의 유일 특성 중 하나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몸 체크는 여기까지 하고.’
진화하기 전에 얻은 유일 특성 2개, 그리고 우주괴물 타입 2단계 특전을 확인할 차례다.
‘먼저 특전부터.’
과연 2단계에서는 무엇을 줬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으며 반투명 텍스트박스를 열었다.
‘이건?’
떠오른 텍스트박스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2단계 보상
이중나선의 모노리스: 보유한 특성(유일 특성 제외)을 우호적인 생물에게 이식시킬 수 있습니다. 이식된 특성은 영구적용이며 한 생물당 이식 가능한 특성은 2개입니다. 이식 가능 특성은 우주괴물 타입의 단계 상승에 영향을 받습니다.
*추신: 인도자가 될 것인지 파괴자가 될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