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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89화 (290/400)

Episode 289 - 이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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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m짜리 구체 형태의 채굴선, 기가크래커는 메가콥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대하다.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구조도 일반적인 우주선과 많이 다르다. 일단 선원들을 위한 시설이 거의 없다. 배 내부 시설을 보면 이온캐논 작동을 위한 시설, 혹은 채굴한 광물들을 저장하는 저장고들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탑승자의 수에 비해 관리해야 할 시설이 워낙 크다 보니 배 전체의 80%가량이 기계의 관리를 받는다. 선원들은 이 기계의 통제권을 쥐고 기계들을 관리, 보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실상 겉만 우주선이지, 실제로는 우주를 떠다니는 자동화 공장이라 보면 된다.

이처럼 개개인이 관리해야 할 시설이 많다 보니 탑승자들에게 전문적 지식이 많이 요구된다. 노블캐피탈 세인트케이가 괜히 기가크래커의 승무원들을 철저히 관리하는 게 아니다.

노블캐피탈, 프라임캐피탈 같은 상류층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교육을 받은 자들.

이 배의 관리자들이 제한된 거주 구역 내부를 걷는 중이다.

어둠에 잠긴 복도 위, 큼지막한 인형들이 부지런히 이동 중이었다. 그들은 모두 강화 외골격과 우주복이 섞인 형태의 상급 강화복을 입었고, 두 손에는 플라즈마 라이플을 들었다.

지구 방위군의 제식 무기로 개발된 플라즈마 라이플은 피스톨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가벼운 플라즈마 무기였다. 화력은 플라즈마 볼터보다 부족하나, 뛰어난 안전성과 가벼운 무게라는 장점이 있다.

깔끔한 유선형 디자인의 은색 총 겉면에 장착된 녹색의 반투명 에너지 게이지가 복도의 암흑 속에서 빛났다.

“초광속 항해는 아직 불가합니까?”

중무장한 일행 중 선두에 선 자가 입을 열었다. 기가크래커의 함장, 타이런 세인트케이의 질문에 팔목의 컴퓨터 패드를 확인한 팀장이 대답했다.

“예. 외부에서 오는 정체불명의 전기 신호가 원격 조종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결국 직접 가는 방법밖에 없습니까.”

회의실에 있다가 봉변을 당한 그들은 비상 병기고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꺼내 입고 엔진실로 향했다.

충돌이 발생하기 전의 긴급 방송을 마지막으로 통신은 완전히 먹통이 됐다. 시설 간의 원격 조종도 보다시피 불가능한 상황.

기가크래커를 운용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였다.

“원인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자기장 폭풍?”

“현상 자체는 유사하나 범위가 지나치게 작습니다. 경로도 부자연스럽고 발원지도 부정확합니다.

“전자기기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메탈릭 그렘린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아마 메탈릭 그렘린은 아닐 겁니다. 놈들에게는 2km짜리 배를 뒤흔들 정도의 힘이 없습니다.”

팀장들은 이동하면서 각자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혹시 아웃스페이서 아닐까요? 놈들 중 덩치가 큰 놈은 웬만한 전함 크기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최근 제국 쪽에서도 대공세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웃스페이서 무리가 이곳에….”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팀장들이 아웃스페이서 무리가 아닐까 의견을 내놓았으나 타이런은 바로 부정했다.

“아웃스페이서는 일반적인 전함처럼 초광속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렇습니까?”

“놈들은 행성을 오염시킨 뒤, 성계 간에 초공간 도약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특수 장치를 만듭니다. 그 장치가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합니다.”

“함장님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대공세 기록을 보면 오염된 식민지로부터 놈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했으니까요.”

노블캐피탈, 프라임캐피탈 아래의 계층들은 메가콥 데이터베이스에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처럼 습득한 정보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령 아웃스페이서 고유의 이동 수단인 ‘바이오 포털.’ 이는 놈들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기에 극비 정보로 취급된다.

함장 타이런은 세인트케이의 일원. 이 자리의 팀장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

“항해팀장. 인근 성계의 기지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취한 것이 언제였습니까?”

“2시간 전입니다.”

“정기 연락은 3시간 간격으로 이루어집니다. 1시간만 지나면 저쪽에서도 기가크래커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테니 모두 희망을 잃지 맙시다.”

팀장이라면 당연히 아는 사실을 타이런은 굳이 환기시켰다. 1시간만 기다리면 구조대가 온다는 사실을 다시 언급해 팀장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근처의 왜행성이나 소행성이 바이오 포털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사실 타이런은 팀장들에게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말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바이오 포털과 오염은 서로 상관이 없다는 점이라든가.

포털은 오염이 아니라 아웃스페이서 여왕 개체가 만든다. 대개 여왕이 머무는 행성은 빠르게 오염되기 때문에 둘이 상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만약 이곳 어딘가에 여왕이 있고 그것이 근처의 운석 같은 것에 바이오 포털을 만들었다면 오염된 행성 없이도 이곳에 놈들의 군세가 쏟아질 수 있는 거다.

게다가 데이터베이스에는 등록되지 않았지만, 노블캐피탈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도 있다. 놈들 중 초광속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진화한 개체가 나타났다는 소문 말이다.

‘그 얘기를 굳이 이 자리에서 꺼낼 필요는 없다.’

어두운 복도를 걷는 팀장들은 장기간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기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거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다면 이 질서는 금방 무너지리라.

타이런의 생각을 모르는 팀장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엔진실에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설비팀장?”

“함장실 라인이 식당칸 라인으로 빠지는 것보다 더 빠릅니다. 다만 상황실은 식당칸 라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던 도중에 그쪽 팀과 합류할 수 있으니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흠. ”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버티려면 일단 엔진실의 통제권부터 확보해야 한다. 적이 아웃스페이서든, 메탈릭 그렘린이든, 자기장 폭풍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설비팀장의 설명에 함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인원이 많을수록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식당칸 라인으로 가도록 합시다.”

“옙.”

함장의 결정에 따라 그들은 중간에 식당칸을 경유하는 루트를 따라 이동했다.

우주처럼 빛 한 점 없는 복도. 지독히 어두운 공간 위에 플라즈마 라이플의 게이지 바가 별처럼 반짝였다.

으스스한 복도를 지나 채굴선의 심부를 향해 움직이던 중 그들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다.

“여기도 막혔군.”

두꺼운 차폐문 앞에 일행 전부가 멈춰섰다.

함선 내 위기를 감지한 함선AI가 보호 조치를 단행하면서 거주 제한 구역의 차폐문들이 닫힌 것이었다. 원격 조종이 막혀서 그런지 상황실에서도 손을 못 쓰고 있는 듯했다.

“자동 차폐문, 해제하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화복의 컴퓨터 패드와 차폐문의 단말기를 직접 연결해서 해제할 수 있다는 것. 기술팀장과 연구팀장이 서로 협력해 차폐문을 열었다.

단말기와 연결된 문이 열린 순간, 멀리서 굉음이 들렸다.

“!”

“들으셨습니까?”

예리한 무언가가 금속판을 찢어발기는 것 같은 소음. 작게 들리는 것을 봐서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게 확실했으나 안심할 수 없었다.

그 불길한 소리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 들렸기 때문이다.

“…더 빨리 움직여야합니다.”

“옙.”

타이런의 재촉에 모두의 몸놀림이 더 빨라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어두운 복도를 빠르게 가로지른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또 다른 차폐문이었다.

“이 다음은 식당칸입니다.”

기술팀장과 연구팀장이 문을 여는 도중, 함장과 다른 팀장은 주변을 경계했다.

‘소리는 멈췄어.’

벽 뒤 파이프관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귀에 거슬리게 울리던 소음은 좀 전에 뚝 그쳤다.

그 정적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각해졌다는 우려가 머리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퍼졌다.

또다시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식당칸 내부는 전등이 완전히 나가지 않았는지 불이 깜빡거렸다.

하지만 그 남아 있는 빛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 벌어진 참상을 두 눈에 새길 수밖에 없었다.

기가크래커 내부에서 약소하게나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장소인 식당칸.

이 배에 탑승한 자라면 누구든 익숙할 그 장소가 지금 죽음 속에 잠겨 있다.

새하얀 바닥은 피범벅이었고, 금속재질의 식탁과 의자에는 살점과 뼛조각이 덕지덕지 엉겨 붙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모든 시체가 원래 상태를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각났기에.

그리고 깜빡거리는 불빛 아래에 분홍색 죽음이 있었다.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그 무언가는 시체와 피와 뼈로 쌓은 제단 위에서 수백 개의 눈으로 새 제물을 바라봤다.

“으, 으게에에엑!”

그 시선에 평정을 잃어버린 것일까? 의료팀장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플라즈마 라이플을 겨냥했다. 녹색의 에너지가 막 방출하기 직전, 식당칸의 천장에서 흰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무언가가 그를 덮쳤다.

타이런은 그것이 피에 젖은 식탁보라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식탁보가 촉수로 인간의 피를 빨아들이지는 않는다.

“끄아아아악!”

“모두 사격 개시!”

피에 젖은 부분이라 여겼던 부위는 식탁보, 아니 괴물의 날개였다. 백색의 몸에 붉은색 날개 4장을 지닌 괴생물은 의료팀장을 짓누른 채 잡아먹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단 다른 팀장들은 타이런의 명령을 듣고 급히 사격을 개시했다. 라이플 옆의 에너지 게이지가 차오르자 총구에서 원기둥 형태의 에너지탄이 발사되었다.

백과 적(赤)의 유령을 향해 날아간 에너지탄. 놈의 몸에 막 닿으려는 순간, 날개의 붉은색이 물감 퍼지듯 착탄지점을 감쌌다. 놈의 붉은색 몸에 닿은 에너지들은 거짓말처럼 무력화되었다.

“소, 소용없…크악!”

그 모습을 본 위기관리팀장이 소리를 치다가 도중에 자기 팔을 기형적으로 꺾어댔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팔을 비튼 것이었다. 재빨리 상급 강화복에 내장된 실드를 활성화시킨 덕에 그는 팔을 지킬 수 있었다.

다만 팔을 꺾으려 한 존재가 실드를 압도할 만큼 ‘보이지 않는 힘’의 출력이 높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그의 불행이었다.

“살았…!”

위기관리팀장이 살았다고 외치려는 순간, 그의 사지가 사방으로 뜯겨져 나갔다. 꼭두각시를 묶은 줄들을 일제히 당겨서 인형을 망가트린 것처럼 그의 파편들은 식당칸에 흩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전장에서 오래 구른 베테랑도 자지러질만한 끔찍한 광경에 설비팀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 와중에도 타이런은 간신히 침착함을 유지하며 위기관리팀장을 저렇게 만든 원흉을 찾으려 애썼다.

‘놈이다!’

타이런의 시선이 시체들 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분홍빛 해파리로 향했다. 그는 한 발 정도는 맞기를 기도하며 놈을 향해 라이플을 마구 쏴 갈겼다.

그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녹색 플라즈마탄 중 하나가 분홍색 괴물의 촉수와 부딪쳤다. 놈이 고통스러운지 움찔거린다. 다른 에너지탄들도 그 뒤를 따라 놈의 몸 위로 쏟아진다.

방금 그것이 우연이라는 듯 녹색 에너지 덩어리들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녹아내렸다. 마치 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말이다.

「■■■■」「■■■」

「■! ■■■!」

에너지탄을 공중에서 소멸시킨 분홍색 괴물은 반격하지 않았다. 붉은색 날개를 지닌 유령도 좀 전까지 보여 주던 날렵함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후퇴한다! 후퇴!”

“예, 옙!”

타이런과 팀장들은 서둘러 왔던 복도로 빠져나왔다.

두 괴물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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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그거」「뭐야?」

「몰라! 생각하니까 파밧 하고 됐어!」

「파밧?」

「응.」

「다시」「해 봐」

아드하이의 요구에 26호는 끙끙거리며 집중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갑자기 보라색 에너지 줄기가 나타났다. 깊은 바다 속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그것은 26호 주변을 덮었다.

아드하이는 ‘레드 아머’를 두른 앞발로 보라색 물결무늬를 툭 쳤다. 그러자 반탄력 같은 것이 앞발을 강하게 밀어냈다.

「이거」「별의 힘」「비슷해」

「별의 힘? 별의 힘이 뭐야?」

「강한 거」「우두머리」「상징」

「와! 공부한 게 성과가 나왔어!」

「동의」「불가」「별의 힘」「공부」「상관없어」

「아니야! 큰애기가 공부하면 똑똑해지고 쎄진다고 했어!」

26호가 당당하게 촉수를 흔들며 파장을 흘렸다. 아드하이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대신 입가의 촉수를 푸르르 털면서 툴툴댔다.

「이거면 큰애기도 지켜줄 수 있겠지?」

「아마도」

「좋아! 잘됐다! 더 많이 많이 먹어서 큰애기 안 아프게 해 줄 거야!」

「동의」「큰어른」「아프면」「알」「힘들어」

그렇게 말한 둘은 다시 힘을 기르기 위해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굳이 도망친 자들을 쫓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큰애기이자 큰어른이 선언했다.

이 배는 자신의 것이라고.

그들의 노련한 우두머리는 먹이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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