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290화 (291/400)

Episode 290 - 이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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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캐논 관리칸에서 정비팀장과 팀원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천장을 올려다 봤다.

금속 날이 서로 부딪칠 때 나는 날카로운 소음,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폭음. 둘 다 이 기가크래커에서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들이었다.

“저희도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됩니다. 저희가 이동하면 이온캐논의 통제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강화복을 입은 겁니다. 여러분들이 입고 있는 것들은 상급 강화복. 어지간한 무기로는 손상을 입힐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그 정도로 뛰어난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무언가가 밖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 아닌가?

정비팀장은 팀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 말을 꺼냈지만 딱히 효과는 없었다. 단지 팀원들도 그가 어떤 의도로 말한 것인지 이해했기에 반발하지 않을 뿐이었다.

“일단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는 여기를 방어해야 합니다. 모두 지정된 위치에서 대기하시길.”

“…옙.”

그 말을 끝으로 정비팀은 해산했다. 수십 명의 인원이 3인조로 나눠져서 복도 중간마다 위치한 정비실로 흩어졌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온캐논의 거대한 레일을 따라 설치된 정비실 중 한 곳. 그곳에서 대기하던 팀원 셋은 긴장을 풀기 위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월말 보고가 다음 주였는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그러고 보니 가족이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다. 얼마 전에 결혼했습니다.”

“좋을 때군요. 저는 올해가 5년차인데 이게 가족인지 크래딧 버는 고용인인지. 쩝.”

“혹시 자식을 가지실 계획이면 세인트케이에 보고하시지요. 보조금이 나올….”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어떤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관리칸에서 들었던 그 소리와 비슷했지만, 소리가 더 컸다. 팀원들은 저도 모르게 플라즈마 라이플을 쥔 손에 힘을 꽉 줬다.

“…다들 들으셨습니까?”

“예, 옙. 저도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데….”

뭐가 됐든 저런 소리가 근처에서 들리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다른 정비실이 습격 받는 도중일지도 모른다.

팀장이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정비팀원 셋은 라이플을 들고 정비실 밖으로 나왔다.

기가크래커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시설이다 보니 이곳에는 유사시 독립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폐쇄형 구조로 이루어져 물리적으로 접근해서 조작하지 않는 이상, 원격 해킹은 불가능하다.

환한 불빛이 깔린 복도가 팀원들을 반겼다. 정비실 간의 거리는 멀지 않다. 근처에 있는 정비실로 향한 그들은 복도에 서성이는 다른 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쪽도?”

“예.”

“나오니까 또 조용하군요.”

“다른 팀이 처리한 걸까요?”

“확실하지 않으니 확인해야 합니다.”

팀원들이 세 번째 정비실을 방문할 때까지 이상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네 번째 정비실로 가던 길에 발생했다. 복도에서 그들은 이상 현상을 목격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으나 복도에 작은 먼지 같은 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게 뭐지?”

“광물 조각 같은데요?”

그건 주황빛 마노(瑪瑙)를 잘게 빻아 놓은 것처럼 생긴 알갱이들이었다. 다른 장소였다면 불빛에 반사되어 별처럼 빛나는 그 입자들을 보고 감탄했을지 모른다.

하나 이곳은 첨단 무기를 다루는 공간. 정체불명의 이물질이 유입됐다는 것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한 예측은 곧 현실이 됐다.

입자들로 가득 찬 네 번째 정비실 앞. 그곳에는 잔뜩 구겨져서 제 형상을 찾아보기 힘든 합금 문이 놓여 있었다.

두께만 몇십cm에 달하는 대형 합금 문을 3분의 1 크기로 압축시킨 존재가 근처에 있는 것이다.

“…….”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복도에 작게 울렸다.

네 번째 정비실에 있어야 할 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홉 명은 그들이 어떻게 됐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돌아가야….”

팀원 중 한 명이 입을 연 순간, 문이 날아간 정비실 안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전조 없이 나타난 그건 어떤 고양잇과 맹수의 앞발을 닮았다. 황금색 털이 덮인 그 앞발의 크기가 성인 남성 상반신보다 크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앞발에 이어 튀어나온 것은 검은색 뿔이 달린 맹금류의 머리였다.

‘그것’의 호박색 눈동자가 아홉 명에게 향한 순간.

정비실 안쪽에서 마노색 입자들이 그들에게 쏟아졌다.

뒤편에 선 팀원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자들이 입자에 닿자마자 농구공 크기로 쪼그라드는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 덩어리가 된 동료들의 모습에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공기를 타고 이동하는 입자는 그의 목구멍에서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입자에 닿았지만 고통은 없었다. 애초에 그의 몸이 통증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됐기에.

아홉 명을 순식간에 살점 덩어리로 만든 짐승이 그들을 지나쳤다.

이곳에는 아직 그 짐승, 그녀가 잡아야 할 사냥감들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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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복도 위를 타이런과 살아남은 팀장들이 달린다.

식당칸에서 겪은 참상으로 인해 남은 팀장은 연구팀장과 설비팀장 둘 뿐. 나머지는 괴물들에게 처참히 살해당했다.

“하, 함장님! 이쪽은….”

“엔진은 포기합니다. 그보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네?”

함장의 결정에 두 팀장이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함장이 세인트케이 소속의 노블캐피탈이라 해도 기가크래커를 버린다니,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타이런은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었다.

그는 과거에 세인트케이 가주 월터 세인트케이의 취미 생활인 괴물 사냥에 여러 번 참여했다. 사냥한 수많은 포식자들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을 뽑으라면 딱 하나였다.

‘씨 데몬.’

볼프나 피쉬리안 같은 원시 지성체들 중 씨 데몬을 신으로 섬기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바다의 신, 심해의 악마 등의 이명으로 불리는 그 괴물과 싸웠던 경험은 타이런의 인생에서 가장 악몽 같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식당칸에 있던 분홍색 해파리.

크기가 작다고 해도 그건 분명 씨 데몬이었다.

‘우리들로는 놈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씨 데몬이 왜 기가크래커에 있는지, 그 사나운 놈들이 어째서 다른 괴물과 함께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놈이 배를 점거한 이상, 그들은 구조대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대학살이 벌어질 테니.

“함장님, 기가크래커를 버리는 것은 재고하시….”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

“저 괴물에 대한 정보를 구조대에게 넘기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배를 되찾는 일도 요원해지겠지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겠으나 만약 일이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함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니 팀장들은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서 계속 달리던 그들은 함장실이 속한 구역에 도달했다.

이곳만 지나면 바로 격납고가 나온다. 그곳에 가면 비상용 탈출선을 타고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난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가지 희망만 품고 달려온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끝 모를 불길함이었다. 함장실부터 격납고까지 이어지는 복도는 완전히 폐허가 됐다.

복도 너비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뒤틀며 움직인 것처럼 복도의 양쪽 벽과 천장이 박살나 있었다. 예리한 날붙이에 의해 뜯겨진 합금 벽 너머로 엉망이 된 함장실이 보였다.

씨 데몬, 날개 달린 하얀 도마뱀이 한 짓은 아니었다. 흔적만 볼 때, 복도를 폐허로 만든 존재는 그 둘보다 훨씬 큰 생물이었다.

게다가 구역 전체의 중력 유지 장치도 고장이 났는지 물건들이나 금속 파편들이 공중에 떠다녔다.

“…….”

타이런과 팀장들은 바짝 긴장한 채 망가진 복도 위를 이동했다.

소리 없이 부유해 움직이는 그들의 몸에 함장실에서 흘러나온 물건들이 부딪쳤다. 액자 윗부분이 날아가는 바람에 입가와 상반신만 보이는 여성의 초상화, 망가져서 초침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괘종시계, 깨진 유리잔 등등.

모두 일상적으로 보던 물건들이나 지금은 그 어느 하나 섬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격납고로 이어지는 복도는 길지 않다는 것. 셋은 간신히 격납고와 이어진 차폐문에 도달했다.

복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괴생물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장이 차폐문을 열자마자 타이런과 설비팀장은 날아들 듯 격납고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빨리 닫으세요!”

“예, 옙!”

언제 놈이 다시 올지 모른다. 연구팀장은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차폐문을 닫았다.

으스스한 복도가 문에 가려진 후에야 셋은 안심할 수 있었다.

“여긴 중력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놈이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탈출선이 전부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저희가 제일 처음 도착했나봅니다.”

다른 자들이 어떻게 됐을지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함장용 탈출선은 이쪽입니다.”

“함장님, 코드를.”

“예.”

유독 화려한 장식이 붙어 있는 탈출선 앞에서 타이런은 단말기에 비상용 코드를 입력했다.

「기가크래커 14호 함장, ‘타이런 세인트케이’ 확인됨.」

단말기로부터 짧은 메시지가 출력되고 탈출선의 문이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당장 올라타려고 타이런이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그의 어깨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응?”

손으로 어깨를 만져 보니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나왔다. 그는 천천히 위로 고개를 들었다.

격납고의 천장에 ‘괴물’이 있었다.

거꾸로 매달린 채 침을 흘리던 놈이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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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혹시라도 탈출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격납고에 숨어 있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함장과 수뇌부로 보이는 놈들이 도망치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다.

‘더 올 사람은 없을 것 같네.’

이온캐논 관리 시설에는 하늘의 어머니가, 기타 시설에는 26호와 아드하이, 상황실에는 PS-111이 갔다. 지금쯤이면 이 배의 모든 승무원들이 정리됐을 터.

행성을 파괴하는 슈퍼무기가 내 손 위에 있다.

‘아직은 아닌가?’

나는 새 친구가 된 함장, 타이런을 내려다 봤다.

나와 마찬가지로 인면충들의 크기도 거대화되었다. 전에는 머리부터 꽁무니까지의 길이가 1m 안팎이던 녀석들이 이제는 3m에 달했다.

중년남성의 얼굴을 한 인면충은 내 시선을 느끼자 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인근 성계에 위치한 구조 함대가 한 시간 뒤 이곳에 찾아온다고 그가 말했다. 그들까지 정리하기 전까지는 기가크래커를 완전히 소유했다고 말하기 어려우리라.

‘어떻게 할까.’

게임에서 나는 기가크래커에 버금가는 슈퍼무기들과 여러 번 싸웠다. 이 무기를 보호하기 위해 랭커들, 혹은 NPC들이 얼마나 힘을 쏟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하물며 구조 함대의 수준은 인면충에게 들은 덕분에 훨씬 상세히 알고 있는 상황. 그들은 내게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가령 내가 직접 나서서 함대를 파괴할 수 있다. 성체가 되고 강력한 유일 특성을 보유한 내게 구조 함대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니까.

혹은 평소 하던 대로 기가크래커 내부로 적들을 유인, 애들과 함께 적들을 소탕할 수도 있다.

‘아니면….’

나는 거대한 몸을 가진 나를 둘러싼 거대한 금속 구조물을 올려다 봤다.

게임에서는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적으로만 만난 대상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날아올 부나방들을 생각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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