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92 - 목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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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캐피탈 중 일원인 세인트케이 가문의 가주 월터의 별명은 ‘괴짜’다.
현 메가콥 CEO 아키라 유진도 별종 취급을 받지만 월터가 괴짜라고 불리는 맥락은 약간 다르다.
그가 괴짜 취급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로 월터는 노블캐피탈, 그것도 가주면서 어떠한 유전자 개조도 받지 않았다. 뛰어난 무기와 정밀한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그의 육체는 순수했다.
유진 가문의 인간들이 혈통을 믿듯, 그는 ‘인간의 육신’ 그 자체가 갖는 순수성을 믿었다. 원래 세인트케이 자체가 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긴 하나 월터만큼 신체 개조를 피하는 자는 드물다.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기이한데 여기서 그를 더 특이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그는 괴물, 그것도 아주 위험한 수준의 괴물을 사냥하는 것이 취미다.
보통 노블캐피탈 가주쯤 되면 사냥을 스포츠나 유흥으로 즐기지만, 월터처럼 괴물을 잡으러 다니지는 않는다. 가주의 죽음은 가문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저튼 가문이 티앤씨에게 밀리는 것도 가주를 잃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걸 알면서도 유전자 개조까지 안 한 맨몸으로 가장 위험한 괴물들만 사냥하러 다니는 월터. 그가 만약 노련한 사냥꾼이 아니었다면 최소 몇십 번은 죽고도 남았으리라. 물론 다른 노블캐피탈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미친놈, 괴짜일 수밖에 없지만.
재밌는 점은 그가 사냥을 즐기는 덕택에 다른 노블캐피탈과 관계가 좋다는 점이었다.
그는 괴물을 잡는 것 자체를 즐길 뿐, 그 유전자를 취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가 잡은 희귀하고 강한 생물들은 전부 다른 가문들에게 판매된다.
사실상 현상금 사냥꾼과 비슷한 면모를 지닌 월터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성향 덕분에 다른 가주들의 견제를 받지 않았다. 세인트케이를 제외한 나머지 가문에서는 희귀한 생물을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그를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특이한 성격임에도 다른 가주들과 사이가 좋다는 점이 그가 괴짜라 불리는 두 번째 이유였다.
그 노블캐피탈의 이단아가 지금 또 다른 괴인을 만나고 있다.
아키라의 기함(旗艦) ‘천검’에 설치된 응접실.
흑발의 중년남성과 새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지닌 노인이 식탁을 가운데 두고 앉아 있다.
마른 체격의 중년인과 다르게 노인의 몸은 그야말로 우람하다고 표현해야 할 수준이었다. 키는 중년인보다 배 이상 컸고, 팔다리는 근육으로 가득 해서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큼이나 두꺼웠다.
감히 노인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잘 관리된 몸의 소유자, 그가 바로 괴짜 월터 세인트케이였다.
“티앤씨의 가주가 내게 묻더군. 노블캐피탈의 유전자 조작 기술이면 완벽한 고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왜 다들 살아 있는 동물의 고기에 연연하는지 아냐고.”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스테이크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 올렸다.
“그가 말하길, 맛은 곧 정보. 우리가 고기를 즐길 때는 단순히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기에 담긴 ‘정보’ 그 자체를 먹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한 그는 스테이크 조각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한 시간 전 공장에서 찍혀 나온 고기나 십여 년 동안 목장에서 기른 고기나 맛은 똑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목장에서 기른 고기의 식습관, 경험, 거기에 부여된 무형의 가치는 결코 복제될 수 없기에.”
“그 애송이가 그리 말하던가?”
중년인의 질문에 월터는 고기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이 사물의 본질을 결정한다. 사담다운 말 아니겠소?”
“그렇군. 놈이 즐겨 할 만한 얘기야.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말이지.”
아키라의 시니컬한 반응에 월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고기 조각을 삼켰다.
“전에 말했던 대로 준비는 끝났소.”
“빠르군. 아주 좋아.”
“‘최고의 사냥감’이라. 기가크래커 10척 값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만.”
지난번 분쟁조정팀 사옥에서 월터는 아키라와 거래를 했다. 그 이후, 월터는 지금까지 한 가지 준비 작업을 했다.
그건 바로 기가크래커 10척을 특정 성계로 옮기는 것.
아무리 월터가 기인이고 가주라 하더라도 가문의 자금줄이라 할 수 있는 기가크래커 중 10척을 개인적인 이유로 쓰는 것은 꽤 부담되는 일이었다. 아키라가 그 손해를 채워주기 위해 어마어마한 개인 자금을 투입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으리라.
“왜 그곳에 옮기라는 거지? 놈이 볼텍스원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 놈은 볼텍스원보다 무서운 존재일세.”
“…진심이오?”
스테이크를 마저 비운 월터는 믿을 수 없는 얘기에 눈썹을 찌푸렸다.
볼텍스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다. 그것들은 노블캐피탈과 프라임캐피탈 중 최소 두 가문 이상이 전력을 쏟아 부어야 할 정도로 막강한 괴물들이다. 오래전 볼텍스원 사냥에 도전했다가 간신히 도망친 월터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괴물들보다 무서운 존재라니. 도대체 어떤 생물인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암, 그렇고말고. 내가 아는 그놈은 이 우주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존재지.”
두 번째로 위험한 존재.
미묘한 표현이지만 오히려 그 수식어 때문에 아키라의 말이 더 현실성 있게 들렸다. 구미가 담긴 월터는 입맛을 다시고 팔짱을 꼈다.
“흐으음.”
“이걸 보면 더 흥미로울 걸세.”
아키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디선가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월터에게 작은 칩과 컴퓨터 패드를 내밀었다. 월터가 패드에 칩을 집어넣고 활성화시키자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홀로그램으로 출력되었다.
“많군. 이런 존재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메가콥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통제했네. 다른 가문, 가주들은 모르지.”
대놓고 정보를 독점했다는 말이었으나 월터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다른 가문들도 비슷한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까.
“놈은 반드시 그 장소로 올 거야. 얼마 안 가 나타날 테니 대비하게.”
“확신의 근거는?”
“나는 놈을 잘 알지. 지금 놈의 상태라면 필시 볼텍스원을 잡으려 들 거야.”
“흐음. 그렇소?”
이미 계약한 이상 아키라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더 캐묻지 않고 홀로그램의 데이터에 집중했다.
데이터만 봤을 때, 그것은 ‘우주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존재’라 불릴 만한 존재였다. 그 말은 즉 기가크래커 배치가 완료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만에 하나 아키라가 틀릴 것도 계산해야 한다.
뛰어난 사냥꾼인 그는 사냥감이 항상 사냥꾼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니, 예상 외의 상황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용건이 끝난 이상 이 자리에 머무를 시간이 없다. 그는 홀로그램을 한 차례 훑어보고 패드를 종료했다.
“이상한 점이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하지.”
그 말을 끝으로 월터는 응접실을 나섰다.
손님을 떠나보낸 뒤에도 아키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모프박이. 이번에는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거다.’
그는 성체에서 승천으로 향하는 진화 조건에 볼텍스원 사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에이모프를 대상으로 함정을 파기로 했다. 바로 볼텍스원이 서식하는 곳 근처에 기가크래커 10척을 배치하는 걸로 말이다.
‘거기에 보험까지 두면….’
전에도 애완 블랙 갤러곤에게 전적으로 맡겨뒀다가 큰 굴욕을 겪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다.
“코드 블랙.”
“옙. 아키라 님.”
“집사보고 월터를 따라가 지원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그림자까지 집사에게 보낸 아키라는 생각했다.
‘월터라면 모프박이를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겠지.’
월터 세인트케이는 그가 신뢰하는 NPC 중 하나다. 유전자 개조를 거부하는 그 성격만 빼고 말이다.
오죽하면 나이가 120살인데도 저만큼 늙었겠는가. 다른 가주들은 저 나이가 되도 얼굴에 주름 하나 없다.
월터가 유전자 개조 시술을 거부한 것치고 매우 건강한 편이라 해도, 기술의 수혜를 받지 않은 이상 한계가 명확하다. 인간의 순수성 운운하며 고집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훨씬 많은 강적들을 사냥하고 다녔을 거다.
‘그래서 보낸 것도 있지만.’
그와 그의 휘하에 있는 사냥꾼들도 전부 유전자 개조 시술을 받지 않았다. 그 말은 그들이 죽더라도 에이모프에게 이득이 될 요소는 없다는 뜻.
‘설령 월터가 놈을 죽이는데 실패하더라도 상관없다.’
월터의 실력과 성격을 고려하면 놈을 죽이지 못해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힐 터.
놈이 약해진 그 순간, 아키라는 스스로 그 자리에 강림할 생각이다. 집사의 심장에 신호칩이 있으니 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임에서 놈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가 놈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갚아주는 거다.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에서 아키라는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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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성계에서 새로운 에너지 반응 없음. 추적자는 없습니다.”
[즈즈즈(잘됐네)]
“이제 어디로 갑니까?”
기가크래커의 상황실.
수백, 수천 개의 케이블에 연결된 PS-111이 내게 물었다.
‘성체가 됐으니 갈 만한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원래라면 갈 곳이 정해져 있다. 진화 조건을 채우는데 가장 효율적인 장소들 말이다.
다만 그곳으로 바로 가기에는 진화할 때 본 환상이 걸렸다.
‘시간이 더 필요해.’
어차피 기가크래커까지 손에 넣은 이상, 랭커들이 나를 위협하기에는 쉽지 않다. 제대로 함정을 파서 단체로 나를 노리면 모를까.
고민하고 있는데 상황실 안쪽에 엎드려 있는 아드하이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붉은색 날개를 가지런히 접은 채 뿔로 살살 긁으며 단장 중이었다. 도중에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더 열심히 날개를 닦아냈다.
[즈으으으(아드하이)]
「큰어른」「왜?」
내가 부르자 녀석이 자수정을 닮은 아름다운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오랜만에 새 둥지에 가 볼래?)]
「둥지」「둥지?」「진짜?」
녀석은 내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깜짝 놀란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진짜?」
[즈(응)]
「나」「어린 동족들」「보고 싶어!」
현재 적의 추적도 끊긴 상황. 아드하이의 무리가 이주한 행성에 한 번 들려도 나쁘지 않을 거다.
‘26호의 친구들이 있는 곳도 가보면 좋겠지만 어렵겠지.’
전에 녀석이 씨 데몬의 힘을 얻고 여러 버블아메바들과 교감했던 행성 PH-101.
그곳은 컬트들이 성지로 지정한 행성이라 기가크래커를 끌고 가기 힘들다. 그랬다간 컬트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나도 파닥파닥 애기들 보고 싶어!」
다행히 26호는 아드하이의 무리를 보는 것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작은 블루 갤러곤들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어머니를 보니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해졌네.’
[즈으으으 즈즈즈 즈즈 즈즈즈(아드하이의 동족이 있는 곳으로)]
“알겠습니다.”
짧은 대답을 끝으로 녀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녀석의 붉은색 눈에서 빛이 빠져나갔다.
PS-111은 기계 부분을 여러 차례 개조한 덕분에 일반 함선을 조종하는 중에 육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함선에 비해 훨씬 거대하고 관리해야 할 시설이 많은 기가크래커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조종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 초광속 항해를 준비합니다.」
[즈즈즈즈(부탁할게)]
상황실의 컴퓨터로부터 녀석의 목소리가 여러 개의 목소리와 섞인 채 흘러나왔다. 함선AI를 동기화한 후, 보조 두뇌로 활용하고 있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즈즈즈(잠깐만)]
「응?」
[즈 즈즈즈 즈즈(할 얘기가 있어)]
나는 상황실에 넣었던 머리들을 복도로 다시 빼면서 하늘의 어머니를 불렀다. 그리폰 수인 형태로 돌아온 그녀는 내가 움직이며 만든 폐허 위를 걸으며 따라왔다.
「몸이 너무 커도 문제인데.」
[즈즈즈(그러게)]
기가크래커가 크고 튼튼해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그녀를 화물칸에 데려갔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당장의 목표를 수정해야 할 것 같아)]
「목표? 승천을 노리던 거 아니었어?」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보류야)]
내 말이 이해가 안 가는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성체가 될 때도 환상을 봤어)]
「전에도 봤다는 과거의 기억들 말이지? 이번에도 또 본 거야?」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즈(이번에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야. 또 다른 ‘나’가 나타나 나를 죽이려 했어)]
「뭐?」
나는 그녀에게 내가 본 환상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진짜 내가 살던 공간에서 벌어지는 환상과 현실처럼 느껴지는 고통들.
자기를 죽이든 자기한테 죽든 선택하라고 하는 ‘나’ 등등.
진지한 눈을 하고 말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은 그녀.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확인할 생각이야?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어.」
[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다른 플레이어들한테 물어보려고)]
「다른 플레이어? 플레이어 사냥을 나서려고?」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아니. 그 전에 일단은 이 녀석부터 시작하려고)]
「이 녀석?」
그렇게 말한 나는 내 몸에서 가장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던 유전자 정수를 끄집어냈다.
내가 두 번째로 사냥하는데 성공한 플레이어이자 이미 다른 랭커를 둘이나 죽였던 자.
뮤리엘의 후원자이며 하늘의 어머니의 원수였던 컬트 랭커.
그 존재가 내 배갑(背甲)과 다리 언저리에 위치한 고치를 깨고 바닥에 떨어졌다.
“■■으으, 에, 에이모프 님. 부르셨습니까?”
컬트 플레이어 제이슨의 유전자로 재탄생한 인면충이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