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93 - 목표(2)
「…성체가 되니까 더 흉측하네.」
하늘의 어머니가 제이슨의 얼굴을 지닌 인면충을 보고 진저리를 쳤다.
그녀 역시 게임에서 인면충을 여러 번 봤지만, 현실에서 3m 크기 벌레 괴물을 보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듯했다.
‘그럼 시작할까.’
나는 ‘의태기관’을 활용해서 인간의 목소리로 제이슨에게 물었다.
“너는 퀘스트를 몇 단계까지 클리어했지?”
“10단계까지 클리어하고 11단계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컬트에게는 ‘퀘스트’라는 고유 시스템이 있다. 퀘스트는 총 12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계를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이 제공된다.
나와 싸울 때 제이슨이 챙겨 온 갑주와 무구는 10단계 클리어 보상인 ‘용살자 세트’였다. 그래서 그 언저리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역시나 그랬다.
‘11단계부터는 깨는데 시간이 꽤 걸리니까.’
어쨌든 10단계까지 클리어했다면, 나름 엔딩과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인간 시절의 환상을 본 적이 있나?”
“예. 각 단계의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봤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 말이지?”
“그렇습니다.”
예상대로였다. 내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봤던 것처럼 그 또한 같은 경험을 했다.
“환상을 볼 때 이상한 부분은 없었나? 안 좋은 기억만 나열된다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든가.”
내 질문에 놈이 멈칫했다. 제이슨의 얼굴이 섬뜩하게 일그러졌다.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고분고분하게 답하던 인면충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환상이 보여 준 기억에 왜곡은 없었습니다. 모두 제가 겪었던 일 그대로였습니다.”
“그렇다면 불행한 기억이었나 보군.”
“예. 술에 취한 아버지는 항상 저보고 호모새끼(faggot)라 불렀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매일같이 아버지께 얻어맞기만 했었습니다.”
제이슨의 얼굴은 잔뜩 구겨진 얼굴과 다르게 지극히 건조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하늘의 어머니가 눈을 찌푸렸다. 말하는 것을 보니 제이슨 또한 그리 평탄한 삶을 산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 외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홀로 지냈던 기억, 취직에 실패해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던 기억들도 봤습니다.”
그가 말하는 기억들은 전부 인간 시절의 기억들이었다.
‘나와 비슷해.’
“환상은 그걸로 끝인가? 학대받는 기억 말고 다른 것은?”
“아닙니다. 10단계를 클리어할 때는 다른 환상을 봤습니다.”
“다른 환상?”
잔뜩 일그러진 제이슨의 얼굴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환상이 시작되고 제가 깨어난 장소는 제 방 앞이었습니다. 저는 컬트의 몸을 지닌 채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얻은 육신으로 현실 속 자기 방 앞에 서 있는 상황. 내가 현실의 ‘나’를 봤을 때와 똑같다.
“문을 여니 현실의 내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를 어떻게 했지?”
“죽였습니다.”
현실의 자신을 죽였다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그. 목소리만큼이나 표정도 매우 편안해 보였다.
“죽였다고?”
“현실의 나는 실패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저는 다릅니다. 완벽한 외모와 강력한 힘, 모두가 우러러보는 권력, 저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여자들. 그건 ‘제이슨 터닝햄’ 따위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들입니다!”
잔뜩 도취된 듯 열변을 쏟아 내는 그. 인면충이 된 이후 놈이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것은 처음 봤다.
‘자아가 강해보였는데.’
이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놈은 내게 죽기 전까지도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당연히 현실에서도 그럴 거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기혐오가 심한 인간이었을 줄이야.
‘좋지 않은 현실의 반작용인가.’
사슴뿔 컬트라면 제국 내에서도 최상위의 귀족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제국 권력의 핵심 직위인 제사장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성지에 뮤리엘을 들여보내는 짓도 할 수 있었던 거다.
‘비참한 현실과 완전히 상반되는 삶이야.’
그렇기에 그는 인간 시절의 자신을 죽이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와 제이슨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의 나를 혐오하는 것.
나도 환상 속에서 ‘나’를 죽일 뻔했다. 그때 뭔가가 나를 가로막았기에 멈출 수 있었던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필시 ‘나’를 잡아먹었을 거다.
‘하늘의 어머니도 과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
만약 그녀가 추후에 신격화 단계를 높인다면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환상은 우리가 이 세계에 남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 목적인가?’
일부러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해서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러면 제이슨과 다른 파벌들은 우리와 다른 환각을 봤을까?’
우주요새에서 만났던 신시아는 엔딩을 보고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녀와 그녀가 속한 세력에 있는 자들은 현실에 미련이 많다는 뜻.
‘그들의 현실은 우리처럼 불행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렇기에 그들이 본 환상은 우리와 다른 것일까?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하늘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
“…….”
「현실이 고통스러워서 이 세계의 자신을 택했으면서 왜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준 거지?」
“그녀의 질문에 답하라.”
인면충은 나의 신체 일부나 다름없기에 내 명령에만 복종한다. 내가 재촉하고 나서야 제이슨은 침묵을 깼다.
“왜냐하면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뭐라고?」
“힘을 지니고 있다면 쓰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이 힘을 쓰면 언제든지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왜 타인의 고통을 신경 써야 하지?”
「그 힘으로 너를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렇게 안 해도 다들 나를 사랑해주는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지? 뭐 힘을 들여서 키운 년들이 죽으면 좀 아깝지만, 큰 손해는 아니야. 다시 키우면 되니까.”
「너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의 목숨을 뭐로 여기는 거야?」
“장난감이지. 나는 장난감의 주인이고.”
제이슨의 짤막한 말에 하늘의 어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거였다.
“오히려 나야말로 네년이 이해되지 않는걸. 왜 공존 따위를 주장하지?”
그녀가 말없이 노려보고만 있자, 이번에는 인면충이 그녀를 향해 역으로 질문을 했다.
「…저들은 단순한 NPC가 아니야. 또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잖아. 이 세계에 적응하며 살 것이라면 당연히 저들과 어울려야 하는 거 아냐?」
“이 세계에 적응하는 것과 NPC들을 인격체로 대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 진짜 살아 있다고 해도 강자인 내가 그들을 도울 의무는 없어.”
「이곳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생물들을 모두 노예로 여긴다니…. 이해할 수 없어.」
“그러는 너도 볼프들을 애완용 장난감으로 데리고 있지 않았나? 그들에게 신으로 숭배받으면서 말이야.”
「나는 그들을 지키려 한 거야!」
“나도 마찬가지다. 내 힘은 존재 자체만으로 제국에 이익이 되지. 나는 그에 대한 소소한 대가를 받았을 뿐.”
둘의 언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제이슨과 하늘의 어머니 모두 현실이 아니라 이 세계에 적응하는 것을 택했다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판이하게 달랐다. 제이슨은 다른 존재들을 학대하고 지배하는 방식을 택했고, 하늘의 어머니는 볼프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려 했으니까.
“공존파가 망한 이유가 너같이 NPC들에게 과몰입하는 놈들 때문이라 들었는데. 멍청한 뮤리엘이 실패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너도 내 성….”
“그만.”
“■!”
제이슨이 선을 넘으려 하기에 나는 강제로 놈을 조용히 시켰다.
“하늘의 어머니는 나의 소중한 친구다. 그녀를 모욕하지 마라.”
놈은 당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저 씹새, 크흠, 저놈은 인면충이 되고도 변한 게 없네.」
하늘의 어머니는 입이 틀어 막힌 인면충을 노려보다가 곧 한숨을 쉬었다.
「한 대 패주면 좋겠지만 그랬다간 죽겠지?」
“원한다면 때려도 문제없어. 어차피 재생 가능하니까.”
「그렇게 말하니 매우 혹하는걸?」
말과는 달리 인면충에게 주먹질을 할 생각은 없는지,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박색 눈동자에는 짜증이 남아 있었으나 방금 전보다는 차분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진정된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제이슨이 말할 수 있도록 제약을 풀었다.
“엔딩을 목적으로 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해 아는가?”
“예. 놈들은 스스로 ‘귀환파’라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좀 전에 ‘공존파’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들은 너희처럼 이 세계에 남는 걸 택한 자들이지?”
“저희와는 많이 다르지만 지향점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귀환파는 목표가 확연히 다르고, 공존파의 경우는 제이슨의 파벌과 비슷하면서도 방향에서 큰 차이가 있다.
3개의 파벌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현실과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 대한 인식차가 심해서 그런 것. 파벌 간에 양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환상에서도 차이가 날지 모른다.
그 차이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환상이 왜 존재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환상이 위험한지 아닌지도 알 수 있겠지.’
우리가 왜 이 세계에 떨어졌는지 알기 위해서 엔딩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자의로 그걸 결정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유도된 것이라면 결코 따르지 않을 거다.
‘대신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지.’
“마지막 질문이다. 귀환파와 공존파의 멤버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내 질문을 들은 제이슨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대답했다.
“제가 아는 자는 귀환파에 둘, 공존파에 하나, 이렇게 총 셋입니다.”
“말해봐.”
“4위 아웃스페이서 플레이어, 7위 컬트 플레이어 범호, 22위 콜드블러드 플레이어입니다. 앞의 둘이 귀환파고, 콜드블러드 플레이어가 공존파입니다.”
“4위와 7위? 그 둘이 귀환파라고?”
“예.”
둘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하필 까다롭기로는 손에 꼽는 녀석들이 남았어.’
4위 랭커는 아웃스페이서의 최고 플레이어답게 엄청난 물량을 아주 잘 컨트롤 하는 실력자다. 게임 내 정보도 나와 엇비슷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고.
‘그리고 7위.’
제이슨은 그와 아는 사이인지 이름을 불렀다. ‘범호’라는 이름은 컬트와 어울리지 않으니 본명일 거다. 7위는 내가 알기로 컬트 랭커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으니까.
‘컬트 중에서 제일 성가신 놈이었지.’
컬트 랭커 중 가장 랭킹이 높은 자는 2위. 그보다 랭킹이 낮으니 실력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2위는 단순무식한 스타일이라 오히려 쉽지.’
반면 7위 범호는 내가 아는 컬트 중 가장 센스와 전략이 뛰어난 자였다. 전투 센스와 판을 짜는 감각만 두고 보면 나보다 더 뛰어나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싸운다면 실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귀환파 둘은 지금 상태로는 힘들어.’
둘 다 어지간히 똑똑한 놈들이 아니니 나의 존재를 이미 눈치채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웃스페이서가 에이모프의 진화 조건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4위도 알고 있다. 내가 이 세계에 있는 한, 언젠가는 자기 목숨을 노리러 올 것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놨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공존파의 콜드블러드 플레이어.
“22위는 어디에 있지?”
“모릅니다.”
“모른다고?”
“저는 22위는 놓치고, 놈의 동료만 잡았습니다. 22위가 제국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실만 압니다.”
컬트 제국의 영토는 메가콥보다도 더 넓다. 수많은 성계가 제국의 영토인데, 그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범호의 소재지도 불명이므로 4위의 위치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가시게 됐는데.’
7위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로 4위와 바로 싸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둘은 같은 파벌이므로 함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나를 잡기 위해 둘이 함께 나서면?
‘그걸로 끝이지.’
갤러곤 전부와 기가크래커를 들고 가도 나의 필패다.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데, 하늘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이 있어.」
“응?”
「…22위의 위치, 알 방법이 있어.」
“뭐?”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줘.」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호롱불처럼 빛나며 나를 향했다.
「그 애와 만났을 때, 바로 공격하지 말고 대화부터 해 줘.」
“저쪽에서 먼저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그 애는 겁쟁이니까 아마 안 그럴 거야. 믿기 어렵다면 내가 먼저 설득해 볼게.」
말투를 봐서 그녀는 22위와 아는 사이 같았다. 아니, 아는 사이 이상으로 친밀한 관계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지는 알 수 없어.’
하늘의 어머니는 컬트 성지에서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지 않고 오랫동안 있었다. 그녀가 22위와 조우했던 것은 그보다 더 전인 것 같은데, 과연 지금도 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의 부탁에 절반만 수락했다.
“대화는 내가 시도할 거야.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공격할 거고. 나는 지켜야 할 애들이 많으니까. 위해가 될 요소를 남길 수는 없어.”
「…그래.」
“만약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할게.”
「응. 고마워.」
그녀는 내 의도를 깨닫고 감사를 표했다. 죽지 않고 제압하면 공생충 포자를 이용해 치료할 수 있으니까. 전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음으로 갈 곳이 정해졌네.’
아드하이의 무리가 있는 둥지 다음으로 갈 곳.
22위가 숨어 있는 컬트 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