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97 - 휴식(4)
“제 원격 조종용 모델에 생물적 특성을 이식할 수 있는지 실험하시려는 겁니까?”
[즈(그래)]
“제 육체에 실험하셔도 무방합니다만.”
PS-111이 갈고리 손톱으로 자기 몸을 가리켰다. 나는 그럴 수 없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흔들었다.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잘못되면 육체를 버려야 할 수도 있고)]
“부작용 말입니까?”
에이모프에게도 모든 특성이 유리한 것은 아니다.
입과 소화기관을 바꿔서 정수를 흡수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에너지 흡수’라든가, 몸 크기를 인간만큼이나 작게 고정시켜 버리는 ‘왜소화’. 이것 외에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특성들이 많이 있다.
사실 이 특성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흡수, 왜소화 모두 본래의 주인들에게는 유용한 특성들이다. 다만 그것이 에이모프에게 맞지 않을 뿐.
즉, 내게만 유리하지, 26호나 아드하이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 이는 PS-111에게도 해당된다.
“확실히 유전자 구조상 이질성이 심하면 이식하기 어렵습니다. 원격 조종용 모델의 호환성 확인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PS-111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허가를 받은 나는 원격 조종용 모델을 향해 전투용 팔을 뻗었다. 4개의 손가락 안쪽 손바닥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공생물 포자가 튀어나왔다.
특성 이식이 가능한 대상은 ‘우호적인 생물’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를 토대로 보면 공생물 포자가 심어진 대상은 내게 우호적인 존재로 판단된다.
포자가 꿀렁이며 얼굴과 상반신만 있는 스크리머 육체에 달라붙었다. 다리가 짧은 진드기 비슷한 포자가 덜 만들어진 상체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PS-111과 동기화된 스크리머 육체가 더듬더듬 외쳤다.
“이, 이물, 질, 확인. 확인.”
‘혹시 기계라고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
녀석이 만든 인공 육체에서 기계 부위라고 한다면 얼굴과 뇌, 골격의 일부뿐. 나머지는 전부 이 시설에서 배양된 조직이나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행히 턱 아래의 보조기관을 가져다 대자 텍스트박스가 떴다.
「이중나선의 모노리스 발동!」
「이식할 특성 선택 가능.」
‘좋아.’
그러면 어떤 특성을 이식해 볼까.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자주 활용하거나 내 생존에 필수적인 특성들은 안 된다. 유용할 것으로 추측되는 특성도 당연히 예외다.
‘결과가 좋으면 애들한테 넘겨줘야 하니까.’
마찬가지로 특수방어 관련 특성들도 제외한다. 아직 타입을 획득하지 못했으니 허투루 낭비할 수 없다.
‘실험에 적합한 특성이라면….’
유용하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좋다. 그래야 PS-111이 어떤 변화가 있는지 단기간에 분석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환경적응 계열의 일반 특성인 ‘신체 결정화’를 골랐다.
신체 결정화는 신체의 갑각을 일시적으로 단단하게 만드는 특성이다. 다만 그 단단한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가변형 생체병기’라는 상위호환격 특성이 있다 보니 그리 필요한 특성은 아니다.
「‘신체 결정화’ 특성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래…응?’
텍스트박스의 마지막 질문에 확인을 선택하자 양옆의 머리들이 내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공 육체에 다가간 머리들은 입을 활짝 벌렸다. 그 안에서 혀라고 보기에는 굵고 긴 촉수 같은 것이 밖으로 삐져나왔다. 검은색 점액이 잔뜩 묻은 촉수 2개가 인공 육체를 부드럽게 휘감았다.
‘이건?’
“이, 이상 혀, 현상 발생, 이상 현상.”
“이, 이상 혀, 현상 발생, 이상 현상.”
촉수에 휘감긴 육체와 PS-111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둘 다 몸을 파르르 떨며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신체 결정화’ 특성 소실.」
「특성 주입 중. 완료까지 5분 소요 예정.」
‘…괜찮겠지?’
내 생각을 읽은 듯 때마침 텍스트박스가 떠올랐다. 촉수들이 다시 입으로 들어갔고, 양옆의 머리들의 통제권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촉수에 휘감긴 육체는 내가 진화할 때와 비슷하게 검은색 점액에 감싸진 상태였다. 단, 나처럼 육신 전체가 재구성되는 것은 아니라 그런지 고치의 크기가 작았다.
특성을 주입한 육체가 고치에 들어가자 PS-111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언제 경련했다는 듯 멀쩡한 모습의 녀석이 카메라 렌즈가 달린 눈을 깜빡였다.
[즈즈즈(괜찮아?)]
“매우 복잡한 화학적 반응이 육체에서 발생 중입니다. 또한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유전자 재배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완료되기까지 5분쯤 걸릴 거야)]
“동기화된 상태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음에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즈즈즈 즈즈 즈즈 즈즈즈즈(진화할 때는 그런 느낌이지)]
“흥미로운 감각이니 기록하겠습니다.”
녀석은 원격 조종용 모델에서 이루어지는 변이가 몹시도 흥미로운 것 같았다.
생산칸에 있는 기계 팔들이 녀석의 의지에 따라 바닥에 떨어진 점액을 샘플로 채취했다. 그러는 사이, 본체는 갈고리 손톱으로 바닥에 흩어진 점액을 찍어서 맛까지 봤다.
그뿐 아니라 고치도 건드리려 해서 말렸다. 에이모프의 고치는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다. 그보다 더 얇은 막으로 싸인 원격 조종용 모델이라면 훨씬 쉽게 망가질 터.
그렇게 5분이 지나자 고치의 점액질이 바싹 말라붙었다. 변이가 완료된 스크리머 육체가 푸석푸석한 막을 찢으며 움직였다.
“고차원적인 조정이 시행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저장해서 이후 모델 개발에 참조하겠습니다.”
“고, 고차원, 조정, 개발, 개, 개발, 참조.”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새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야. 확인해 봐)]
“예.”
“예.”
본체와 미완성 복제품이 동시에 대답했다. 두 스크리머가 카메라 렌즈가 달린 눈을 깜빡이고, 머리가 까딱였다.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둘의 행동은 똑같았나, 결과는 달랐다.
바닥에 누워 있는 원격 조종용 모델의 목과 상반신의 피부에 알갱이 같은 것들이 돋아났다. 처음에는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보이던 알갱이들이 점점 커지고 피부 위를 덮었다. 그 모습은 큐빅으로 만든 비늘처럼 보였다.
‘적용된 건가?’
에이모프가 신체 결정화를 활성화했을 때는 저런 식으로 생기지 않고, 흑요석과 비슷한 느낌의 갑각이 덮인다. 나는 전투용 팔로 피부를 덮은 물질을 건드려봤다.
‘단단해.’
외형만 다르지 느낌 자체는 신체 결정화를 썼을 때와 똑같았다.
[즈즈(어때?)]
“상체 부분에 결정화를 촉진시키는 물질이 분비되었습니다. 해당 분비 기관은 기존 신체에 존재하는 기관이 유전적 변이를 일으켜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즈즈즈즈(부작용은?)]
녀석은 그 자리에서 목을 200도 가량 꺾었다. 원격 조종용 모델도 동일하게 목을 비틀었다. 돌들이 서로 부딪치는 것처럼 딱딱 거리는 소리만 날 뿐, 큰 손상은 없었다.
“결정화 물질이 얇은 비늘 형태로 굳어져서 움직이는데 문제없습니다.”
그건 희소식이다. 이식하는 특성이 해당 생물의 육체에 어느 정도 맞춰서 적용된다는 뜻이니까.
‘한 번 더 실험해 볼까.’
이중나선의 모노리스는 특성을 최대 2개까지 이식이 가능하다.
그 다음 내가 고른 선택지는 육체 관련 융합 특성인 ‘신경독샘’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특성이 어느 범위까지 신체에 맞춰서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가령 물에만 서식하는 생물에게 날개를 준다거나 불을 내뿜는 특성을 준다면 어떻게 반영되는가? 지금처럼 유의미하게 변형되어 적용되면 좋겠다만, 반대로 이식받은 생물에게 장애가 되는 식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PS-111이 만든 육체는 미완성이어서 독에 대한 내성이 없어.’
본체라면 여러 생물들의 유전자를 조합해 강화된 터러 여러 종류의 독에 면역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복제품은 그렇지 않다. 그 상태에서 이식받으면 신경독에 대한 면역 체계도 같이 적용될지, 아니면 무작정 몸에 해를 끼치는 독샘만 생길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신경독 자체가 내게 더 이상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준성체가 된 이후, 조우하는 적들 중 상당수가 독에 내성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신경독이 활약할 기회가 적어졌다.
‘오래 썼지.’
내가 처음으로 눈을 뜬 연구선에서 얻은 융합 특성이었던 신경독샘. 이 특성 덕분에 참 많은 위기를 넘겼다.
그 고마운 특성을 이제 놔줄 때가 됐다. 나는 신경독샘을 원격 조종용 모델에 이식했다.
복제품을 고치로 감싸는 동일한 과정을 거친 후, PS-111이 다시 몸을 체크할 시간이 돌아왔다.
또 다른 몸을 체크하려던 녀석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비를 유발시키는 화학 물질이 전신에 퍼져 움직일 수 없습니다.”
[즈즈(그래?)]
“체내에 유독 물질을 분비하는 샘이 생겨서 해독이 불가능합니다. 독을 무효화하는 면역 체계를 구축하기 전까지는 이 원격 조종용 모델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도움이 됐던 신경독샘은 떠날 때도 내게 도움을 줬다.
‘에이모프랑은 달리 완벽히 유기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야.’
신체 결정화를 썼을 때 갑각 형태가 아닌 얇은 비늘 형태로 바꾸는 정도는 되지만, 독 분비샘과 해당 독에 대한 면역체계를 함께 주지는 않았다. 이 중 후자는 몸에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독립적인 기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실험 결과가 너무 적어.’
전신이 마비된 원격 조종용 모델은 더 이상 실험이 불가능하다.
“흥미로운 실험입니다. 원격 조종용 모델을 제작 및 개량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 많은 실험을 건의드립니다.”
녀석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필요한 것은 실험에 쓸 특성들, 그리고….’
나와 녀석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우리의 시선 끝에는 생산칸 내부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기계 장비들이 있었다.
[즈 즈즈즈 즈즈(더 필요한 것은?)]
“이곳 주변의 생물 조직, 골격 조직과 기계 부품의 재료가 될 광물들이 필요합니다.”
[즈즈즈(알았어)]
남은 휴가 기간 동안 뭘 하며 보내야 할 지 정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어느덧 10일이 지났다.
예정했던 날짜보다 3일이 지나고 하늘의 어머니가 새로운 용의 둥지에 도착했다.
「와. 내가 말이 안 나오네.」
부서진 스크리머 지원함으로 찾아온 하늘의 어머니는 나와 PS-111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즈즈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실험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
「…이거 스크리머는 맞지?」
[즈즈즈(일단은)]
현재 이 생산칸에는 5마리의 미니 스크리머들이 있었다.
아니, 그녀가 말한대로 스크리머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의 머리에 금속 다리 8개가 달린 생물보고 스크리머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유전자 이식 실험을 위해서 최고로 효율적인 형태로 제작된 모델입니다. 에너지 소비량도 적고 생존도 우수합니다.”
“우수!”
“우수!”
PS-111의 얼굴을 단 미니 스크리머들이 일제히 ‘우수’라는 단어를 연발했다. 특성 이식 실험에 맞추기 위해 언어 모듈을 비롯한 여러 기능들을 간소화했기 때문이다.
‘PS-111을 처음 봤을 때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지.’
「와! 작은친구들이 많다!」
하늘의 어머니와 함께 온 26호는 미니 스크리머들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작은친구들, 친구랑 똑같아!」
「몸」「없어」「아파?」
“원래 이런 형태입니다.”
녀석도 PS-111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 것인지 촉수로 미니 스크리머를 살포시 안아 들었다. 옆에 있던 아드하이는 호기심에 찬 눈을 한 채 앞발로 미니 스크리머를 톡톡 건드렸다.
26호와 아드하이의 몸을 기어오르는 미니 스크리머를 본 하늘의 어머니는 한 손으로 눈가를 세게 집었다.
「…토할 것 같아.」
“저와 에이모프가 공동 작업한 최상의 결과물입니다. 해당 발언은 재고 바랍니다.”
“공동! 재고!”
“공동! 재고!”
「공동?」「작업?」「결과물?」
「작은친구 귀엽다!」
PS-111의 말대로, 저 형태인 덕분에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식한 특성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완벽히 알아낸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애들에게 이식할 때 뭘 주의해야 할 지에 대해서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한 수확이다.
‘PS-111에게도 도움이 됐지.’
저 5마리의 미니 스크리머들은 내 특성을 최소한 하나씩 이식한 녀석들이다. 매일 사냥의 표상을 사용해 특성을 모아서 그대로 때려 넣은 덕분이다.
‘내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특성들은 아니니까.’
하나 PS-111 입장에서는 아니다. 5마리가 각각 다른 특성들을 지니고 있고, PS-111이 녀석들을 동시에 통제하니까 말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개체당 스펙이 나쁘지 않으므로 녀석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어쨌든 하늘의 어머니도 돌아왔겠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10일간의 휴식을 끝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