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98 - 잠입(1)
하늘의 어머니가 돌아온 이후, 우리는 행성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아드하이는 나와 함께 마지막으로 먹이들을 왕창 잡아들였다. 갤러곤들이 한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사이 PS-111은 스크리머 지원선에 미니 스크리머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넷과 함께 기가크래커로 먼저 출발했다. 홀로 남은 미니 스크리머는 지원선의 관리 및 보수를 맡기로 했다.
미니 스크리머 4마리와 PS-111을 실어다 나르는 역할은 하늘의 어머니가 맡았다. 한숨을 푹푹 쉬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하기 싫은 모습이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갤러곤들은 우리가 떠난다는 말을 듣고 꽤 아쉬워했다.
특히 육아를 담당하던 갤러곤들은 26호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 매우 슬퍼했다. 녀석이 없어지면 자기들이 그만큼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함 오르트도 자기 딸이 또다시 먼 길을 떠난다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아드하이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사냥이 끝난 이후부터 떠나기 전까지 어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뒷정리한 뒤, 우리는 기가크래커로 복귀했다.
기가크래커의 상황실에 들어가니 처음 보는 장치가 나를 반겼다.
외형은 오벨리스크를 소형화한 것처럼 생겼는데, 길이가 1m쯤 됐다. 겉면의 색깔은 밝은 은색이었고, 기하학적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컬트의 성간 통신기?’
기하학에 관심이 많은 컬트들은 특별한 장비나 함선을 만들 때 자기들의 취향을 자주 반영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성간 통신기는 처음 본다.
‘개량한 건가?’
생긴 것도 그렇고, 원래라면 아무것도 없어야 할 아랫부분을 보면 포트 구멍들이 여러 개 있었다. 현재 거기에는 상황실 내부의 케이블과 전선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암시장에서 구르던 물건이라 사이킥 파워 말고 다른 동력으로도 작동해.」
수인형으로 돌아온 하늘의 어머니는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설명했다.
[즈즈즈즈 즈 즈즈 즈즈즈(생긴 것이 내 기억과 다른데)]
「응. 컬트식 성간 통신기를 기반으로 개조된 모델이야.」
보아하니 보관하고 있던 통신기 자체를 통째로 뜯어온 것 같다.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연락하러 갔던 게 아니었어?)]
「그게 예상했다고 할까, 일이 좀 복잡해졌어.」
내 질문에 그녀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도착한 직후 계속 연락했는데 저쪽에서 답이 없더라고. 신호가 가는 걸 보면 망가진 것은 아니야.」
[즈즈즈 즈 즈즈즈즈(연락을 안 받나보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확인해 보게.」
[즈즈 즈즈(다른 방법?)]
「응. 연동된 기기 간에 위치 공유 기능이 추가되어 있거든.」
“위치 좌표 분석 완료. 홀로그램을 띄우겠습니다.”
통신기 옆에서 작업 중이던 PS-111의 목소리와 함께 상황실 한복판에 거대한 홀로그램에 나타났다.
컬트 제국의 영토가 영상으로 구현되어 상황실을 꽉 채웠다. 광할한 영토를 담은 홀로그램이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성계부터 시작해서 항성, 행성, 그리고 행성 내부의 도시 단위까지 확대된 이후 멈췄다.
“아우로 성계의 베르잔01 행성입니다.”
「베르잔01? 거기에 있다고?」
“아십니까?”
아우로99의 베르잔01. 제국에서 가장 번영한 행성 중 하나인 그곳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예언자회 최대지부가 거기에 있어.’
본래 예언자회의 본산은 베르잔01이 아니라 ‘인도자’라 불리는 사막형 행성이다.
다만 그곳은 문화적, 역사적 의미에서의 중심지에 가깝고, 실질적인 힘을 가진 곳은 베르잔01이다. 예언자회 소속의 무력 집단 계시의 눈 사제단도 베르잔01에 주둔하고 있다.
[즈즈즈 즈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22위는 콜드블러드 아니었어? 의외인데)]
「그렇긴 한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컬트 제국에서 콜드블러드 대부분이 사교도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노예로나마 대접해주는 볼프보다 이미지가 더 안 좋다.
그런 자가 제국에서 종교적인 영향력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한 장소에 숨어 있는 거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가.’
다시 생각해 보니 완전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콜드블러드라 해도 몰래 활동할 방법이 있다.
예언자회 최대지부가 위치한 베르잔01의 또 다른 특징은 제국 내에서 가장 노예 거래가 활발한 행성이라는 점이다. 노예로 위장한다면 행성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 후 어떻게 활동할 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나 또한 게임에서 베르잔01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 성체로 간 적도 있었는데 행성 공략이 꽤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성에서 날뛰기 시작하는 순간, 강력한 무력 집단인 계시의 눈 사제단, 엄청난 수의 주둔군, 그리고 다수의 컬트 플레이어들이 온갖 곳에서 튀어나온다. 거기에 행성의 방어 시설들은 덤이고.
‘지금 싸우자면 싸울 수는 있는데 걸리는 게 있어.’
7위의 컬트 랭커, 범호.
게임에서 베르잔01은 컬트의 요지 중 하나다. 내가 놈이라면 필시 베르잔01에도 세력을 구축해놨을 거다.
‘갔다가 놈들과 마주치면 곤란해.’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 죽으면 끝이다. 충분한 정보를 얻기 전에는 전면전을 피하는 게 좋다.
「기가크래커는 못 들고 가. 갔다간 그야말로 전쟁이 날 테니까.」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 하늘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 말대로 행성을 파괴하는 병기를 들고 가면 바로 전쟁이다. 행성 전역이 혼란에 빠지면 22위를 만날 가능성도 떨어지고, 자칫 잘못하면 7위와 결탁할지도 모른다. 내가 22위라 해도 기가크래커를 끌고 온 에이모프와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새 배를 탈취하실 생각입니까?”
PS-111의 질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배가 하나 있긴 하다. 기가크래커를 얻기 전까지 타고 다녔던 컬트 해적선. 그 배는 기가크래커가 채굴하려고 했던 왜행성에 남아 있다.
‘아니, 안 남아 있을지도.’
지금쯤이면 전(前) 주인 세인트케이가 잃어버린 슈퍼무기를 찾기 위해 사방곳곳을 다 뒤지고 있을 거다. 기가크래커가 사라지기 전까지 있었던 성계는 진작 확인했을 테니 내가 두고 간 배도 발견했을 터. 배를 수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새 배를 얻기도 까다로워.’
베르잔01의 감시는 상당히 엄중한 편이기에, 어떤 함선을 강탈할지도 신중히 골라야 한다.
행성에 자주 들른 배라면 모를까,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배로 가면 십중팔구 걸린다.
그렇다고 해서 케샤 아르마를 털 때처럼 항만의 경비들을 조종해서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베르잔01에는 요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구가 있는 행성이라 감시원의 수도 많다. 그들을 전부 지배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생각보다 까다롭네.’
하필 숨은 행성이 저 유명한 베르잔01이라서 잠입하는데 상당히 어렵다. 게임에서도 저기를 공략하라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성체가 되면서 몸도 커졌고, 기가크래커도 있는데 그냥 정공법으로 갈까?’
게임에서야 혼자 도구도 없이 공략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다르지 않는가. 저쪽에 7위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던 중, 문득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몸 크기라.’
우주의 약탈자라 불리는 메탈릭 그렘린들은 함선들의 천적으로 여겨진다. 그들이 무리로 몰려다닌다고 해서 붙은 악명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개체가 아닌 ‘무리’가 악명이 높았을 터.
나는 놈들이 어떻게 정밀한 레이더망을 뚫고 함선에 침입하는지 알고 있다. 나 또한 아성체 시절, 그들의 방식을 배워서 우주도시나 행성에 잠입한 적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베르잔01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기가크래커의 엔진 성능이라면 2주 안에 도착합니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내가 직접 간다면 얼마쯤 걸릴 것 같아?]
“그동안 쌓아둔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면 3주에서 5주 사이로 확인됩니다.”
[즈즈(좋아)]
생각 중인 계획을 실행하려면 몇 가지 특성이 필요하다. 베르잔01까지 대략 한 달이라면 나쁘지 않다.
「직접 간다고? 어떻게 하려고?」
[즈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오랜만에 옛 방법으로 가 보려고)]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몇 번에 성간 통신 기능이 있었지? 5번이었나?)]
“MPS-05를 데려가실 생각입니까?”
바닥에 전투용 팔을 갖다 대자 MPS-05라 명명한 미니 스크리머가 내 손바닥 위에 올라왔다.
[즈 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즈(응. 이 녀석의 힘을 빌려야겠어)]
녀석에게는 전투와 관련된 특성이 아니라 다른 특성을 주입했다. 성간 통신 기능을 효율적으로 보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번 계획을 성사시키려면 PS-111의 도움이 필요해.’
정확히 말해, PS-111‘들’이지만.
나는 손바닥 위에서 얌전히 나를 올려다보는 MPS-05를 보며 웃었다.
-
베르잔02이 속한 아우르 성계의 ‘감시청’.
감시청의 역할은 성계에 진입하는 배들이 발산하는 초광속 파워의 에너지 흐름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에너지 흐름이 발생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함선이 초광속 항해로 도주했을 때를 대비해 설치된 기구다.
오늘도 감시청의 인원들은 아우르 성계를 오가는 수많은 함선들을 감시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에너지의 흐름이 갑자기 발생하는 것 정도는 그들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에너지가 관측된 장소에 감시청 소속 함대를 파견하는 것 또한 흔한 일 중 하나였다.
“초광속 항해 발생 지점 접근 중.”
“이쯤 되면 관측되어야 할 텐데. 지식관리자?”
“흠. 막강한 자기장 때문에 제대로 관측되지 않는군요.”
“자기장? 다른 성계에서 온 건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단 정보 분석을 계속 시도하겠습니다.”
감시청 휘하의 정예함대가 정체불명의 자기장이 퍼진 지역에 가까워졌다.
함선 내부 상황실에는 컬트 선원들이 함선 외부 카메라가 촬영한 기록과 감시 레이더의 자료들을 이미지화해서 허공에 띄우고 있었다.
그사이 감시청에서 파견된 지식관리자, 차라스는 머리 안에 든 정보를 빠르게 정리 중이었다. 항성들이 발산하는 파장 데이터를 떠올려 봐도 특별히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유사한 파장 형태를 보여주는 것은 항성 활동 사례가 아니었다. 그건 어떤 행성에서 발생한 사건 중 관측된 파장이었다.
‘사이길08의 참사?’
그녀는 아직도 종종 불길하다고 회자되는 그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오염을 정화하기 위해 출동한 제국모함 다모스08의 심판자와 모함전단(母艦戰團)은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궤멸 당했다. 제국의회에서는 해당 괴생물을 ‘세 머리의 악마’라 명명했다.
그리고 감시청에서 관측한 파장은 그 괴물이 방출하던 미지의 에너지 폭풍과 흡사했다.
‘…차이점도 적지 않다만. 이걸 어쩐다?’
사실 파장이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관측된 것은 대량의 에너지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에너지 폭풍에 가까웠다. 에너지 폭풍과 함께 방출된 파장의 흐름이 관측된 파장과 유사하긴 해도 그뿐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당시 기록된 거대한 에너지 폭풍도, 괴생물의 모습도 없다.
‘제국의회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놈은 비행이 불가능해.’
이곳 아우르 성계는 성지 사이길08이 위치한 성계와 어마어마하게 떨어져 있다. 설령 날 수 있다고 해도 이곳까지 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초광속 항해를 할 수 있으면 모를까.
“일단 파장과 일치하는 결과를 몇 가지 확인했습니다. 다만, 확언하기는 어려우니 감시청에 검토를 요청하죠.”
“흠, 신중해서 나쁠 것 없지. 그러게.”
“자기장의 영역 내로 진입합니다.”
갑자기 발생한 자기장의 영역에 진입하자 함선 내의 불빛이 잠시 깜빡였다. 드물긴 해도 이런 일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선원들 중 동요하는 자는 없었다. 차라스가 탑승한 배뿐만 아니라 다른 함선들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함선 시스템을 복구한 그들은 대량의 에너지가 발생한 지점, 그러니까 초광속 항해가 이루어진 장소에 도달했다.
자기장의 영향을 덜 받는 카메라는 물론, 수색 관련 사이킥 파워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전사단원들까지 동원됐으나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니. 이상하군.”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해당 현상은 감시청에 전부 보고했는가?”
“예. 현재 검토 중입니다.”
“혹시 모르니 함선 일부가 여기에 남는 것이 좋겠군. 이건 내가 다른 배에 직접 연락하지.”
함장이 다른 배에 연락을 취하려 할 때, 상황실에 새 이미지가 떠올랐다. 함선의 실드를 담당하는 자가 띄운 이미지였다.
“함선 실드 99.9%에서 정상으로 복구 완료. 뭔가 작은 물체에 충돌했습니다.”
“충돌 물체의 크기는?”
“5m 미만입니다.”
“주변에 떠도는 암석 조각인가 보군.”
우연인지, 충돌 보고 이후 광범위한 영역에 퍼져 있던 자기장은 점점 사그라졌다.
이상 현상이 잦아든 후 감시청에서 내려온 명령은 귀환 명령이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파악되나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자기장 발생 사건은 싱겁게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