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01화 (302/400)

Episode 301 - 잠입(4)

MPS-05가 활성화된 이후, 우리는 예상외의 난관에 부딪쳤다.

녀석이 안전하게 해킹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권한이 높은 컴퓨터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본체라면 아무 장소에서나 단말기만 있다면 해킹이 가능하겠으나 원본보다 열화된 미니 스크리머에게는 그게 불가능하다.

문제는 다른 부분에서 발생했다.

이 전함의 복도에는 감시카메라가 지나치게 많았다. 원래 전함의 보안 수준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이곳처럼 수 미터 단위로 카메라가 설치된 경우는 처음 봤다.

그 탓에 계획을 약간 바꿨다.

하늘의 어머니는 15번 사수가 있던 함포실에서 대기, 나와 MPS-05가 함께 움직이는 걸로 했다.

종족을 막론하고 배 내부에서 최고 권한을 지닌 컴퓨터가 위치한 곳은 상황실이다. 이 전함도 마찬가지지만 거기까지 가는데 누구한테도 안 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리한 약자의 ‘미지생물의 털가죽’ 효과는 일반적인 탐지 장비나 특성, 기술들에 안 걸리게 하는 것. 컬트와 직접 마주하면 당연히 걸린다.

의태 기관 덕분에 타인에게는 15번 사수의 모습으로 보이니 대놓고 걸리지는 않겠으나, 의심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일개 사수가 상황실에 들락날락하는데 당연히 이상히 여기겠지.

아무튼 상황실을 노리는 것은 힘들기에 차선책으로 함선 외벽과 실드를 관리하는 ‘방패관리소’를 골랐다. 우리가 침투할 때 발생했던 실드 손상 기록과 15번 함포를 보호하는 보호벽 손상 기록을 삭제하려면 방패관리소에 한 번쯤은 들려야 했기 때문이다.

승무원들이 잠들기까지 기다린 뒤, 나와 MPS-05는 행동을 개시했다. 순찰을 도는 전사단원들의 눈을 피하느라 시간을 꽤 잡아먹었지만, 목적지에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패관리소에서 녀석이 한창 작업을 하던 중, 낯선 방문자가 들이닥쳤다.

이 배에서 찾아야 할 두 가지 목표 중 하나, 지식관리자 말이다.

“케, 케엑…사, 살려 주….”

전투용 팔에 붙잡힌 여성 컬트가 버둥댄다. 나를 15번 사수라 착각했을 때의 고압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 발로 찾아올 줄은 몰랐네.’

지식관리자 포획까지 최소 며칠 이상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또다시 예상이 빗나갔다.

지식관리자는 함선의 최고 엔지니어의 역할을 겸한다. 함선의 방어 시스템의 오류를 살펴보는 것 또한 그녀가 해야 할 일. 내가 잠입하면서 발생한 보호벽의 오류를 체크하러 온 거다.

“함선. 기, 기록. 복사.”

“안 걸리도록 조심해.”

“걱정. 무효.”

도구실에 숨어 있던 녀석은 다시 나와서 하던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럼 나도 할 일을 해볼까.’

나는 벌벌 떨고 있는 지식관리자를 내려다봤다.

현재 내 기생충은 유일 특성인 ‘위대한 감염체’, 강적의 증표인 ‘형상 지배자’ 두 가지의 강화 효과를 동시에 받고 있다. 크기 자체도 게임보다 훨씬 거대해졌고,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전에는 감염된 자의 뇌에 붙어서 조종하는데 그쳤으나 이제는 아니다. 뇌를 포식해서 기생충이 뇌의 기능을 대신하거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나는 손 안쪽에서 기어 나온 기생충에게 강한 의지를 쏘아 보냈다. 장어를 닮은 기생충은 머리인지 몸통인지 알 수 없는 부위를 끄덕거리며 반대편 손으로 건너갔다.

“?!”

내 팔을 타고 가까워지는 기생충의 모습에 지식관리자가 질겁한다. 컬트의 아름다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다.

그녀는 입을 꾹 닫고 어떻게든 다가오는 검은 장어를 피하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위대한 감염체 효과로 강화된 기생충의 몸통에서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그녀의 입을 강제로 벌렸기 때문이다.

“읍! 으읍!”

순식간에 컬트 여성의 입으로 들어간 기생충이 활동을 개시했다.

입으로 뇌의 일부를 재빨리 갉아먹었고, 몸통은 척수를 잠식했다. 전신을 마구 떨던 그녀는 몇 초 후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

“일어나라.”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꼼짝 않던 그녀가 움직였다. 내가 손에 힘을 빼자 그녀는 스스로 바닥 위에 섰다.

“말해도 좋다.”

“이, 이게 무슨…?”

컬트의 눈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가득 했다. 갑자기 자기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니 그럴 수밖에.

“이름과 직책을 말하라.”

“제 이름은 차라스, 지식관리자입니다.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쉿.”

“……!”

우주요새 ‘케샤 아르마’에 가기 전, 그러니까 해적들의 노예시장을 털 당시.

나는 위대한 감염체의 강화 대상으로 ‘기생 군체’를 골랐다. 그 결과 기생충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단순히 작은 실뱀 크기의 기생충이 장어만큼 커진 것, 지배 효과가 강해진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전과 다른 지배 형태. 기생 군체가 새로 얻은 힘 중 하나다.

본래 기생 군체의 기생충은 뇌를 장악해서 상대의 육신을 마음대로 조종한다. 강화된 후에도 기본적인 방식은 비슷하다.

완벽히 상대를 지배해야 할 때는 유용하나,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약점이 있다.

지식관리자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기억하고 활용하는데 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녀를 써먹을 생각이라면 적어도 머리는 조심해서 건드려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 얻은 방식을 사용했다.

현재 그녀의 머리의 일부, 척수에는 기생충이 달라붙어 있다. 뇌는 일부만,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척수와의 융합을 통해 지배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보다시피 그녀는 자기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처지다.

단점이라면 두 가지.

아무래도 뇌를 대체하는 것보다는 지배력이 떨어진다는 점, 그리고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생충은 감염된 희생자의 척수와 융합된 상태라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분리할 수 없다. 기생충이 수명이 다하면 감염자도 죽는다.

‘수술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시점에서는 무의미한 가정이다. 지식관리자 차라스는 죽을 때까지 내게 봉사해야 한다.

나는 15번 사수의 목소리로 차라스에게 말했다.

“그럼 베르잔02에 출입 가능한 배들부터 시작할까.”

그녀의 육신과 지식은 이제 나의 것이다.

-

아우르 성계에서 이상 현상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났다.

정체불명의 자기장은 더 이상 관측되지 않았다.

지식관리자 중 한 명이 ‘세 머리의 악마’와의 관계성에 대해 지적하긴 했으나,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근거도 부족했고, 의견을 냈던 지식관리자도 정정 의견을 새로 보고했기 때문이다.

결국 감시청에서는 이상 현상 발생 지점에서 대기 중이던 함선들에게 복귀 명령을 내렸다. 우주 한복판에서 떠돌던 함선들은 초광속 항해를 이용해 감시청으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싱겁게 끝났군.”

“그러게 말입니다.”

“전투로 인한 사상자가 없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겠군. 그렇지 않…음? 지식관리자는 어디 갔지?”

“오전에 휴가 신청을 냈잖습니까.”

“아아. 그랬지. 베르잔02로 내려간다고 했나?”

부하의 말에 함장은 아쉬움을 느꼈다. 차라스는 직책과 별개로 꽤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녀와 좀 더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가고 싶었는데, 결국 말 한 번 못 건네고 말았다.

“그러게 진작 말 좀 나누시지 그랬습니까.”

“작전 중인데 어찌 그러나.”

“감시청에 복귀하자마자 사라진 것을 보면 사랑하는 이가 있을 지 모릅니다.”

“…자네 좌천당하고 싶나 보군.”

상황실의 승무원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함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쩝. 복귀하면 그때 얘기해 봐야겠군.’

베르잔02에 대한 화제로 말을 건네면 어떨까 하는 생각하며 그는 부하들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사수들 중에서도 휴가 신청을 낸 자들이 많던데.”

“그래? 나도 베르잔02에나 가볼까.”

승무원들이 잡담을 나누는 동안, 개인용 우주선 하나가 함선 근처로 날아왔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을 한 우주선은 전함 옆에 바짝 붙었다.

그러고 1분 정도 머물다가 우주선은 그 자리를 떴다. 개인용 우주선이 전함에 그 정도로 가까이 붙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워낙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이를 목격한 자는 많지 않았다.

더불어 새까만 무언가가 개인용 우주선에 올라타는 것을 본 자도 없었다.

우주선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에 날아다니는 수백 대의 우주선들의 행렬에 섞여 들어갔다.

거대한 우주건축물인 감시청 내부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배들. 그 속에서 함께 비행하던 삼각형 우주선이 도중에 행렬을 이탈했다.

해당 우주선 말고 다른 배들도 일부 이탈했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청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기에.

외벽 한쪽에 위치한 큼지막한 게이트 앞에서 개인용 배들이 검사를 받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나씩 하나씩 검사가 끝나고 마침내 삼각형 우주선의 차례가 됐다.

「지식관리자 차라스님?」

“맞습니다.”

「목적지를 베르잔02로 보고하셨는데 이유는 뭡니까?」

“휴가입니다.”

「동행자는 있습니까?」

“컬트는 저 혼자입니다.”

「베르잔02을 방문하실거면 절차상 내부 검사가 필요합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오전 중 소속 함선과 감시청에 보고했고, 방문 허가를 받았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차라스의 말에 통신기 너머에 있던 자가 침묵했다. 잠시 후, 통신기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인했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차라스는 게이트를 통과해서 감시청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옅은 붉은색을 띠는 행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저 행성이 그녀의 목적지, 베르잔02다.

감시청에 나온 이후 줄곧 가속하던 우주선이 베르잔02에 가까워졌다.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지상에 있는 무수히 많은 포대가 그녀의 배를 겨냥하고 있었다.

물론 감시청의 허가를 받은 그녀가 공격받을 일은 없었다. 대기권을 통과한 배의 강화유리 너머에 보이는 경치는 붉은색의 대지와 끝없이 펼쳐진 빌딩의 숲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었으나 그녀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감시청을 떠났을 때부터 줄곧 그녀의 표정은 똑같았다.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멍한 얼굴과 달리 그녀의 손은 빠르게 착륙 준비를 했다. 배는 빌딩의 숲에서 꽤 떨어진 한 작은 공항에 착륙했다.

“도착했습니다.”

이 배에는 그녀 말고 다른 컬트는 탑승하지 않았다. 컬트가 아닌 존재를 제외하고 말이다.

정면의 강화유리를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 뒤로 ‘그것’의 거대한 아가리가 솟아올랐다.

“여기가 베르잔02이구나.”

평범한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는 ‘그것’.

차라스는 자기가 데려온 ‘그것’, 아니 세 머리의 악마가 이 베르잔02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건 파멸이었다. 과거 성지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오랜만에 와보네.」

“고온. 감지.”

뒤에서 악마와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악마가 데려온 존재들이 그녀가 앉아 있는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다.

맹금류의 머리를 지닌 암컷 볼프, 인간의 머리에 금속 부품들과 다리를 주렁주렁 단 끔찍한 괴물.

그녀의 우려와 별개로 세 머리의 악마와 그 하수인들이 결국 베르잔02에 상륙하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이제 애들만 오면 되겠구나.”

악마가 길쭉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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