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06화 (307/400)

Episode 306 - 흔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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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텐데 만나달라고 해서 미안하군.”

“하하. 아닙니다. 선배님.”

딱딱한 분위기의 집무실에서 두 컬트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둘 다 머리에 야크의 뿔이 달려 있었으나, 그것 말고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미중년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남성 컬트는 특이하게도 메가콥 위기관리팀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반면에 집무실 책상 앞에 앉은 여성 컬트는 컬트식 보라색 군복을 입었다.

“진작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마련한 숙소는 괜찮습니까?”

“‘물의 요새’의 숙소라니. 예전부터 좋다고 말은 들었는데 상상 이상이었네.”

“선배님과 선배님을 구한 자들이라면 황궁에서 대접하는 것도 아깝지 않습니다.”

“정말 내가 받아도 될지 고민되게 만드는 과분한 친절이었어. 정말 고맙네. 알샤스.”

“선배님! 고개를 드시죠!”

메가콥 제복을 입은 컬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여성 컬트, 알샤스는 민망하다는 듯 손을 저었다.

“네른 선배님께서 제게 연락하셨을 때, 저는 위대한 섭리에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선배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에 말입니다.”

“알샤스, 자네….”

“그러니 고개를 드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만류에 네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잘 관리된 은색의 머리카락, 성숙한 아름다움과 기품이 느껴지는 얼굴. 네른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후배의 얼굴을 마주하고 과거를 떠올렸다.

오래전 네른과 알샤스는 같은 함선에서 근무했다.

당시 알샤스는 함선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유독 어린 나이에 함선에 타서 그런 것이리라. 아웃스페이서의 위협으로부터 네른이 여러 번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그 울보가 지금은 제국모함의 함장이지.’

전투가 끝날 때마다 눈물을 쏟던 컬트는 이 자리에 없다. 네른은 알샤스의 오른쪽 가슴에 달린 휘장을 흘낏 쳐다봤다.

금색 마름모 내에 작은 원이 그려져 있는 휘장. 네른은 10년 전 ‘다모스08의 심판자’의 함장이 되면서 저것과 똑같이 생긴 휘장을 받았다.

못 미더웠던 부하가 언제 이렇게 커서 이 별을 수호하는 제국모함, ‘베르잔02의 방어자’의 지휘관이 됐을까.

사실 그도 그녀가 함장이 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은 버릴 수 없었다.

“그나저나 선배님, 정말 복귀하지 않으실 겁니까? 지금 제국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선배님 같은 영웅이 필요할 때입니다.”

“말했지 않는가. 나는 복수를 끝마치기 전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세 머리의 악마 말씀이십니까? 저도 기록을 봐서 압니다. 제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토벌은 불가능합니다.”

알샤스의 입에서 ‘세 머리의 악마’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네른은 몸이 멋대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그 괴물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도 알 텐데. 제국은 그 괴물을 잡는데 힘을 쓸 여력이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저 의회에서 반대하겠지.”

“제가 힘을 보탠다면….”

“그랬다가 자네마저 혁신파에서 쫓겨나면 제국은 그걸로 끝장이야.”

“…….”

“그들은 인간. 미약하고 원시적인 종족인 것은 사실이지. 하나 그들이 내가 원한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네.”

현재 네른이 몸을 담고 있는 집단의 주인, 시현 유진은 막강한 힘을 지닌 유물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지는 불명이나 어차피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라면, 그녀가 지닌 유물이라면 세 머리의 악마도 능히 사살할 수 있으리라.

“역시 그 유물 때문입니까?”

“그래. 자네도 들었으니 기억하겠지.”

“덕분에 선배님과 제가 살아남았으니 당연히 기억합니다. 그 무서운 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또 나타날 줄이야.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유물이 작동할 당시 알샤스도 그 배에 있었다. 다만 그녀는 입원한 상태였기에 유물이 작동하는 것까지는 보지 못했다. 그녀가 유물에 대해 들었을 때는 네른이 이미 유물을 어느 행성에 숨긴 뒤였다.

“아무튼 오늘은 그것과 관련된 일 때문에 자네를 만나려고 왔네.”

“예?”

“유물 사용자, 시현 유진이 혁신파의 의원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게.”

“혁신파 의원 말입니까?”

“여러 종류의 무기와 함선이 필요하네. 섭리파 측은 재무장을 주장 중이니 무기를 절대 넘기려 하지 않겠지. 하지만….”

“군축을 주장하는 혁신파는 다르다는 겁니까. 그건 맞습니다만.”

알샤스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아무리 그녀가 제국모함 함장이라 해도 의원들에게 무기를 팔라고 강요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물며 판매할 상대는 정체가 불투명한 존재들. 그들이 언제 제국에 위해를 끼칠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네른이 이런 제안을 들었다면 단칼에 거절했으리라.

그녀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안 네른은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알샤스는 짧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를 갚을 기회인데 제가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제가 은사로 여기는 분이 이곳에 와 계시니 그분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정말인가?”

“예. 그분은 혁신파 중에서도 정통한 메가콥통(通). 아마 말이 잘 통할 겁니다.”

“고맙네!”

“그렇게 고마우면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제국모함도 많습니다.”

“크흠, 그나저나 그, 오라버님은 잘 계시나?”

헛기침하며 말을 돌리는 네른을 보고 알샤스는 피식 웃었다.

“알카디 오라버니는 여전하십니다. 알고 계신대로 고상한 취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렇게까지 말할 것 없네. 분명 수완이 있는 분이니.”

“망나니 오라버니를 좋게 평가해주시는 건 선배님 뿐일 겁니다.”

비꼬는 듯한 어조와 달리 그녀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네른이 기억하기로 알카디, 알샤스 남매의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형제자매에 대한 의식이 희미한 편인 컬트 중 보기 드물 정도로 말이다.

“이참에 기회를 드리는 것은 어떤가? 자네 추천이라면 총독 보좌 정도는 어렵지 않을 텐데?”

“망측한 취미를 버리기 전에는 힘듭니다. 의원들이 반대할 겁니다.”

“쩝. 섭리파의 그분도 그렇고 왜 이리 노예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은지.”

“그 실종된 최연소 제사장 말씀이십니까? 듣자 하니 노예들도 전부 사라졌다고….”

중요한 이야기가 끝났지만 네른은 나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근래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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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요새라.’

나는 맛좋은 고깃덩어리를 삼키며 낮에 봤던 것을 곱씹었다.

어젯밤 나는 알카디의 저택에 침입해 그에게 기생충을 심었다. 놈은 이 행성에서 나름 유명한 자. 그래서 일반 모드 말고 차라스와 똑같이 육체를 주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조종하기로 했다.

광명의 거리에서 가장 많은 노예를 지닌 컬트에게 내가 요구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정보와 상품.

나는 먼저 그가 지금껏 팔아치웠던 모든 노예가 기입된 장부를 달라고 했다.

놈은 내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그것만은 절대로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자기 밑천이라 넘길 수 없다면서 말이다.

물론 기생충이 뇌 일부와 척추를 점거한 상황에서 그의 거절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나는 놈에게 고통을 준 다음 다시 명령했다.

장부를 가져오라고.

놈은 뱃속에 담아둔 모든 내용물을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야 내 말을 들었다. 놈으로부터 작은 데이터 칩을 받은 나는 그 다음 보유한 생물들에 대해 물었다.

알카디가 노예만 팔았다면 결코 지금만큼 큰 부를 획득하지 못했을 거다. 예상대로 놈은 판매용 또는 컬렉션용 생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에이펙스급 희귀 생물들도 있을 줄은 몰랐지만.’

당연한 얘기지만 그것들도 내게 가져오라고 했다. 내가 은신한 장소로 몰래 보내라고.

한 번 크게 당한 놈은 내 명령에 복종했다. 알카디는 절대 다른 이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보내겠다고 내게 맹세했다.

그걸로 볼일이 끝났다. 놈에게 뒤처리를 맡긴 뒤 은신처로 돌아왔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PS-111을 불렀다.

녀석은 금속 신체 부분을 개량하기 위해 적들이 가져온 강화복을 분석 중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작업이 끝난 뒤 알카디의 데이터 칩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천천히 해도 좋다고 말했는데 PS-111은 밤새 엄청난 양의 기록물을 전부 조사했다. 녀석은 알카디가 판 노예 중 콜드블러드만을 추려낸 뒤, 호버 버스 센터의 홀로그램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줬다.

목록을 살펴보던 도중 하늘의 어머니는 한 명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왜 의심이냐면 그녀가 22위와 얼굴을 직접 봤던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만났을 당시에 어린 콜드블러드였으니 지금쯤이면 어른이 됐을 터.

게다가 22위는 제이슨을 비롯한 지배파에게 타깃이 된 플레이어다. 자기 모습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감췄을 가능성이 높다.

‘뭐 녀석은 확신하는 것 같지만.’

아무튼 22위로 추정되는 콜드블러드는 불과 두 달 전 물의 요새에 머무는 새 주인에게 갔다. 몇 개월 밖에 안 됐으니 아직 물의 요새에 있겠지.

‘문제는 물의 요새를 뚫기가 쉽지 않다는 건데….’

나는 알카디가 보낸 먹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생각했다.

물의 요새는 이 행성의 수도 같은 곳이자 예언자회의 최대지부가 위치한 곳이다. 방어 수준도 이곳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또한 베르잔02에 22위 말고 다른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 또한 물의 요새에 있을 확률이 높다. 물의 요새는 행성 경제의 중심지. 내가 컬트 플레이어라면 반드시 그곳을 기반으로 삼을 거다.

‘뭐가 됐든 이틀 안에 돌파하는 것은 무리야.’

‘영리한 약자’의 지속시간이 며칠 안 남았다. 십중팔구 물의 요새에 들어가기 전에 변신 이 풀릴 거다. 도시와 전면전을 벌일 거면 모를까 수십m 크기의 몸을 이끌고 도시에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22위에게 진화 도중에 본 환상에 대해 물어보려고 이곳에 왔다. 그자가 나를 적대한다면 모를까, 아직 확실하지 않는데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적어도 30일 동안 여기서 시간을 보내야겠네.’

그 긴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잠입 준비, 그리고….

「포식 효과 발동!」

‘좋아.’

알카디가 보낸 컨테이너가 도착했을 때, 나는 바로 ‘사냥의 표상’을 사용했다. 녀석이 보낸 생물의 특성을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금 내가 먹은 생물은 ‘레드웜’의 유체. 사막형 행성에만 서식하는 육식성 지렁이로 모래의 용, 붉은 뱀 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이 생물이 가진 고유 특성은 나와도 인연이 깊다.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획득했기 때문이다.

‘아주 잘 써먹었지.’

이 특성은 한동안 잘 써먹다가 융합 재료로 사용했다.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고, 향후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레드웜’의 생물 특성 중 ‘흉내 내기’를 탈취.」

「‘흉내 내기’를 적용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확인.’

메가콥 연구선의 화물칸에서 얻었던 보물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나는 포식 효과로 뜬 특성을 몸에 받아들이며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 효자 특성을 애들 중 하나한테 줄 생각이다. 그렇다면 누구한테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가장 심플하게 좋은 자는 역시 PS-111이겠지만….’

PS-111은 몸의 절반 이상이 기계인데다가 개조를 통해 자기 몸을 바꿀 수 있다. 녀석에게 목소리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름 유용하기야 하겠지만, 그뿐이겠지.’

하늘의 어머니의 경우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애들 중 흉내 내기를 적용받으면 어떻게 될지 제일 예측이 잘 되는 유형이니까.

‘다만 그녀에게 주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지.’

그녀는 볼프 종족이다 보니 대외 활동에 지장을 느끼지 않는다. 전투에만 써먹으라고 주기에는 살짝 아까운 느낌이 있다.

물론 그녀는 애들 중 흉내 내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게임에서 나 때문에 뼈저리게 체험했으니까.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막상 주면 나름 잘 사용할 거다.

‘아드하이는 솔직히 안 될 것 같고.’

갤러곤에게는 촉수다발이 입의 역할을 대신한다. 흉내 내기 기관이 목 안에 이식된다고 해도 구강구조상 소리를 내기 어렵다.

사실 구강구조 형태만 따지면 26호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지만, 녀석에게는 한 가지 차별화된 이점이 있다.

‘녀석은 몸을 바꿀 수 있지.’

우주요새 ‘케샤 아르마’의 지하 저장고에서 녀석은 ‘페이스리스’라는 생물을 먹었다.

페이스리스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바꾸는 특성을 지닌 생물.

그 힘을 이어받은 녀석은 촉수의 형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능력인 ‘변이 촉수’를.

‘변이 촉수는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

어쨌든 흉내 내기 기관이 몸에 안 맞아도 녀석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다. 녀석이 몸에 새로 생긴 기관에 맞춰 촉수를 바꾸면 되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내가 상상하는 형태와 많이 달라질 거다. 내 예상보다 훨씬 훌륭할 수도 있고, 아니면 목소리라 부르기 어려운 소리를 내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하늘의 어머니한테 줄까, 아니면 26호한테 줄까.’

한쪽은 리스크가 거의 없는 대신, 돌아오는 결과가 예측 가능하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운용을 보여 줄 것으로 추측된다.

다른 한쪽은 마찬가지로 리스크가 적으나 돌아오는 결과가 예측 불가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역시 녀석에게 주는 게 낫겠어.’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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