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08화 (309/400)

Episode 308 - 흔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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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샤스, 자네가 이럴 줄은 몰랐네만.”

컬트식 보라색 군복을 입은 네른이 곁에 있는 후배를 노려봤다.

“선배님 마음은 저도 이해합니다.”

“이해한다면서 이 자리에 나를 끌고 와?”

“끌고 온다니요.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아시면서 그리 말씀하십니까?”

현재 그들은 혁신파의 수장, 키소스의 저택에 와 있었다.

4일 전, 알샤스는 네른의 부탁을 받고 시현 유진과 키소스 간의 면담을 주선했다. 뜻밖에도 키소스는 시현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녀에게 안정적인 장비 공급 루트를 제공할 것이라 약조했다.

협상이 이렇게까지 성공한 사실에 네른은 만족했다. 시현의 세력이 강해질수록 그가 저 ‘세 머리의 악마’에게 복수할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

“나는 분명 복수를 마치기 전까지 복귀하지 않겠다고 말했네.”

“저도 선배님께 복귀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저기 있는 자는 계시의 눈 사제단 부단장이고, 저분은 아우르 감시청장이지. 이 행성의 핵심 권력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데려와 놓고 아니라고?”

키소스가 주관하는 파티에는 그들만 초대된 것이 아니었다.

연회장에는 둘 말고도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그 직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가 제국모함 함장이었을 때도 쉽게 만나지 못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권력자들이다.

“선배님도 아시잖습니까. 시현 유진의 적이 하나가 아닙니다. 그녀가 유물을 갖고 있다고 해도 앞길이 험난한 것은 사실. 미리 대비한다고 나쁠 것은 없습니다.”

“의회에서 나의 생존을 안다면 가만히 놔둘 거라고 생각하나? 어떻게든 이용하려 할 걸세.”

“그 부분은 키소스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시현의 역할이 완수될 때까지 선배님은 죽은 자로 남을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허.”

그가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일이 끝났다. 네른은 알샤스를 노려봤다.

그는 이런 종류의 정치 공작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그가 천성 군인인 탓도 있으나, 파벌들의 이권다툼 때문에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크게 화를 냈겠으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알샤스가 자신을 위해 행동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반대의 경우였다면 그도 어떻게든 후배의 복귀를 도우려 했을 터.

결국 네른은 화를 내는 대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언제 인사드리면 되지?”

“시현과 오라버니 순서가 끝나면 그때 따로 인사드리면 됩니다.”

현재 이 파티의 주최자 키소스는 참여한 손님들에게 시현을 소개 중이었다. 인간이지만 역시나 노블캐피탈답게 그녀는 노련하게 손님들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현에 머물던 그의 시선이 연회장 구석에 있는 은발의 컬트에게 옮겨 갔다.

머리카락 색만 닮은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도 알샤스와 비슷한 인상의 남자. 제국모함 함장을 동생으로 둔 자, 알카디다.

“알카디님도 와 있군.”

“저번에 말씀하셨잖습니까. 총독 보좌가 되면 잘 할 것 같다고. 키소스님께서 말씀하시길, 마침 좋은 자리가 생겼다더군요.”

“거참, 남매 모두 수완이 이리 좋을 줄이야.”

네른은 혀를 내두르며 알카디를 주시했다. 그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연신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 괜찮은가?”

“제가 오라버니와 가까이 하면 딴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보니….”

“하긴.”

“솔직히 살짝 걱정되긴 하는데 괜찮을 겁니다.”

둘이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시현의 소개가 끝났다. 그녀가 물러나고, 홀로 술잔만 홀짝이던 알카디가 귀빈 무리를 향해 움직였다.

그가 고약한 취미로 인해 평이 좋지 않다고 하나 뛰어난 수완을 지닌 장사꾼인 것은 사실. 행성의 핵심 권력자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리 없다. 아마 별 탈 없이 끝날 것이다.

“응?”

그렇게 생각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계시의 눈 사제단의 부단장이 갑자기 나서더니 알카디와 키소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부단장이 허리춤에 찬 칼로 알카디의 목을 벴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누구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오라버니!”

자기 오빠의 죽음을 인지한 알샤스가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질렀다.

그녀가 쓰러진 오빠의 시체를 향해 다급히 뛰어갔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네른도 후배 뒤를 따랐다.

‘부단장이 왜? ’

“…부단장, 이게 무슨 짓이지?”

키소스의 서늘한 목소리가 네른의 귀에 파고들었다. 자기가 주관한 연회에서 자기가 초대한 인물이 죽었기에 그의 목소리는 극도로 차가웠다.

만약 칼부림을 벌인 자가 다른 자였다면 이미 끌려 나가고도 남았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칼을 빼든 자가 계시의 눈 사제단의 부단장이기 때문이다.

계시의 눈 사제단은 신전수호단과 함께 제국의 최정예 무력집단 중 하나. 신전수호단이 괴물 사냥의 전문가라 한다면 계시의 눈 사제단은 볼텍스원 사교도 같은 내부의 적들을 주로 상대한다.

업무의 특징상 그들에게는 강한 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 그런 조직의 부단장이 아무 이유 없이 저런 행동을 할 리 없다.

그리고 부단장의 돌발행동의 이유는 곧 드러났다.

“저게 뭐지?”

“오, 오라버니?”

모두의 시선이 부단장이 아니라 알카디의 시체에 꽂혔다.

깔끔히 잘린 목의 단면에서는 피 대신 다른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뱀?’

검은색의 길쭉한 몸을 가진 무언가가 꿈틀대다가 곧 움직임을 멈췄다. 괴물체를 주시하던 부단장이 입을 열었다.

“아웃스페이서의 기생충 변종으로 판단됩니다.”

그 말에 연회장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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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잔02는 보다시피 사막형 행성이다.

어딜 가도 보이는 것은 모래뿐이고, 낮밤으로 2개의 태양이 번갈아 뜨는 바람에 온도도 매우 높다.

그런데도 베르잔02의 대도시들의 이름들을 보면 물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해당 도시들이 대량의 지하수가 매장된 지역 위에 세워진 점과 관련이 깊다.

컬트에게 성간 이동 기술이 있다고 해도 물을 타 행성에서 공수해 오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이다. 행성이 개발될수록 운송비가 점점 상승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요새 수백, 수천 개를 굴리는 제국이 물을 옮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행성에 있는 수자원을 내버려두고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어서 그렇지.

아무튼 ‘물의 요새’ 또한 물과 모래 위에 세워진 도시 중 하나다.

바이오 돔으로 받는 지상과 달리 지하에는 광대한 수로 라인과 지하수 관리 시설들이 깔려 있다.

사막형 행성에 물은 중요한 자원이기에 지상만큼이나 방비가 철저하다. 우주요새에서나 볼 수 있는 요새포부터 시작해서 온갖 종류의 탐지 장비, 어마어마한 수의 컬트들이 관리 시설에 배치되어 있다.

게임에서도 물의 요새에 잠입하려면 지하보다 지상의 루트를 통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였다. 나도 지하에 몰래 들어가는데 성공한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하나 지금은 상황도, 조건도 다르다.

내게는 최고의 잠입 모드인 ‘영리한 약자’가 있다. 그리고 적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수단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게임 같았으면 피했겠지만, 여기서는 지하 루트를 이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래서 나는 영리한 약자의 쿨타임 동안 물의 요새 지하 루트에 잠입할 준비를 했다.

바로 요새로 이어지는 땅굴을 뚫는 것.

성체가 된 이후 지하에서 움직이기 적합하지 않은 몸이 됐지만, 그렇다고 땅을 못 파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게 주어진 시간은 30일.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동안 나는 매일 땅속을 파냈다. 낮에는 애들이 새로 얻은 특성의 사용법을 가르치고, 밤에는 지하의 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충실하게 시간을 보낸 결과, 내가 만든 땅굴은 물의 요새 아래에 있는 관리 시설과 가까워진 상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도시에서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관리 시설의 탐지 시스템이라면 진작 내가 만든 진동을 감지했을 텐데도 말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설마 이런 방법으로 감시를 피할 줄은 몰랐네.」

내 등에 올라타 있던 하늘의 어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하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두 눈은 정확히 앞에 있는 생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만든 통로 위에는 나와 그녀 말고 다른 생물들도 있다.

나는 물론이고, 전에 만났던 아이스 호러만큼이나 거대한 몸을 지닌 붉은색 뱀이 내 앞에 있다. 저 생물의 정체는 바로 레드웜 성체다.

「레드웜 흉내를 내다니.」

에이펙스 생물보다 살짝 못 미치는 강함을 지닌 레드웜 성체는 종족에 따라 인식이 극명히 갈린다.

메가콥에서는 목소리를 흉내 내서 희생자들을 잡아먹는 저 괴물을 사냥의 대상으로만 본다. 반면, 컬트들은 레드웜을 죽이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는 레드웜이 사막형 행성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레드웜이 아니라 레드웜과 공생하는 생물들이지만.’

땅굴의 너비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저 육식성 지렁이의 몸 곳곳에는 어린아이만한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물풍뎅이’라는 이름의 저 벌레들은 깨끗한 물과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물질을 배출해서 행성의 환경이 유지되도록 돕는다.

물풍뎅이는 오직 레드웜 성체의 각질만을 먹고 산다. 레드웜이 줄어들면 물풍뎅이도 줄어들고 행성 생태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사막형 행성에서 사는 컬트 입장에서는 당연히 레드웜 성체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

[즈즈즈 즈즈(나쁘지 않지?)]

「이래서 플레이어들이 몰랐던 거구나.」

성체 상태인 내 덩치는 아직 성장을 끝마치지 못한 젊은 레드웜과 비슷한 크기다. 관리 시설의 탐지 시스템은 나의 존재를 외부에서 들어온 새 레드웜으로 인식하겠지.

여기서 내가 지하수로나 설비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놈들이 나를 잡으러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늘의 어머니도 그 사실을 알고 헛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누가 모프박이 아니랄까 봐 머리 잘 돌아가는 거 봐.」

[즈즈즈즈즈 즈즈즈 즈즈즈즈 즈즈즈즈즈(이렇게라도 안 하면 5위까지 못 올라가지)]

「…잘나셨네요.」

내 등에 있는 그녀는 손으로 부리를 긁적였다. 그녀에 손이 부리에 닿는 순간, 그녀의 몸을 감싼 파장이 흔들렸다.

「혹시 몰라서 강화복까지 준비했는데 이럴 거면 딱히 필요 없겠는걸.」

현재 그녀는 상급 강화복을 입고 있다. 지난번 알카디가 보낸 습격자로부터 탈취한 상급 강화복을 그녀의 신체 조건에 맞춰 개조한 물건이다. 기존에 있던 은신 기능을 강화해서 광학미채 효과 위에 약한 스텔스 효과도 추가되었다.

그리고 장비 개량을 맡긴 동안, 본인은 물의 요새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루트를 찾아다녔다. 나와 달리 대외 활동이 자유롭기에 돌아다닌 장소도 훨씬 많았다. 실제 그녀가 찾은 루트는 내가 게임에서 사용했던 잠입 방법과 비슷하기도 했고.

다만 현 시점에서는 지상보다 지하 루트가 안전하다. 내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그녀가 찾은 방법을 이용할 일은 없을 거다.

‘뭐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도시에서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잠입 자체는 무난히 성공할 듯싶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저렇게 말한 거다.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즈즈(잠입 후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

「그런 상황이 올 바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사실 그녀가 조사하면서 얻은 정보 중에는 게임과 바뀐 부분도 상당했다. 개중에는 몰랐다면 제법 곤란해졌을 정보도 있었고. 도시를 빠져나올 때, 혹은 내가 나중에 행성을 공략해야 할 때가 오면 그녀의 지식이 유용하게 쓰이리라.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어차피 레드웜이 주변에 계속 돌아다니고 있어서 더 파기도 힘들었다.

녀석들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실수로 녀석들을 죽일까 봐 그렇다. 생태계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레드웜이 죽으면 컬트들이 즉각 반응할 거고, 그렇게 되면 땅굴 작전은 물 건너 간다.

땅굴을 파는 것을 중단하고 호버 버스 센터로 돌아가려고 하던 찰나.

내 머리에 짧지만 강렬한 신호가 날아들었다. 마치 단말마와 같은 파장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왜 그래?」

내 등에 있던 하늘의 어머니가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방금 날아온 파장.

내가 심어 놓은 기생충이 마지막으로 보낸 신호였다.

‘알카디가 죽었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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