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10 - 괴수 사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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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잔02의 방어자’의 함장 알샤스의 가족, 알카디가 죽은 지 5일이 지났다.
제국모함 함장의 혈육이 죽은 초유의 사태에 행성 전체가 움직였다. 감시청에 소속된 지식관리자, 추적 능력을 갖춘 컬트들, 각 기관 소속 전사단 등등. 거기에 추가로 베르잔02를 수호하는 계시의 눈 사제단과 예언자회까지도 동원됐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사제단과 예언자회가 조사에 참여한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두 집단의 목적은 섭리에 위배되는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볼텍스원 사교단 수색, 스파이 제거 등 제국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발생한 문제를 맡는다.
그런데도 그들이 알카디의 죽음에 개입한 이유는 하나.
대외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최근 아웃스페이서들이 특이한 방법을 사용해서 제국을 좀먹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공세는 놈들이 빈 행성에 ‘바이오 포털’이 생성한 뒤 대규모 무리를 소환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일단 포털이 생성된 뒤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하므로 제국이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놈들은 ‘일벌레’ 몸에 서식하는 기생충을 개량한 뒤, 붙잡은 컬트나 여러 지성체의 몸에 강제로 이식했다. 감염당한 지성체들은 놈들의 노예가 되어 여러 행성에 침투해서 공세를 준비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감염자들의 지능이 극단적으로 낮아져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언제까지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다.
사제단은 기생충의 존재를 안 이후부터 감염자들의 침투를 막기 위해 준비했다. 기생충 추적 장비와 감염된 자들의 특징을 식별하는 사이킥 기술을 단원들에게 보급하는 식으로 말이다.
부단장이 알카디에게 ‘조치’를 취했던 것도, 조사에 그들이 개입한 것도 이러한 연유였다.
하나 다수가 조사에 참여했으나 기생충을 주입한 존재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알카디의 행동이 일반적인 감염자의 모습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키소스의 저택에서 목숨을 잃기 전까지 그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행동했다. 그의 행적에서 수상한 부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업에 있어 합법적인 영역 말고 회색지대까지 발을 걸치고 있었다. 증거도 남기지 않고 비밀리에 처리된 일도 많아서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조사가 시작된 지 4일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기생충을 심은 자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카디는 죽기 전 약 3주 간, 3일에 한 번씩 ‘영광의 거리’의 폐건물에 생물을 실은 컨테이너를 보냈다. 그가 비정상적인 수집욕을 지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 자가 자기 컬렉션에 있는 동물을 버려진 거리에 보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아웃스페이서의 바이오 포털 생성에는 막대한 유기물이 필요하다. 사제단과 예언자회는 폐건물, 그러니까 ‘호버 버스 센터’가 놈들의 은신처라 주장했다.
단 알샤스를 비롯해 과거 대공세에 맞선 경험이 있는 자들은 아웃스페이서의 공작이라는 설을 부정했다. 함장과 전사단원 중 많은 이들이 아웃스페이서의 기생충을 목격했다. 알카디의 몸에서 나온 존재는 외형도 전혀 달랐고, 능력도 지나치게 뛰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볼텍스원 사제단들의 짓이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이게 문제가 된 이유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토벌대의 구성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사이킥 파워에 내성을 지녔지만 사이킥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아웃스페이서. 그들을 상대하려면 고화력의 사이킥 파워 무기, 물리적으로 높은 방어력을 지닌 장비가 필요하다.
반면, 볼텍스원 사교도들은 매우 변칙적이다. 그들이 어떤 볼텍스원을 섬기냐에 따라 전투 양상이 완전히 바뀐다. 그래서 선정찰 후, 해당 사교단에 맞는 장비들을 준비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의견은 조사할 때부터 좁혀지지 않았기에, 키소스가 중재에 나섰다.
그는 알샤스를 설득하는 한편, 예언자회에게 혹시 모를 사교단의 암약에 대해 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토벌 도중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예비대로 배치한 자들을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예비대를 운용하는 비용 중 절반을 그가 지불하기로 했기에, 예언자회에서도 중재를 받아들였다.
정작 사제단원 중에서는 병력을 나눠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표한 자가 있었으나, 상급 기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 결국 키소스의 중재안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
괴수 사냥을 위한 토벌대가 영광의 거리에 진입했다.
「토벌대. ‘은신처’를 향해 이동 중.」
“드디어 시작이군.”
상공에 떠 있는 제국모함으로부터 날아온 연락에 네른이 중얼거렸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물의 요새’에 위치한 어느 방어 시설의 상황실. 알샤스와 여러 군인들과 함께 작전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제가 갔어야 했습니다.”
“자네도 그럴 수 없다는 건 자네가 제일 잘 알지 않는가. 키소스님이 자네를 배려한 걸세.”
알샤스의 제국모함, 베르잔02의 방어자는 이번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체불명의 존재 때문에 가족을 잃은 당사자.
일반 병사라면 모를까 제국모함 함장이나 되는 자가 작전 수행 중 복수심에 빠지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다른 제국모함이 그녀 대신 작전에 참여했다.
네른은 그 점을 지적했으나 알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적이 단순한 아웃스페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선배님도 아시잖습니까?”
사실 네른도 그녀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사제단의 말처럼 아웃스페이서의 짓이 맞는다고 해도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놈들과 제국의 전쟁은 하루 이틀만의 얘기가 아니다. 베르잔02가 공략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이곳보다는 차라리 제국 변방에 있는 행성부터 차근차근 공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리고 하필 알카디를 지배하는 것도 수상하지.’
동생은 제국모함 함장, 본인은 광명의 거리의 유력자다. 외부의 시선에 지나치게 노출된 자를 감염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놈들은 괴물이지만 바보가 아니야.’
사제단에서도 자기 의견을 열심히 피력하긴 했지만 네른은 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가 봤을 때, 놈들은 사제단이 모르는 비밀을 숨기고 있다. 아니면 아웃스페이서가 아닌 제3의 존재거나.
하지만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자네가 수상한 점을 바로 지적하는 수밖에.”
“저 자존심 높은 사제들이 제 말을 듣겠습니까?”
“들을 수밖에. 자네야말로 놈들과 수없이 싸워 본 자이니.”
네른의 담백한 칭찬이 부끄러운지 그녀가 시선을 살짝 돌렸다.
현재 알샤스는 의회와 행성 총독의 인가를 받은 조언자의 자격으로 작전에 참여하게 됐다. 직접 작전과 전투에는 참여할 수 없으나, 대신 현장에 있는 토벌대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사제단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반발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마어마한 전투 경험을 보유한 역전의 용사라는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었다.
“그건 선배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보다 자네는 싸우지도 않을 건데 무기를 들고 왔군.”
네른의 시선이 그녀가 앉은 의자 아래로 향했다. 알샤스는 발치에 세워 둔 검은색 도끼 두 자루를 손에 쥐었다.
“이 중 하나는 예언자회에 있던 제 친구가 준 물건입니다.”
“예언자회에 있으면서 도끼를 쓰다니. 특이한 친구로군.”
“그 친구가 직접 쓰던 무기는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가 다른 이에게 받은 무기를 제게 준 겁니다.”
뭔가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그녀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친구가 예언자회에 있다면 이번 작전에 관해 뭔가 조언해 주지 않던가?”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얼마 전 섭리께서 거두셨으니까요.”
“…미안하군.”
그 말에 네른은 그 느낌의 정체가 슬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서둘러 사과하자 그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동포들을 떠나보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희생이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자네.”
“이제 제가 친구가 남긴 유지를 따를 차례입니다. 부디 이 이상의 희생 없이 대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자네라면 제국에 필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야. 내 말을 믿게나.”
그 말을 들은 그녀가 묘한 표정으로 네른을 바라봤다. 잠시 네른과 시선을 마주하던 그녀가 말했다.
“그 평화, 저는 선배님도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
“예. 선배님께서는 대의에 중요한 존재. 목적이 달성되기 전까지 죽어선 안 됩니다.”
“말이라도 고맙군. 걱정 말게. 섭리께서는 내게 제국을 지키라고 돌려보내셨네. 그 뜻을 이루기 전까지 내가 그분 곁으로 갈 일은 없을 걸세.”
네른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제야 그녀는 만족스러워하며 웃었다.
그때 토벌대의 움직임을 이미지화해서 출력하고 있던 컬트가 외쳤다.
“토벌대. 센터에 진입합니다!”
그걸로 둘의 대화는 끊겼다.
모두의 눈이 상황실 중앙에 떠 있는 이미지에 꽂혔다.
토벌대들이 이제 막 호버 버스 센터 내부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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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잔여 페로몬 확인.”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군.”
“컨테이너가 남긴 자국, 확인했습니다.”
전사단, 지식관리자, 추적 기술을 배운 사냥꾼, 구급요원, 사제단원 등 각기 다른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전투원 200명이 버려진 건물에 들어왔다.
건물 밖에는 그들을 지원하고 유사시에 투입될 병력 2,000명이 대기 중이고, 상공에는 모함전단(母艦戰團)의 함선들이 떠 있었다.
절대 뚫리지 않을 포위망을 뒤로하고 토벌대들이 흔적을 따라갔다.
내부에 쌓인 모래 위에는 거대한 무언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추적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마한 베테랑 사냥꾼들은 흔적의 주인을 최소 40m 이상의 크기를 가진 이족보행 생물로 추측했다.
“최소 40m? 어마어마한 크기로군.”
“크기를 봐서는 여왕근위대 같군.”
“아니면 하이브리드 개체일지도.”
“어느 쪽이든 쉬운 상대는 아니다. 이 정보는 함선에 전달하라.”
“예.”
지식관리자들이 사냥꾼들이 보낸 정보를 상공에 있는 모함전단으로 쏴 보냈다. 그사이 다른 이들은 주변을 경계했다.
인원이 많지만 적이 무슨 함정을 준비했을지 모르는 상황. 200명 중 그 누구도 방심하는 자가 없었다.
토벌대는 지식관리자가 일을 끝내고 난 뒤에 다시 움직였다.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그들 앞에 지하 계단이 나타났다. 토벌대 중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닌 계시의 눈 사제들이 앞에 섰다. 그들은 천천히 내려가며 손에 쥔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긴 봉을 어둠 속에 갖다 댔다.
그러자 봉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거대한 지하 공동을 비추었다.
“사방에서 흔적 발견.”
“이상하군. 흔적은 있는데 아웃스페이서의 오염이 전혀 없어.”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근원지가 안쪽에 있어서 그런 것일 수 있으니.”
무리를 이끄는 선임사제들은 공동 곳곳에 뚫려 있는 통로들을 주시했다.
“흔적이 골고루 퍼져 있군.”
“함정이다. 함선의 연락은?”
“탐지 시스템으로 확인한 결과, 2km 밖에서 흔적의 주인과 유사한 크기를 지닌 생물이 감지됐습니다.”
“좋아. 혹시 통로가 붕괴할 수도 있으니 50명이 한 팀으로 해서 총 4팀이 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한다.”
“위에 있는 예비대에게 연락해서 공동에 추가 인원과 탐지 설비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해.”
“센터에 있는 컴퓨터도 확인하는 게 좋겠어.”
공동에서 진형을 바꾼 토벌대는 커다란 통로로 이동했다.
들어간 지 얼마 동안은 낡았지만 그래도 정비됐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안이 깊어질수록 이러한 느낌은 점점 사라졌다. 둔탁한 발톱을 지닌 거대한 짐승이 땅속을 마구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통신 상태는 어떻지?”
“양호합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이상한데. 바이오 포털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군.”
“오염도, 에너지도 감지되지 않아.”
지하 통로는 토벌대가 만드는 발자국 소리 외에 조용하기만 했다. 그 부분이 역으로 선임사제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쯤이면 뭐라도 나와야 정상이었다.
아웃스페이서가 활동하려면 무조건 오염원, 그러니까 놈들의 둥지가 있어야 한다. 바이오 포털, 번식, 진화, 영양 공급 등 놈들의 모든 활동이 둥지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지하에는 그 어떠한 둥지도 보이지 않았다. 여왕도 아니고 한 개체가 둥지 없이 돌아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몇몇 이들이 말하는 대로 사교도들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악한 존재에게 자신을 빼앗긴 자들은 인신공양, 난교, 희생자 고문, 그밖에 입에 담지 못할 짓들을 마구 저지른다. 정신이 이미 나갔기에 그 흔적들을 숨기지도 않는다.
토벌대가 통로에 진입한 지 5분이 지났다. 지금이면 뼈, 시체, 피 중 뭐라도 하나 보여야 정상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선임사제들 머리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조용한 통로 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그때, 통신을 담당한 전사단원이 외쳤다.
“통신 상태 불량!”
“왔구나! 곧 습격이 올 거다!”
“모두 방어 준비!”
일사불란하게 전투 준비를 마친 토벌대. 모두가 무기를 뽑아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앞에 있는 사제들과 전사들이 만들어 낸 빛이 어둠을 걷어냈다.
지상처럼 환한 통로의 저편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 존재는 빛을 거두라는 듯, 토벌대를 향해 입을 활짝 벌렸다.
그리고 놈의 입에서 녹색의 빔이 튀어나와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전 대원 실드 활성화!”
“사제단이여!”
전방에 선 전사단원들이 전부 실드를 활성화했고, 사제들은 강력한 반사 기술인 ‘리플렉션’을 펼쳤다.
통로 내부에 겹겹이 쌓인 무형의 장벽과 충돌한 열선이 반사되었다. 쪼개진 녹색 빔은 주인에게 되돌아가거나 주변 벽에 튀었다.
그리고 빔에 맞은 통로 벽과 천장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산성 효과가 있군.”
“중화액을 가진 자들은 뿌릴 준비하라!”
“헬멧에 부착된 생명 유지 장치도 착용하라!”
사교도 중에 독이나 강산을 무기로 쓰는 자들이 있기에 이에 대한 대비는 이미 마친 상태. 토벌대원들은 헬멧과 연결된 방독마스크를 재빨리 착용했다.
그러는 동안, 놈이 뿜어낸 강산은 그들이 있는 곳 위의 천장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어찌나 독한지 위에서 햇빛이 구멍 사이로 비출 정도였다.
하지만 선임사제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적을 파악했다.
“산성액을 쏘는 중에는 움직이지 못하는군.”
“반사된 산성액을 맞아도 멀쩡해.”
“갑각이 단단한 건지 다른 이유인지 확인하는 게 좋겠어.”
“전원 사격 개시!”
토벌대원들이 각자 든 무기의 탄환을 적에게 쏟아부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폭음이 울리고 통로의 천장이 허물어졌다.
무너진 천장에는 건물 잔해들도 뒤섞여 있었다. 지하에서 흔들림이 발생하면서 위에 있던 버려진 건물들 일부가 무너진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놈은 맞고만 있었다. 자기 공격이 모조리 반사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은 천장이 무너질 때까지 산성액을 쏟아내기만 했다.
몇 분간 움직이지 않고 있던 놈은 공격을 멈추고 통로 안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맙소사. 엄청나게 단단하군.”
“지금 무기로는 부족해. 화력을 올려야 해.”
“통신 상태는 어떻지?”
“정상화됐습니다.”
통신병의 말에 선임사제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강산을 뿜으며 통신을 차단하는 개체라. 저런 놈은 처음 보는군.”
“…새로운 하이브리드라니. 큰일이군.”
“해당 내용을 위에 보고하고 지원 요청하도록.”
“우리는 어떻게 하지? 이후부터는 함선에 맡길까?”
“전파 교란 능력을 갖춘 개체라면 함선으로 추적하는 것도 어려울지 몰라. 혹시 모르니 놈을 계속 추적한다.”
선임사제들의 결정에 따라 토벌대가 다시 놈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놈과는 금방 조우할 수 있었다. 좁게 파인 통로에서 놈이 이번에도 몸은 숨긴 채 머리만 모습을 드러냈다.
“독성 곰팡이다!”
“사제단은 에어 임팩트를 준비! 공중에서 곰팡이가 퍼지지 않도록 하라!”
아까와 달리 놈이 토해낸 것은 산성액이 아니라 악성 진균 덩어리였다. 놈은 목을 꿀렁꿀렁 움직이면서 역겨운 투사체를 그들에게 발사했다.
“아, 아파…아파…!”
“으, 으으으….”
“살균제 살포! 조금만 참아!”
곰팡이가 닿은 부분은 급속도로 부패했다. 운이 좋은 몇몇은 응급처치로 생존했으나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다.
갑자기 바뀐 공격 탓일까. 이번에는 희생자가 나왔다. 놈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몇 분간 공격을 계속하다가 도망쳤다.
놈이 사라지자 통신이 재활성화된 것도 동일했다. 다만 이번에는 사상자가 나왔기에 아까보다 더 긴 시간을 통로 위에서 보내야만 했다.
다른 대원들이 사상자를 돕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 선임사제들은 두 번째로 조우한 적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방금 놈을 봤는가?”
“봤지. 놈의 머리가 달라.”
“그래. 눈도 없었고, 뿔 생김새도 달랐지. 산성액을 쏠 때랑 머리 형태가 달라졌어.”
“변신 능력을 갖춘 건가?”
“모르겠군. 일단 보고하는 게 좋겠어.”
현재까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놈의 크기, 통신을 교란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두 가지 종류 이상의 공격 수단을 갖췄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확인한 정보를 위에 보고한 뒤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조우했을 때는 두 번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었다.
센터 지하에 있던 공동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넓은 공간. 그곳에서 놈이 기습한 것이다.
이번 공격은 악성 진균 투사체도, 산성액을 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단순한 공격이었다.
놈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토벌대원들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처음 조우했을 때 확인했던 대로 놈의 갑각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단단했다. 충돌한 대원들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토벌대는 어떻게든 반격하려 했으나 놈을 발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놈이 마치 흙벽에 동화된 것처럼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사단원 열 명을 차례대로 살점 덩어리로 만든 놈은 통로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빌어먹을…. 너무 빨라서 제대로 못 봤는데 누구 본 자 있는가?”
“내가 봤는데 뭔가 이상하더군. 크기가 줄어들었어.”
“크기가?”
“그래. 40m는커녕 10m도 안 될 것 같더군.”
“어떻게 된 거지? 설마 다른 생물이 이곳에 있는 건가?”
“일단 지원 요청은 끝냈네. 부대가 오면 함께 움직이게나”
아직 180명가량의 대원들이 남아 있지만, 그들은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놈의 정체가 예측 불가능한 이상,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지원부대가 오기 전.
네 번째 습격이 조용히 일어났다.
공동에서 대기 중인 그들을 향해 목소리가 들렸다. 지나쳐 왔던 통로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부상자들을 먼저 밖으로 옮길 테니까 이쪽으로 오라고.
처음에는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지원부대 중 일부가 도착한 것이라 여긴 대원들은 다친 동료를 부축해서 목소리를 따라갔다.
만약 선임사제가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통신병이 통신으로 이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꼼짝없이 함정에 빠졌을 거다.
왜냐하면 거기에 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로 중간에 쌓인 건물 잔해, 그곳에서 놈이 목과 머리만 내놓은 채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이번에도 머리의 형태는 달랐다. 외형 자체는 처음 봤을 때와 비슷했으나 색이 분홍색이었기에.
목소리를 흉내 내던 놈은 다친 대원들을 모두 으깨버린 뒤, 잔해 속으로 숨어 버렸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진짜 지원부대와 함께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몇십cm에 불과한 작은 구멍 몇 개를 찾아내긴 했으나 그 안에 저 커다란 짐승이 숨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들은 부상자들만 잃은 채,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목소리를 흉내 낸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뭐가 됐든 확실해진 것 같군.”
“맞아. 놈은 머리를 바꿀 때마다 능력이 바뀌는 것이 분명해.”
“도대체 여왕은 무슨 괴물을 만든 거지?”
“아니, 이제 아웃스페이서가 맞는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정말로 사교단과 관련된 것일지도 몰라.”
“‘가면극’을 말하는 거라면 아마 아닐 걸세. 그랬다간 이미 대형 참사가 났을 테니.”
이 자리에 지원부대까지 합쳐서 총 250명의 대원들이 있었지만 선임사제들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실체가 불분명한 적이 이 지하 어딘가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불안감이 그들을 옥죄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도착한 통신은 그 불안감에 쐐기를 박았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네들이 상대하는 생물의 외형이 ‘세 머리의 악마’와 유사하다는 조언가의 의견이 나왔네.」
“저희도 놈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놈에게 변신 능력도 있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여기에는 도대체 어떻게 온 거….”
「해당 부분은 조언가가 예언자회와 신전수호단에서 연락해 조사 중이다. 조사 결과는 바로 알, 치직, 후퇴, 치지직」
“통신이 불안정합니다!”
“…….”
놈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얻었지만 기뻐하는 자들은 없었다.
악마의 다섯 번째 습격이 토벌대에게 닥쳐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