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11화 (312/400)

Episode 311 - 괴수 사냥(2)

‘잘 풀리고 있어.’

조금 전의 기습은 꽤 성공적이었다.

지휘를 맡은 계시의 눈 사제단원 중 하나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공동에서 전열을 준비하던 놈들은 몰랐던 것 같지만, 그들 발아래에는 비밀 통로가 하나 더 있다. 움직임이 느린 26호가 이용하는 작은 샛길이다.

목소리 흉내로 적들에게 혼란을 준 녀석이 통로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린 후, 놈들을 공격했다.

내 부름을 받은 인면충들이 오랜만에 전투에 나섰다. 그동안 내가 싸웠던 적들 중 상당수가 인면충들의 마비 음파에 면역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보 습득용 말고는 활약할 기회가 적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소리를 이용한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적들은 음파에 맞고 무력화되었다. 심지어 사제단원들조차도 말이다.

그들은 다급히 사이킥 기술로 마비를 해제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은 상황. 그들 중 하나가 중앙의 머리가 쏜 산성 브레스에 맞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목표를 달성한 직후, 나는 인면충을 회수하고 도망쳤다.

삽시간에 동료 하나를 잃은 사제단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함을 지르는 것 말고 없었다. 분노와 별개로 이 지하에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후퇴한 나는 머리 세 개를 바닥에 갖다 댔다. 턱 아래에 달린 보조기관들이 지하에 깔린 통로들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수집했다.

머리가 세 개다 보니 보조기관의 성능도 3배 이상 향상되었다. 덕분에 둥지를 짓지 않아도 적들의 움직임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었다.

‘전열을 정비하네.’

공동에 있던 적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센터 쪽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다섯 번의 기습동안 얻은 정보가 있을 터. 그에 맞춰 대비하는 거다.

‘그래. 잘하고 있어.’

놈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내가 의도한 것이라는 것을 알까?

이번 싸움에서 내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시간을 버는 것.

‘물의 요새’로 잠입하려면 ‘영리한 약자’로 변신해야 하는데, 쿨타임이 끝나지 않았다. 최소 2일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기생충이 발각된 이후, 나는 적들과 장기간 교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지하에 뚫린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굴도 준비의 일환이다.

일반 행성이었다면 제국모함을 쓰는 것으로 끝났겠으나 이곳은 베르잔02. 머리 위 지상에는 여러 도시들이 있다. 나를 잡으려면 결국 지하 통로에 들어와야 한다.

또한 이곳이 컬트의 행성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놈들은 지하에서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사교단을 상대하는 계시의 눈 사제단을 제외한 나머지는 지하에서 싸워 본 적이 거의 없을 거다. 사제단도 땅 속보다는 땅 위에 있을 때 훨씬 잘 싸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오래 끌 수 있도록 복잡한 구조의 전장을 마련했다. 놈들이 포위망을 구축하기 전 나와 26호가 부지런히 만들었다.

개미굴처럼 퍼져 있는 미로에는 내가 다닐 수 있는 통로 말고도 아드하이나 몸을 줄인 26호가 돌아다닐 수 있는 굴도 잔뜩 깔려 있다. 내가 특정 지점으로 적들을 유도하면 애들이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솔직히 말해 여기서 당장 적을 전멸시키기 어렵지 않다. 내 특성을 이식받은 26호와 아드하이 둘이서도 가능한 일이다. 아니면 전에 했던 것처럼 둥지 위에다가 ‘심연의 색채’를 뿌려도 되고.

그러지 않고 이런 수고를 기울이는 이유는 두 번째 목표와 관련이 있다.

‘진짜 적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

게임에서 에이모프 플레이의 핵심은 보유한 특성들에 있다. 엄청난 수의 특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적에게 예측불가의 공격을 가하는 것. 그것이 에이모프의 기본적인 전략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무슨 특성을 지녔는지 상대가 안다면 그 효과가 반감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이 내가 가진 특성의 약점을 캐치하고 그에 대비해 오면 그만이니까.

그러니 에이모프는 자기가 보유한 특성을 숨기는 한편, 매번 새로운 특성 활용법을 고민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특성을 지녀도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얘기를 다시 돌리자면, 당장 나와 대면하고 있는 저 컬트 무리는 엄밀히 말해 내 적이 아니다. 나의 ‘진정한 적’이 보낸 정찰대라 봐도 무방하다.

저 위 어딘가에 숨어 있을 컬트 랭커는 부지런히 분석 중일 거다. 내 진화 단계가 어느 단계인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등등 꼼꼼히 따져보고 있겠지.

그걸 알면서도 특성을 숨기지 않고 틈틈이 노출시킨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무기들을 숨기고, 그릇된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현시점에서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크게 두 가지. 나를 돕는 애들과 초월 시스템으로 얻은 특성들이다.

이 중 첫 번째는 게임에서 나를 알던 자라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요소다.

지금껏 만난 그 누구도 나와 함께하는 녀석들이 자유의지를 지닌 채 나를 따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마지막으로 싸웠던 신시아도 26호를 펫으로만 여겼다.

하늘의 어머니도 내가 다른 생물과 같이 다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정도였으니까.

베르잔02에서 나와 맞서고 있는 의문의 랭커도 마찬가지다. 그는 내게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해도 내게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스스로 랭커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는 것은 알지 못하리라.

그리고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나는 ‘내가 몸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특성’을 지닌 걸로 연출했다.

그 예로 나 대신 적을 습격한 26호와 아드하이는 내가 보유했던 특성들을 사용했다.

먼저 아드하이. 녀석은 새로 이식받은 특수방어 관련 융합 특성인 ‘보호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보호색의 효과는 한 자리에 몇 초간 머무르면 주변의 환경을 모방해서 몸을 숨기는 것. 몸집이 작고 움직임이 날랜 아드하이한테 유용한 특성이다.

물론 보호색만으로는 탐지 시스템을 피할 수 없지만, 그건 26호가 보조하면 될 일이니 큰 문제가 아니다. 비밀 통로 속에 숨어 있는 26호가 사이킥 파워로 탐지 장비를 무효화시키면 그때 아드하이가 나섰다.

녀석은 늘 하던대로 ‘레드아머’를 사용해 몸을 보호한 뒤, 가속해서 적들을 들이받는 식으로 싸웠다. 절대 부서지지 않는 갤러곤 투사체 앞에서 적은 무력하기만 했다.

그 다음은 26호다. 녀석은 ‘변이 촉수’와 ‘흉내 촉수’를 써서 부상자들을 정리했다.

게임에서 ‘의태 기관’은 나의 아이덴티티 같은 특성이었다. 목소리와 외형을 흉내 내서 적을 유인하고 죽이는 것은 내가 자주 하던 짓이었다.

보호색과 흉내 내기 모두 내가 자주 써먹던 특성이라는 것을 랭커라면 모를 리 없다. 필시 내가 한 짓이라 여길 터.

아마 적은 내가 ‘몸 크기를 조정하는 특성’, 혹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특성’을 얻었다고 생각할 거다.

‘비슷한 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적들이 상상하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착각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놈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 확률도 올라간다.

‘이미 지금도 그렇지.’

적 랭커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내가 나와 싸웠다면 적어도 두 번째 습격을 받았을 때쯤 제국모함을 썼을 거다. 하지만 적은 그러지 않고 계속 지하로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내 스펙이 어떤지 더 알아보겠다는 판단에서 내린 선택일지 모르나, 중요한 것은 놈이 날 얕잡아보고 있다는 거다.

놈이 보기에 나는 끊임없이 특성을 노출하고, 도망치는 것을 반복하는 상태다. 둥지를 안 깐 것은 덤이고. 그렇다고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럴 의도였으면 지하에 들어온 200여명의 컬트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겠는가.

에이모프와 싸워 본 랭커라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 거다.

바로 내가 이 행성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싸울 준비가 덜 됐다는 것.

아무리 내가 악명 높은 상대라고 해도 이 상태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 중이겠지.’

적이 나를 우습게 봐준다면 나야 고맙다. 나는 놈들과 싸우려고 이 행성에 온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적이 나를 취약한 상태로 여기기를 바라며 나는 바닥에서 머리를 들었다.

놈들은 아직 재정비하느라 바쁘다. 보아하니 짧아도 한 시간 이상 걸릴 것 같다.

그동안 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이것까지 성공한다면 제법 긴 시간을 벌 수 있다.

나는 넓게 트인 통로 내부를 향해 다시 움직였다.

-

열심히 통신기에 대고 연락을 교환하는 알샤스를 보며 네른은 악몽을 떠올렸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세 머리의 악마….’

성지 사이길08에서 제국모함과 모함전단(母艦戰團)을 궤멸시킨 희대의 악마.

그 괴물이 토벌대가 기록한 영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이 달라졌지만 확실히 놈이다.’

제국모함의 카메라로 찍었던 당시 목격했던 머리 형태와 지금의 외형은 상당히 달랐다. 그때보다 지금 뿔의 개수가 더 늘어났다. 게다가 크기 또한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런 놈이 머리만 내밀고 몸을 숨기고 있었지만, 네른은 금방 알아차렸다. 놈의 정체가 그의 원수라는 사실을.

네른은 알샤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이 자리, 아니 이 행성에서 직접 괴물을 목격한 유일한 인물의 말이었기에 그녀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지식관리자들이 놈과 관련된 기록과 토벌대의 기록을 대조해 본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지식관리자들은 놈이 사이길08 참사를 일으킨 악마와 동일한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지하에 있는 상대가 세 머리의 악마라는 사실에 지휘관들은 난리가 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크기도 줄어들었고, 모함전단 전체를 불태운 강력한 브레스도 없었다.

만약 적이 이전에 목격했을 때와 동일한 스펙이었다면 지하에 들어간 이들은 이미 죽고도 남았다.

알샤스는 그 사실을 지적해서 지휘관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는 한편, 괴물전문가인 신전수호단과 완전 무장한 계시의 눈 사제단 파견, 다른 행성에 주둔하는 제국모함 소환을 요청했다.

제국에서 부유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행성에 궤도폭격을 가할 수는 없었기에 제국모함 소환은 기각되었지만, 다른 의견들은 모두 수용되었다.

현재 지원 요청을 받은 신전수호단의 최정예병력들이 베르잔02로 오는 중이다. 계시의 눈 사제단에서도 부단장 같은 뛰어난 무력을 지닌 사제들을 지하로 파견했다. 이미 완전 무장한 사제들이 영광의 거리로 향했으니 곧 토벌대에 합류하게 될 거다.

조언자의 위치를 잘 활용하는 알샤스를 보며 네른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아주 작은 불안감을 느꼈다.

저 악마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나 그렇다고 정말 쉽게 당할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놈은 다섯 번의 기습 동안 총 네 번 머리를 보여줬다. 그중 세 번은 네른이 목격한 괴물의 모습과 유사했다. 산성 브레스를 갈기던 머리는 중앙의 머리, 살점을 부식시키는 살덩어리를 쏘는 머리는 양쪽에 달린 머리와 닮았었다.

그러나 컬트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분홍색 머리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외형은 분명 중앙의 머리와 똑같이 생겼는데, 이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다른 생물처럼 말이다.

만약 놈이 하나가 아니라면? 놈에게 조력자, 혹은 다른 괴물 부하들이 있다면?

현재 토벌대든 알샤스든 오로지 세 머리의 악마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전략을 짜고 있다. 그런데 놈이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니, 어차피 상관없겠지.’

이곳은 베르잔02. 제국의 핵심 행성 중 하나인 여기서 놈이 살아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고 해도 시간만 더 끄는 것에 그칠 뿐이다. 놈은 여기서 죽는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그가 직접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것.

마음과 같아서는 그도 저 토벌대에 합류하고 싶지만, 알샤스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그가 아끼는 후배는 그가 안전한 곳에서 원수의 죽음을 지켜보길 원했으니.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곱씹고 있는 그때.

손목에 찬 단말기 패드 위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시지를 본 그의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뭣?’

메시지를 보낸 자는 시현 유진을 섬기는 집사, 민석 유진이었다.

그의 주인과 라일라 쳄벌린이 토벌대가 보낸 영상을 보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시현이 그의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맞다. 그녀에게 복수의 대상, 세 머리의 악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놈의 모습도 그가 설명했던 것과 많이 다르기도 했고.

그런데도 저렇게 즉각 움직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마?’

그건 놈에 대해 잘 아는 자들만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네른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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