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14화 (315/400)

Episode 314 - 유물(1)

스페이스 서바이벌을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에이모프, 아웃스페이서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대부분 비슷한 답변이 나온다.

둘 다 유명한 외계생물을 모티브로 해서 탄생했다는 것.

닮은 건 외형만이 아니다. 실제로 두 종족을 플레이해 보면 원본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감염시킨 생물의 유전자 베이스에 따라 개체의 모습이 달라진다거나 더 많은 유전자들을 얻기 위해 거대한 군체를 운영한다거나 등등.

질문 대상을 살짝 바꿔보자. 게임을 오래 즐긴 플레이어들에게 묻는다면?

그때는 이런 답변이 나올 거다.

두 종족은 ‘유전자 정수’를 자원으로 사용한다고.

에이모프와 아웃스페이서가 다른 생물을 포식하는 것은 그 생물의 육신에 담긴 유전자 정수를 빼앗기 위함이다. 유전자의 주인이 지닌 특징을 ‘특성화’해서 자신, 혹은 군체를 진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에이모프와 아웃스페이서 플레이어가 가장 곤란함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두 번 말할 것도 없이, 플레이의 핵심인 ‘특성’ 자체에 문제가 생길 때다.

소유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특성을 얻었을 때, 죽어서 특성을 잃어버렸을 때, 어떠한 이유로 핵심 특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을 때,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힘들어진다.

그러니 두 종족과 싸우는 플레이어라면 상대가 특성을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특성을 발동시키는 부위를 물리적으로 제거, 특성 효과를 무효화시키는 장비나 기술을 사용 등등.

하지만 그중 상대가 보유한 특성 자체를 비활성화시킨다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는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나라고 해도 랭커가 되기 쉽지 않았을 거다.

‘그나마 비슷한 효과를 지닌 특성이 있긴 하지만….’

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시현이 사용했던 것은 기술, 특성이 아니라 무기였다.

‘두 명 다 미끼였을 줄이야.’

시현 본인이 미끼 역할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유인하면 특이한 강화복을 입은 자가 나를 저격하는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반만 맞았다. 둘은 숨겨진 무기가 들키지 않도록 나를 속였다.

오로지 그 무기 하나만을 믿고 내게 덤빈 거다.

‘…한 방 먹었어.’

솔직히 말해 방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싸움에 집중하기 보다는 시현의 정체, 계획 같은 것에 신경을 썼으니 말이다.

목숨을 건 전투 중 잡생각을 한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전투용 팔은 여전히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집중하자.’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나, 이후에는 조심해야 한다.

시현이 이 자리에 없다고 해서 전투가 끝난 게 아니다. 나는 그녀가 무기를 사용하던 상황을 돌이켜봤다.

내가 그녀의 동료에 신경 쓰는 동안, 시현은 바닥에 숨겨 둔 무기를 꺼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기의 재료들을 손에 쥐었다.

‘크리스털 비슷하게 생긴 물건,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화기 조합이었어.’

그녀는 두 가지 도구를 하나로 조립했다. 완성된 후에는 크리스털이 빛을 내며 회전했다.

그러자 무기로부터 빛무리 형태의 파장이 발사되었다. 사방이 꽉 막힌 지하 통로에 서 있던 나는 파장을 고스란히 맞았다.

‘아니야. 넓은 공간이었다고 해도 피하지 못했을 거야.’

무기가 생성한 파장은 내가 인식한 순간, 이미 내 몸에 닿았다. 사실상 회피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 후 텍스트박스의 경고대로 내 몸에 있던 ‘기생 군체’ 특성은 비활성화되었다. 본래 기생충은 전투용 팔에서 생성되었다. 내 팔이 망가진 것은 기생 군체 특성이 막힌 탓이리라.

내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시현은 추가 공격을 가하는 대신, 쓰러진 동료를 데리고 물러났다.

좀 전의 상황은 이걸로 정리됐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뭘까?

‘마지막에 시현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가장 큰 의문점이라면 그 부분이다.

그녀가 또 한 번 무기를 사용했다면 나는 바로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을 거다. 그녀도 내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그 무기 사용에 뭔가 제약이 있다는 것.

무기를 사용한 후 그녀가 말했다.

아웃스페이서가 아니었냐고.

‘텍스트박스의 내용도 비슷해.’

정확히 아웃스페이서의 유전자 정수가 파괴되었다고 나왔으니까.

기생 군체는 아웃스페이서 일벌레를 포식해서 얻은 특성으로 만든 융합 특성. 현재 내 몸 안에 있는 유일한 아웃스페이서 관련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녀의 무기는 대상을 지정해 타격하는 유형. 그래서 사용자가 지정한대로 아웃스페이서만 골라 죽이는 파장을 쏜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생긴다. 왜 아웃스페이서의 유전자를 파괴했는지 말이다.

‘그게 아니야.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야.’

내가 기생 군체를 즐겨 쓰는 것은 맞으나 그녀가 이를 알고 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보다는 ‘내 정체가 아웃스페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용자가 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전제 조건이야.’

게임이었다면 내 종족명을 입력하는 걸로 저 무기가 작동하겠지만, 여기는 현실. 그런 식으로 작동할 리 없다.

‘아마 유전자 정보를 토대로 파장을 만드는 형식이겠지.’

추측컨대 무기에 타 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입력해야 그 생물을 죽일 수 있는 파장을 쏠 수 있는 것 아닐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그게 가장 그럴싸해 보인다.

다만 여기까지 정리해 봐도 그녀가 ‘왜 나를 공격하지 않았는가’는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메탈릭 그렘린이나 다른 생물로 지정하고 쏴도 내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건가?’

내가 봤을 때 시현 유진은 동료를 챙기느라 나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릴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런 인간이었다면 애초에 자신과 동료를 미끼로 사용하지 않았을 터.

내가 모르는 무언가의 제약으로 인해 무기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 번 사용하면 쿨타임이 생길 수도 있고, 사용할 때마다 에너지 소비가 너무 커서 난사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그 부분이 약점이야.’

만약 에너지 소비량이 큰 거라면 그녀가 무기를 연달아 사용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녀 입장에서 보면, 나를 죽이지 못한 시점부터 복불복이 된 거나 다름없다. 나를 확정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잔여 에너지를 낭비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그녀는 그걸로 끝이다.

‘정황을 봐서는 그녀의 계획은 반만 성공했어.’

확신하는데 그녀의 무기에는 내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지 않다. 설령 들어 있다고 해도 그녀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모른다.

애초에 나를 아웃스페이서로 여겼으니 이런 상황이 닥칠 줄은 몰랐겠지. 그 탓에 그녀는 내게 한 방 먹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죽이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 탓에 나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거고.

‘그럼 여기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지하에는 나를 죽이는데 혈안이 된 컬트들이 널려있다. 보조기관으로 살펴본 결과, 이곳으로 오는 컬트들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행운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선택해야 한다.

‘그녀를 뒤쫓을지, 아니면 이대로 물러날지.’

사실 몸 상태도 완벽하지 않은 채로 그녀를 뒤쫓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녀를 쫓다가 다른 컬트들을 조우하면 큰 낭패다.

컬트들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 뒤에서 지휘하는 자, 이 행성에 존재하는 랭커가 내 상태를 안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도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그녀가 들고 있는 무기 때문이다.

그녀의 무기를 누가 만들었는지, 그 무기를 어디서 구했는지, 그밖에 여러 의문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녀가 혹시라도 에이모프의 유전자 데이터를 구한 뒤 나와 대면한다면?

그렇게 되면 내가 정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정리해야 해.’

제일 좋은 것은 그녀를 잡아먹는 거다. 그녀를 인면수로 만들면 무기의 정보까지 빼먹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녀를 죽이는데 실패한다고 쳐도, 하다못해 무기 자체는 파괴해야 한다. 그녀가 든 무기는 내 생존에 심각한 위협 요소다.

무조건 이 지하에서 정리하고 가야 한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데.’

가진 카드를 노출한 이상, 그녀도 내가 무엇부터 노릴지 모르지 않을 터. 어떻게든 나와의 대면을 피하려 들 거다.

‘시간을 끌면 컬트들이 나를 발견할 거야.’

시현이 베르잔02의 컬트들과 어떤 관계인지는 불명이다. 그녀가 동료와 함께 둘이서만 움직이는 걸 보면 딱히 우호적인 관계 같지는 않다.

그러나 컬트 입장에서 보면, 시현은 단순한 불청객이다. 나만큼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이 나와 시현 중 어느 쪽의 편을 들지는 명확하다.

나와 그녀 간의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가 지게 될 확률도 올라간다.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끝내야 한다.

시현을 뒤쫓아 가기로 결심한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 통제에서 벗어난 전투용 팔이 덜렁거리며 바닥 쪽으로 흘러내렸다.

기생 군체에 제한이 걸리면서 팔의 기능에 큰 손상이 간 것 같다. ‘가변형 생체병기’을 사용해 팔을 바꿔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팔을 잃었지만 괜찮아.’

내게는 날개 팔과 다리, 그리고 촉수들이 남아 있다. 나는 등에 달린 침식 촉수를 밖으로 빼서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했다.

‘죽이는데 실패해도 그 무기만은 처리해야 해.’

특정 유전자만 파괴하는 파장을 발사하는 무기가 양산형일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제작할 수 있다고 쳐도 슈퍼무기니 유일급 장비만큼 높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겠지.

‘부수거나 아니면….’

여건이 된다면 그녀의 무기를 포식하고 싶다.

새 목표를 설정한 나는 적이 남긴 흔적을 쫓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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