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18 - 외전: 괴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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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우주에서 살아가는 약탈자, 스페이스독.
고아, 탈주 노예, 전쟁 범죄자, 용병 등으로 구성된 이 해적 집단에게는 가족도, 재산도, 거주지도 없다. 그저 그날 약탈한 재화로 하루하루를 먹고 살뿐이다.
그러나 일부 무리는 ‘미래’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해적들은 약탈을 통해 쌓아 올린 재화를 활용,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그들이 택한 길은 메가콥, 스타유니언, 컬트 제국, 세 열강이 만든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었다.
열강들의 세력권이 고착화된 현시점, 영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노예나 희귀 생물을 잡아 오는 해적의 존재는 가려운 등을 긁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합법과 불법 경계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가 스페이스독의 새 무대였다.
가령 약탈한 배로부터 생포한 포로들을 노예나 실험용 모르모트로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활동 역시 카르텔의 돈줄 중 하나였다.
인신매매를 주 사업으로 삼는 해적 중 가장 악명이 높은 집단은 바로 둘.
휴머니티 카르텔과 사투아 카르텔이다.
이들은 단순히 약탈, 납치에 그치지 않고, 아예 행성 하나를 점거해서 원주민들을 모조리 팔아넘겼다. 둘 다 컬트 제국의 비호를 받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 중 누가 더 사악하고 무서운 존재인가 하면 사투아 카르텔이다. 휴머니티는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카르텔이라서 상대적으로 악명이 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면, 사투아 카르텔은 40년이 넘게 활동한 유서 깊은 카르텔이다. 세력도 우주 변방의 군벌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거대하다. 보유한 배도, 인원도 다른 카르텔을 압도한다.
게다가 그들은 같은 해적 동료들도 인신매매 대상으로 삼았다. 그 탓에 스페이스독 카르텔 사이에서도 사투아는 극히 혐오스러운 집단으로 취급받았다.
물론 사투아와 힘을 겨룰 수 있을 만한 카르텔은 별로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대형 카르텔들은 이미 사투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 스페이스독 중 하나인 사투아 카르텔.
열강의 비호를 받고, 대형 카르텔의 도움을 받는 그들을 위협할 존재는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사투아의 본거지가 있는 행성에 ‘그것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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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젠장, 젠장, 젠장!’
진흙탕 속에 몸을 숨긴 사투아 카르텔의 부두목은 끊임없이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 재난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그도 모른다.
노예시장에 방문하려고 오던 배들과 연락이 안 되던 것, 숲속 캠프들로부터 연락이 끊겼던 것, 통신 복구를 위해 떠났던 동료들의 귀환이 늦어진 것, 갑자기 퍼진 정체불명의 전염병. 이 중 뭐가 원인일까?
아니, 어쩌면 전부 원인일지도.
어차피 그건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긴 역사를 지닌 사투아 카르텔이 끝장났다는 사실이다.
“그기기기기긱!”
“으아아아악!”
“끄아갸가가각!”
멀리서 들리는 비명, 알 수 없는 존재의 포효, 그리고 총 소리가 혼란스럽게 뒤섞여 머리 위를 맴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들을 리 없는 소리들. 그건 카르텔의 메인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의 동료들이 수수께끼의 존재들에게 무참히 살육당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부두목은 지금까지 수많은 약탈과 범죄를 자행했다. 희생자들이 울부짖는 소리는 지겹도록 들었다.
그러나 스스로 잘못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그와 그의 부하들, 동료들은 그 법칙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그가 이 사태를 일으킨 원흉을 원망하는 동안, 멀리서 들려오던 소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
주변이 조용해진 지 한참이 지나고, 그는 진흙탕 속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도망칠 당시만 해도 햇빛이 들던 숲이 지금은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통, 통 하고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부두목은 저격에 나설 때처럼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통, 통. 짐승이 지저귀는 소리에 날갯짓 소리가 섞인다. 귀로 파고드는 소리를 무시한 그는 열심히 바닥을 기었다. 숲 안쪽에 전투기가 하나 있다. 그걸 타고 이곳부터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통, 통. 작게 들리던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여서 그럴까? 유독 저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어떤 좆 같은 새끼가….’
속으로 쌍욕을 하던 그는 문득 저 소리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숲에 서식하는 동물이라서? 아니다. 그는 저 소리를 최근에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캠프가 잿더미가 되기 직전에 들렸다.
퉁, 퉁.
그렇게 생각한 순간, 소리가 가까워졌다. 부두목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과의 거리는 10m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그는 단숨에 전투기가 있는 곳까지 달리려고 했다.
“!”
발목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과 함께 몸이 확 앞으로 쏠린다. 일어나자마자 다시 앞으로 넘어진 그는 발목을 내려다 봤다.
“히, 히익?!”
수풀 사이에서 튀어나온 분홍색 촉수가 그의 다리를 단단히 얽어매고 있었다. 그리고 촉수의 주인이 퉁, 퉁 하고 몸을 튕기며 그의 앞에 나타났다.
“자, 잠…!”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분홍색 공처럼 생긴 ‘그것’이 크게 부풀더니 그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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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잡으려던 거」「작은어른」「뺏었어」
「아니야! 내가 먼저 노렸어!」
「나」「못생긴 난쟁이」「도망치는 거」「봤어」
「어디로 갔는지는 몰랐잖아. 난 알았는데. 그래서 내가 먼저 잡은 거야!」
26호의 지적이 맞았다.
아드하이는 중간에 다른 도주자에게 시선을 돌리는 바람에 못생긴 난쟁이를 놓치고 말았다. 반면에 작은어른, 26호는 처음 정한 목표물을 계속 추적했다.
덕분에 도망치던 해적 부두목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박살이 났다.
「어른」「양보」「중요해」「작은어른」「욕심쟁이」
「큰애기가 자기가 잡은 건 자기가 먹는 거라고 했어.」
「그건」「인정」
결국 큰애기 얘기까지 나오자 아드하이는 포기했다.
그녀가 사랑하는 수컷은 안전한 곳에서 잠에 빠졌다. 지금껏 여러 번 그랬듯이 몸을 성장시키기 위해 긴 수면에 들어간 거였다.
큰어른은 성장을 끝내고 난 뒤, 항상 먹이를 찾아다녔다. 아드하이가 이러는 것도 사랑하는 이가 굶주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는 26호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큰어른」「끝나면」「먹이」「선물하고 싶어」
「딴 먹이 잡으면 가져.」
「진짜?」
「이거 먹고 같이 찾으러 가자.」
「동의」
오랜만에 생각이 일치한 둘은 다른 도망자를 뒤쫓기로 했다. 26호는 자기가 사로잡은 먹이를 한입에 소화시키기 위해 촉수들을 뻗었다.
「어라?」
고기파편을 몸 안으로 쓸어 담던 중, 26호는 묘한 감촉을 느꼈다. 시체 속에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작은어른」「다 먹었으면」「가자」
「응.」
뭔지 모르겠지만 재밌어 보였기에 26호는 물건을 챙겼다.
그 후 숲에서 짧은 비명이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비명을 만든 장본인인 갤러곤과 씨 데몬은 밤이 돼서야 불타는 캠프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캠프 중앙에 시체들을 쌓아 두고 필요한 유전자와 생체 데이터를 채취하던 PS-111이 그들을 반겼다.
「이거」「어디 두면 돼?」
“저쪽 건물 안에 두시면 됩니다.”
「중간애기는 어디 갔어?」
“안쪽에서 ‘에이모프’를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물어볼 게 있어.」
「작은어른」「이상한 물건」「찾았어」
“이상한 물건?”
26호는 촉수로 감싸고 있던 물건을 꺼냈다. PS-111은 갈고리 손톱이 달린 다리를 뻗어 조심스럽게 물건을 받았다.
「뭔지 알아?」
“컬트식 패드형 단말기의 일종입니다. 다만 외형상 기존 모델과 다르게 생겼다는 점, 사이킥 파워의 잔재가 검출된다는 것을 보아 특별한 목표를 위해 개량된 모델로 확인됩니다.”
「그거」「모른다는 뜻?」
“저장된 정보와 다르다는 거지 모른다고는 한 적 없습니다.”
「다들 고생했어.」
「중간애기다!」
모두 26호가 가져온 물건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캠프 안쪽의 큰 창고에서 그리폰 수인이 밖으로 나왔다.
「응? 그건 뭐야?」
“메인 컨트롤러가 가져온 패드형 단말기입니다.”
「인간 혼내주고 가져온 거야.」
「작은어른」「못생긴 난쟁이」「사냥」「성공」「전리품」「챙겼어」
「못생긴 난쟁이라면 볼프 부두목을 말하는 거지? 놈한테 빼앗은 물건인가 보네. 잠깐 줘볼래?」
하늘의 어머니는 호박색 눈동자를 빛내며 단말기를 받았다. 그리고 그녀도 PS-111처럼 단말기의 외형에 살짝 당황했다.
「좀 특이하게 생겼네?」
“특수 목적을 위해 개량한 모델로 추측됩니다.”
「특수 목적이라.」
패드를 이리저리 꼼꼼히 살피던 그녀는 26호를 불렀다.
「잠깐 여기에 힘 좀 불어넣어 줘. 많이 넣지 말고 아주 약간만.」
「응. 해볼게」
하늘의 어머니가 들고 있는 패드에 26호의 촉수가 닿았다. 촉수 색깔이 살짝 보랏빛을 띈 순간, 패드가 활성화되었다.
「역시.」
작동하는 패드를 본 그리폰 볼프는 짤막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건 무엇입니까?”
「컬트 외의 종족에게 사이킥 파워 사용법을 가르치는 도구야. 비유하자면 초능력으로 읽는 점자책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습니까?”
「나도 설정…큼, 그 있다고 얘기만 들었지 진짜 있는 줄은 몰랐네.」
게임 속 얘기를 꺼낼 뻔한 하늘의 어머니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패드를 조작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반응했다. 갑자기 사이킥 파워가 자기 눈앞에 커다란 이미지들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뭐임?」「뭐임?」「이상해!」
“미량의 사이킥 파워가 제 감각 기관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게 뭐야? 뭐가 막막 느껴져! 신기하다!」
최고의 사이킥 파워 사용자인 26호와 아드하이는 가장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 둘보다 상대적으로 사이킥 능력이 떨어지는 하늘의 어머니와 PS-111은 몸을 살짝 떠는데 그쳤다.
「작동시키면 지금처럼 정해진 주제에 따라 사이킥 파워로 구현된 영상이 투사돼. 지금 이건…흠, 컬트식 동화 같네?」
그녀 말대로 초능력에 대한 잠재력을 가진 자라면 패드가 만든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사이킥 파워에 민감한 존재일수록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훨씬 세세한 부분까지 체감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 그들은 몰락한 해적 캠프 한 가운데가 아니라 호화롭게 꾸며진 궁전 내부에 있었다.
“저장된 정보와 대조해 보니 컬트 황제가 주로 사용하는 별궁의 내부 구조와 55% 일치합니다.”
「별궁?」
“해당 패드에 저장된 기록물은 ‘폭군을 시해한 해적대왕의 전설’인 것 같습니다. 제국 황제가 광기에 휩싸여 폭정을 휘두르자 용맹한 해적대왕과 영웅들이 황제를 단죄한 이야기입니다.”
「흐음, 그런 동화가 있었구나. 처음 듣는…으응?」
PS-111의 설명을 들으며 환상을 감상하던 하늘의 어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무리를 보고 멈칫했다.
새로 나타난 등장인물들은 인간, 볼프, 컬트, 사이보그, 그 외 온갖 종족들이 혼합된 집단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으나 문제는 그들의 성별과 복식이었다.
「이, 이게 뭐야?!」
「와! 새로운 인간들이다!」
「난쟁이」「종류」「많아」
“종족은 다양하나 성별이 전부 동일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도 알아!」
새로 모습을 드러낸 여성들의 복장은 전부 궁전이라는 배경과 거리가 한참 멀었다. 환락가 밑바닥에서 구르는 자들도 입지 않을 정도로 선정적인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 미친! 이거 야동이잖아!’
옷이라 부르기 민망한 것들을 걸친 여인들이 침상 위에 오르고 나서야 하늘의 어머니는 패드에 담긴 내용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건 폭군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일종의 성인물이었다. 초능력으로 구현된 가상 현실 성인물 말이다.
그녀의 고향에서도 성적 요소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었기에 모를 리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즐기던 가상현실 게임도 그것 때문에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와! 인간들이 촉수로 먹이를 교환하고 있어!」
「먹이?」「안 보여」
「저기 촉수로 몸에 집어넣고 있잖아. 저기로 먹이를 주는 거야!」
「저거」「촉수」「아닌데」
“저건 특수한 목적을 가진 신체부위로 확인됩니다. 하지만 저 부위를 저 부위에 갖다대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세 마리의 괴물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은 하늘의 어머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이킥 파워를 다루는 능력이 약한 그녀에게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영상에 그칠 뿐이지만, 저들에게는 아니다. 사이킥 생물인 갤러곤과 씨 데몬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래서 그녀는 즉시 패드를 꺼버렸다.
「뭐야? 갑자기 느낌이 없어졌어.」
「중간어른」「물건」「망가트렸어」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너희에게는 아직 일러.」
「?」「나」「무리」「우두머리」「충분히」「어른」
「나도 어른인데. 더 보고 싶어.」
무심코 어려서 안 된다고 말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26호와 아드하이가 반발하자 하늘의 어머니는 패드를 등 뒤로 숨겼다.
「어, 그게…어른이라도 보면 안 돼.」
「내 물건이야. 내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동의」「물건」「작은어른」「것」
“동의합니다. 생물학적으로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패드를 재활성화시킬 것을 요구합니다.”
「…….」
PS-111까지 가세하자 그녀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종족 자체가 다른 만큼 패드의 내용물을 안다고 해서 뭔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낮다. 그녀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녀 앞에 있는 생물들이 일반적인 야생동물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인간 이상의 지성을 지닌 이들은 이 패드가 어떤 지식을 제공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거다.
또한 이 ‘지식’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누구와 맺어지고 싶은지는 명확하다. 녀석들은 새로운 진화를 준비하는 에이모프와 한층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기를 원한다.
26호, 아드하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정하는 것은 에이모프다. 제3자인 그녀가 참견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예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녀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둘을 자식처럼 여겨서일까. 아니면 그녀도 모르는 또 다른 감정 때문일까.
‘뭐가 됐든 이런 왜곡된 영상은 좋지 않아!’
스스로도 이유를 명확히 댈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다수가 얽히는 하드코어 성인물’이 똑똑한 짐승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지 알 수 없으니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녀는 결국 만능 해답을 꺼냈다.
「어, 그, 큰애기도 싫어할 거야.」
「큰어른?」「왜?」
「왜? 재밌는데.」
「큰애기는 이런 거 안 좋아해. 그러니까 PS-111.」
그녀는 애들이 더 캐묻기 전에 PS-111에게 단말기를 넘겼다.
「이거 중요 데이터만 모두 빼고 나머지는 처분해. 에이모프가 뭘 찾아야 하는지 말했던 것은 기억하지?」
“해적들의 경매에 관한 정보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하늘의 어머니가 보기 드물게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바람에 패드에 관한 건은 묻혀 버렸다.
내용을 볼 때만 해도 꽤 흥미를 가졌던 아드하이는 곧 흥미를 잃었는지 먹이를 보관한 건물로 갔다. 하늘의 어머니도 그 자리에 계속 있기 민망했는지 어느새 자리를 비웠다.
에이모프와 하늘의 어머니에게 부탁을 받은 PS-111은 패드 내용물을 분석하는 작업을 실시했다. 패드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확인하려는데 26호가 다가왔다.
「친구야.」
“예.”
「그 안에 있는 거, 보고 싶어.」
“‘중간애기’는 ‘에이모프’가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에이모프의 원망을 받아도 좋습니까?”
「큰애기가 화나는 건 싫어! 내가 원하는 건 딴 거야.」
“다른 것?”
「응. 큰애기가 싫어하는 걸 내가 공부하면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26호의 파장에 PS-111은 멈칫했다.
「큰애기는 가장이니까 제일 세지만, 더 센 나쁜 애들이 나타나면 내가 도와줘야 해.」
“확실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해야 해. 큰애기가 싫어하는 것도.」
PS-111은 조리 있게 말하는 분홍색 해파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메인 컨트롤러의 의견 접수. 해당 단말기의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복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부탁을 들어드리겠다는 뜻입니다.”
「와! 고마워!」
“대신 내용물에 관해서는 저도 흥미가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재밌겠다!」
그건 하늘의 어머니가 기대하던 것과 많이 다른 결말이었지만, 그녀가 알 일은 없었다.
단, 그녀가 우려하는 결말 또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 행성에 올 때까지 26호의 꿈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동족과 가족들을 더 큰 행복과 번영으로 인도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가족의 범위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모두가 들어가 있다.
가족에게 행복을 나눠주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엇이라도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