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19화 (320/400)

     

   로베츠의 개인 저택은 요새의 외곽에 위치해 있다.

     

   중심지가 아닌 가장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녀가 가난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군사 요지의 지위가 퇴색되었다고 해도 요새 내부의 치안 수준은 매우 높다. 거리에는 전사들이 돌아다니고, 머리 위에는 커다란 군함들이 수시로 날아다니는 도시. 그런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 머저리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물의 요새는 오랫동안 부를 축적한 도시다 보니 거주자들이 상당히 부유한 편이다. 굳이 범죄에 손을 대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를 가도 안전이 보장되다 보니 로베츠처럼 일부러 외곽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시끄러운 중심지보다 한산한 분위기의 집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로베츠가 탄 비행선이 여러 집들을 지나 한 저택 위에서 멈췄다.

     

   저택 가운데에는 작은 크기의 인공 호수가 있고 이를 오각형 형태의 가옥이 둘러쌌다. 가옥과 호수 사이에는 다른 행성에서 가져온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비행선은 호수에 있는 발판에 착륙했다. 착륙한 순간, 호수의 표면이 크게 흔들렸다.

     

   “뭐야?”

     

   깜짝 놀란 로베츠는 비행선의 카메라를 확인했다. 착륙할 때 문제가 있었는지 렌즈에 물방울이 잔뜩 맺혀 있었다. 물이 튄 것 말고 다른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진짜.”

     

   투덜거리며 내린 그녀는 발판과 이어진 다리를 통해 식물들이 심어진 정원으로 건너갔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저택 내부의 센서와 카메라가 반응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나 목욕할 테니까 창고에서 적당한 와인 하나 꺼내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비행선 착륙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까 살펴보고.”

   「확인하겠습니다.」

     

   카메라 너머에 있을 노예에게 명령한 그녀는 욕실로 향했다.

     

   저택의 욕실은 수십 명의 인원도 수용 가능할 정도로 컸다. 그녀는 옷을 벗고 뜨거운 욕탕에 몸을 뉘었다.

     

   “후우우.”

     

   온수에서 올라오는 열기 덕분에 하얗고 연약한 피부를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몸의 긴장이 풀리자 자기도 모르게 노곤함이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좀 낫네.’

     

   저택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금세 마음이 풀렸다. 와인이 오기 전 잠깐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따뜻한 물에 맡겼다.

     

   그렇게 막 잠들기 직전.

     

   비비비비비

     

   시끄러운 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화들짝 놀란 로베츠가 몸을 일으키자 욕조의 물이 크게 흔들렸다.

     

   “…경보음?”

     

   여태껏 들은 적이 거의 없던 소리라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욕실 바깥에서 울리는 저 소리는 외부의 누군가가 침입했을 때 울리는 경보음이었다.

     

   그 말은 즉, 누군가가 허락 없이 그녀의 집에 들어왔다는 것.

     

   “밖에 무슨 일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욕실 내에 울려 퍼졌다. 그에 대한 답이라는 듯 밖에서 들리던 경보음이 뚝 끊겼다.

     

   “…….”

     

   다시 조용해졌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이 저택에는 경비를 담당하는 노예가 따로 없다. 대신 모든 장소에 그녀가 명령하면 노예들이 듣고 따를 수 있게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 그녀가 명령한 이상, 대답이 돌아와야 정상이었다. 말없이 경보음만 끄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어느새 잠이 확 달아난 그녀는 욕조 밖으로 나왔다. 젖은 몸을 닦지도 않고 단말기 패드부터 먼저 챙겼다.

     

   ‘신고부터 해야 해!’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른다. 그녀는 재빨리 요새의 전사단에게 신고하고 가운을 몸에 걸쳤다.

     

   5분 내로 전사단원들이 이곳에 올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 저택의 대피실에 숨어 있어야 한다.

     

   욕실 밖으로 나오니 환한 전등 빛이 그녀를 반겼다. 저택 내부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딱 한 가지 차이점을 빼고. 

   

   “다들 어디 간 거야?”

   

   저택 내에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침입자는 둘째치고, 노예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은 단순히 시원한 냉방 때문만은 아니리라.

     

   ‘빠, 빨리 대피실로 가야….’

     

   로베츠는 덜덜 떨며 걸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안락하게 느껴지던 집이 몹시도 낯설게 느껴졌다. 

   

   욕실이 있는 건물에서 나와 회랑에 진입한 그녀는 침입자가 들어온 흔적을 발견했다.

     

   “이, 이건?”

   

   고급 석재로 깐 바닥 위에 물에 젖은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그 크기, 그 형태를 보면 도무지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발자국 크기가 그녀의 머리보다 컸다.

     

   발자국이 향하는 방향은 회랑 밖, 그러니까 와인 저장고였다.

     

   “…젠장.”

     

   로베츠는 사이킥 파워로 채찍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물의 요새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이 일이 끝나면, 보유한 전투 노예들을 저택에 배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와인 저장고와 대피실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는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이 노예를 뒤쫓아 간 지금, 대피실로 빨리 도망쳐야 한다.

     

   그녀는 반쯤 알몸인 상태로 달렸다. 누군가가 쫓아오는 기색은 없었다.

     

   무사히 대피실에 도착한 그녀는 저택 내 설치된 감시카메라들부터 살폈다. 이곳에서는 관리실과 동일하게 저택 내부의 모든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컬트식 컴퓨터가 작동하면서 허공에 카메라가 찍은 이미지 영상들을 출력했다. 그녀는 눈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침입자들을 찾았다.

     

   ‘없어?’

     

   하지만 어디에서도 침입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짐승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예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그녀가 카메라를 돌려 보며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비비비비비비

     

   욕실에서 들렸던 경보음이다. 처음에는 작게 들리던 것이 점점 크게 들린다. 침입자가 이곳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다급히 경보음이 울리는 복도의 카메라를 확인했다.

     

   “어떻게 된 거야? 놈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복도는 텅텅 비어 있는데, 경비 시스템은 누군가 있다고 시끄럽게 외치는 상황.

     

   경보음이 울리는 원인을 찾기 위해 영상을 확인하던 그때,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비비비비비비비비비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이미지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

     

   처음에는 그냥 얼룩이나 문양이라 생각했다. 복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하학적 장식이라고.

     

   아니었다.

     

   그건 물에 젖은 자국이었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무언가가 발자국을 남기며 복도 위를 걷고 있던 것이었다.

     

   비비비 삑

     

   그리고 그 자국은 정확히 대피실의 문 앞에서 끊겼다.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경보음 소리가 끊기고 대신 다른 소리가 들렸다.

     

   뭔가 무거운 것이 끌릴 때 나는 소음.

     

   그건 두터운 합금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

     

     

   “크흠, 그럼 문제는 없는 겁니까?”

   “예. 경비 시스템이 구식이라 오작동한 것 같네요. 별것도 아닌데 고생시켜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저희가 따로 살펴보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괜찮을 것 같아요. 보다시피 제가 이런 상태라.”

     

   무장한 전사단원들은 내 몸을 곁눈질하다가 급히 얼굴을 돌렸다.

     

   “어, 커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희는 그럼 가 보겠습니다. 들어가 쉬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들은 어색한 얼굴로 인사하고 물러났다.

     

   “하필 목욕 중에 나오실 줄이야. 그냥 노예를 시키지.”

   “노예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던 거 아닐까? 보니까 딱 그런 분위기던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게.”

     

   닫힌 저택 문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는 금방 잦아들었다. 이윽고 밖에 세워진 소형 전투기가 이륙하고 저택을 떠났다.

     

   더 이상 외부인이 올 기색이 없었기에 나는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랐네.’

     

   처음 비행선에 붙어서 저택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알카디의 저택과 다르게 물의 요새에는 무장 경비원이 없었다. 도시 자체가 안전해서 그런지 소수의 노예만이 저택에 상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비행선이 착륙한 호수에 잠수하고 있던 나는 보조기관으로 저택 내부의 인원을 얼추 파악하고 행동에 나섰다.

     

   먼저 와인을 들고 가던 노예부터 시작해서 저택의 주인까지 빠르게 처리하려고 했다.

     

   ‘저 시끄러운 벨 소리만 아니었다면 필시 그랬겠지.’

     

   ‘영리한 약자’로 변신한 나는 ‘미지생물의 털가죽’ 효과 덕분에 각종 감지 시스템에 면역이다. 털에서 생성되는 파장이 각종 탐지 장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진동 감시 시스템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걸린 이유는 물 때문이었다.

     

   털가죽이 물에 젖으면서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인지, 탐지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거다.

   

   게다가 내 모습 자체는 카메라에 걸리지 않았으나 물에 젖은 발자국은 그대로 찍혔다. 눈썰미가 좋은 자라면 영상에 찍히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겠지.

     

   ‘생각지도 못한 약점이네.’

     

   미지생물의 털가죽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을 줄이야.

     

   ‘사막형 행성이지만 여긴 물의 요새. 주의해야겠어.’

     

   영리한 약자 상태에서는 물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머리에 새기며 대피실로 돌아갔다. 거기서 저택의 전(前) 주인이 남긴 패드형 단말기를 회수했다.

     

   ‘좋아. 이제 남은 건….’

     

   내가 잡아먹은 노예 상인, 로베츠에게 확인할 일이 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기생충을 이용했겠지만 현재 나는 ‘기생군체’ 특성을 봉인당한 상태다.

   

   그러니 지금은 기생충 대신 인면충을 쓸 차례다. 나는 기존에 있던 멤버와 교체해서 들어온 인면충을 불러냈다.

     

   컬트 여성의 얼굴을 가진 벌레가 내 등에 있는 둥지를 찢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몸이 크게 줄어든 영리한 약자 상태에서 불러내서 그런지 인면충의 크기도 많이 줄어들었다.

     

   대략 성인 남성의 팔정도 되는 길이로 줄어든 인면충이 날개를 푸다닥 털고 내 앞에 내려앉았다. 노예 상인은 자기 몸에 생긴 변화를 인지하고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상태였다.

     

   “네게 물을 것이 있다.”

     

   내 입에서 자신과 동일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육체의 모든 권한이 내게 귀속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다.

     

   “…말씀하십시오.”

     

   하수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뿐.

   

   

   -

     

     

   시현 유진은 자기가 예의 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색의 방.

     

   가운데 앉아 있는 자기 자신.

     

   곁에서 자신에게 뭔가를 속삭이는 얼굴 없는 자들.

     

   잠들 때마다 보던 반복되는 꿈은 이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이 꿈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을 ■■■.」

     

   의자에 앉은 ‘그녀’가 말한다. 늘 그렇듯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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