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물의 요새답게 노예들이 주로 다니는 구역이라 해도 식료품의 질은 딱히 떨어지지 않았다. 식용 선인장, 사막에 서식하는 짐승 고기 같은 행성 토산품부터 다른 행성에서 수입한 과일과 채소까지. 여러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챙겼다.
‘옛날 생각나네.’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 아버지는 장을 볼 때마다 나를 데리고 나가셨다.
요리하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었기에 식료품점에 들어가기 전, 항상 내게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그걸 곁눈으로 배운 나는 항상 늦게 집에 오는 어머니를 위해 어설프게 요리를 준비한 적도 있다.
‘그때는 즐거웠지.’
그리고 내가 사고가 난 이후,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모님의 사이는 극히 안 좋아졌고, 아버지와 같이 나가는 일은 병원에 가는 일 말고 없었다.
내 몸이 나은 뒤에도 아버지께서 가끔 요리해주셨지만, 전처럼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식료품에 대해서 잘 아네?」
문득 떠오른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하늘의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그런가?”
「응. 에이모프면 음식을 해먹을 일도 없을 텐데 의외인걸.」
“둘 다 먹을거리니까 알아두면 좋지.”
「…….」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의구심에 가득 찬 호박색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가볍게 흘려 넘기고 그녀가 맨 배낭에 고기 한 점을 집어넣었다.
“샌드랩터의 고기야.”
“감사.”
MPS-05가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하자 배낭이 작게 흔들렸다.
돌아다니며 노예들이 먹을 음식들을 구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됐다. 어제 이사벨과 만났던 골목길로 향했다.
골목에 도착하니 작은 키의 콜드블러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만난 시간에 와달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보다시피.”
나는 음식으로 가득 차서 빵빵하게 부푼 바구니를 쥔 손을 살짝 흔들었다.
「노예들에게 줄 음식을 사오느라 늦었어.」
“마음은 고맙지만….”
하늘의 어머니에게 뭐라 말하려던 이사벨은 갑자기 말을 멈췄다. 녀석의 눈이 하늘의 어머니가 맨 배낭에 꽂히더니 급격히 확대되었다.
「이사벨?」
녀석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배낭을 가리켰다. 부릅뜬 눈, 덜덜 떨리는 손가락. 마치 귀신을 목격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 그거, 드, 등에….”
「이거?」
하늘의 어머니는 눈빛으로 내게 지금 보여 줘도 괜찮은지 물었다.
‘이따가 보여 줄 생각이었는데 괜찮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안에서 여성의 얼굴에 거미의 다리와 비슷하게 생긴 금속 골격 다리를 단 존재가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해방. 편안.”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어서 일부러 가져 왔어. 이건 뮤턴트 스크리머의….」
“어, 언니…!”
「응?」
하늘의 어머니가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이사벨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그녀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사벨이 노린 것은 그녀도, 나도 아니었다. 녀석은 방금 배낭 밖으로 나온 MPS-05를 붙잡았다.
“아아--아아아--”
이사벨은 울고 있었다.
콜드블러드는 눈물을 흘릴 수 없지만, 녀석은 온몸으로 슬픔과 절규를 표현하고 있었다. 몸을 덮은 비늘은 하얗게 질렸고, 입에서는 인간이 낼 수 없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저러는 거지?’
이런저런 일을 다 겪어 본 나지만 지금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MPS-05보고 언니라고? 설마?」
처음에는 나처럼 당혹스러워하던 하늘의 어머니였지만, 반응을 보니 뭔가 깨달은 것 같았다.
“뭐 때문에 저러는 건지 알겠어?”
「…전에 클랜원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유명 랭커 중에 쌍둥이 자매가 있다고.」
“쌍둥이?”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떠오르는 게 있다.
전에 제이슨이 말했다. 자신은 22위를 놓치고 녀석의 동료만 잡았다고.
그리고 PS-111의 종족은 인간이 아니라 콜드블러드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콜드블러드의 ‘복제품’.
이사벨이 끌어안고 있는 존재는 그 클론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진 뮤턴트 스크리머의 하위 단말기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사벨은 PS-111의 원본과 긴밀한 관계야.’
“경고. 타 생물 물리적 공격 감지.”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MPS-05는 계속해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이사벨은 결코 놓지 않았다.
팔의 비늘이 하얗게 질린 것도 모르고 껴안고 있는 그 모습.
소중한 보물을 되찾은 어린아이 같았다.
비통에 찬 감정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이사벨.
애처롭게 오열하는 작은 콜드블러드를 보던 중 문득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PS-111의 원본이 콜드블러드인 것은 맞지만 외형만 보면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뇌의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 중 원본을 연상시킬 만한 요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MPS-05는 PS-111이 자신의 얼굴을 본떠서 만든 하위 단말기다. 녀석을 보고 원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투시 능력이 있어도 알아볼 수 없을 텐데.’
나도 PS-111을 봤었지만 녀석의 재료가 되는 콜드블러드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냥 녀석의 제조번호와 개체명만 뜰뿐 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탐지 기술을 지녔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미 정황이 있었다.
이사벨을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은 내가 에이모프 랭커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당시에는 딱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의태 기관’으로 몸을 숨기는 에이모프는 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다시 보니 이상하긴 하다.
사이킥 기술로 자신을 감춘 컬트, 변장한 인간 등등 여러 가능성이 있는데, 나를 딱 에이모프라 꼬집을 이유가 있을까. 모종의 수단으로 내가 에이모프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도움. 도움.”
MPS-05의 목소리가 나를 생각 속에서 일깨웠다.
이사벨에게 붙들려 있는 녀석이 버둥거린다. 녀석에게는 전투 관련 특성은 하나도 이식하지 않았다. 녀석이 금속 발톱으로 이사벨의 비늘을 긁었지만, 작은 스크래치를 내는 데 그쳤다.
“…….”
하지만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울부짖던 이사벨의 반응이 달라졌다. 하얗게 질린 비늘이 서서히 원래의 파란색으로 되찾았다. 심장과 근육의 움직임도 안정화되었다.
스스로를 진정시킨 이사벨은 MPS-05를 내려놓았다. 작은 스크리머는 금속 다리를 바삐 놀리며 내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덥수룩하게 덮인 털 속에 몸을 숨겼다.
“…그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작은 콜드블러드가 입을 열었다.
“언니의 원본은 어디 있지?”
“원본?”
“저건 언니를 복제해서 만든 기계잖아.”
녀석의 말을 들으니 확신이 생겼다.
이사벨은 투시 특성 같은 일반적인 탐지 기술보다 월등히 우월한 탐지 수단을 갖고 있다. 그 덕분에 MPS모델이 어떤 존재인지 감지해낸 것이리라.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그때 하늘의 어머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창고에 가서 얘기하자.」
그녀 말대로 여기는 긴 얘기를 나누기 적합하지 않다.
이사벨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바구니에 머물렀다. 잠시 후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는 어제 했던 것처럼 콜드블러드 노예들이 숨어 있는 창고로 이동했다.
창고 지하에 도착한 뒤, 기도하고 있던 노예들에게 식량을 건넸다.
“은혜를 베풀어 주신 구세주에게 감사드립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노예들이 녀석에게 절을 했다. 어제도 그랬지만 감사 인사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닐 텐데도 이사벨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우리는 노예들에게 음식을 건네주고 다시 창고 위로 올라왔다. 빠르게 뒷정리를 마친 이사벨이 나, 아니 내 털 속에 숨어 있는 MPS-05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말해줘.”
이사벨과 하늘의 어머니, 둘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어떻게 할까?’
PS-111이 녀석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점을 잘 이용한다면 녀석에게서 더 많은 정보를 빼낼 수 있을 거다. 녀석이 아는 랭커, 내가 모르는 이 세계에 관한 것까지 말이다.
또한 녀석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한다면 이후에도 도움이 된다. 정보를 읽는 능력을 갖춘 랭커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셈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저 능력을 내가 갖고 싶지만….’
이사벨의 능력이 특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녀석을 잡아먹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다. 물론 하늘의 어머니와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이 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보를 읽는 능력은 아주 매력적이다.
문제는 저게 특전이 아니라 특성이나 다른 능력에서 비롯된 것일 경우다. 이사벨의 능력이 내가 모르는 특성,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골치 아파진다.
‘사냥의 표상’을 쓴 상태에서 잡아먹는다면 특성을 거의 확정적으로 하나 얻겠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특성이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만약 녀석을 잡아먹었는데 엉뚱한 특성을 얻는다면 손해가 막심하다.
‘그럴 바에는 지금 당장은 우호적인 사이가 되는 것이 더 이득이야.’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한 뒤, 나는 이사벨에게 PS-111에 관한 것들을 설명했다.
녀석을 언제 만났는지, 녀석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녀석을 뮤턴트 스크리머로 만든 원흉이 누구인지 등등. 내가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서 이사벨에게 전달했다.
이사벨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긴 이야기가 끝나자 이사벨은 무심코 말했다.
“언니의 이름 옆에 이상한 코드번호가 따라붙었거든.”
「이상한 번호?」
“PS-111하고 MPS-05. 아무래도 여기서 P는 언니 이름의 앞 글자 같네.”
「그 말은 둘이 그 쌍둥이 랭커….」
“맞아. 22위인 나와 18위의 페넬로페 언니. 우리가 그 쌍둥이야.”
자기 정체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숨어 있던 MPS-05가 밖으로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저택에 있는 본체도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터.
“언니, 그러니까 PS-111도 듣고 있는 거지?”
“그래. 다른 장소에 있어.”
“그렇구나. 혹시 복제물이 아닌 진짜…진짜 언니가 어떻게 됐는지도 알아?”
나는 대답 대신 내 몸 안에 잠재된 누군가의 유전자를 끄집어냈다. 등에 있는 작은 고치가 뜯어지고 거기서 남성 컬트의 얼굴을 지닌 인면충이 기어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오랜만에 불러낸 제이슨의 인면충은 이전보다 훨씬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와 싸웠을 때의 호전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거…설마?”
“10위의 컬트 랭커 제이슨. 너를 쫓던 녀석 중 하나다.”
“하.”
이사벨은 헛웃음을 지었다. 물론 입으로만 웃음소리를 내고 눈은 전혀 안 그랬지만.
“그 빌어 처먹을 정도로 잘나신 제이슨님이 이런 꼴이라니.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네.”
「이사벨?」
잔잔한 톤으로 욕설을 내뱉은 이사벨.
원한이 어지간히 깊었는지 나에게도 멸칭으로만 부르던 녀석의 입에서 바로 욕이 나왔다. 하늘의 어머니도 이사벨의 격한 반응이 의외인지 당황한 눈치였다.
“이 새끼 말고 다른 놈들도 있었을 텐데?”
“제이슨 말고 죽은 놈은 신시아 하나뿐이야. 나머지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
“신시아를 죽였다고?”
“그래.”
내 말을 들은 녀석의 더듬이가 꿈틀거렸다. 제이슨의 죽음만큼이나 신시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럴 만하다. 둘 다 한 번씩 싸워 본 경험으로는 제이슨보다 신시아 쪽이 더 까다로운 상대였으니까.
‘뭐 엄밀히 따지면 내가 잡은 건 아니지만.’
26호와 아드하이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