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27화 (328/400)

     

   녀석은 작게 혼잣말하고, 내게 눈을 돌렸다. 내가 왜 제이슨을 불렀는지 짐작한 것처럼 보였다.

     

   이 자리에 인면충을 꺼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제이슨은 과거 다른 플레이어들을 사냥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이사벨의 동료과도 싸웠고.

     

   그때 사냥한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됐는지,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한다.

     

   “이사벨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예.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납니다.”

   “그녀의 동료를 어떻게 했지?”

   “죽여서 특전을 빼앗았습니다.”

     

   제이슨의 확언에 이사벨이 눈을 질끈 감았다. 녀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늘의 어머니가 이사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가 녀석을 위로하는 동안, 나는 제이슨의 인면충을 다시 회수했다.

     

   “결국 남은 건 언니의 그림자뿐이구나.”

     

   이사벨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녀석은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 그러고는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프박이가 이렇게까지 친절히 행동한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원하는 게 뭐야?”

     

   나는 하늘의 어머니에게 슬슬 시작하라고 곁눈질했다.

     

   「지하에 있는 콜드블러드를 운송하는 계획 말이야.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수정한다고?”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기생충을 늘리기 어렵거든.」

     

   기생충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이 부분은 숨기기로 했다. 미리 얘기한 대로 그녀는 진실을 약간 뒤틀어서 전달했다.

     

   「그래서 콜드블러드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해. 아니면 네가 같이 가든가.」

   “전에 말했듯이 그건 불가능….”

   「나는 네가 저들, 가족들을 끝까지 이끌어 줬으면 좋겠어.」

   “가족…?”

     

   그 말에 이사벨이 눈을 크게 떴다.

     

   「네가 뭘 위해 이곳에 남는지 몰라. 하지만 그게 가족과 함께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거야? 저들에게는 네가 필요해. 아니, 너한테도 저들이 필요해. 여기서의 삶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말이야.」

     

   그녀의 충고는 가족을 눈앞에서 잃은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사벨도 방금 원수로부터 친언니의 죽음을 들은 것 때문인지, 곧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더듬이가 흔들리고 시선이 헤매는 것을 보니 적잖게 고민 중인 것 같았다. 녀석이 갈등하는 중이라는 것을 아는 하늘의 어머니도 조용히 녀석의 선택을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녀석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서아 언니의 말대로 할게.”

     

   고민 끝에 녀석이 고른 선택지는 우리를 따르는 거였다.

     

   「정말로?」

   “응. 그런데 언니 의견대로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그건 상관없어. 이쪽도 준비해야 하니까.」

   “그리고 모프박이.”

   ‘응?’

     

   이사벨이 나를 불렀다.

     

   “언니의 복제물, PS-111도 이 행성에 있는 거지?”

   “그래.”

   “탈출하기 전에 만나볼 수 있을까?”

     

   이사벨의 요청에 나는 흔쾌히 답할 수 없었다. 내가 MPS-05만 챙겨 온 것은 PS-111이 거리를 돌아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이 만날 수 있게 하려면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녀석도 그걸 아는 것 같은데.’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을 보니 녀석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얼추 짐작한 것 같았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큰 것일 터.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녀석이 우리와 함께 하기로 정해진 이상, 요새에서 오래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어졌다. 미리 대여해 둔 창고를 써도 괜찮겠지.

     

   “특정 장소라면 가능할 것 같네.”

     

   나는 녀석에게 만날 수 있을지 장소를 알려 줬다. 내 입에서 익숙한 장소가 나오자 녀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라면 만날 수 있어.”

   “좋아. 내일 이 시간에 그곳에서 보도록 하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일이 잘 안 풀린다면 협박하는 것도 생각 중이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이사벨은 떠나기 직전에도 나와 하늘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없이 돌아간 어제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리도, 저 애도.」

   “그러게.”

     

   하늘의 어머니는 피폐해진 이사벨이 걱정되는지 중간마다 뒤를 돌아봤다.

     

   나는 배낭 속에 다시 들어간 MPS-05를 확인했다.

     

   “괜찮아?”

   “문제없음.”

     

   평소와 똑같은 반응이었지만, 나는 녀석이 이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있음을 직감했다. 언제나 자신의 원본이 되는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했던 녀석이다. 저택에 있는 본체는 이사벨과 어떤 대화를 할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나도 뭘 물어볼지 생각해 봐야겠네.’

     

   환상에 대한 것, 이 행성에 있는 컬트 랭커에 대한 것 등등.

     

   사실 베르잔02를 떠난 다음 물어봐도 되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틈틈이 물어봐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비행선을 타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

     

     

   「오늘은 딱히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예. ‘도구’가 복용하는 두통약이 있긴 하나 큰 변수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약이라. 뭐 그건 약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내버려 둬.」

   “그리고 그밖에 수면 중 뇌 활동의 증가와 적합도 수치의 증가와 영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래?」

   “예.”

   「흥미로운 정보로군. 이건 내가 ‘저쪽’에 전달해 두지.」

     

   늘 하던 대로 이사벨은 비석 너머의 존재에게 오늘 있었던 사항을 보고했다.

     

   「잘하고 있어. 계속 지켜보고 문제가 생기면 보고해.」

   “예.”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한 가지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응?」

     

   평소에는 보고만 하고 끝내는 그녀였으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오늘 낮, 그녀는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될 만한 말을 들었기에.

     

   그걸 들은 이상, 목숨이 위태롭다고 해도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저를 계획으로 인도해 주신 신시아님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분은 잘 계신지요?”

   「신시아? 그게 왜 궁금하지?」

     

   그걸 왜 묻느냐는 듯한 반응. 이사벨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분 덕분에 저는 이 세계에 중독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계획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다 그분 덕분입니다.”

   「흐음.」

   “중간에 위대한 계획의 수행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셨습니다만, 그래도 잘 지내시는지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질문 드렸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비석 앞에 엎드렸다.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떠 있던 비석에서 다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시아는 계획 수행을 위해 열심히 활동 중이야. 걱정할 것 없어.」

   “그렇습니까?”

   「암 그렇고말고. 너의 언니를 찾으려고 일부러 다른 곳으로 떠난 건데. 당연히 그래야지.」

   “…….”

   「너의 마음은 내가 그녀에게 전달해주지. 그럼.」

     

   그렇게 말한 상대는 바로 비석을 껐다. 비활성화된 비석이 그녀의 머리 앞에 툭 떨어졌다.

     

   비석이 꺼졌음에도 이사벨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 엎드려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 그녀는 평생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쪽은 그녀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언니, 페넬로페가 죽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태껏 그녀에게 거짓말을 해댄 것이다. 심지어 자기들의 동료가 죽었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걸로 그녀가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해졌다.

     

   저들이 말하는 ‘위대한 계획’을 박살내는 것으로.

   다음날 아침 나는 PS-111을 데리고 저택을 나섰다.

     

   오늘은 하늘의 어머니가 애들과 함께 남기로 했다.

     

   저택의 주인이 멀리 떠난 것으로 위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없는 것은 이상하다. 누군가가 직접 저택에 방문했을 때, 관리하는 노예가 얼굴을 비추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사실 집 자체가 외진 곳에 있어서 누가 올 가능성은 낫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저를 아는 자를 만날 수 있다니 기대됩니다.”

   “어제 봤는데?”

   “제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녀석은 갈고리 손톱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안구를 대체하는 붉은색 카메라 렌즈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런 상태였다. 몸의 대부분이 기계로 이루어졌음에도 속에 품은 기대감과 흥분이 여실히 드러났다.

     

   ‘원본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피라 일레븐의 배에서 뮤턴트 스크리머 제작 영상을 본 이후, PS-111은 자기 원본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스타유니언의 영역으로 간 적이 없기에 그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죽은 18위 랭커 페넬로페와 쌍둥이 자매인 이사벨이라면 녀석의 소원을 들어 줄 수 있으리라.

     

   나는 PS-111을 태운 채 비행선을 타고 창고들이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다.

     

   각각의 창고들이 하나의 블록이 되어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쌓인 창고 구역. 피라미드 하단에 차라스의 이름으로 빌린 대형 창고가 있다.

     

   창고 앞에 착륙한 뒤, 나 먼저 내렸다. 자동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창고에 차라스의 단말기 패드로 인증하자 차폐문이 즉각 열렸다.

     

   조종간을 잡고 있던 PS-111이 비행선과 함께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

     

   “여긴 카메라가 없어. 내려도 좋아.”

     

   내 말을 들은 생체기계가 여덟 개의 긴 다리를 움직이며 비행선 밖으로 기어 나왔다.

     

   “‘동생님’은 언제쯤 볼 수 있습니까?”

   “몇 시간 더 걸릴 거야.”

   “쌍둥이라 했으니 저와 유전적으로 동일할 겁니다.”

   “글쎄, 그럴지도.”

   “복제되지 않은 또 다른 ‘나’를 마주한다니. 인상적인 경험입니다.”

     

   사실 녀석의 생각대로 똑같을 가능성은 낮다. 이사벨과 페넬로페가 쌍둥이라는 건 현실 세계에서의 얘기니까.

     

   현재까지의 추세를 보면, 스페이스 서바이벌에 떨어진 플레이어들은 현실과 완전히 다른 육체를 지니고 태어났다. 몸만 바뀐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두 자매도 같은 종족이라는 점 말고는 그다지 공통점이 없을 거다. 애초에 이 세계에 건너 온 시기 자체도 많이 다를 거고.

     

   하지만 이걸 얘기하면 너무 복잡해지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슬슬 녀석이 올 시간이 됐다.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구나.’

     

   나는 창고 단말기를 조작해서 문을 열었다. 전신을 가리는 천옷을 입고 잿빛 가면까지 쓴 이사벨이 보인다. 카메라가 있는 곳이다 보니 몰래 들어오기 위해 변장을 한 거다.

     

   녀석은 내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고 빠른 걸음으로 PS-111에게 다가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PS-111입니다.”

   “…….”

     

   이사벨은 말없이 잿빛 가면을 벋고, 손을 뻗었다. PS-111은 녀석이 얼굴을 만지기 쉽도록 몸을 숙였다.

     

   얇고 여린 손이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PS-111의 얼굴에 닿았다.

     

   차가운 금속 피부에 닿자 이사벨이 손을 파르르 떨었다. 녀석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역시 언니야. 내가 기억하던 것과 거의 똑같아.”

     

   녀석은 가면을 내던지고 두 손으로 PS-111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저의 얼굴을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언니의 얼굴을 몇 년이나 봤는데 그걸 모를까.”

   “저는 콜드블러드입니다. 지금 제 얼굴은 원본의 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PS-111의 말에 이사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번 부서졌던 언니가 왜 이런 모습이 됐는지, 의문을 가진 적 없어?”

   “그건 제 몸을 구성하는 메인컨트롤러의 에너지와 에이모프가 제공한 유기물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모습이 됐겠어? 더 효율적인 모습을 취할 수도 있잖아.”

     

   몸의 80% 이상이 기계로 이루어진 PS-111은 늘 말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녀석도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이사벨이 지적하기 전까지는 별 의문을 갖지 않은 부분이었다.

     

   ‘지금의 PS-111’은 아이스 호러와 싸우다가 파괴된 이후, 26호의 사이킥 파워와 내가 제공한 유기물을 흡수해서 만들어진 존재다. 스타유니언에서 생산한 뮤턴트 스크리머와 비교해 보면, 외형상 차이가 굉장히 심하다.

     

   심지어 피라 일레븐이 설계한 뮤턴트 스크리머를 봐도 유전자를 아무렇게나 때려 박은 혼종에 가까웠지, 녀석처럼 정형화된 형태는 아니었다.

     

   ‘마치 무형의 틀이 있는 것 같았지.’

     

   특히 얼굴 부분은 더 그렇다. 녀석의 얼굴은 점점 인간 여성의 얼굴과 가까워지고 있다. 붉은색 눈, 창백한 크롬색 피부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얼굴과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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