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31화 (332/400)

     

   아무래도 키소스는 랭커가 아닌 것 같다.

     

   [즈즈즈 즈즈즈(여기는 아니야)]

   「그러면?」

   [즈즈 즈즈 즈즈즈 즈즈즈 즈즈즈(네가 말한 알샤스 쪽으로 가 보자)]

     

   다시 날아오르려는 순간, 위에서 수많은 생명체 반응이 감지됐다.

     

   고개를 든 내 눈에 작게 빛나는 알갱이들이 보였다.

     

   ‘이런.’

     

   저 작은 알갱이, 아니 생물체들이 뭔지 안다. 그리고 그 위에 무엇이 탑승했는지도.

     

   「하늘의 왕」「비슷해」

     

   내 옆에서 비행 중이던 아드하이가 사념파를 발산했다.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지.’

   「…저건 스타샤크. 스카이웨일의 하위종이야.」

   「하위종이 뭐야?」

   “스타샤크. 크기 최대 5m까지 성장하며 에너지를 흡수해 빠르게 이동 가능. 스카이웨일을 따라다니며 잔여 에너지를 먹는 것으로 추정됨.”

   「하늘의 왕」「부하」「위험해」

   「나쁜 파닥파닥!」

     

   컬트 제국에서 스타샤크를 길들이고 타는 군단은 오직 하나뿐이다.

     

   [즈즈즈즈 즈즈즈(계시의 눈 사제단)]

     

   화력은 데몰리셔보다 강하지만 매우 무거운 ‘슬레이어’, 마찬가지로 무겁지만 방어력이 뛰어난 ‘이단심문복’. 이 둘이 제 효과를 발휘하려면 뛰어난 기동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수단이 바로 놈들의 탑승물, 스카이웨일의 하위종인 ‘스타샤크’다.

     

   “사제들이여!”

     

   놈들의 선두에 선 자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기계 장치로 증폭된 사제의 외침이 물에 잠긴 도시 위에 쩌렁쩌렁 울린다.

     

   곧이어 우주 상어들을 탄 기병대가 강하를 개시했다.

   우주의 상어라는 별명을 지닌 스타샤크는 스카이웨일의 아종 중 하나다.

     

   다만 아종이라 해도, 에이펙스 생물로 분류되는 스카이웨일보다 훨씬 약하다.

     

   크기를 비교해 보면 스타샤크는 5m를 넘기지 못한다. 몸길이가 평균 수십m를 웃도는 스카이웨일과 천지 차이다. 마찬가지로 전투력도 매우 떨어진다. 만약 스타샤크가 에이펙스급 생물이었다면 병기로 길들이는 것이 불가능했을 거다.

     

   외형도 매우 차이가 난다. 스카이웨일은 6장의 날개, 8개의 눈을 지닌 고래처럼 생겼지만, 스타샤크는 아니다. 녀석들은 투명한 피부, 2장의 날개를 지닌 청새치를 닮았다.

     

   피부가 투명하다 보니 체내 기관이 훤히 보이는데, 뼈에 발광(發光) 물질까지 함유되어 있다. 그 덕분에 멀리서 보면 물고기 뼈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모든 면에서 다른 이 두 생물이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에너지를 먹이로 삼는다는 점이다.

     

   스타샤크는 일반 생물처럼 유기물을 먹어 양분을 얻지 않고, 여러 종류의 에너지를 흡입하며 살아간다.

     

   단, 놈들은 우주 고래처럼 포식한 에너지를 광자포로 전환하는 능력이 없다. 그 대신 먹은 에너지를 날개에 축적해서 몸을 빠르게 이동시키는데 활용한다. 덕분에 스카이웨일보다 훨씬 민첩하다.

     

   그리고 스타샤크에게는 우주 고래에게는 없는 중요한 장점이 하나 더 있다.

     

   놈들은 아웃스페이서나 메탈릭 그렘린처럼 ‘무리의식’을 지닌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리 전체가 우두머리의 통제에 따른다는 거다. 계시의 눈 사제단이 사나운 우주 상어를 길들인 것도 이 특징 덕분이다. 철저히 조련된 우두머리 개체를 통해 다수의 스타샤크를 수월히 지배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수백 마리에 달하는 유령 물고기들이 대열을 유지한 채 나를 덮쳐오고 있다.

     

   나는 강화된 ‘산성 진균샘’, 그러니까 산성 브레스를 준비했다. 세 갈래로 뻗어 나간 목 안쪽에서 걸쭉한 액체가 치밀어 올랐다. 그 느낌을 감히 막지 않고, 지상으로 강하하는 적들을 향해 토해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산성 열선 세 개가 허공을 갈랐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건물들도 열선에 맞아 두 동강이 났다.

     

   스타샤크들이 재빨리 간격을 넓혔다. 놈들은 능숙하게 열선과 쏟아지는 빌딩 파편들을 피했다.

     

   5m짜리 생체 전투기에 탄 사제단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질분해병기 ‘슬레이어’를 내게 겨눴다. 수백 개의 남색 에너지탄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나는 날개를 활짝 펼쳐 애들이 맞지 않도록 보호했다. 슬레이어의 광탄이 나와 부딪칠 때마다 갑각과 비늘이 뭉텅이로 사라졌다.

     

   공격을 반사할 수 있는 ‘복잡화 분광체’를 쓸까 했지만, 그건 랭커와 싸울 때를 위해 남겨둘 생각이다.

     

   나는 적들의 공격을 막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물질을 분해시켜버리는 슬레이어의 공격은 내게 적지 않은 피해를 안겨 줬지만, 상관없다. 이 정도 부상은 재생력 특성으로 커버할 수 있다.

     

   ‘어차피 그게 효과를 보려면 적당히 피해를 입어야 하니까.’

     

   한 차례 포격한 사제단들은 강가에서 먹이를 낚은 맹금류가 그러하듯, 내 머리 위를 넘어 하늘로 선회하려고 했다.

     

   그때에 맞춰 내 날개에 의해 보호받던 애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장 먼저 날아오른 아드하이가 사제단 사이를 파고들었다.

     

   「하늘의 왕」「비슷해」「죽어」

   “이런! 모두 피…!”

     

   녀석은 ‘레드아머’로 감싼 날개를 우주 상어들을 향해 휘둘렀다. 절대적인 방어력을 지닌 날개에 가속도까지 붙었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단두대나 다름없다. 스카이웨일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단단한 가죽을 지닌 스타샤크가 종이처럼 잘려 나갔다.

     

   앞서 나간 아드하이 뒤로 하늘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고도를 높이는 중인 적들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사자와 독수리가 혼합된 그리폰이 날개를 흔들 때마다 마노(瑪瑙)색 입자가 허공에 퍼졌다.

     

   “끄억?!”

   “꺽!”

     

   그녀가 신격화 상급에 오르면서 얻은 능력은 압력을 조작할 수 있는 입자를 뿌리는 것. 입자가 닿은 단원들의 몸이 구겨진 종이처럼 우그러졌다.

     

   조종사를 잃은 스타샤크들은 하늘의 어머니와 아드하이가 직접 처리했다.

     

   “사제단이여! 원거리 사격 진영으로 전환하라!”

     

   선두에 선 자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시간을 끌기 위한 일부만 빼고 나머지가 빠르게 우리의 공격 범위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리를 벌린 놈들의 뒤로 다른 군함들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초계함 사이로 전함 몇 척이 드문드문 보이는 걸 보니 가까운 곳에 있는 배는 죄다 여기로 온 것 같다.

     

   「나쁜 인간들!」

     

   내 뒷머리갑각 안쪽에 숨어 있던 26호도 새 적이 나타난 것을 인지했다. 녀석은 도시의 중심지에 가득 차 있는 물 위로 몸을 날렸다.

     

   녀석이 떨어지고 요동치는 수면이 작게 일렁였다.

     

   그리고 거대한 분홍색 촉수가 물살을 헤치며 튀어나왔다. 색깔만 빼고 문어 다리를 연상시키는 촉수들이 무너진 빌딩 잔해나 다른 건물들을 휘감았다.

     

   수많은 촉수들 가운데에는 중앙에 수십m에 이르는 몸체가 있었다. 그 모습은 심해에서 기어 올라온 바다괴수를 연상시켰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섞인 몸통 위에는 무수히 많은 눈들이 떠 있었다.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눈동자들이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적들을 바라본다. 거대해진 26호의 몸에 흐르는 사이킥 파워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씨 데몬 고유 기술인 ‘심해의 공포’가 물의 요새 한가운데서 펼쳐진다. 각 머리마다 달린 보조기관 덕분에 에너지의 집합체가 어떤 형태인지 선명히 보인다.

     

   “대량의 사이킥 파워가 응집되고 있습니다.”

   「…저거 설마 26호가 만든 거야?」

   「응」「작은어른」「전력」

     

   26호가 만든 사이킥 환상은 바이오 돔 끝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나’였다. 게다가 몸 전체에 수많은 눈동자가 달려 있어서 원본보다 훨씬 흉악해 보였다.

     

   심해의 공포는 다수의 적에게 공포스러운 환상을 보여줘서 미치게 만드는 특성이다. 내가 봐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적은 오죽할까. 사제단의 통제를 받는 스타샤크들이 겁에 질려 대열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도망치기만 하면 다행이다. 일부는 착란에 빠져 자신의 주인이나 다른 상어들을 공격했다. 질서정연하던 진영이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하지만 조종사들 중 이를 탓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 또한 적잖은 공포에 사로잡혔을 테니까. 만약 그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저 짐승들처럼 됐으리라.

     

   정신을 잃지 않은 자들은 미쳐 날뛰는 스타샤크들을 피해 후방으로 빠졌다. 그리고 전함들과 함께 사격을 준비했다.

   

   우주 상어에 탄 단원들은 나와 26호를 향해 슬레이어를 겨눴다. 전함과 초계함들 또한 주포의 끝을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짧은 준비 시간이 끝나자 크고 작은 무기들이 불을 뿜었다.

   

   남색과 보라색이 섞인 유성우가 하늘을 뒤덮는다. 나는 날개를 크게 펼친 채 26호 앞에 섰다.

   

   아름다운 만큼 치명적인 빛무리가 내 전신을 강타했다. 슬레이어의 에너지탄이 내 갑각을 먼지로 만들었고, 전함이 쏜 주포가 부서진 갑각 안쪽의 살과 근육을 갈기갈기 찢었다.

     

   「고통 경감 발동!」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재생력 특성에 의해 회복되는 속도 이상으로 내 몸이 부서지고 있다.

     

   「큰애기야!」

   [즈즈즈즈즈 즈즈즈(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현재 내게는 부상이 심해질수록 에너지 출력, 근력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아드하이의 무리가 거주하는 행성에서 사냥한 에이펙스 생물로부터 얻은 특성.

     

   ‘타이런트로이드.’

     

   그 과실이 무르익었다.

     

   사정없이 부서지면서 생긴 통증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흉부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심장이 가학적으로 펌프질하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사지가 다 뜯어지고 머리와 몸통만 남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내 하반신을 덮고 있는 물살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26호나 다른 요소 때문에 흔들리는 게 아니다. 몸의 생체 파이프를 통해 에너지가 새어 나간 탓에 물이 흔들리는 거다.

     

   강대한 힘을 머금은 머리들이 천천히 움직인다.

     

   사이킥 파워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지금 내 모습은 보라색 광휘에 감싸져 있는 것으로 보이리라.

     

   세 머리가 그 힘을 휘두른 순간, 하늘이 부서졌다.

     

     

   -

     

     

   어둑한 창고.

     

   바닥에 놓인 잡동사니에는 먼지가 살짝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1m 크기의 오벨리스크를 닮은 성간 통신기도 포함되었다.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창고처럼 보였지만, 한 가지 특이한 요소가 있었다.

     

   벽과 천장에 기괴한 형태의 문양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 문양 자체도 섬뜩했지만, 진정 기이한 것은 색깔이었다.

     

   때로는 보라색으로, 때로는 녹색으로, 때로는 황금색으로. 온갖 종류의 색깔이 뒤엉킨 채 빛나고 있었다.

     

   문양의 빛이 물결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수억에 달하는 개미떼가 이동하는 것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는 빛.

     

   그 끝에 있는 것은 한 자루의 곡도였다.

     

   빛이 칼날에 닿자, 창고가 어두워졌다. 문양이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창고에는 그저 기분 나쁘게 생긴 벽화만이 남았다.

     

   어둠 속에서 작은 키를 가진 콜드블러드, 이사벨이 몸을 일으켰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봤던 그녀는 바닥에 놓인 곡도를 손으로 쥐었다.

     

   “…준비는 끝났어.”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먼지가 약간 묻은 곡도에 불과했으나 그녀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계획한 의식은 성공이다. 이제 그녀는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이나 마찬가지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폭발한다.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양가적인 감정 때문에 복잡한 기분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지하실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 그건?”

     

   곡도를 허리춤에 찬 그녀는 서둘러 창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온 그녀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바이오 돔 내부 하늘을 날아다니는 군함들이었다. 군함이 향하는 방향은 물의 요새 중심부였다.

     

   그리고 저 수많은 배들의 목적지는 평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요새의 랜드마크인 인공폭포는 온데간데없었고, 폭포를 둘러싼 마천루들 역시 대부분 무너진 상태였다.

     

   “설마?”

     

   지하실에서 의식에 집중하는 사이 물의 요새가 전쟁터가 됐다.

     

   누가 이런 사태를 초래했는지는 아주 명확했다.

     

   ‘바보 같은! 그냥 떠나라니까!’

     

   의식이 마무리된 이상, 이 도시, 아니 이 행성은 파멸을 피할 수 없다.

     

   그 전에 미리 떠날 수 있도록 수를 써놨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일단 그것보다는 먼저….’

     

   이사벨이 있는 노예 구역은 전장터가 된 중심지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하지만 언제 이곳에 전쟁의 화마가 덮쳐올지 아무도 모른다. 숨겨둔 콜드블러드 노예들을 어떻게든 빨리 대피시켜야 한다.

     

   “어딜 가시게?”

     

   서둘러 움직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그녀는 몸을 흠칫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자가 뒤에 있다.

     

   “우리의 계약, 잊지 않았겠지.”

     

   매일 비석을 통해 연락하던 존재의 말에 그녀는 고민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여기서 그 카드를 썼다간 언니가 남긴 유산은 남김없이 증발하고 말 터.

     

   “…잊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사벨은 적절한 타이밍을 노리기로 했다.

     

   “좋아. 기억력이 좋아서 다행이군.”

   “…….”

   “따라와. 겁 없이 날뛰는 모프박이에게 적당한 훈계가 필요할 것 같으니.”

   “명령하신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녀는 순순히 상대의 말을 따랐다.

     

   상대는 지저분한 수작을 부리는데 도가 튼 작자다. 물의 요새가 전쟁터가 됐음에도 평온한 걸 보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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