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에서 침 같은 것들이 모여 아주 작은 크기의 덩어리를 형성했다. 작다고는 해도 성인 남자의 상체만한 크기지만.
조금씩 먹이기에는 시간이 없으므로 이사벨 위에 그대로 끼얹었다. 반쯤 액체화된 말랑말랑한 울트라 젤리가 녀석의 상처에 스며들었다.
‘…안 좋아.’
하지만 녀석의 상처는 호전되지 않았다. 울트라 젤리는 간신히 현상을 유지시키는데 그쳤다.
“‘동생님’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 5분 이내로 생명 활동이 정지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의 치료 활동을 지켜보던 PS-111이 말했다.
녀석 말대로다. 이사벨의 육신은 붕괴 직전이다. 그 무엇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
“어, 언니….”
쌍둥이 언니의 목소리를 들은 이사벨이 유일한 혈육을 불렀다. 나는 머리 위에 있던 PS-111을 집어 들어 녀석 곁에 내려놓았다.
“동생님.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미, 안. 나, 언니, 버린 거, 정, 말, 미안.”
“저는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습니다. 당신은 제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에이모프, 언니, 부탁해.”
그 말을 끝으로 이사벨은 정신을 잃었다.
‘그냥 이대로 먹을까?’
이대로 가면 정말 녀석을 잃고 만다. 녀석이 가진 지식, 특전 전부 사라진다. 여기서 이사벨을 먹지 않으면 손해가 더 크다.
‘문제는 단점도 만만치 않다는 거지.’
의식을 치르는 중인 콜드블러드를 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자칫 잘못하면 볼텍스원이 내 배를 찢고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사벨이 남긴 말만 들었을 때는 괜찮을 것 같지만, 100% 확신할 수는 없다. 녀석도 이런 일은 겪어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어떻게 해야…잠깐.’
죽어 가는 콜드블러드를 한입에 삼키려는 그때,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PS-111, 기가크래커에 의료 시설이 있지?”
“예. 하지만 그 시설로는 동생님의 육체를 잠식한 정체불명의 물질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몸을 새로 만들면?”
내 뜻을 이해한 PS-111이 붉은색 카메라렌즈를 깜빡였다.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
“성공 확률 10%로 추정됩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사벨은 죽어. 그리고 나는 녀석이 죽기 전 먹을 생각이야.”
내 솔직한 말을 들은 PS-111이 고개를 숙인다. 미동도 안 하고 가만히 있지만, 머리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 중이리라.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
“제가 원하는 것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적색의 렌즈가 빛을 머금은 상태로 반짝 빛난다.
“동생님을 생존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좋아.”
나는 곧바로 ‘별빛 좌표’를 사용해서 PS-111을 기가크래커로 보냈다.
별빛 좌표는 이동시키는 대상의 크기와 나의 크기에 비례해서 움직임을 제한시키는 페널티를 준다. 전과 같았으면 PS-111을 이동시키고 몇십 분 동안 꼼짝도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뼈 야수’ 상태이다 보니 내 몸이 3배 이상 커졌기 때문이다.
1분이 지나고 몸이 다시 움직였다. 나는 즉시 이사벨에게도 별빛 좌표를 사용했다.
‘PS-111이라면 성공할 거야.’
녀석은 성공 확률을 낮게 잡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기 몸을 수복하고 개량한 데다가, 미니 스크리머도 여러 마리 만들어 본 뮤턴트 스크리머가 몇이나 될까. 녀석의 창조주를 제외하고 녀석만큼이나 스크리머에 대해 잘 아는 자는 없을 거다.
그러니 필시 성공할 거다.
‘이사벨은 녀석에게 맡기고, 이제 남은 건….’
나는 하늘 위를 올려다 봤다.
소환 도중에 콜드블러드를 잃은 방황하던 볼텍스원. 뭉쳐 있던 검은 액체가 이제는 안개 형태가 되어 어마어마한 크기로 넓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이미 뼈 야수 상태인 나보다 훨씬 컸다.
‘누구를 소환한 걸까?’
몇 가지 짐작 가는 적이 있긴 하나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이사벨에 신경을 쓰는 사이, 불완전한 소환 의식은 거의 마무리됐다.
넓게 퍼진 검은 안개에서 무언가가 요동친다. 안개 속에 있는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서서히 밖으로 기어 나온다.
‘온다.’
안개에서 튀어나온 것은 검은 고리였다. 아주 거대한 검은 고리.
고리의 몸통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팔들이 달려 있었다. 고리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을 띠는 팔들은 하나 같이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종교화(宗敎畵)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헤일로를 연상시켰다. 다만 원래는 완벽힌 고리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 이곳에 나타난 놈은 몸통 중 절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고뇌의 고리.’
우주의 악마라 불리는 볼텍스원.
그들 중 하나가 불완전한 상태로 베르잔02에 강림했다.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NPC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단일 개체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레이드 보스로 등장하는 초강력 에이펙스 생물들을 꼽는다. 모든 갤러곤을 규합한 레드 갤러곤, 아웃스페이서에게 사이킥 파워를 빼앗은 볼텍스원, 바다형 행성에 서식하는 씨 데몬, 거대 가스 행성에 거주하는 아케인 오르카 등등.
이들은 플레이어가 공략하기 어려운 환경에 개체의 스펙까지 더해져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종은 무엇인가.
이 질문의 경우, 답이 하나로 통일되는 편이다.
우주의 악마, 심연의 거주자 등 여러 별명을 가진 존재.
볼텍스원.
다만 설정상 다른 우주에서 건너온 볼텍스원은 하나의 종족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외형, 힘, 습성 등이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육체가 ‘심연의 힘’이라는 정체불명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존재는 볼텍스원 밖에 없으므로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일 뿐이다.
볼텍스원으로 분류되는 존재들은 하나 같이 에이펙스 최상위권의 강함을 보여 준다. 가장 약한 개체만 해도 블랙 갤러곤을 아득히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개체마다 주의해야 할 점이 천차만별이라 모르고 덤비면 십중팔구 큰 낭패를 보게 된다.
나도 전에 볼텍스원과 싸우다가 여러 번 패배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 성체가 되고 유일 특성 다수를 지니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위험한 존재 중 하나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토막이 났음에도 ‘뼈 야수’ 상태인 나보다 덩치가 1.5배 가량 거대한 검은 고리. 방금 나타난 ‘고뇌의 고리’는 움직이지 않고 하늘에 떠 있었다.
‘…가면극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이사벨의 소환 의식을 보고 난 뒤, 내가 예상한 볼텍스원 후보는 둘.
이 중 더 위험한 존재는 ‘가면극’이라 불리는 놈이다.
놈은 정신 지배에 특화된 볼텍스원이라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내가 가진 유일 특성 ‘대혼란의 전령’을 행성 단위로 거는 놈이니까.
고뇌의 고리는 가면극에 비하면 약한 편이다. 거기다가 불완전하게 소환되었으므로 원래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터.
‘그렇다고 마냥 쉬운 것은 아니야.’
고뇌의 고리를 상대할 때는 크게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고리 표면에 붙어 있는 수많은 팔들, 그리고 고리 자체.
무수히 많은 저 팔들 하나하나가 놈의 무기다. 저 팔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놈의 공격이나 움직임이 바뀐다.
그다음 조심해야 할 부분은 고리인데, 지금은 다행히 부서져서 반만 남은 상태라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원래는 저 고리로 에너지포를 쐈는데.’
놈은 고리를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에너지를 모아 발사할 수 있다.
그 위력은 행성 하나를 가볍게 쪼개버릴 정도로 위력적이다. 레드아머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방어 능력을 무효화시키므로 굉장히 위협적이다. 그래서 게임에서 놈을 잡을 때는 무조건 고리가 회전하기 전에 잡아야 했다.
‘여기서는 시간제한이 없어서 다행….’
그때, 하늘에 가만히 떠 있던 고뇌의 고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애기야, 큰애기야. 저기 봐봐.」
[즈즈즈(조심해)]
나와 26호는 곧 쏟아질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나 놈의 움직임은 내 예상과 달랐다. 고리 표면의 팔들이 깍지를 낀 채 아래로 뻗는 자세를 취했다.
‘뭐지?’
고리의 팔들이 취한 저 자세는 매우 빠르게 이동해야 할 때 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내 생각대로 고리 전체의 고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그에 따라 거대한 비행체의 크기가 빠르게 줄어든다.
‘어디 가는 거지?’
당연히 나부터 공격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이동 자세를 취한 후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목표는 이 지상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대기권 밖, 그러니까 행성 밖의 우주에 있는 존재를 노리는 거다.
‘행성 밖에 뭐가 있다고…잠깐.’
순간 아까 봤던 광경이 떠오른다.
소환 의식을 치르는 이사벨과 그걸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던 알샤스. 그걸 보고 놈이 명령한 소환이 아니라고는 짐작했다. 지금의 나도 상대하기 벅찬 볼텍스원을 알샤스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내가 잘못 판단한 것 같다.
알샤스는 이사벨이 돌발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게 아니었다.
‘이사벨은 자기 목숨을 바치는 대신 알샤스를 죽여 달라고 한 거야.’
그렇다면 왜 굳이 위험한 괴물을 끌어들였는가?
‘알샤스의 특전 때문이겠지.’
놈은 자신과 동일한 복제물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고기도 먹어 봤지만, 다른 컬트들과 차이가 거의 없었다. 즉, 초월적인 수준의 감각을 갖고 있는 에이모프라 해도 놈이 복제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볼텍스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생긴 것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놈들의 인지 능력은 일반적인 물리법칙을 초월한다. 목표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정확히 인지한다. 아무리 좋은 은폐 기술을 사용하든, 완벽히 보호받는 밀폐 시설에 몸을 숨기든 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아마 이사벨이 노린 것도 이 부분일 거다. 볼텍스원이라면 복제물에 현혹되지 않고 원본을 쫓아갈 테니.
‘바로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놈은 이미 멀리 떠나서 보이지 않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알샤스가 고뇌의 고리한테 죽도록 내버려 두면 복제물을 만드는 특전을 날리는 셈이 된다. 솔직히 굉장히 탐나는 특전이라 어떻게든 내가 손에 넣고 싶다.
‘게다가 정보도 있지.’
이사벨을 두고 도박을 한 이상, 나도 보험을 마련해야 한다. 이 세계에서 꽤 오래 산 것처럼 보이는 알샤스라면 유용한 정보원이 될 거다.
그러니 볼텍스원보다 더 먼저 놈을 잡아먹어야 한다.
‘놈을 따라가면 원본이 어디 있는지 금방 찾을 테니 그건 문제가 안 돼.’
진짜 문제는 알샤스를 죽였을 때, 아니면 놈이 알샤스를 죽이려는 것을 방해했을 때다. 우주의 악마는 자신을 방해한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여기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게임이었다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불완전하게 소환된 탓에 놈이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이 봉인됐다. 불의의 일격에 맞고 죽을 가능성은 낮다. 놈을 잡을 생각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쪽은 어떻지?’
게임 기준으로 따지면 나는 아직 볼텍스원을 공략할 준비가 덜 됐다. 부패곰팡이나 산성 브레스는 놈을 전혀 손상시킬 수 없고, ‘메두사 기관’으로도 놈에게 치명타를 가하기 어렵다.
육탄전도 쉽지 않은 게 고뇌의 고리는 근접전 실력도 뛰어나다. 고리에 달린 팔들은 결코 장식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중요한 변수가 있다.
초월 시스템으로 만든 유일 특성들.
‘우주괴물’ 타입에 속하는 특성들은 게임에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다. 이 특성들을 쓴다면 싸움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다른 애들도 있지.’
게임에서는 볼텍스원 공략 준비, 사냥 모두 나 혼자 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다. 씨 데몬 26호, 레드 갤러곤 아드하이, 그리고 랭커 출신 하늘의 어머니까지.
내가 가진 힘을 전부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좋아.’
[즈즈 즈즈즈즈(놈을 잡을 거야)]
「커다란 붕붕 위험해.」
[즈즈즈즈즈 즈즈 즈즈즈즈(위험한 만큼 맛도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