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39화 (340/400)

   「진짜?」

   [즈 즈즈즈 즈 즈즈즈즈즈(그래. 먹으면 더 강해질 거고)]

   「큰애기랑 맛있는 거 먹으면 좋아! 더 강해지는 것도 좋아!」

     

   등 위의 26호가 촉수를 꺼내 파이팅을 외치듯 흔든다.

   

   ‘진짜로 그럴 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씨 데몬이 볼텍스원을 잡아 먹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녀석의 고뇌의 고리의 육신을 먹고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자세한 건 나중에 알아보고.’

     

   나는 날개를 활짝 펴서 모래 위에 몸을 띄웠다.

     

   고뇌의 고리를 따라가기 전, 먼저 저 물의 요새에 있는 애들부터 데리고 와야겠다.

     

     

   -

     

     

   베르잔02의 방어자를 지휘하는 함장 알샤스.

     

   그녀에게는 남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의 그녀는 타고난 연기자였다.

     

   게다가 그녀의 미모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열에 아홉은 그녀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의 외모였다.

     

   외모와 연기력.

     

   그녀는 이 두 가지 재능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세상일이 편해진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다.

     

   돈이 많은 남자 앞에서는 외모를,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할 자 앞에서는 연기를.

     

   타인을 등쳐먹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그녀는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 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유명한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동료들에게 신뢰받는 사원이었고, 결혼할 예정인 약혼자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그 성공의 이면에는 그녀에게 속아 넘어간 수많은 인간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름답고 사교적인 그녀의 매력에 넘어가 단물을 쪽쪽 빨아 먹히다가 버려졌다. 희생자 중에는 친구, 연인, 고객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료도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연기자인 그녀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숨겼다. 매혹적인 꽃 아래 역겨운 오물이 들끓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없었다.

     

   아무튼 그녀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결혼식 하루 전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 세계는 그녀가 살던 곳과 완전히 달랐다.

     

   컬트 종족은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미인이 많다. 그녀보다 훨씬 아름다운 컬트가 곳곳에 널려 있다.

     

   연기력 또한 빛을 보지 못했다. 뿔의 생김새에 따라 계급과 직업이 정해지는 계급제 사회에서 그녀가 올라갈 수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군인인 탓에 수시로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은 덤이고.

     

   알샤스의 눈에 비치는 스페이스 서바이벌의 세계는 지옥이었다.

     

   이 세계에서 수십 년 가까이 살았지만, 성공하고 싶다는 갈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엄청난 공을 세워도 뿔 때문에 겨우 제국모함 함장이 끝이었다.

     

   알샤스가 귀환을 목표로 하는 자들과 뜻을 같이 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이루어지지 않던 열망도 해소될 테니까.

     

   그리고 이제 귀환파의 대계가 완성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녀의 꿈도 곧 성취되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젠장! 젠장! 젠장!”

     

   작은 비행선을 조종하는 알샤스는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여태껏 이렇게 큰 위기를 겪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웃스페이서의 침공 때문에 죽을 뻔했던 것보다 더 심한 위기였다.

     

   그때는 네른 함장 같이 그녀를 도와줄 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기에.

     

   복제물이 소멸한 직후, 그녀는 즉시 감시청의 상황실을 나왔다.

     

   이사벨은 콕 집어서 그녀를 죽여 달라고 볼텍스원에게 요청했다. 정예함대나 아웃스페이서 군단이 남아 있으면 모를까, 지금 감시청에 있는 병력만으로 놈을 잡기는 어렵다.

     

   ‘남은 제국모함만으로는 힘들어!’

     

   제국모함의 화력은 컬트의 모든 함선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문제가 있다. 한 번 화력을 쏟아 부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

     

   코스믹 볼트는 섬세한 기관이기에 한 번 쏘고 난 뒤에 휴식기가 매우 길다. 함대전을 할 때처럼 위력을 줄인다고 해도 그렇다.

     

   그래서 모함을 보조해 줄 함대가 필요한데, 에이모프 때문에 전부 날아가 버렸다. 남아 있는 모함전단(母艦戰團) 소속 함선들로는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가면극! 가면극이 나오면 난 끝장이야!’

     

   볼텍스원 가면극은 이름에서 보이듯 모두를 광대로 만들 수 있다. 놈이 발산하는 파장에 닿은 생물은 전부 피아식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광기에 빠진다.

   

   이것만 보면 어찌 잘 피하면 그만인 것이 아닐까 싶지만, 문제는 그게 아주 어렵다는 점이다.

     

   설령 그녀가 운 좋게 광기에 빠지지 않았다고 해도 위기가 끝나는 건 아니다. 다른 선원들이 남아 있으니까. 감시청과 제국모함, 베르잔02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녀 하나를 잡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비행선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감시청 내부를 가로질렀다. 그녀는 순식간에 감시청 외부로 나가는 출구에 도착했다.

     

   「현재 이곳은 출입 금지입니다.」

   “난 ‘베르잔02의 방어자’의 함장 알샤스다! 당장 문 열어!”

   「예? 잠시만 기다려 주….」

   “빌어먹을! 빨리 문 못 열어!”

     

   그녀가 비행선 내부의 통신기에 대고 빽 소리를 지른 순간,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사이렌이 들렸다.

     

   「미확인 존재 접근 중! 미확인 존재 접근 중!」

   “와, 왔어! 왔다고!”

     

   요란한 경고음 사이에는 쿵쿵 거리는 폭음이 간헐적으로 섞여 있었다. 감시청을 지키는 함선들의 주포와 시설 외부에 장착된 요새포들이 불을 뿜는 소리다.

     

   ‘나, 나가면 안 돼!’

     

   무시무시한 우주의 악마가 그녀 하나를 죽이기 위해 접근 중이다. 여기서 나갔다간 놈에게 즉시 살해당하고 말리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비행선을 돌렸다.

     

   ‘제발 기적이 일어났으면…!’

     

   무명의 랭커가 감시청에 있어서 저 볼텍스원을 처리해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실로 터무니없는 상상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그만큼 절박했다.

     

   비행선이 방황하는 와중에도 사이렌과 폭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감시청 건물 전체가 진동했다. 상황실이 위치한 관제탑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각종 잔해들이 쏟아졌다.

     

   그녀의 기대와 달리 놈은 아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감시청 내부의 불이 꺼졌다. 비상전력이 들어오고 붉은빛이 구조물 전체에 내리깔렸다.

     

   피의 바다처럼 보이는 그곳에 알샤스가 탄 비행선만이 외롭게 떠 있었다.

     

   ‘…연락! 그래! 여제에게 연락하면 구하러 올 거야!’

     

   조수석에서 일어난 그녀는 급히 통신용 비석을 들었다. 그녀가 귀환파 내부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여제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쓸모 있는 인재를 중히 여기는 그들이라면 필시 그녀를 구하러 올 것이다.

     

   비행선 내부의 전선을 뽑아 비석에 연결하려는 그때, 엄청난 충격이 감시청과 그녀의 비행선을 강타했다.

     

   “뭐, 뭐야?”

   

   깜짝 놀란 그녀는 비행선의 전면 유리를 쳐다 봤다.

     

   거기에 ‘악마’가 있었다.

     

   감시청의 외벽이 무너지고, 수만, 수십만에 달하는 팔들이 덕지덕지 달려 있는 거대한 고리가.

     

   ‘고, 고뇌의 고리!’

     

   수많은 팔들을 이용해 외벽을 찢고 들어오는 볼텍스원은 그녀도 아는 존재였다. 가면극보다는 낫지만, 그녀가 상대할 만한 괴물이 아니라는 것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알샤스는 다급히 조수석으로 돌아가 조종간을 잡았다. 비행선을 급가속시킨 그녀는 검은색 고리 뒤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우주의 악마는 그녀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수많은 팔들 중 일부가 날렵하게 움직여서 비행선을 낚아챘다.

     

   “이,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공황에 빠진 그녀는 조종간을 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에서는 사이킥 파워에 능통한 제국모함 함장의 위엄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팔이 느긋이 움직인다. 비행선만큼 커다란 손 하나가 전면 유리를 뒤덮었다. 손바닥 안쪽에는 소용돌이 형태의 입이 있었다.

     

   이제 곧 저 입이 그녀가 탄 비행선을 통째로 삼켜 버리리라.

     

   그렇게 생각한 그때.

     

   고리의 몸통이 움찔하고 떨렸다. 찢어진 외벽 뒤에서 나타난 무언가가 고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르르」

   「그르르르르」

   「그르르르르」

     

   이어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리고, 고뇌의 고리가 감시청 밖으로 끌려 나가기 시작했다. 악마의 손에 붙잡힌 그녀 또한 함께 검은 바다로 끌려갔다.

     

   갑자기 나타난 구원자 덕분에 목숨을 연장했지만, 그녀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

     

   볼텍스원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저 존재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5위 랭커, 에이모프.

     

   악마만큼이나 두려운 괴물이 그녀를 사로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컬트 기술의 정수 중 하나인 감시청 내부는 완전히 엉망이었다.

     

   전력 시스템이 손상된 탓에 구조물 전체가 비상등의 붉은빛에 잠겼다. 내부 바닥 위에는 부서진 외벽 잔해가 잔뜩 널려 있었다.

     

   모두 나와 볼텍스원이 만든 작품이었다.

     

   알샤스가 탄 비행선을 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고뇌의 고리’가 움직였다. 고리 표면에 있는 수많은 팔들이 나를 붙잡더니 뒤로 확 잡아당겼다.

     

   놈은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힘도 무시무시했다. 내 몸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감시청 밖으로 쫓겨났다.

     

   나는 침식 촉수들을 꺼내 감시청 외벽을 붙잡는 동시에 ‘가변형 생체병기’를 활성화했다.

     

   변형 부위는 머리. 중앙의 머리갑각이 에이펙스 생물 ‘아이스 호러’의 것과 유사한 형태로 변이한다.

     

   머리를 바꾼 나는 외벽을 붙잡은 촉수에 힘을 강하게 줬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마냥 내 몸이 구조물 내부로 쏘아졌다.

     

   이어지는 강렬한 충격. 내 머리가 고뇌의 고리를 들이받은 거다.

     

   모든 볼텍스원은 육체가 심연의 힘과 유기물로 구성되어 있어 무지막지한 내구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손상되지 않는 불멸의 존재인 것은 아니다.

     

   고리 표면에 달린 수많은 팔들이 내 머리갑각에 깔려 으깨져 버렸다. 양쪽의 머리도 있는 힘껏 검은색 고리를 깨물었다.

     

   그 상태에서 두 다리를 감시청의 바닥에 박아 넣고 놈을 힘껏 밀었다.

     

   고리 형태의 몸체가 내 힘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 밀려난다. 그 과정에서 관제탑과 함선들이 놈에게 깔리면서 폭발했다.

     

   등에 있는 침식 촉수들이 허공에 떠다니는 함선 잔해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를 몽둥이처럼 휘둘러서 악마를 후려쳤다. 촉수에 들린 잔해와 적이 충돌할 때마다 시끄러운 폭음이 구조물을 진동시켰다.

     

   ‘슬슬 반격이 올 때야.’

     

   지금 놈의 팔들은 내 머리갑각을 쥐어뜯는 중이지만, 그게 효과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금방 깨달을 거다.

     

   「-」

     

   그 순간, 따로 놀던 놈의 팔들이 동시에 멈췄다. 한 쌍씩 모인 팔들이 내 쪽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한 번 쳤다.

     

   곧이어 어마어마한 압력이 나를 덮쳤다.

     

   「고통 경감 발동!」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촉수뿐만 아니라 목과 몸통이 마구 비틀렸다. 내 몸은 쥐어 짜인 행주 꼴로 변했다.

     

   나를 둘러싼 구조물도 마찰음을 내며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정박된 함선들도 엿가락 휘듯 꼬였고, 관제탑을 비롯한 여러 시설들도 압축된 캔의 꼴이 됐다.

     

   ‘역시 강해!’

     

   고뇌의 고리는 팔들의 자세에 따라 사용하는 능력이 다르다. 박수를 치는 자세는 중력을 조작하는 능력을 쓸 때 취하는 자세다.

     

   당연히 게임에서도 맞아봤다. 숫자로만 보던 것을 실제 몸으로 겪어보니 엄청난 압박감이다. 전함 주포에 맞고도 멀쩡한 뼈 갑주가 순식간에 금이 가고 부서졌다.

     

   심지어 불완전한 상태인데도 이 정도 파괴력이라니. 만약 놈이 정상이었다면 머리 하나 정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뭐가 됐든, 죽이지 못하는 공격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

     

   ‘타이런트로이드’가 발동되면서 내 몸이 다시 커져간다. 변화하는 몸에 맞춰 나의 힘도 강해진다.

     

   나는 아이스호러의 갑각을 쓴 중앙의 머리를 원래대로 돌리고, 전투용 팔을 변이시켰다.

     

   팔 내부의 뼈대들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늘어났다. 뼈가 변형되면서 원래 손 역할을 하던 부분은 톱날이 달린 낫 형태로 변이했다. 4개의 손가락들은 그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다가 이내 삐죽하게 난 발톱 형태로 퇴화했다.

     

   사마귀를 닮은 에이팩스 생물 ‘헬사이드 호넷’의 주력 무기가 지금 내 손에 있다.

     

   나는 변이가 완료된 전투용 팔을 크게 휘둘렀다. 예리한 생체 낫이 검은색 고리에 그대로 박혔다. 헬사이드 호넷의 팔 특유의 날카로움에 더불어 타이런트로이드의 강화 효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

     

   고리에 직접 상처가 나자 놈이 또다시 움직였다. 박수를 친 후 손바닥을 맞대고 있던 팔들이 이번에는 합장하는 자세를 취했다.

     

   곧이어 놈이 엄청난 반탄력이 내뿜었다. 놈을 물고 있던 내 머리들도, 고리 표면에 박아 넣은 생체 낫도 퉁겨져 나왔다. 상처 입은 놈의 몸통에서 검은색 액체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놈과 가까이 있다가 튕겨 나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알샤스가 타고 있던 비행선도 거기에 휩쓸려 여기저기 부딪치다가 우주 밖으로 빨려 나갔다.

     

   ‘저래서는 도망 못 치겠지.’

     

   볼텍스원의 손에 붙잡혔을 때 이미 후면의 로켓이 크게 손상됐다. 초광속 항해는 물론이고, 가까운 곳에 있는 베르잔02에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니 사실상 금속 감옥에 갇혀서 우주에 떠도는 거나 다름없다.

     

   ‘일단 지금은 고뇌의 고리부터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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