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342화 (343/400)

   

   추측컨대 곰치를 닮은 주둥이 때문에 그렇게 평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심해에 내려가면 나와 비슷한 구강 구조를 가진 생물을 만나볼 수 있으니. 변화한 내 머리를 보고 고향에서 봤던 동물들을 떠올려서 귀엽다고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뭐 그건 됐고. 몸에는 이상 없어.’

   

   짧은 점검을 마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눈앞에 있는 악마를 사냥할 시간이다.

     

   나는 활짝 펼쳐진 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날개가 발산하는 에너지가 나의 몸을 무중력의 공간인 우주에서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내 몸이 전력을 다해 이동하는 전함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그런 나의 뒤에서 아드하이와 26호가 바짝 따라붙는다.

   

   내가 진화하는 동안에도 고뇌의 고리와 제국모함은 싸움이 한창이었다. 상대적으로 무장이 빈약한 구축함들은 진작에 전멸했고, 제국모함들만이 남아 힘겹게 싸우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나타나자 제국모함 한 척이 함선의 부무장, ‘블랙캐논’의 포구(砲口) 중 일부를 내 쪽으로 돌렸다. 뒤이어 다른 제국모함도 따라서 나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제국모함 한 척당 8개의 포대만 설치되는 블랙캐논은 코스믹 볼트보다는 떨어져도 매우 막강한 무기다.

     

   블랙캐논에는 총 두 가지 모드가 있는데, 적은 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검은색 열선을, 함대와 싸울 때는 인공 블랙홀을 형성하는 구체를 발사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둘 다 코스믹 볼트와 동일한 에너지원인 암흑물질을 사용하기에 위력 자체는 일반 전함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전에 컬트 함대와 스타유니언의 함대가 싸울 때도 제국모함은 블랙캐논으로 블랙홀탄을 발사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힌 바 있다.

   

   이윽고 대(對) 함대용 함포, 블랙캐논 4개가 불을 뿜었다. 블랙홀을 연상시킬 정도로 새카만 열선들이 나를 태워버리기 위해 날아온다.

     

   ‘물론 안 맞는다면 소용없지만.’

     

   나는 비행 도중 타이밍에 맞춰 날개를 접었다. 나를 포위하듯 날아든 네 줄기의 검은 열선이 간발의 차로 몸 위를 스쳤다.

     

   뒤를 따라오던 아드하이도 궤도를 자유롭게 바꾸며 능숙하게 열선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 다른 블랙캐논들은 고뇌의 고리에게 포화를 쏟아붓고 있었다.

     

   「-」

     

   열선에 의해 불타는 팔들이 소리 없는 박수를 친다.

     

   놈의 화력은 일반 고리 형태보다 8자로 꼬인 형태일 때 배 이상 강해진다. 이는 본래의 몸 중 반만 소환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중력을 조작하는 힘이 발휘되자 우주 공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처럼 출렁거린다. 현실의 물리 법칙을 왜곡시키는 힘이 퍼져나가며 베르잔02의 방어자에 닿았다.

     

   그러자 제국모함이 끄트머리부터 꽈배기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장갑과 모함이 만들어 낸 실드를 완전히 무시한 채 말이다.

     

   그걸 본 다른 제국모함이 나에 대한 사격을 중단하고, 볼텍스원에게 모든 블랙캐논을 집중했다. 커팅된 다이아몬드처럼 매끄러운 함선 외벽에 균열이 생기며 모서리 부분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포대가 검은 구체, 블랙홀탄을 쐈다.

     

   「-」

     

   고뇌의 고리가 다시금 박수를 친다.

     

   그러자 검은 구체는 보이지 않은 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우주 한복판에 멈췄다. 구체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고 빛이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하필 중력을 조작할 수 있는 볼텍스원한테 블랙홀탄을 쏘다니.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소형 블랙홀을 만드는 블랙홀탄은 피아식별이 불가능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나선 이름 모를 제국모함은 자신이 쏜 무기에 그대로 말려들었다. 거대한 함체가 급격히 수축되고 곧 우주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사이 고뇌의 고리에게 접근한 나는 전투용 팔과 뼈 낫 팔로 놈의 몸을 내리찍었다.

     

   몸 크기는 뼈 야수로 거대화됐을 때보다 작지만 힘은 더 강해졌다. 우주에 떠 있는 별빛처럼 차가운 뼈 낫이 고리를 덮은 팔들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이중 턱이 생긴 세 개의 머리로 놈을 사정 없이 물어뜯었다.

     

   유기물과 에너지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살점이 내 몸 속에 스며든다. 뛰어난 에이모프의 소화기관이 볼텍스원의 육신을 흡수해 양분으로 전환했다.

     

   놈도 내가 아까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바로 대응에 나섰다. 표면의 팔들이 X자로 교차하자 수많은 에너지탄이 내 몸을 후려쳤다.

     

   ‘에너지탄이라.’

     

   차라리 반탄력을 만들어 나를 밀어냈으면 피해가 덜 했을 텐데. 놈은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다.

     

   지근거리에서 죽음의 비를 맞은 내 몸이 금세 너덜너덜해졌지만 내 힘은 오히려 강해졌다.

     

   추가로 몸 크기도.

     

   놈의 몸에 박아 넣은 내 머리들과 팔들이 타이런트로이드 효과로 급격히 커졌다. 놈 입장에서는 상처에 지혈 스펀지를 수십 개씩 욱여넣은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확실히 이건 차원이 다른 통증이었는지 놈의 움직임을 잠시 정지했다. 나는 고리의 몸에 박은 머리들을 흔들며 적의 체내를 들쑤셨다.

     

   놈이 못 움직이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코어는 어디 있지?’

     

   일반적인 생물을 초월한 존재인 볼텍스원은 팔다리는 물론이고 내장 같은 소화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육신을 유지하고 운용하는데 필요한 심장이나 뇌와 같은 개념의 기관은 존재한다. ‘어비셜 코어’란 기관인데 이걸 파괴하면 소환된 볼텍스원은 죽는다.

     

   에이모프가 볼텍스원의 유전자 정수를 빼앗으려면 이 어비셜 코어를 포식해야 한다.

     

   「--」

     

   놈도 내가 자기 고기를 먹어치우며 코어를 찾는 중이라는 것을 인식했는지, 즉각 반응했다. 팔들이 합장하고 압도적인 반탄력이 발생하며 내 몸을 덮쳤다. 내 몸이 뒤로 확 젖혀졌지만 전처럼 무기력하게 밀려나지는 않았다.

     

   지금 내 팔과 머리들이 놈의 몸에 박혀서 닻 역할을 하고 있다. 몸 표면이면 모를까 내부까지는 반탄력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고통 경감 발동!」

   「고통 경감 발동!」

     

   물론 버틸 수만 있는 거지, 반탄력에 의한 충격까지 상쇄시키는 건 아니다. 에너지탄에 맞아 입은 상처들이 마구 벌어지고, 두꺼운 갑각도 죄다 깨져나갔다.

     

   갑각이 부서진 다음은 근육과 뼈 차례였다. 볼텍스원이 만든 반탄력으로 인해 노출된 근육은 찢어지고 뼈는 부러졌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 분수가 무중력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강해!’

     

   단순히 자기 보호 능력을 사용한 것인데도 엄청난 위력이다. 여기서 중력 조작 능력까지 걸리면 나라고 해도 무사할 수 없을 거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박수를 치기 위해 손을 모은다.

     

   그 순간, 놈의 몸이 살짝 흔들렸다. 완전히 격침되지 않은 베르잔02의 방어자가 놈을 공격했다.

     

   「----」

     

   놈의 팔들이 박수를 치려다 말고 X자로 교차했다. 상대적으로 덜 번거로운 적인 제국모함부터 정리하고 나를 죽이려는 의도이리라.

     

   팔들이 자세를 바꾸고 난 뒤, 강렬하지만 짧은 파장이 느껴졌다. 그걸 끝으로 제국모함의 움직임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

     

   에너지탄으로 제국모함을 격침시킨 놈이 자세를 바꾸려 한다. 수많은 저 손바닥들이 서로 맞닿는 순간, 내 몸은 완전히 으깨질 터.

     

   하지만 이 자리에는 나와 제국모함만 있는 게 아니다.

     

   놈의 체내가 갑자기 파르르 떨린다. 26호를 등에 태운 아드하이가 날아와 놈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팔들이 자신한테 달라붙은 성가신 적을 해치우기 위해 움직인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무엇이든 차단하는 보호막을 만드는 26호, 그리고 레드아머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아드하이. 제아무리 볼텍스원이라 해도 둘을 쉽게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내 보조기관도 마침내 이질적인 무언가를 감지해냈다. 10m 크기에 달하는 커다란 유기물 덩어리가 가까운 곳에 있다.

     

   ‘어비셜 코어!’

     

   코어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등에서 침식 촉수들을 뽑아냈다. 그리고 코어가 있는 고리 부분의 표면을 촉수로 잡아 뜯었다.

     

   「-----」

     

   코어가 들켰다는 것을 깨달은 놈이 새로운 자세를 취했다. 모든 팔들이 주먹을 꽉 쥔 채 정면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반토막 난 8자 형태의 몸이 잘게 쪼개졌다. 도마뱀이 위급할 때 꼬리를 자르는 것처럼 내 머리와 팔들이 박힌 부분을 떼어놓은 거다.

     

   ‘그럴 줄 알았어.’

     

   코어가 숨어 있는 부위가 멀어졌지만 이것 또한 계획했던 바다.

     

   쪼개진 고리 부분들이 다시 합쳐지며 반만 남은 8자 형태로 돌아온 고뇌의 고리. 나 때문에 신체의 일부를 떼어 놓은 터라 좀 전보다 크기가 줄어들었다.

     

   나는 주인을 잃은 몸통에 머리를 처박은 채 바로 다음 카드를 준비했다.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몸을 합친 놈이 나를 끝장내기 위해 움직인다.

     

   놈이 막 박수를 치기 직전, 어디선가 날아온 파장이 내 괴물의 촉수 끝에 닿았다.

     

   「와! 새집이 온다!」

   「아직」「안 왔어」

   ‘드디어 왔구나!’

     

   26호가 말하는 새집.

     

   녀석에게 새집이라 할 만한 것은 딱 하나뿐이다.

     

   텅 빈 우주 한복판에 푸른 빛무리가 집중된다. 빛을 찢으며 어마어마한 질량을 가진 구조물이 나타났다.

     

   메가콥의 직경 2km짜리 슈퍼무기, 기가크래커다.

     

   베르잔02에서 하늘의 어머니를 떠나보내면서 부탁했다.

     

   아우르 성계의 위험 요소가 얼추 정리되면 기가크래커를 끌고 들어오라고.

     

   제국모함들이 전멸한 지금, 하늘의 어머니와 PS-111, 이사벨을 태운 슈퍼무기가 이곳에 나타났다.

  -

     

     

   ‘헉?!’

     

   알샤스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하얀 천장이었다. 대리석 블록이 가지런히 정렬된 디자인이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는 끔찍한 악취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여, 여기는?’

     

   하얀 천장과 지독한 냄새. 도대체 어디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신에 아무 감각이 없어서 눈만 겨우 깜빡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그때….’

     

   그녀는 정신을 잃기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에이모프와 마주쳤을 때,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시뮬라크럼’을 사용했다. 복제물로 시간을 버는 사이 도망치려는 의도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고, 결과물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놈이 복제물을 찢어 죽이는 동안, 그녀는 무사히 비행선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었으니까.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복제물을 뒤로하고 격납고의 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도중에 알 수 없는 뭔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찔렀다. 따끔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지금 몸 상태도 그렇고, 아무래도 마비 독에 당한 것 같았다. 쓰러진 그녀를 놈이 이 방에 옮긴 것일 터.

     

   ‘…빨리 회복해야 해.’

     

   무슨 이유로 살려놓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악명 높은 에이모프다. 서둘러 몸의 감각을 회복시키지 않으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일어났습니까?”

     

   그때 그녀의 귀로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의 목소리였다.

     

   ‘누구지?’

   “저는 PS-111. 메인 컨트롤러 ‘씨 데몬’, 서브 컨트롤러 ‘에이모프’를 섬기는 자입니다.”

   ‘에이모프? 잠깐, 그보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에이모프가 말씀하셨습니다. 실험체는 목소리로 복제물을 생성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뭐?’

   “하지만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실험체의 생각은 전부 제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뮬라크럼의 발동 조건은 손에서 피를 낸 뒤 그 피에 명령어를 외치는 것.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보니 저쪽에서는 피가 필요하다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걸 머리에 떠올리면 상대가 알아챌 테니 그녀는 급히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이곳은 어디지?’

   “메가콥 노블캐피탈 세인트케이에서 건설한 ‘기가크래커’입니다. 서브 컨트롤러의 지휘를 받아 제가 관리 중입니다.”

   ‘…기가크래커라고?’

   “예. 참고로 이곳은 개조공장입니다. 불필요한 시설들을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탈출이 매우 힘들다. 슈퍼무기를 손에 넣은 에이모프가 관리를 허술하게 할 리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이 그녀가 묻는 질문에 술술 대답한다는 것. 놈을 잘 꾄다면 무사히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PS-111님. 저 좀 도와주실래요? 저는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이예요. 그, 에이모프와 다투게 된 것도 제가 원한 일이 아니예요. 제 위에 있는 자들이 꾸민 짓이죠.’

   “그렇습니까?”

   ‘예.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읽을 수 있으니 제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아시겠죠?’

     

   현실에서든 이 세계에서든 타인을 속이는데 도가 튼 그녀다. 자기 생각을 관리하는 일 따위는 아주 쉬운 일이다.

     

   “신체 반응상 거짓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상대는 잠시 침묵하다가 긍정했다. 그녀는 자신감을 얻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많은 걸 도와주실 필요 없어요. 딱 하나, 격납고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격납고는 51번 복도 끝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친절한 분이시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격납고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나머지는 쉽다. 마비된 몸만 풀리면 상대를 제압하고 바로 달리면 된다.

     

   희망을 발견한 그녀가 기쁨을 애써 감추고 있는데, 상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위치를 알아도 갈 수 없습니다.”

   ‘예?’

   “실험체의 신체가 이동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망치지 말라고 하는 말치고는 내용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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